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0일 수요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의 완성 (마태5,17-19)
제1독서<이 백성이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해 주십시오.>(1열왕18,20-39)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시 말하였다. “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러나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오십 명이나 됩니다.
23 이제 우리에게 황소 두 마리를 끌어다 주십시오. 그들에게 황소 한 마리를 골라 토막을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불은 붙이지 말게 하십시오. 나도 다른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겠습니다.
24 여러분은 여러분 신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겠습니다. 그때에 불로 대답하는 신이 있으면,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러자 백성이 모두 “그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에게 제안하였다. “당신들이 수가 많으니 황소 한 마리를 골라 먼저 준비하시오. 당신들 신의 이름을 부르시오. 그러나 불은 붙이지 마시오.”
26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황소를 데려다가 준비해 놓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바알이시여, 저희에게 응답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없었다. 그들은 절뚝거리며 자기들이 만든 제단을 돌았다.
27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놀리며 말하였다. “큰 소리로 불러 보시오. 바알은 신이지 않소. 다른 볼일을 보고 있는지, 자리를 비우거나 여행을 떠났는지, 아니면 잠이 들어 깨워야 할지 모르지 않소?”
28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 댔다.
29 한낮이 지나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기까지 그들은 예언 황홀경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대답도 응답도 없었다.
30 그러자 엘리야가 온 백성에게 “이리 다가오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백성이 모두 다가오자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31 엘리야는, 일찍이 “너의 이름은 이스라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내린 야곱의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왔다.
32 엘리야는 그 돌들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제단 둘레에는 곡식 두 스아가 들어갈 만한 도랑을 팠다.
33 그는 장작을 쌓은 다음,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34 그러고 나서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하고 일렀다. 그런 다음에 그는 “두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35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36 곡식 제물을 바칠 때가 되자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말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 주십시오.
37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주님! 저에게 대답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이 백성이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이시며, 바로 당신께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셨음을 알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 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렸다.
39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주님이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화답송>시편16,1-2ㄱ.4.5와 8.11(◎1)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
○ 다른 신들 붙좇는 자들의 고통이 크기에, 저는 그 신들에게 피의 제사를 바치지 않으며, 그 이름 제 입술에 올리지도 않나이다. ◎
○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 당신이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시편 25(24),4.5 참조
복음<나는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5,17-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열왕18,20-39)
"그 무렵 아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예언자들을 카르멜 산에 모이게 하였다.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0-21)
엘리야와 우상 숭배자들의 대결 장소인 '카르멜'(karmel)은 '동산' 혹은 '과수원' 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카르멜 산이 동산이나 과수원을 연상시킬 정도의 울창한 숲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명칭으로 보인다. 카르멜산은 팔레스티나 지중해 연안 중앙부에 돌출한 산악지대로 남동으로 24km가량 이어진 일련의 산맥이다.(예레46,18) 카르멜 산맥 동남단 최고 높이는 표고 546m에 달하지만, 서북쪽으로는 갈수록 점차 낮아져 하이판만의 남단의 정상 부근은 겨우 169m에 불과하다.
카르멜산은 평야와 바다를 광범위하게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었으며, 많은 동굴과 무성한 숲으로 인해 고대로부터 우상 숭배 처소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특히 카르멜 산은 바다로부터 몰려오는 비가 내리는 육지의 첫 지점이었기 때문에, 그 정상에는 '기후의 신'을 섬기는 성소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바알 종교의 본산지인 시돈의 중간 지점이었다. 따라서 이곳 카르멜 정상은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가 참 신(神)의 능력을 겨루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었다. 전승에 의하면, 대결 장소는 카르멜 산 동단에 있는 '번제의 장소'란 뜻을 지닌 현재의 '엘 무라카' 라고 한다.
