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09일 화요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세상의 소금과 빛 (마태5,13-16)
제1독서<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았다.>(1열왕17,7-16)
엘리야가 숨어 지내던 7 시내의 물이 말라 버렸다.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9 “일어나 시돈에 있는 사렙타로 가서 그곳에 머물러라. 내가 그곳에 있는 한 과부에게 명령하여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해 놓았다.”
10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그가 성읍에 들어서는데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엘리야가 그 여자를 부르고는, “마실 물 한 그릇 좀 떠다 주시오.” 하고 청하였다.
11 그 여자가 물을 뜨러 가는데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12 여자가 대답하였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13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14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 주님이 땅에 비를 다시 내리는 날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과연 그 여자와 엘리야와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16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화답송>시편4,2-3.4-5.7ㄷ-8(◎7ㄷ) ◎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 저를 의롭다 하시는 하느님, 제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소서. 곤경에서 저를 구해 내셨으니, 자비를 베푸시어 제 기도를 들으소서. 사람들아, 언제까지 내 명예를 짓밟고, 헛된 것을 사랑하며 거짓을 찾으려느냐?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기적을 베푸신다. 내가 부르짖으면 주님이 들어 주신다. 너희는 무서워 떨어라, 죄짓지 마라. 잠자리에서도 속으로 새기며 침묵하여라. ◎
○ 주님, 저희 위에 당신 얼굴 밝은 빛을 비추소서. 저들에게 곡식과 햇포도주가 푸짐할 때보다, 당신은 더 큰 기쁨을 제 마음에 베푸셨나이다. ◎
복음<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열왕17,7-16)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는 한, 구운 빵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엘리야가 과부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12~13)
고대 근동 사회에서 '과부'는 대부분 남편의 사망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위치에 있었다. 물론 당시 고대 근동 사회에는 죽은 자기 형제의 형수를 취하는 '수혼제'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사이에도 보편적으로 관습화된 것으로 여겨진다(창세38,6~11; 룻기1,11~13).
당시 사회적 약자인 과부들은 이같은 풍속을 통해 나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같은 보호는 죽은 형이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을 때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렙타 과부의 경우처럼(12절) 자식이 있는 경우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더 망막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스라엘의 경우는 이들에 대한 보호를 탈출기 22장 21~24절이나 신명기 14장 29절에 명문화할 만큼, 적극적인 책임을 그 주변의 이웃에게 부과하고 있지만, 이방인인 이 여인은 어떤 보호와 동정도 구할 여력이 없는 극한 절망에 처해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 예언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도록 하셨다.
더욱이 그 과부는 엘리야 예언자가 그토록 혐오하는 바알 종교의 원산지인 시돈에 살고 있는 여인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의 심오한 섭리가 담겨진 곳으로, 약한 것을 선택하셔서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느님의 능력 (1코린1,27~31)과 이방 세계에 대한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루카4,24~26).
또한 본문은 다른 각도로 보면, 아합왕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쳐 북부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와 아쎄라 숭배를 만연시킨 '시돈의 공주' 이제벨을 물리치시기 위해서 '시돈의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를 돕게 하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수 있다.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당시 사렙타의 과부가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워 맹세한 것은 그녀가 하느님을 섬겼기 때문이 아니다. 당시 이스라엘과 교류가 많던 페니키아의 한 여인으로서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말에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단지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하느님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이 여인이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이나 '우리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지 않고, '어르신의 하느님'(당신의 하느님)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단지에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사렙타 여인이 가지고 있던 음식 재료의 전부였다. '한 줌'에 해당하는 '멜로 카프'(mello kaph)는 '채우다'라는 동사 '말레'(malle)에서 파생된 명사 '멜로'(mello)와 '손바닥'을 뜻하는 명사 '카프'(kaph)가 연결된 것으로서 손바닥을 채울 정도의 소량을 뜻한다.
따라서 '단지'(큰 도기 항아리)를 뜻하는 '카드'(kad)에 겨우 이 정도의 가루가 있었다는 것은 과부의 극심한 빈곤 상태를 대변해 보여준다.
