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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복음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거저 주어라 (마태10,7-13)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0|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11일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거저 주어라 (마태10,7-13)

 

 

 

1독서<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사도11,21-26; 13,1-3)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그들은 바르나바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키레네 사람 루키오스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그리고 사울이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화답송>시편98,1.2-3ㄱㄴ.3ㄷㄹ-4.5-6(2) ◎ 주님은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그분의 오른손이거룩한 그 팔이승리를 가져오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알리셨네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주님께 환성 올려라온 세상아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찬미 노래 불러라

○ 비파 타며 주님께 찬미 노래 불러라비파에 가락 맞춰 노래 불러라쇠 나팔 뿔 나팔 소리에 맞춰임금이신 주님 앞에서 환성 올려라

 

복음<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13)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11,21ㄴ-26.13,1-3)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년 동안 그 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1,25)

  

본절은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도행전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 직접적인 사건을 다루는 구절이다.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바르나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원조를 구하거나 또한 어떤 교회 지도자가 이 안티오키아에 다시 보내질 것인지를 묻지 않았다. 다만 그가 사울을 찾으러 갔다는 기록뿐이다.

그는 사울이야말로 안티오키아 교회에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찾으려고'에 해당하는 '아나제테사이'(anazetesai)의 원형 '아나제테오'(anazeteo)는 철저하게 '파헤치다', '애써찾다' 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사로 사용되었다.

부정사 '아나제테사이'라는 단어 안에는 사물을 찾으려는 바르나바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직접 사울을 찾으러 거리가 멀리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르수스' 까지 간 것이다.

 

과거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는 중개인 역할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사도9,27)

그런데 그 이후 그리스계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자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가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울의 고향인 타르수스로 보냈었다. (사도9,30)

그 이후 사울은 바르나바가 찾으러 올 때까지 약 7,8년을 타르수스에 머물면서, 아마도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다.(갈라1,19-24)

 

바르나바는 사울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사도9,15.27 ; 22,21)

그리고 그는 안티오키아의 이방인의 회심으로 왕성하게 교회가 성장하는 이 시점이 사울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하는 때라고 믿었던것 같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동역자로 사울을 모셔오기 위해 안티오키아에서 타르수스까지 갔던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그의 행동은 안티오키아에서 자기 자신이 확립할 수 있었던 지도자의 자리를 생각하기보다는 이방인을 향한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살피는 겸손함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귀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만 일년 동안 그 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바르나바는 사울을 애써 찾은 결과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안티오키아로 인도하였다.

그런 후 그는 만 일년동안 교회에 함께 모여 있었다. 여기서 '동안'으로 번역된 '홀론'(holon)은 '전체의', '온'(whole)이란 뜻으로 그들의 일년 전부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였음을 나타낸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무리를 가르쳤던 것은, 대부분의 신도들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앙 교육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년이라는 시간을 안티오키아 교회 신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승천, 진리의 성령 보내심, 현재의 일과 장래에 일어날 일 등에 관한 여러 사실들과 그에 따른 의미를 배웠을 것이다. 또한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향을 설정하여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희생적인 봉사와 교육의 결과, 안티오키아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었을 뿐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보냈으며(사도11,29.30) 후에 이방 선교의 전초지가 되었다. 실로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에 의한 지속적인 신앙 교육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안티오키아 교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크리스티아노스'명칭이 안티오키아에서 생겨났음을 보여 주며, 신약 성경에서 처음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는  '크리스티아노스' (christianos)의 복수형이다. '크리스티아노스' 에서 접미사 '이아노스'는 '~에게 속한 자', '~의 종' 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 '그리스도의 종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추종자들이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안티오키아에 있던 제자들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들은 '형제들'(사도1,16;9,30), '구원받은 이들'(사도2,47),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9,2), '성도들'(사도9,13), '신자들'(사도10,45)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고 그리스도만을 최종목표로 하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드디어 그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새로운 명칭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안티오키아의 이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 누구인가?

첫째, 유다인들일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분명 예수님이 메시아되심을 거부하는 유다인들이  지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제자들 스스로 지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에 그칠 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 '제자들' 혹은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확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째, 안티오키아의 불신자들일 가능성이다.

바로 이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늘 그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유대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제자들은 그 이름을 기분 나빠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주변 유다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조롱과 야유의 의미로 불리워진 이 명칭이  후대에는 존귀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와같은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것은 안티오키아의 이방인 신자들이 더 이상 어떤 유다교의 한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어떤 유다교와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사도26,28; 1베드4,16).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병자들을 고쳐 주며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고 이어서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들은 주님께 거저 받은 권한과 능력을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 거저 사용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한과 능력의 은사는그들이 완수하여야 할 직무적 사명과 긴밀히 연관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권한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는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 거저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저마다 지닌 은사(카리스마)와 재능(달란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며 공동체를 위해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와 재능은 그 사람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고유한 하느님의 선물로 서로 봉사하며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웁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은 그 자체로 선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명이 되지만가끔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높이는 데 그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선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은사에 생명을 주고 그 은사가 참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선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13 참조).

