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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복음

[예수성심대축일] 내 멍에와 짐 (마태11,25-30)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12일 금요일

[예수성심대축일내 멍에와 짐 (마태11,25-30)

 

 

 

1독서<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신명7,6-11)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종살이하던 집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화답송>시편103,1-2.3-4.6-7.8과 10(17ㄱㄴ◎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 머무르리라.

○ 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내 영혼아주님을 찬미하여라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네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주님은 정의를 펼치시고억눌린 이 모두에게 공정을 베푸시네당신의 길을 모세에게당신의 업적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2독서<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1요한4,7-16)

사랑하는 여러분서로 사랑합시다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마태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예수 성심 대축일(신명7,6-11)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한 것은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내셨다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 하느님이시며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7,7~9)

 

이스라엘을 선택하시어 430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주신 목적이 소수의 이스라엘 '부족 공동체'를 '민족 공동체'로 만드시고그 다음 모세를 통해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어 '계약 공동체'로 만들어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신정법십계명과 율법의 규정들과 법규들>을 잘 지켜 하느님만을 섬기고 공경하고 흠숭하는 '예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 7절에 주님께서 '마음을 주시고 선택한다'는 말이 있는데여기서는 '기뻐하다','사랑하다'는 뜻으로 쓰였다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이스라엘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인구수가 많고크고 위대한 민족이라서가 아니고작고보잘 것 없고모자라고못나고어리석고부족한 철부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인간에게 자유가 있듯이 주님께도 자유가 있다주님의 자유는 절대선절대 진리완전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르침이 없다이 그르침이 없는 주님의 자유로운 사랑과 선택에 대해 인간은 간섭할 자유가 없다.

 

만일에 인간이 주님의 자유에 간섭한다면이것은 아담과 에와처럼카인처럼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만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작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고 모자라고 못난 철부지들인 우리들을 믿음의 자녀로 먼저 사랑해 주시고 선택해 주신 것에 대해 무조건 감사드리고당신의 뜻이 담긴 계명에 충실하는 것이 주님의 축복받는 길이요주님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는 길이다.

 

우리 인간이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보잘 것 없는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권능이 돋보이고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이것이 하느님께서 교회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방법이다.

 

인류의 첫 사람이 교만과 불순종과 자유남용 때문에그리고 사람을 만들기 전에 하느님께 대든 사탄과 그 졸개들의 교만과 불순종과 자유남용 때문에멸망과 지옥과 저주의 인간사세속사로 치닫는 인류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만드시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님과 마리아의 겸손과 순종과 자유의 선용을 요구하셨다.

 

둘째 아담과 둘째 에와이신 예수님과 성모님안에서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 잡으시는 하느님께서는 구세사안에서 구원의 협력자로 불리우는 자들을 간택하실 때 항상 이렇게 부족한 자들을 겸손한 자로 만들어 쓰시며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하느님 당신께서 몸소 구원과 역사의 주도권세기의 주도권을 끌고 가신다.

이처럼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가치관과 구원의 방식은 세상과 인간의 가치관과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수 성심 대축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사랑과 연민으로 가득한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공경하는 날입니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의 바탕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지니신 한없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자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고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 내시어(창세 1,26-27 참조그 사랑의 충만함을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 사랑의 애틋한 마음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과 맺으시는 계약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푸실 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1독서 참조).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분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한 모습을 보이지만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 품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십니다.

배반한 자식들아돌아오너라내가 너희 배반을 바로잡아 주리라(예레 3,22).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아드님의 파견으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제2독서는 하느님을 사랑이신 분으로 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신 아드님께서는 아버지와 같은 사랑의 마음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게다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요한 1,14 참조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시고 동정하시며 연민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아버지의 자애로운 마음을 꼭 닮은 아드님의 성심을 공경하는 오늘우리는 특별히 사제들이 성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닮아각자의 소임지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위로와 안식을 전하는 일꾼이 될 수 있도록 마음 모아 기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예수 성심 대축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마태 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지혜롭다는 이들에게 감추신 것,

 

23절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 사람의 지혜슬기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성전-카파르나움그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라네요.