한편,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간의 카르멜 산 대결은 참 신과 거짓 신과의 승부로서 너무나 당연하게 주 하느님만이 유일한 참된 신임을 다시한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열왕18,38.39)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21)
엘리야는 16절에서 20절 단락에서 아합을 만나 우상 숭배자들과의 대결을 제안한 바 있다. 이제 21절에서 40절 단락에서는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과의 본격적인 대결이 카르멜 산에서 벌어지게 된다. 이것은 '누가 살아있는 참 신인가?' 를 판가름하기 위한 대결이었다. 본문은 엘리야가 바알 예언자들과의 대결에 앞서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양다리를 걸치고' 로 번역된 '알 셋테 핫쎄입핌'(al shethe hasseippim ; between two opinions)에서 '핫쎄입핌'은 '분리하다'라는 뜻의 동사 '싸아프'(ssaph)에서 유래된 명사 '싸이프'(ssaiph)의 복수형 '쎄입핍'(sseippim)에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같은 어근을 가진 '싸이프'(ssaiph)에서 찾을 수 있다. '싸이프'는 바위의 갈라진 '틈'(판관15,8)이나 나무의 '가지'(이사17,6)를 뜻한다. 따라서 '쎄압핍'은 바위의 갈라진 틈이나 갈라진 나무의 가지처럼 '갈라진 의견이나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셋테 핫쎄임핌'은 '두 가지 다른 의견' 즉 '바알 신앙과 하느님 신앙'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엘리야는 본절에서 이 단어가 지닌 '의견'이나 '생각'이라는 이차적 의미만을 나타내기 보다는 '바윗 틈'이나 '나뭇가지'라는 일차적 의미도 함께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절뚝거릴 작정입니까'로 번역된 '포쎄힘'(posehim ; halt, waver)과 '사이에서'로 번역된 '알'(al ;between)이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포쎄힘'은 '(다리를)절다'(2사무4,4), '절뚝거리다'라는 뜻을 지닌 '파싸흐'(passah)의 분사형이며 '알'(al)은 '~사이에서'라는 뜻보다는 '~위에서' 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는 전치사이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두 바위 틈 혹은 두 개의 나뭇가지 위에서 절뚝거리고 있느냐?' 가 된다. 이것은 하느님 신앙과 바알 신앙이라는 두 신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혼합주의적 신앙 양태를 보이고 있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즉 두 개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마치 곡예를 하듯, 그것도 성한 몸이 아니라 절뚝거리는 다리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상태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절뚝거리다' 란 의미로 사용된 '파싸흐' 동사는 26절에서도 사용되어 바알의 예언자들이 단(壇) 주위에서 춤추는 동작을 나타내는 '절뚝거리며 돌았다'(뛰놀았다 ; leaped, danced)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용어의 일치는 절름발이처럼 하느님과 바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사실상 바알의 예언자들과 장단을 맞춰 '춤을 추는 것'(파싸흐 ;passah)이나 마찬가지임을 암시하기 위한 문학적 기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21)
하느님이든 바알이든 어느 한 쪽을 택하라는 엘리야의 촉구에 대해 백성들은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제벨은 아합을 앞세워 바알의 신당을 짓고 바알 숭배를 조장함(16,31-33)은 물론, 그 반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18,4) 반면, 하느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의 거짓된 신앙을 버리고 오직 하느님만을 섬기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극단의 신앙 싸움에서 북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양다리를 걸치고 일종의 혼합주의 신앙으로 그들의 편리만을 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더 큰소리로 부르며, 자기들의 관습에 따라 피가 흐를 때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 몸을 찔러댔다' (28)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 배후에 있는 '그 규례'가 정확히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런 행동에 대해, 인신 제사를 대신한다는 견해에서부터, 피의 유출은 신과 예배자 사이의 계약적 유대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었다는 견해에 이르가까지,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한 것으로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해(自害)행위가 바알 예배의 한 정규 의식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관습을 금지시킨다. (신명14,1 ; 예레16,6 ; 41,5 ; 47,5참조)
'물을 네 항아리에 가득 채워다가 번제물과 장작 위에 쏟으시오. 그런 다음에 그는 "두번째도 그렇게 하시오. 그들이 두 번째도 그렇게 하자, 엘리야는 다시 "세 번째도 그렇게 하시오."하고 일렀다. 그들이 세 번째도 그렇게 하였을 때, 물이 제단 둘레로 넘쳐흐르고 도랑에도 가득찼다.' (34-35)
물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12 항아리나 부어졌다. 이로써 제단 전체가 완전히 물에 젖게 했다. 이것은 거기 모인 모든 이들에게 어떤 인위적인 속임수에 의해 제단에 불이 붙었다고 하는 일체의 의심을 제거하기 위해서 엘리야가 의도적으로 취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이같은 행동은 이를 명하는 엘리야가 하느님의 응답과 하느님의 행하실 역사에 대해 얼마나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또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엘리야 예언자는 카르멜산에서 하느님과 바알 신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합니다.
