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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복음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08|조회수2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08일 월요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행복하여라 (마태5,1-12)

 

1독서<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엘리야>(1열왕17,1-6)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3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화답송>시편121,1-2.3-4.5-6.7-8(◎ 2) ◎ 우리 구원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 눈을 들어 산을 보노라나의 구원 어디서 오리오나의 구원 주님에게서 오리니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 그분은 너의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게 하시리라너를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않으시리라보라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졸지도 않으시리라잠들지도 않으시리라

○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주님은 너의 그늘너의 오른쪽에 계신다낮에는 해도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 주님은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신다그분은 너의 목숨 지켜 주신다나거나 들거나 주님은 너를 지키신다이제부터 영원까지

 

복음<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5,1-1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슬퍼하는 사람들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온유한 사람들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자비로운 사람들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평화를 이루는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열왕17,1-6)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3~4)

 

엘리야가 하느님의 지시를 받아 피신할 장소인 '크릿'에 해당하는 '케리트'(kerith)는 '자르다'라는 뜻의 동사 '카라트'(karath)에서 유래한 지명으로서 '분리','단절'을 의미한다따라서 이 시내는 어떤 두 지역을 분리하는 경계선 역할을 했거나 다른 지역과는 단절된 오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이곳은 사람들의 발길도 뜸했을 것이며도피의 장소로서는 적합한 곳이다그리고 '시냇가'에 해당하는 '뻬나할'(benahal)에서 '시내'를 뜻하는 명사 '나할'(nahal)은 '시내', '골짜기',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 본문에서 '나할'(nahal)은 우기에는 급한 여울의 시내를 이루지만건기에는 곧 물이 말라버리는 와디(Wadi)로 볼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크릿 시내'의 지형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한 곳이었을 것이고가뭄이 계속되자 엘리야는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1열왕17,7~9).

 

한편이 '크릿 시내'가 '요르단강 동쪽'에 있다고 말하는데그 이유가 무엇일까? '요르단강 동쪽'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로 들어오기 직전에 머물렀던 장소로서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일용할 양식을 삼았던 장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서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또한 이곳은 모세가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사명을 마친 장소이기도 했다따라서 이곳은 엘리야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할 것을 암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엘리야를 '크릿 시내'로 인도하시는데그 이유는 일차적을 그에게 물을 공급하시기 위해서였다엘리야가 하느님께로부터 물을 공급받아 마시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사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즉 그동안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을 비롯한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발생할 가뭄에 대해서 속수무책이었던 것에 반해서엘리야는 재난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돌보심과 사랑으로 보존되며결국 바알 숭배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편,'까마귀들'에 해당하는 '오레빔'(orebim)은 성경에서 부정한 새로 언급되어 나온다(레위11,5; 신명기14,14).

하느님께서 사람이나 다른 큰 짐승들이 아니라 율법에서 부정한 짐승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까마귀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람인 엘리야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고 살려주는 놀라운 섭리와 안배가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까마귀는 원래 시체와 썩은 것들을 먹는 매우 게걸스러운 본성을 지닌 날짐승이다그러나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니 순종하여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나르게 된다.

이것은 자연 만물이 본성을 거슬러서라도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음을 보여주며본래 하느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러 우상을 섬기고 하느님을 대적하는 현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복음(마태5,1~12)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11~12)

 

마태오 복음 5장 11~12절은 10절에 나오는 여덟번 째 행복의 보충 내용이기도 하지만더 나아가서는 3~10절까지의 전체 팔복(八福)의 보충 내용으로서의 성격이 있다.

특히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 때문에'에 해당하는 '헤네켄 디카이오쉬네스'(heneken dikaiosynes; for righteousness)와 비교할 때, '~때문에', '~을 위하여라는 뜻을 지니는 '헤네켄'(heneken; for)은 동일하고다만 '의로움'(디카이오쉬네스; dikaiosynes)이 ''(에무; emou; me)로 바뀌어진 것만 차이가 있다.

 

사실 마태오 복음 5장 6절과 10절에 나오는 '의로움'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쉬네'(dikaiosyne; righteousness)는 윤리적인 의로움인 동시에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의로움이다.