 

(1코린1,21) 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니~

(1코린3,18) 18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지혜의 그 길이 하느님께서는 어리석음임을구원의 가치 없음을 인정하는 그 부인버림으로~~ 구원의 참 진리십자가의 예수님께 돌아와야 하는 것이지요.

 

(요한3,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내 주심,

그래서~

(요한6,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다시 살리시는 그 길이 진리이지요.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대속의 십자가의 예수님이 진리,

그 진리께서~

(골로2,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버리시고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히브10,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세상의 지혜로는 그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그래서 철부지인 우리(제자)들에게 드러내 주심에 우리가 드려야 할 감사를 예수님께서 드리는 것입니다.

 

26 그렇습니다아버지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또 아들 외에는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는 정말 하느님도 예수님도 알지 못합니다알 수가 없는 존재들이지요.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알려 주신다?

(에페1,4-5)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로마8,30)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선택한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과 그분 나라의 의로움과 영광(독사)은 하느님 사랑의 빛이십니다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그 의로움영광인 것입니다.(로마3,24참조)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성경을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가 아닌 제사와 윤리그리고 사람의 지혜가 만들어낸 규정과 교리계명으로 받으면 신앙이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어떻게?~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온유(풀라우스-풀어주다)

다시배워 무거운 짐을 풀어 다시 안식을 누리라는 말씀이신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의 멍애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배워라?

제사를 드리는 열심과 사람의 지혜의 그 나를 버리고 돌아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내 죄를 대속하신 내 십자가임을 깨닫는곧 그 십자가가 내 십자가 였음을 믿는다면무거웠던 짐 같은 신앙이 십자가의 용서로 안식으로 바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제사는 십자가에서 단 한번으로 다 이루어진 것이지요지금은 십자가가 주시는 용서안식을 살 때인 것입니다.

 

(히브10,14. 18) 14 한 번의 예물로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 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아멘.

 

 

 

 

 

 

예수성심대축일 (마태11,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28~30)

 

'고생하고'로 번역된 '코피온테스'(kopiontes)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지치다', '감정적으로 용기를 잃고 낙담하다'는 뜻을 가진 '코피아오'(kopiao)의 현재분사 2인칭 복수 호격이다.

희랍어에 있어서 분사형이 진행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것은 한 번 낙담하거나 지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계속 지치고 낙담 중에 있는 사람들아' 라는 뜻이다.

 

그리고 '짐을 진 너희는'으로 번역된 '페포르티스메노이'(pephortismenoi)는 '남에게 어떤 짐을 지우다'라는 뜻의 '포르티조'(photizo)의 현재 완료 수동 분사 2인칭 복수 호격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자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지워진 짐은 무엇인가?

그 짐은 일차적으로 바리사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요구한 무거운 율법적 관행들(마태23,4)이며, 더 나아가 '마귀들의 꾐에 넘어가 지은 죄의 짐'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란, 당시 로마의 압제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치고 낙담한 사람들이며, 당시 종교적 관행이 요구한 율법의 짐과 마귀들의 꾐에 넘어가 지은 죄의 짐 사이에서 눌려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에서 '안식을 주겠다'에 해당하는 '아나파우소'(anapauso)는 '쉬게 하다','영적인 휴식을 주다', '안식하다'라는 뜻을 가진 '아나파우오'(anapauo)에서 유래했다.

 

특히 '아나파우오'에서 유래한 명사 '아나파우신'(anapausin)은 '쉼'이라는 뜻인데, '안식'과 동의어이다(히브리서3~4장).

그리고 '내가'에 해당하는 '카고'(kago)는 '카이'(kai; and)와 1인칭 대명사인 '에고'(ego)의 복합어로서, '그러면 내가'라는 뜻이다.

 

 본문에서 인칭대명사를 사용한 것은 동작의 주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어의 뉘앙스를 살리면,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오는 지치고 피곤한 죄인들에게 '쉼'을 주시겠다는 강한 의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쉼'(안식)은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데, 현재적인 '쉼'도 의미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의미한다(히브3,18~4,11; 묵시14,13).