“야훼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홀로 남은 주님의 예언자 엘리야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대결합니다.
엘리야는 야훼 이름으로 제단을 쌓고 야훼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주 하느님의 권능을 청합니다.
마침내 하늘에서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함께 있던 모든 것을 태워 버리며, 하느님의 위엄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미 주 하느님의 권능과 위엄을 체험하여 알고 있으며, 우리가 믿는 주님이야말로 전지전능하신 참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시편 16[15],1)라고 기도하며 하느님의 손길에 우리 자신을 맡깁니다.
구약의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느님께서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구약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당신 말씀과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율법의 정신을 십자가의 신비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참스승이시며 주님으로 모시는 우리는 그분 안에서 완성된 율법과 계명, 십자가의 삶을 이 세상에서 실천하며 하늘나라를 위한 보화를 쌓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주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의탁합니다.
“야훼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야훼야말로 하느님이십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우리의 자격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마태5,17-19)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완성(플레로-꽉채우다) 구약을 예수님 당신으로 결론 내셨다는 말씀이다.
산상수훈의 결론~
(마태7,12)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본문 5장17절의 율법과 예언서, 그리고 7장12절의 율법과 예언서 ‘황금율’ 사이에 ‘살인, 간음, 이혼, 멩세, 원수, 사랑, 봉사, 기도, 단식, 제물, 두려움, 판단이 들어있는데 하느님께서 시나이산에서 주셨던 10계명의 제목들을 예수님께서 당신으로 다시 설명해 주신 것이다.
例: (마태5,21-22) 21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 형제- 죄인들의 이웃으로 친구, 형제로 십자가에서 대신 못 박혀 죽어주신 예수님이다.(요한20,1참조)
*황금율 - 예수님께서 율법과 예언서를 당신의 죽음으로 다 완성하심으로 우리가 바라는 대로 우리 구원의 의로움을 다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해 드려야 한다.
(갈라3,11) 11 그러니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믿음이다. 우리 육(肉)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율법(제사와 윤리)이 요구하는 의로움을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으로 다 지켜내시고 전가 시켜주신 그 구원의 의로움이신 예수님을 진리로 믿는 것이다.
그 예수님으로 의인이 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 나의 모든 것을 투신하는 것이다. 지켜야 되는 법에서 자유로워 졌으나 믿음의 법을 따라야 한다.
(로마7,6) 6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율법과 관련해서는 죽음으로써 (예수 안에서) 그것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하여 법전이라는 옛 방식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새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없어지기(파랠콤마이-사라지다. 깨어지다) 하늘과 땅이 무너져, 깨어져 사라져야, 곧 하늘(나라, 성전)과 땅(나라, 성전)의 주인으로 오신 예수께서 죽으셔야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씀이다. 대속의 죽음이다.
*한 자- (요드)는 히브리어 중에 가장 작은 단어 점(.)이다. 그리고 *한 획-(케리아, 뿔) 힘센, 구원을 뜻한다.
(루가1,69)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케라이아)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셔서 지극히 작은 자를 놓치지 않으시고 하느님께서 선택한 자는 반드시 구원해 내고야 마는 ‘한 자, 한 획’의 그 구원의 완료를 의미한다. 그렇게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다.