즉 죄인을 심판하고 멸하시며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의 기준인 '공의'(公義)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 5장 10절의 '의로움'은 6절보다 종교적인 측면이 더 강한 의로움이며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으로서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바로 '의로움', ''()의 전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이며, '의로움 때문에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뜻과 동일한 것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3~10절까지 나오는 팔복(八福)의 서술에서는 모두'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토이'(autoi; they)인 3인칭 남성 복수 주격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 5장 11절과 12절에서는 '너희'에 해당하는 '휘마스'(hymas; you)라는 2인칭 복수 대명사가 나온다.

 

이렇게 인칭이 바뀐 것은 지금까지 말했던 객관적인 진리를 이제는 예수님 앞에 있는 제자들에게 적용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태오 복음의 일차적 독자였던 초대 교회 시대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당면한 현실즉 '모욕과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미래에 주어질 하느님의 상을 바라보면서결코 좌절하지 말 것을 교훈하기 위한 목적도 들어 있는 것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당시 유다인들로부터 하느님의 거룩함을 훼손시키는 신성모독자로 취급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또한 로마 지배 세력으로부터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반국가사범이란 죄목으로 잔인하게 처형당했으며일반 믿지 않는 대중들로부터는 자신들의 믿음 생활 때문에 질시받고 부도덕한 자들로 매도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마태오 복음 5장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당하는 고난을 삼중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셨는데이러한 극심한 고난을 당할 때 사람들은 실의에 빠져 애통해할 수밖에 없기에이제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두 번 거듭 명령형을 사용해서 이러한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제자들에게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기뻐하고'에 해당하는 '카이레테'(chairete; rejoice)의 원형 '카이로'(chairo)는 '기뻐하다', '안녕하다'는 뜻으로서마음에 기쁨이 넘쳐나며 행복에 겨운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즐거워하여라'에 해당하는 '아갈리아스테'(agalliasthe; be glad)의 원형 '아갈리아오'(agalliao)는 '영화롭게 하다', '높이다'는 뜻이 있는 '아갈로'(agallo)와 '뛰다', '솟아나다'는 뜻이 있는 '할로마이'(hallomai)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넘쳐나오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희열을 느끼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 두 단어가 모두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지금 극한 고난의 상황에 있어도 그 기쁨이 넘쳐나야 함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박해는 절망과 고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차 받게 될 영광과 기쁨의 약속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12절에서 ''으로 번역된 '미스토스'(misthos; reward)는 '품삯', '임금', '보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박해를 이겨낸 공로에 대한 '보상'으로 이 상이 주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기준이 아닌 당신의 기준에 다라 각자에게 적절한 상을 주신다(마태20,1~16; 루카17,7~10).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에게 '상이 크다'는 약속에서 '크다'에 해당하는 '폴리스'(polys; great)는 크기가 크다(large)는 뜻이 아니라 양이 아주 많은 (much) 것을 뜻한다.

이것은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이 지상의 어떤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갖가지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극한 고난 가운데서도 미래에 종말론적으로 주어질 이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믿는 이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는 이유가 추가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해 박해받았던 사실을 회상케 하며지금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자들도 '나 때문에'(마태5,11) 즉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함을 보여 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과 하느님을 동등한 위치에 놓으시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과거에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했듯이이제는 제자들이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신 그리스도 당신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여 헌신할 것을 촉구하시는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바이올린 장인 마틴 슐레스케는 바이올린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함께 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는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들 수 있는 울림이 좋은 목재를 찾으러 높은 산에 올라갑니다.

높은 산에 빽빽하게 자라는 나무들은 햇빛을 받으려고 빛이 들어오는 곳을 향하여 가지를 뻗칩니다.

그러다 빛을 받지 못한 가지들은 시들고 말라 죽습니다.

그러면 나무는 부담이 되는 죽은 가지를 떨구어 냅니다.

안타까운 일처럼 보이지만사실 죽은 가지가 떨어져 나간 바로 그 자리는 나이테가 얇고 섬유질이 길고 단단해져 질 좋은 울림 목재가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여 죽은 부분우리에게 부담을 지우는 부분이 있습니다바로 악습과 악덕입니다.

이 부분은 하느님의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어 있으면서 몸과 마음에 붙어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죽은 가지를 떨구는 나무의 지혜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가지를 떨구는 순간에는 아프고 고통스럽겠지만그 자리는 자신의 고집이 얇아지고성품이 더 단단해져 아름다운 삶의 울림을 낳는 목재가 됩니다.

모든 것을 취하지 않고해로운 것을 버리는 사람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마틴 슐레스케울림, 31-32면 참조).