 

한편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태11,29)에서 '온유'로 번역된 '프라위스'(prays; gentle meek) '친절하고 너그러운 태도'를 가리킨다(마태5,5).

그리고 '겸손'으로 번역된 '타페이노스'(tapeinos; humble; lowly)는 높아짐과 반대인 '낮아짐'(야고1,10), 심지어 지위와 신분을 낮춘 '비천함' (2코린7,6), 혹은 자신을 일부러 낮추는 '겸허','겸비'(2코린10,1)를 나타낸다.

 

이것을 종합하여 반영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친절하고 너그러운 마음가짐과 일부러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자세를 가졌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지만 고난받는 인자(人子)의 모습을 취하셨고 (이사42,2.3; 53,1.2), 모든 권세를 받으신 만왕의 왕이셨으나 동시에 종이 되어 오셨으며, 높은 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종으로서의 삶을 사셨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도 그런 삶을 요구하셨다(마르10,43.44).

 

예수님께서는 낮고 비천한 자리에서 지치고 피곤한 자들에게 '눈높이 교육'을 하기위해 자신을 낮추셨으며,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비천한 자리로 내려오셨던 것이다.

 

'진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30)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gar; for)로 시작되는 본문은 '주님의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면 왜 마음에 안식(쉼)을 얻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혀 주는 이유 부사절이다.

 그 이유 주님의 멍에가 편하고 그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본문은 '내 멍에는 편하고'의 전반부와 '내 짐은 가볍다'의 후반부가 동의적 평행 대구로 나열된 형태인데,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뜻이다.

여기서 '멍에'로 번역된 '쥐고스'(zygos; yoke)는 가축이 짐수레를 효과적으로 끌 수 있도록 목에 씌우는 것을 가리키며, '짐'에 해당하는 '포르티온'(phortion)은 주로 배에 싣는 무거운 짐(burden)을 가리키는데(사도27,10), 여기서는 둘 다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이 '짐'은 율법학자들을 비롯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지운 무거운 종교, 의식적 행위들을 가리킨다(마태23,4; 루카11,46).

또한 '멍에' 역시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까지 강요한 무거운 율법적 행위들을 가리킨다(사도15,10).

 

반면에 주님의 멍에와 짐은 유대주의자들이 구원의 방도로 지키고 가르쳐 온 613가지의 교훈 및 규칙과는 다르게, 주님 자신의 가르침의 핵심인 '사랑의 계명'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2026년 06월 12일 금요일

[예수성심대축일(사제 성화의 날)]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십니다이 감사의 내용은 역설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을”(마태 11,25) 감추시고또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곧 치유와 자비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낯선 일일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11,25), 곧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켜켜이 쌓아 온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이미 몸에 밴 자기만의 논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철부지들”(11,25)이 그 세상과 가깝습니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그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압니다이해가 아니라 신뢰가 먼저 일어나는 자리그곳이 철부지의 자리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11,27).

이는 단순히 권력 선언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은 친교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이에게만 열립니다.

25절에 나오는 드러내다는 그리스 말에서 계시의 동사형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대상은 철부지들입니다이들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밝히 드러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거나 더 많이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나아가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으로 가능합니다.

내 눈의 들보를 들어내 사람을세상을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성심대축일]

 

그리스도 예수님의 멍에(십자가)

 

복음(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율법의 삶으로 신앙이 고생하는 무거운 짐이 되었기에 하신 말씀이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 온유(溫柔 프라우스- 풀어주다), 그런데 그 고난(苦難)의 멍에를 메고?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육(肉)의 안식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멍에(십자가)의 온유, 겸손으로 우리가 얻는 영(靈)의 안식(安息)이다. 곧 마음을 바꾸어주는 안식이라는 말씀이다.(요한20,19-20)

 

예수님의 겸손~

(마태21,5) 5 “딸 시온에게 말하여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짐바리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 우리의 임금, 왕께서 보잘것없는 짐바리 짐승의 어린나귀를 타고 오시는 겸손(謙遜)이다. 곧 건장한 청년 예수님의 발이 땅에 닿아 끌려오는 모습, 겸손이다. 유대인들이 원하는 육(肉)의 부귀, 안식, 평안, 목숨, 영광을 위한 메시아가 아님을 보여주심이다.