19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가장 크신 분이 가장 작은 자(.)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계명)을 구원의 진리로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하늘에서 가장 작은 자가 된다는 말씀인데 하늘나라에는 작은 자가 없다. 그 작은 자라는 말씀은 그는 하늘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이다. 하늘나라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가는 곳이기에 모두가 큰 자들이다.
(루가9,48) 48 그들에게 이르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사람이다.”
=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예수님’ 이시다. 세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은 어리석고 작아 보인다.
(1코린1,23) 23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 그 작은 예수님을 ‘나의 생명,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골로1,28)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골로3,3)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으며,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르십니다.
우리는 율법이라는 말에 반감을 가지게 되지만, 사실 예수님께서는 규칙과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율법주의’를 비난하셨지 ‘율법’ 자체를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율법의 참된 의미와 목적은 뒤로 한 채 조항을 지키는 것 자체에서만 의미를 찾고 그로써 하느님께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율법주의는 두려움과 편협함과 완고함을 낳을 뿐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 없음’도 경계하십니다.
‘율법의 폐지’를 바라는 사람들은 법은 필요 없고, 사랑하는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은 법이 필요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곧 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유명한 문장인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가 그러한 뜻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을 지녔다고 하는 사람이, 사랑으로 말미암은 사랑의 법을 꺼리고 거기에 자신이 얽매여 있다고 여긴다면,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자신 안에 사랑이 없으면서도, 율법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자기만족에 기울게 됩니다.
이기적인 자아 추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화하면서 율법을 없애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울림』, 200-204면 참조).
우리는 규정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율법주의’와 내적인 기준을 없애고 무분별한 자유를 바라는 ‘율법 없음’을 모두 경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율법의 참의미’를 깨닫고, 이를 지키는 율법의 완성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에 비늘있는 물고기를 먹어야 하는 것과 남의 보증을 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늘의 생명, 우리의 구원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마태 5,17-20)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모든 율법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어요.
例~
(레위11,9-10) 9 물에 사는 모든 것 가운데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수 있다. 물에 살면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은, 바다에서 살든 개울에서 살든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먹을 수 있는 것- 정결한 것입니다. 10 그러나 물속에서 우글거리는 모든 것과 물에 사는 모든 동물 가운데,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바다에서 살든 개울에서 살든 모두 너희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
물고기의 비늘은 겉옷을, 지느러미는 날개, 옷 자락을 뜻한다. 모든 피조물은 겉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제16,8) 그때에 내가 다시 네 곁을 지나가다가 보니, 너는 사랑의 때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옷자락을 펼쳐 네 알몸을 덮어 주었다. 나는 너에게 맹세하고 너와 계약을 맺었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나의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의 옷 자락(권능)을 펼쳐- 덮으시어, 알몸, 곧 수치, 부끄러움을 덮어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사61,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 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바룩5,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거스른 죄인 아담을 위해 친히 준비하셔서 입혀주신 겉옷입니다.
(창세3,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입은 그 열심, 수고(의로움)의 옷으로는 하느님 앞에 부끄러움(죄)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세3,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어린양이 죽어 남긴 그 가죽으로 만든 옷, 겉옷,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의 옷입니다.
수치와 부끄러운 죄를 덮으시기 위해 대신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의로움의 예수님,
(마르15,20)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자주색 옷을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 그 십자가의 피로 얻는 의로움의 겉옷,
그래서~
(묵시7,13-14) 13 그때에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원로님, 원로님께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자신들의 죄가 십자가의 대속으로 깨끗해 졌음을 믿는 이들,
例~
(집회8,13) 네 능력을 넘어 보증을 서지 마라. 보증을 섰으면 대신 갚을 각오를 하여라.