또한 '병'을 뜻하는 명사 '찹파하트'(tsappahath)는 병사가 전쟁터에 나갈 때 휴대할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용기를 지칭한다(1사무26,11). 이 작은 병에 들어있는 소량의 기름 역시 과부의 빈곤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본문에 묘사된 과부의 극심한 빈곤 상태는 후에 오히려 하느님의 능력과 풍성함을 극대화시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본문은 12절에 나오는 사렙타 과부의 절박한 대답에 이어 엘리야가 낙심과 절망에 빠진 여인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두려워'에 해당하는 '티르이'(thiri)의 원형 '야레'(yare)는 '두려워하다'(창세20,11),'경외하다'(2역대19,9)라는 뜻으로 두려움 뿐만 아니라 존경이나 경외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본문에서와 같이 '두려워하지 말고'라는 의미의 부정(否定)명령으로 사용될 때에는 위로나 인사의 말이 된다(창세50,19).
사렙타 과부는 너무나 암울한 미래에 대하여 큰 두려움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미 모든 식량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삶을 지탱할 만한 물질이나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기대할 것이라고는 죽음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러한 과부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확고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한편, 원문에 나타난 '야레'(yare)동사를 통하여 우리는 중요한 신앙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밀어닥치는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극적으로 불확실한 인생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지존하신 주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느님만을 두려워할 때 비로소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인간적인 두려움들을 온전히 제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큰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먼저 나를 위해 작은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여기서 엘리야는 마지막 남은 식량으로 빵을 만들어 누구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인 자신에게로 가져오라고 명하고 있다. 엘리야는 그 과부에게 '두려워하지 말고'라고 권면하면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제적인 행동원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의지적 결단과 그에 다른 순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걱정이나 염려나 두려움을 하느님께 맡기고, 전적으로 하느님을 신뢰하며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뿐이다(필리4,6).
한편, 엘리야는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먼저' 자신에게로 가져오라고 말한 후, '그런 다음 당신과 당신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라'고 말한다. 인간적으로 판단할 때에는 참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과부는 분명히 '밀가루 한 줌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지극히 적은 양으로 겨우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 밖에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렙타 과부는 엘리야의 말에 전혀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주님께서 그 집에 식량이 떨어지지 않게 할 것(14절)이라는 예언자의 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한다. 이러한 순종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그녀의 심령을 감동시키신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순종의 결과 그녀와 그 아들은 육신적인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영적인 생명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24절; 루카4,24~26).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피의 계약(말씀)은 구원의 힘이다
(마태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 우리는 흙으로 지어진 그릇, 그 그릇에 소금을 담으면 소금 그릇이 되는 그 의미의 ‘너희는 소금이다’라 하신 것입니다. 소금은 영원히 변질되지 않는 물질로 부패를 방지하는 곧 죽을 죄인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약, 말씀을 뜻합니다.
(탈출30,35)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 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말씀)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민수18,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예수)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레위2,13)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
= 소금계약(말씀)에 맞는 제물과 예물을 드림.
(2역대13,5) 너희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소금 계약으로,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권을 영원히 주신 것을 알지 않느냐?
= 소금계약(말씀)-영원한 왕권.
(2열왕2,19-21) 19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보시다시피 이 성읍(교회)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산력(구원)을 잃어버렸습니다.” 20 이 말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소금을 가져오자, 21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 죄인을 거룩하게 하여 다시 살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소금계약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로 맺는 새 계약인 것.
(루가22,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죄인들의 죄가 되시어 십자가에 달리시어 ‘다 이루어졌다’ 하고 죽으신 그 예수님의 몸과 피를 소금계약,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고 마셔야(믿어야) 죽거나 생산력을 잃는 일, 곡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소금이 제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는 것, 곧 소금계약인 영원히 변치않는 하느님의 왕권, 그 말씀의 힘인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거룩과 생명을 믿지 못하는 것, 그래서 세상의 힘을 의지하려 미련을 둔다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됩니다.(창세19,29)
또한 단순히 예수님의 몸과 피로만 먹고 마신다면, 그래서 소금계약, 그 새 계약의 맛(믿음)을 못낸다면, 쓸모가 없어 버려질 것이며 사람들의 놀림을 당하는, 짓밟힐 것입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 소금과 같이 그릇에 빛을 담으면 등불-빛이 되는 것. -빛은 예수그리스도(요한1,9~)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비추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
(묵시21,23) 그 도성(새 하늘과 새 땅)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 등불(빛-예수), 등경(교회), 교회는 집 안(교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자신들의 뜻을 위한 빛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구원의 빛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빛으로 자신들의 어둠(땅, 죄인)임을 깨닫고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요한1,5.9.11-12)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나의 빛, 나의 착한 행실은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이 되어야 그것이~~
(요한10,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는 목자, 그 예수님의 착한 일을 전하는~ 착한일.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그 십자가의 피로 맺는 새 계약(소금계약)을 전하는 그 착한 행실을 했을 때, 그 복음을 듣는 이들이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되지요. ( 인간적 착한 행실을 했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만을 칭찬 합니다.)