메시아는 죄인(罪人)들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로 저주(咀呪)의 십자가(十字架)에 대신 죽으러 오신 분이시다. 그 길이 생명, 구원(안식)의 진리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8,31-32)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진리는 성령이시다.(1요한5,6)

 

☀책(冊) ‘황금률’ 중에서~

<예수님은 동족들이 율법과 죄에 짓눌려 신음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옳게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너무도 마음 아파 하시며 복음을 듣고 깨달아서 안식을 얻기를 원하신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진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고자 십자가 희생 제물(아벨의 제물)이 되시어 모든 인간의 죄를 없애시고, 그리스도인 안에 성령을 넣어 주시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아듣게 해 주셨지만 그리스도의 본 뜻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유대인들이야 아직도 하느님의 은총을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율법을 신앙하고 고수함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하느님을 섬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유대인들의 율법주의 신앙을 흉내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사이 율법 교사들을 꾸짖으며 “모든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쇄를 치워 버리고,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11,52) 라고 하신다. 얼마나 가슴 아픈 말씀인가?

예수님이 율법 교사들을 ‘불행한 자’들이라고 하시는데 이는 예수님시대에 유대교 율법 교사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율법 교사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신비를 알도록 허락된 사람은 ‘예수님이 신비를 알도록 가르쳐준 사람 (너울이 벗겨진 사람), 즉 신약의 때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마태13,10-17)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 꾸짖는 율법학자는 이 시대에 성경을, 너울이 덮인 채 율법주의, 문자적 말씀으로 가르치는 이들을 말한다. 자기들도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신들 마저 깨닫지 못하도록 막아선 자들을 질타하시는데 정작 본인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사제☞ <아침, 저녁기도, 주일 대축일 미사참례, 고해성사 등은 귀찮고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느님을 잊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사람은 본시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 즉시 세상사에 영혼을 빼앗긴다. 하느님을 잊으면 영혼을 잃어버린다. 영혼을 잃어 버리면 인생은 허무다.>

= 그러나 아쉽다. 가장 중요한 말씀이 빠져있다. “성경, 말씀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아다.”(성 예로니모) 곧 말씀 안에 머물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예수님의 멍에(십자가의 복음)도, 하느님도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의 힘, 지혜, 진리이신 그리스도, 그 분을 통한 영원한 안식, 영혼 구원도 받지 못한다.

 

다른 사제☞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시며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표현하시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생하고 방황하는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안식을 주시긴 하시는데, ‘당신의 멍에를 메는 사람’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한 안식을 주시겠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 한번 보십시오. 그 큰 고통에다, 그 숱한 짐을 지고 힘겹게 하루하루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특히 죽음과 내세에 대한 공포로 더욱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친히 우리 짐을 가볍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모두가 외면할지라도 나만은 너를 외면하지 않겠다. 나만은 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언약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고통, 지고 가는 많은 짐들을 순식간에 없애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나눠지겠다고 하십니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와 함께 나란히 걸어가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결국,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인 마음의 고통, 정신적인 고통을 없애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거기다 고통의 끝판왕인 죽음의 고통을 덜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언제나 고통과 십자가를 이고, 지고, 손에 들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완전히 없애 주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 곁에 늘 함께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에 못이겨 신음할 때, 우리 옆에서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고통도 눈물도 없는 당신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복된 그날까지 매일 고통을 기쁘게 인내하면서 살아 내야겠습니다.>

 

(로마8,17-18) 17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아버지!