하느님 앞에 사람이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는 것은 보증의 힘이 없어 보증이 될 수가 없는 것,
하느님이 (동등하신 분)보증을 서야~
(2코린1,21-22) 21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대속, 그 의로움으로 우리의 죄가 다 씻겨 졌음을 보증해 주는 것.(로마8,1~ 히브10,15~참조)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이 없어져야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 그때까지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는 것,
*한 자-이오타. 히브리어 중 가장 작은 글씨. 요드(.)을 뜻하며 *한 획-케라이아(뿔. 힘)
하늘과 땅은 하나 다. 땅은 하늘의 그림자로 하느님의 신성인 구원의 힘인 사랑, 그 하나를 하늘과 땅이 말하고 있다. (로마1,20참조)
하늘이신 예수님께서 땅(육)으로 오셔서 죽으셔야~ 곧 죄인들의 거룩,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소금 계약이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로 오셔서 지극히 작은 자를 구원하시는 예수님,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그 의로움의 힘으로~
(로마8,3-4)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9ㄱ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 중 작은 계명 이란 없다. 또한 하느님 나라에 작은 자란 없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입고 가는 그리스도의 지체로 가는 곳이기에 누구나 의로운 사람으로 다 큰 사람이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 계명을 문자 그대로 보고 곧 율법 안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못 보고 613가지 율법으로 10개의 계명, 곧 인간들의 계명으로 보는 그 작은 계명으로 만들어 가르치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가장 작은 자 곧 자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19ㄴ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본 상상수훈을 인간의 계명이 아닌 하느님의 뜻, 계명으로 지키시고 가르치시는 큰 사람이신 것입니다.
율법 안에 들어있는 구원의 계약을 대속의 당신의 죽음으로 완성하시는 그 큰 사람이신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받아 들여 그분의 지체로 하늘나라의 큰 사람이 되는 것, 그 큰 자가 율법을 사람의 규정과 법, 계명으로 받아 열심히 지켜 착하게 살았던 이들의 그 의로움을 능가하는 하늘의 의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능가- 페리쉬오(차원이 다른)
(1코린1,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아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복음(마태5,17~1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18~19)
여기서 하늘과 땅이 없어지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다(2베드3,10; 묵시21,1). 이러한 종말의 날에 이르기까지 율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폐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날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만드는 율법의 효용성이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로마7,14~24). 또한 율법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8절에서 '자'(점)로 번역된 '이오타'(iota; jot; the smallest letter)는 희랍어 '이오타'(i)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히브리어에서 가장 작은 문자인 '요드'(yod)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획'으로 번역된 '케라이아'(keraia; tittle; the least stroke of pen)는 히브리어 문자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하기 위해 병기되는 작은 점이나 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여기서 '한 자 한 획'이라고 표현을 한 것은 구약의 율법 가운데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그것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로서 반드시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구약 성경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하느님의 말씀임을 보여 주는 결정적인 선언이다.
한편 마태오 복음 5장 19절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의 '가장 작은'에 해당하는 '엘라키스톤'(elachiston; least)는 최상급의 표현이므로 '가장 작은 것들 중의 하나'라고 번역할 수 있다.
당시 랍비들은 율법 가운데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율법이 있는 반면에 덜 중요한 것도 있다는 차별적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은 동일하게 중요하므로 결코 소홀히 여겨도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셨다.
모든 율법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태오 복음 5장 19절의 '어기고'에 해당하는 '뤼세'(lyse; breaks)의 원형 '뤼오'(lyo)는 전체가 아니라 어떤 개체나 부분을 부정(不定)하여 취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특히 여기서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율법은 취하고, 작은 율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버리며 지키지 않는 차별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추종하는 제자들 가운데서도 인간적인 안목으로 그러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자가 있었기에 마태오 복음 5장 19절의 가르침을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을 가르칠 만큼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 아무리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가르침을 한다 하더라도, 그 가르침의 내용 중에 어떤 한 율법이라도 소홀히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 취급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신다.