악습과 악덕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달콤하여 버리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또는 이것을 잘라내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잘라내지 않기도 합니다.

달콤한 것을 버리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삶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삶이며그 삶은 우리를 하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주님은 나의 빛나의 구원

 

복음(마태5,1-12)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 직역하면 그 산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셨던 시나이 산에서의 그 말씀(계명)을 다시 주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13,16)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 사람의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알아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이 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께 의탁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가난- 풋토코스(해결 방법이 없는 가난) 페네스(해결방법이 있는 형제적 가난) 여기서는 풋토코스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분의 뜻을 깨닫고 나의 구원에 나의 그 무엇도 보탤 수 없음을, 곧 땅의 모든 행위가 가치 없음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하늘나라를 받아 들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슬퍼하는- 판테오(파스카)라는 뜻으로 현재형이다. *위로- 파라칼레오(초청을 받다) 그러니까 파스카로 청을 받아 그 파스카의 어린 숫양의 죽음으로 내가 죽어야, 슬퍼야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곧 앞에서 묵상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구원에 보탤 수 없음을 아는 그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버리고, 죽이는 그 슬퍼함으로 속죄 제물인 어린양(예수)을 계속적으로 먹어야 복이라는 말씀이다.

 

(요한6,53-54)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요즘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새 계약이라 배웠음을 기억해야한다.

 

행복하여라온유한 사람들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사람의 것(온유)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유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온유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 온유를 담은 온유한 사람(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2코린10.1) 1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겸손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는 대담하다고들 하는 나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직접 권고합니다.

 

행복하여라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땅(사람)의 의로움이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하늘의 의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구원의 의로움인 십자가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흡족해진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행복하여라자비로운 사람들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마음이 가난해서 곧 자신을 비워(버림, 부인) 자비의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유다1,21)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행복하여라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히브10,14.22) 14 한 번의 예물로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행복하여라평화를 이루는 사람들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하늘의 평화를 내가 먼저 받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땅의 평화는 순간적이며 영원하지 못함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받아들이고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 욕심, 탐욕, 그 죄악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하늘의 평화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세상의 것으로 평화를 바라며 만족하려는 그 사람들의 생각, 욕망을 부수시고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10 행복하여라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땅, 세상, 인간들, 그 스스로의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능력이 없고, 하늘의 의로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만이 구원의 힘, 진리이니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하면, 전하면 박해와 핍박을 받는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너희는 행복하다!

= 사람들의 모욕, 박해와 사악한 말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2코린1,3-5)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 우리의 환난, 그 안에는 하느님의 위로가 들어 있음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당신으로 행복하나이다. ~아멘!!!

 

 

 

 

2026년 06월 08일 월요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마태오 복음서의 산상 설교는 군중과 제자 모두를 향한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시작하고 또한 끝맺습니다(마태 4,25; 7,28-29 참조).

산상 설교는 특정 민족이나 공동체를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보편적 가르침입니다먹고사는 문제울고 웃는 문제그리하여 이 삶을 그토록 모질게도 살아 내야 하는 까닭을 담고 있습니다.

행복 선언은 현재 상태를 미화하거나 치장하지 않습니다오히려 부족함슬픔무력함굶주림이라는 인간의 낮은 자리를 들추어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5,3)은 하느님 나라를 억지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고부족함을 견디며 하느님의 개입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난은 유다의 쿰란 공동체가 말하던 영 안에서 낮아진 이들과도 닿아 있습니다그들은 유배의 고통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 내며자신의 힘 없음이 오히려 하느님을 향한 기회이자 초대가 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행복 선언이 그리는 현실의 슬픔(5,4 참조역사 속 이스라엘이 겪은 상실과 폐허가 된 시온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렇기에 이 선언은 현실이 팍팍하여 가난과 힘겨움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을 향합니다.

힘이 없기에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약하고 부드럽기에 온유합니다(5,5 참조).

의로움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5,6 참조단순한 윤리적 욕망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정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현실을 고통스럽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하며 평화를 이루는 삶을(5,7-9 참조꿋꿋이 살아 내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박해받는 이들에게(5,10 참조약속된 하늘나라는세상이 짓밟은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마지막으로 뒤집어 주실 새로운 질서가 됩니다.

그 질서가 가리키는 행복은 현실의 찬란한 성공이 아니라상처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존재에게 주어지는 조용한 회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기어이 회복시키실 것입니다우리는 그 기어이를 붙들고 살아 내는 신앙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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