 

(최정훈 바오로 신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세상의 먼지(평안)로 돌아갈 것인가십자가가 주는 평화로 하늘을 살 것인가

 

(마태 10,5-13)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주님의 길-방법이 아닌 세상과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길-방법으로 가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깨끗하게 고쳐주고 어떻게 마귀를 쫓아내야 하나~ 모든 것에서 해방, 그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해방을 선포하실 때

(루가4,18. 21)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 말씀은 선포될 때 힘을 발휘하신다. 말씀이 치유, 용서, 구원의 힘입니다.

 

말씀을 사람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 선포했을 때~

(1데살2,13)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에페1,19) 또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한 그분의 힘이 얼마나 엄청나게 큰지를 그분의 강한 능력의 활동으로 알게 되기를 비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제자들에게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로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 그러나 지녀야 할 것이 하느님의 옷, 신발, 지팡이, 곧 복음을 들고 의지하여 가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페6,13-18) 13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14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내 삶의 중심(허리)으로 삼아 그 십자가가 주는 구원의 의로움을 입고) 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십자가의 의로움 그 복음으로 평화를 선포하는 발이 되라는 말씀) 16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18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

= *기도-말씀의 힘과 구원의 약속을 기억하며 *간구- 그 말씀이 내게 이루심을 원하는, 청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와 간구로 인내할 수 있고 깨어있을 수 있습니다. 허리와 발, 머리, 온 몸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의지하라는 말씀이죠.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 사람들의 대접 칭찬 등으로 자기 가치(의로움)로 챙기지 말라는 것이지요.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평화를 주는 것.

 

(요한14,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 예수님의 평화란 내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당신의 죽음으로 없애 버리셨기에 죄에서의 자유, 그 평화인 것.

 

(콜로1,19-20)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예수)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골로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 십자가 안에서 영원한 평화인 것. 잠시의 육적 편안과 감정적 기쁨인 세상이 주는 그 평화를 누리려 했던 자신을 부인하는 그 버림으로 얻을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인 것.

그러나 그 세상의 평화는 우리 스스로가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하느님의 훈련이 필요하다.

 

(히브12,7.11)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 그 하늘의 평화를 깨닫고(담고)가야 살 수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로마14,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 그래서 시련이라는 훈육으로 하늘의 평화를 가르칠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지요.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 그 하늘의 평화는 -원하는 이기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평화가 없는 눈물과 괴로움, 죽음만이 있는 곳임을 깨닫고 참 평화인 하늘의 평화를 기다리는 이가 받는 것입니다.

 

(묵시21,3-4) 3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멘.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마태10,7~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8ㄷ)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에 해당하는 '도레안 엘라베테, 도레안 도테' (dorean elabete, dorean dote; freely you have received, freely give)에서 '거저'로 번역된 '도레안'(dorean; freely)은 받은 이의 관점에서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선물로서 받은'이라는 뜻이고, 주는 이의 관점에서는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주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먼저 받는 이의 관점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무상의 선물로서 구원을 보증받았다.

 

따라서 이제는 받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어떤 이익도 기대하지 않고, 구원의 선물을 베푸시는 주님을 따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구원 자체이신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면, 내가 먼저 구원을 보증받아야 하며, 다른 이에게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주려면, 내가 먼저 그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사도행전은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11,26)라고 전합니다.

이 일은 초대 교회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저 지지자나 추종자만을 뜻하기보다 그리스도라는 주인에게 속한다는 뜻까지 포함합니다.

곧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소유로서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모범을 따르며 그분과 함께 살고 그분을 위하여 죽을 다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분을 넘어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실제를 규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한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은 순교하러 가는 길에 교우들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인이도록”(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3,2) 기도를 청합니다.

삶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한 성인은 그리스도께 속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14,2)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순교자들은 재판을 받으면서 신원을 묻는 말에 내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답하며목숨을 바쳐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자녀의 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같은 성을 가진 형제요 자매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함과 형제자매로서 우리 사이의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존귀한 이름”(야고 2,7)의 값을 하도록 합시다.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이집에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복음(마태10,1.5-13)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으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라’ 하신다. 더러운 영들에 의해 걸린 질병(疾病), 허약(虛弱)이라는 것이다.

더러운 영? 어제 공부했던 뱀의 말을 하는 영이다. *뱀 ‘나하쉬’-말이 없음. 아랫것으로 곡해(曲解)해 말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하느님의 지혜인 대속(代贖), 그 진리가 아닌 사람의 일을 위한 말, 선악의 법으로 주어, 우리의 생명, 평화이신 그리스도와 분리시켜 허약한 병자가 되게 하는 거짓 영(靈)이다.