특히 '가장 작은'에 해당하는 '엘라키스토스'(elachistos; the least)는 최상급의 표현으로서, 계명을 차별적으로 선택하여 지킨 자의 최후가 더할나위 없이 초라할 것임을 보여 주며, 천국 백성들도 각기 행한 바에 따라 상급이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2026년 06월 10일 수요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면 기존 율법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목적을 이루려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구약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이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무너뜨리시는 분이 아니라 그 본디 의미를 끝까지 찾아,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율법을 ‘완성하신다’는 말씀은 ‘참된 의미를 밝힌다’는 뜻으로, 율법을 철저히 따르거나 빈틈없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 전체가 뜻하고 의도하는 바를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율법의 규범과 실천은 늘 그대로 이어 오지만, 더 이상 형식적으로 되풀이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고, 율법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롭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5,18 참조).
그러나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5,18)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이는 희생 제사와 관련된 율법들처럼 율법의 어떤 규정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져 더 이상 필요하지 않지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처럼 어떤 규정들은 그분과 함께, 그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지속됨을 뜻합니다. 신앙인은 율법의 본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유연성도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든 지키든, 누구나 하늘 나라를 향하여 있음을 분명히 하십니다(5,19 참조).
율법은 단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늘 나라로 초대하고자 하는 하느님 자비의 도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삶의 질서이며, 그 질서는 예수님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의 논리로 다시 정리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 하지만, 율법을 어기는 이에게도 율법의 이름으로 사랑과 연민과 자비를 전하였으면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보다 하느님의 약속이 먼저 계셨다.(갈라3,17)
복음(마태5,17-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보이는 하늘과 땅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 하느님의 은혜로 ‘다 이루어졌음’을 깨달아 믿게 되면(보이는 것을 믿지 않게 되면, 없어지면)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로마1,19-20 갈라,10-2 참조)
19ㄱ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가장 작은 자? - 하느님 나라에는 큰 사람 밖에 없는데~
19ㄴ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하느님 나라는 율법을 100% 완벽하게 다 지켜야 들어간다. 하느님 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1%라도 있으면 못 들어간다.(신명28,1.15- 참조) 빛 앞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로마3,20) 그래서 세상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이다.(로마,19)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 죄인들을 구하시려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신 것이다.(갈라4,4)
그 예수님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이 요구하는 죄값을 십자가에서 당신 목숨으로 대신 갚으셨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심으로(갈라3,13) 율법을 완성하셨다.
곧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그분의 부활로 우리가 거저 의롭게 되었다.
믿음으로 받는 의로움이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킨, 그 율법의 의(義)를 능가하는 큰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절이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 뜻, 욕망, 의(義)를 위한 율법 신앙, 곧 세상의 것을 위해 세상의 논리대로 살려고 애썼던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님의 지체로 그분과 한 몸이 되어 큰 사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고,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을 열심히 지킨 자신의 열심, 의로움으로 자신의 뜻과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양다리 율법 신앙이다.
그래서 독서에서 하느님을 바알로 섬기지 말라고 한 것이다~
독서(1열왕18,20-21)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 하느님께서 절뚝거리게 만든 사람이 있다. 하느님과 씨름 하다가 다리를 다친 야곱 이다.(창세32,31) 그런데 야곱의 절뚝거림이 하느님을 이긴 그의 승리라 하신다. 왜? 절뚝거리는 자는 반드시 목자(牧者)의 지팡이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 예비 하신 착한 목자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예수님, 당신의 목숨을 내놓고 율법을 완성하신, 그래서 율법의 의(義)를 능가하는 하늘의 의(義)를 전가시켜 주신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요한5,4-5)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우리가 절뚝거리는 불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에 의지할 때 (하느님 사랑을 의지할 때) 율법도, 세상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승리가 된다.
그 예수님을 내가 사랑하고(믿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 승리의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해 주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구원에 합당한 사랑이 인간에게는 없다. (1요한4,9-10)
(로마13,8)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로마3,19-25. 야고2,8-10 갈라3,10-29 오늘 묵상(黙想)글이 이곳에 다 들어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죽음의 법에 묶여 살 수 밖에 없는 저희가 율법, 그 옛 계약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의 말씀으로 빛의 나라, 하늘을 현실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약)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