(마르9,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 소금계약, 그 영원한 말씀으로만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1코린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아멘.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은 부패를 막고 음식의 맛을 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세상의 소금’으로 세상의 타락과 멸망을 막고 더 나은 세상, 더 맛깔 나는 세상을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기에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라고 경고하십니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9,50) 하고 이르십니다.
또한 콜로새서의 저자는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4,6)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세상의 빛일 수 있는 이유는 먼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 새 생명을 얻은 우리의 빛은 더 이상 감추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어둡고 차디찬 세상을 밝고 따스하게 비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양초처럼 자신을 불태우고 녹일 때, 세상은 더욱 따뜻해지고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빛나고 있습니까? 그 빛으로 세상 사람들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까?
혹시 내 앞길만, 내 가정만, 우리 교회만 비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모든 이를 환히 비추는 ‘세상의 빛’이어야 합니다.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추는 빛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이가 풍성한 생명을 얻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하느님 일의 실천은 영원한 계약으로 보내신 그리도를 믿는 것이다
(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 세상 물질 중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소금, 그 하나뿐이다. 그래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소금계약’ 이라 하신다.
(민수18,19) 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아론-사제)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2역대13,5) 5 너희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소금 계약으로,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권을 영원히 주신 것을 알지 않느냐?
= 대 사제, 왕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지체인 교회와 맺는 하느님의 영원한 계약, 소금계약이다.
*온 이류가 타락하자 하느님께서 홍수로 죄를 다 죽이시고 그 홍수가 끝나자 노아가 제사를 드리는데~
(창세8,20-21)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 정결한 예물- 예수님의 모형이다. 하느님께서 정결한 예물(예수)의 향내를 맡으시고 다시는 사람을 죄로 파멸하지 않으시겠단다.
(창세9,12-16)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
= 무지개-레인보우(물의 활) 곧 저주의 물을 활로 하늘이 대신 맞아 죽으시고 사람들을 영원히 살리시겠다는 영원한 하느님의 약속, 계약이 ‘무지개 계약’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영원한 계약, 소금 계약이 그리스도의 피로 죄가 씻겨 영원한 상속, 하늘의 생명을 받는 새 계약인 것이다.
(에페1,3-7)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계약인 소금 계약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가를 증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처럼(로마7,15-25) ‘내 꼬라지는 여전히 이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소금 계약 때문에 나의 구원은 절대 변질될 수 없다’는 것을 믿는 이가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소금이다.’ 하신 말씀은 너희는 스스로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가 아니다. 세상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은 예수님이시다. 곧 소금 계약을 가진 이가 그 소금 계약으로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 마찬가지이다. 빛이신 예수님을 받아들인 이가 세상의 빛이다.
(시편119,135) 135 당신 얼굴(빛)이 당신 종 위에 빛나게 하시고 당신의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사람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내는 빛을 어둠이라 한다. (이사64,5참조) 그것이 본문에 산 위에 잡은 고을(예루살렘)이 율법인데(이사2,1-3참조) 그 율법, 곧 인간의 의로움이 빛이라 우기는 그 율법의 고을, 성전에 하늘의 참 빛이 비추이면 그들의 실체인 어둠을 감출 수 없게 된다는 말씀이다.
(야고2,8-10)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10 누구든지 율법을 전부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율법 전체를 어기는 것이 됩니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그릇-사람) 속이 아니라 등경(교회)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신자)을 비춘다.