 

(로마8,6) 6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 그들을 낫게 하는 권한을 주신 것이다.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이다. 곧 더러운 영의 거짓말을 쫓아내는 말씀이다. 그 말씀이 치유하신다.

 

(2코린5,19) 19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콜로1,20) 20 그분(그리스도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십자가(十字架).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으로 화해되어 얻는 하늘의 용서, 생명, 평화의 직분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더러운 영은 세상의 권세로 얻는 평화를 약속한다.(루가4,6) 그리스도로 얻는 영원한 참 평화를 받지 못하게 하는 계략(計略)이다. 세상이, 모든 이들이 더러운 영에게 속고 있다.

 

(마태24,24)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큰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차별이 아니다. 이스라엘 집안 이라 하심은 하느님께서 창세전(創世前) 선택하신 당신 나라의 모든 백성들을 말씀하심이다.(에페1,5.11 1베드1,2 참조)

 

(에페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그분께서는 당신의 몸(대속)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이사57,19) 19 나는 입술의 열매를 맺어 주리라멀리 있는 이들에게도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도 평화평화!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병을 고쳐 주리라.

=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의 열매가 평화(平和)며 고침이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세상 나라가 사탄, 그 더러운 영의 말에 현혹되어, 헛된 평화를 위해 애쓰며 허약한 병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고치시는 말씀, 하늘의 생명, 평화의 말씀이 오셨다는 것이다.

 

(요한1,4.9.14) 4 그분(말씀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셨다. 곧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 ‘하늘나라가 왔다’가 아니라 ‘가까이 왔다’고 하셨을까? 믿음의 문제다.

보이는 능력의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진리의 의(義), 평화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곧 능력의 예수님을 애 뜻, 소원을 이루려했던 나 자신을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돌아와 그분의 지체가 되었을 때, 하늘나라가 오신,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제께서> *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통치(統治)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과 함께 시작된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종(從)이 되는 삶을 살아가면 나는 자유(自由)하지만, 세상이나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면 결국에는 세상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참 자유와 노예의 삶은, 내가 어떠한 삶을 선택(選擇)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8ㄱ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 육(肉)의 살이 죽어 썩고,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모르는 것이 나병(癩病 한센병)이다. 곧 영이 죽어가도 고통을 모르는 ‘영적(靈的)나병(癩病)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라’는 말씀이다. 더러운 영의 말을 먹고 생긴 것이니, 더러운 영의 말을 쫓아냄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허약한 이들은 자기(自己)부인(否認), 그 버림, 비움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8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거저 받은 하늘의 용서, 의(義), 생명, 평화, 곧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길, 그 새 계약의 말씀을 진리(眞理)로 주라는 것이다.

 

(콜로2,14)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새 계약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ㄱ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 하느님의 말씀 대신 사람의 말, 지혜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의 지혜의 말은 하늘의 새 사람, 새 것이 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ㄴ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 한 집에 머물러라는 말씀이다. 곧 사람의 칭찬, 대접을 받지 말고, ‘자기 의(義), 가치로 챙기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얻는 평화, 곧 세상이 약속한 평화가 아닌 ‘하늘의 평화를 빌어주라’는 말씀이다.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 마땅한 사람? 본문 6절에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 곧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도 구원의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전해야하는 것이다. 열매로 거두시는 일은, 하느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하신다.(로마8,8-11 참조)

*주님의 평화는, 세상의 것에서, 다가올 죽음에서 자유하게 하신다. 고난(苦難)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주님의 평화다.

 

(루가2,27-30)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시몬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요한16,33)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그러나 용기를 내어라내가 세상을 이겼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하늘의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아픈고난의 삶을 허락하신 그 하는미의 마음사랑을 깨닫게 하소서하늘의 빛을 주시기 위해 어둠인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마음자비를 깨닫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6월 11일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마태 10,7)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와 자비의 손길이 이제 제자들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은 이성적 설명이나 설득보다 구체적 치유와 자비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제자들이 행하는 기적은 하늘 나라의 선물이므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데 빠른 인간 세상의 논리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지요복음의 논리는 값이 없기에 값진 것이고그 기쁨은 대가가 없기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제자들은 가난하게 파견됩니다.

자루두 벌 옷신발지팡이도 지니지 말라는 것은파견된 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제자들은 기꺼이 약한 모습으로 길 위에 서며그 자체가 하느님만을 신뢰한다는 예언자적 표지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10,10)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이에게 의지하고 대가를 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을 책임지신다는 충실함을 드러냅니다(6,25-26 참조).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마을에 들어가면 마땅한”(10,11) 사람을 찾아내 한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기준은 도덕적 완전함이 아니라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능동적이고 열린 마음입니다.

마땅한 사람의 열린 태도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가난한 제자가 먹거리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는 하나뿐인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열려 있고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당신 나라의 부유함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늘 파견되어야 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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