아버지의 뜻인 그리스도의 멍에로 영원한 안식,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율법의 너울을 벗고 말씀 안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 진리의 성령님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마태오 복음 11-12장은 메시아 예수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각 장의 마무리(11,25-30; 12,46-50 참조)는 긍정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13장 1-8절에서 소개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준비합니다.

오늘 복음은 11장의 마지막 부분으로, 앞선 25-27절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11장 25-30절은 같은 문학적 형식을 가진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같은 주제(하늘나라의 역설적 가치,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이 되는 특권)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시선은 잠재적 제자들, 곧 아직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향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은 사람들의 행위를 지나치게 규제하려는 율법 학자들의 요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23,4 참조).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고생하는 이들을 초대하시며 그들에게 ‘안식’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식을 누리려면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5,5; 21,5 참조).

 율법 학자들이 토라(율법)의 멍에로 사람들을 얽매고 구속하였다면, 예수님의 멍에는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그 관계는 배움으로 깊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안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초대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그 초대에 모든 사람이 응답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면, 무엇이 선택과 결정을 주저하게 하는지요?

 

(정진만 안젤로 신부)

 

 

 

 

   [예수성심대축일]

 

안식은 인간의 죄의 뿌리가 해결 됐을 때 비로서 얻는다.

 

복음(마태11,28-30)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무거운 짐 같은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그 율법의 사람의 의(義)로 얻는 안식(安息)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고생하며- 세상의 힘, 돈, 명예, 건강을 지키려 애쓰지만, 그것들로 얻는 안식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쉼, 안식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주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십자가)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우리의 모든 죄(罪)를 넘겨 받으신 예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에서 대신 못 박혀 죽으셨고, 그 흘리신 피로 모든 죄가 깨끗이 씻겨 거저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흙인, 죄인(罪人)인 우리가 하늘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믿었을 때, 안식(安息)이다.

흙, 그 없음이 더러운 양심의 죄가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로 해결되어 얻는 쉼, 안식(安息)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멍에,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당신의 제자라 하신 것이다.

 

(루가9,23)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무거운 짐 같은 신앙, 고생(苦生)인 세상의 것으로 안식을 누리려 했던, 그 자신을 버리고 참 안식(安息)을 주는 ‘그리스도의 멍에,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이다.

 

(루가14,27)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내 죄(罪)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신, 흘리신 피,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 십자가로, 곧 구원의 새 계약으로 지고 따르는 것, 그리스도인이며 그분의 제자다.

 

(히브8,7-10) 7 첫째 계약(율법)에 결함이 없었다면, 다른 계약을 찾을 까닭이 없었을 것입니다. 8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결함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 9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이 내 계약을 지키지 않아 나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10 그 시대(옛 계약)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 구약(舊約 율법, 옛 계약)을 신약(新約 십자가, 새 계약)으로 결론 짖지 않으면 결함, 곧 ‘죽음의 법(法’)일 뿐이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미사 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제사 제물이 아닌 그 제사를 “다 이루었다” 하신 새 계약의 말씀으로 먹는 것이 자유(自由), 안식(安息)이다. 곧 내 뜻(소원)을 이루기 위해, 내 의(義)를 쌓기 위해 ‘제사(祭祀) 제물(祭物)인 살과 피’로 먹는다면, 피의 새 계약이 주시는 하늘의 용서, 자유, 평화, 쉼, 안식은 얻지 못한다. 모두 ‘고생하는 무거움 짐’일 뿐이다.

 

(창세2,2) 2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 쉼, 안식, 하느님께서 창조를 엿새 동안 하셨다. 그런데 이렛 날에 ‘다 이루었다’ 하신다. 왜? 첫날부터 엿새 날 까지 하신 모든 창조(創造) 안에 구원의 뜻, 의미를 깨닫게 되면 쉼, 안식이라는 것이다.

 

(갈라6,15) 5 사실 할례(세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2코린5,17) 17 누구든지 그리스도(십자가, 피의 새 계약)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사람)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들 마음 안에 충만 하소서새로운 피조물(사람)로 새 창조하신 그리스도의 대속그 새 계약의 말씀 안에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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