= 예수님의 의로움(십자가), 그 구원, 생명의 빛을 사람의 의로움으로 덮지 말고, 가리지 말고 신자들을 비추어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빛이 될 수 있도록 비추게 하라는 말씀이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예수)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 착한 행실- 구원,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비추어 어둠(죽음)속에 있는 이들이 그 빛이신 예수님으로 구원,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착한 행실이다. 그래야 모든 이가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다.
앞 묵상글 중에서~
(에페1,6)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가 된다. 빛은 어둠을 드러내러 오셨다. 어둠을 탓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어둠으로 들어오셔서 빛이 되게 하시러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둠에게“너는 빛이다” 하신 것이다. 그래서 어둠이 어둠임을 인정하는 것이 선, 빛이다.
(에페5,12-14)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요한1,12)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하느님의 일을 믿고 전하는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서. ~아멘!!!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복음 (마태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3)
하느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밝히며 세상과 타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근본 역할에 대한 가르침이다.
'너희는 소금이다'에 해당하는 '휘메이스 에스테 토 할라스 테스 게스' (hymeis este to hallas tes ges;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에서 '에스테'(este)는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eimi)동사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복수형이다.
여기서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이 교훈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경할 수 없는 절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되라'는 명령법이 쓰이지 않고, '~이다'라는 직설법이 사용된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세상의 소금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금의 역할을 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고, 이미 하느님의 통치권 안에 속한 하느님 나라 백성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이미 세상의 소금이며,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당위성과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소금에 해당하는 '할라스'(hallas; salt)는 성경이나 유대 문헌과 관련하여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단어이다.
첫째, 생명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물, 불, 곡식, 의복 등과 같이 삶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품이다. 따라서 소금으로서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가 없는 세상은 영적 생명이 끊어진 세상이다.
둘째, 방부제의 역할을 한다.
생선과 고기를 보존하는 데 사용되는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없는 세상은 부패할 수 밖에 없고, 반대로 세상이 부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째,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세상의 빛이라는 빛의 시각적 효과와 더불어 맛의 미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녹아서 맛을 내는 소금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도 겸손하게 자신을 숨기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치료제의 역할을 한다.
유대 문헌에 보면 치통도 소금으로 고치고, 신생아도 소금으로 문질러 그 몸을 깨끗하게 했듯이 이 세상의 환부를 치료하는 역할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해야만 한다.
다섯째, 정결한 희생을 상징한다.
구약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희생 제물은 방부제의 역할과 더불어 제물을 정결하게 하는 소금을 뿌렸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도 하느님께 바쳐지는 제물 위에 뿌려져서 타서 없어지는 소금처럼 정결한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한다.
한편, '세상의'에 해당하는 '테스 게스'(tes ges; of the earth)에서 '게스'(ges)는 하늘과 대조되는 입장에서의 '땅', 사람이 거주하는 '지구', 혹은 '사람','인류'라는 복합적 의미를 지니는 '게'(ge)의 소유격이다.
따라서 '세상의 소금'이라는 표현은 '땅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된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소금을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로 사해 지역의 늪 지역에서 채취하거나 땅에서 암염을 캐내어 사용했으므로, '테스 게스'는 땅에서 채취하는 팔레스티나 특유의 소금 생산 방법을 반영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들 가운데서의 소금이라는 의미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선민 의식과 자기식의 의(義)와 거룩함을 주장하며, 이방인들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불결한 자로 취급하며 멀리했던 유다인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들은 그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희생하여 그들을 변화시키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의 문장에서 서두에 나오는 '만약'(그러나)에 해당하는 '에안'(ean)은 여기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을 서술할 때 쓰이는 '호탄'(hotan)처럼, '~할 때면 언제나'(whenever) 혹은 '~하는 즉시'(as soon as)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그 즉시' 혹은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예외없이 언제나'라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오늘날처럼 정제된 순도가 높은 소금이 아니라 땅에서 채취한 불순물이 많은 암염을 사용했는데, 잘못 보관하면 염분은 빠져나가 버리고 찌꺼기만 남아 짠 맛을 도무지 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처럼 염분이 사라져 버린 소금은 전혀 가치가 없게 되듯이 하느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어리석은 삶이 되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여기 본문에서 '짓밟힐'에 해당하는 '카타파테이스타이'(katapateisthai; and to be trodden; and trampled)는 부정사 현재 수동형이다. 여기서 수동형이 사용된 것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밟히게 됨을 보여 주고, 부정사 현재형이 사용된 것은 '항상 밟힌다'는 뜻이다.
실제로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길에 버려지기도 했으며, 가옥의 옥상에 뿌려 흙을 딱딱하게 굳도록 만들어 평평한 휴식 공간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어쨌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사람으로부터 짓밟힐 정도로 무가치하고 비참해지게 된다는 말이다.
2026년 06월 09일 화요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으로 인간의 부족함을 드러내신 뒤, 곧바로 신앙인의 정체성을 한 번에 규정하십니다.
신앙인은 가난해도, 부족해도 이미 “세상의 소금”(마태 5,13)이고 “세상의 빛”(5,14)입니다.
이 말씀은 격려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선언입니다. 소금과 빛은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른 이를 향합니다. 소금은 녹아 사라지며 맛을 내고, 빛은 어둠을 밝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합니다.
소금은 고대 세계에서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정화하고, 보존하며, 제물과 함께 바쳐졌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소금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로 이 ‘부자연스러움’을 통하여 경고합니다.
제자들이 행복 선언에서 드러난 삶의 방식, 곧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로움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소금이지만 소금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 쓸모없음은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자기 본성과 정체성을 배반한 결과입니다.
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두는 행위는 제맛을 잃은 소금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5,16)를 찬양하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서 6장이 말하는 위선적인 드러냄(보이기 위한 자선, 기도, 단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등경 위의 빛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끝내 숨겨지지 않아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소금과 빛이 되었으니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무엇을 위한 마음’을 지녀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 자연스러운 오늘의 ‘나로서’ 살아갑시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소금과 빛의 짝인 말씀을 찾아서~
복음(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탈출30,34) 3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향료들, 곧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을 장만하여, 이 향료들과 순수한 유향을 섞는데, 각각 *같은 분량으로 하여라.
= 세 가지 향(香)에 유향을 같은 분량으로 섞는 것,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이 같은 유향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유향은 대사제의 예물이다.(마태2,11)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같은 뜻인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 사제의 일이다.
(히브7,27)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하신(히브10,18) 죄의 제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의 말씀이다.(요한1,14)
(탈출30,35) 35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 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 죄인인 우리가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해진다는 말씀이다. 곧 대사제로 오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다.(히브10,9-12 참조)
(레위2,13) 13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곧 소금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피의 새 계약에 대한 감사의 예물(禮物), 제물(祭物)로 바쳐야한다는 말씀이다.
(민수18,19) 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속조 제물의 어린양, 예수) 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계약)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아멘)
(2열왕2,19-22) 19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보시다시피 이 성읍(교회)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 새 계약의 물(말씀), 곧 영원한 소금 계약인 새 계약으 말, 가르침이 아닌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으로 생산력, 곧 하늘의 생명을 얻는, 사는 그 새로운 피조물, 새 창조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20 이 말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소금(새 계약의 말씀)을 가져오자,
= 새 계약은 구약에서부터 말씀하셨다.(예레31,31~)
21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새 창조),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하늘의 생명)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22 그러자 그 물은 엘리사가 한 말대로 되살아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4,6) 6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새 계약의 말씀)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시편27,1) 1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36,10) 10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물- 말씀)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시편119,105.130) 105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130 당신의 말씀이 열리면(깨달으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이들을 깨우쳐 줍니다.
= 소금계약, 새 계약의 말씀으로다.
(지혜7,26-27)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영원히)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 ‘지혜(智慧)’- 하느님의 구원의 영(靈), 힘이시며(1코린1,24 2코린13,4), 하느님의 영원한 소금계약인 피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시다.(히브1,3)
(마태4,16)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 빛이신 하느님을 거부한, 그래서 어둠인 세상에 ‘독생자(獨生子) 예수를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음’이다.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하늘)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세상)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12,46)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세상, 두려움)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테살5,5) 5 여러분은 모두 빛(하늘)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세상)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15,19)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어둠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저희가 소금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세상의 소금, 빛이 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소금계약)가 아버지의 뜻(빛)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