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15일 월요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5,38-42)
제1독서<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1열왕21,1ㄴ-16)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화답송>시편5,2-3.5-6ㄱㄴ.6ㄷ-7(◎2ㄴ) ◎ 주님,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 주님, 제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제 탄식을 들어 주소서.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제 외침 소리 귀여겨들으소서. 당신께 기도하나이다. ◎
○ 당신은 죄악을 좋아하는 하느님이 아니시기에, 악인은 당신 앞에 머물지 못하고, 거만한 자들은, 당신 눈앞에 나서지 못하나이다. ◎
○ 당신은 나쁜 짓 하는 자 모두 미워하시고, 거짓을 말하는 자를 없애시나이다. 피에 주린 자와 사기 치는 자를, 주님은 역겨워하시나이다. ◎
복음<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1열왕21,1ㄴ~16)
(1)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열왕기 상권 20장에서는 아람 임금 벤 하닷이 이끌고 온 대군을 맞이하여 북부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두 번이나 놀라운 승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북부 이스라엘 왕 아합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슬러 벤 하닷을 자기 마음대로 살려 주었음과, 그로 말미암아 아합이 익명의 한 예언자로부터 하느님의 심판 신탁을 듣게 되었음을 기술하였다. 즉 외국과의 전쟁이라는 대외적 행적에 있어서 아합의 불신앙적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이어지는 21장에서는 20장과 대조적으로 대내적 통치에 있어서, 아합 왕의 불순종에 초점을 맞추어 아합 왕의 악정과 그로 인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여 주는 일례로, 아합의 나봇 포도밭 탈취사건을 중심으로 일련의 기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열왕기 상권 2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 1~16절은 아합이 이제벨의 악한 계교를 따라 나봇의 포도밭을 탈취한 사건의 기록이며, 후반부 17~29절은 이러한 악행을 저지른 아합과 이제벨을 향해 엘리야 예언자의 심판 경고가 주어지고, 이에 아합 왕이 회개하여 겸손한 모습을 보인 사실을 보도한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그 때에)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일 미사 책은 '그 때에'로 말씀이 시작되지만, 새 성경은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시작한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이다'에 해당하는 원문은 '아하르'(ahar; after) 이다. 본문의 '그 뒤에'(그 후에)는 앞선 20장에 기록된 내용, 즉 '벤 하닷과의 두 번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를 체험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 벤 하닷을 살려줌으로써 심판 신탁을 들은 뒤에(후에)'라는 의미이다. 이러현 표현은 열왕기 상권 21장의 기사를 20장의 후반부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면서 아합의 죄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합 왕은 하느님의 놀라우신 주권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또한 하느님의 심판 신탁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하느님께서 낱낱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같은 일들을 체험했던 아합은 마땅히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려 나가는 반응을 보였어야 했다. 그러나 아합은 하느님의 율법과는 애당초부터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끝까지 그러했다.
아합은 이전에 아람과의 전쟁에서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성전(聖戰)에서의 승리를 자기 승리로 착각하고 임의로 행동한 것처럼, 열왕기 상권 21장에서도 하느님의 율법에 절대적으로 양도나 매도, 착취가 불가능한 것으로 규정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속(기업)으로 허락된 땅에 대한 규례(레위25,23)를 어기고 죄악된 방법으로 이를 취하고 만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25,23)
아합의 행동은 신정(神政)왕국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일뿐 아니라 고대 근동의 이방 군주들처럼 왕의 사유지 증대를 통하여 왕의 힘을 강화시켜 전제주의적 왕권을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행해진 사악한 범죄였다. 그리고 이러한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아합은 결국 거짓 증인을 내세워 나봇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는 파렴치하고 흉악한 죄악을 저지른다.
열왕기 상권 21장 1절에서 '포도밭'에 해당하는 '케렘'(kerem)은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나타낼 정도로(이사5,7; 예레12,10) 팔레스티나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전통적이고도 주요한 산업 기반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명기 20장 6절에서는 포도밭을 만들고서도 그 첫 수확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는 병역의 의무를 면제하라는 규정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것은 수고한 댓가를 단 한번도 누리지 못하고 죽는 불행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팔레스티나에서 포도밭이 갖는 경제적 비중과 그 대표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에서 포도밭의 소유주로 소개되는 '나봇'(Naboth)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열매들'이라는 의미로 '싹트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포도를 기르는 것을 업으로 하는 농부에게 매우 잘 어울리는 이러한 이름은 아마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생업에 충실하였던 그의 아버지가 많은 수확을 기대하며 붙여준 이름이었을 것이다. 또한 본문에는 '이즈르엘'(yzreel)이라는 지명이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한 번은 포도밭의 소유자인 나봇의 출신지를 밝히기 위해서이며, 다른 한 번은 포도밭의 소재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결국 나봇이 자신이 거주하는 그 곳에 자신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나봇이 그의 조상의 대를 이어 이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나봇이 조상으로부터 이 포도밭을 물려받은 정당한 소유자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즈르엘'은 '하느님이 뿌리시다' 라는 의미로서 부근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었었고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비옥한 땅이었다.
이처럼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생업의 기반이요 상징인 '포도밭', 소박하면서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기업에 충성스럽다는 것과 연결된 '나봇' 이라는 의미,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을 암시하는 '이즈르엘'과 같은 소재들은 하나같이 목가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안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로움은 열왕기 상권 21장에 기술된 아합과 이제벨 부부의 과도한 욕심과 비열한 음모, 협작에 의해서 산산조각 나고 만다.
2026년 06월 15일 월요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동태 복수법’을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이 율법은 받은 상처를 똑같이 되돌려주려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복수가 점점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울타리였지요.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을 지키고, 폭력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정의였습니다.
법은 대체로 잘못한 만큼 벌을 받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나아가 법정의 논리를 넘어, 인간 마음의 깊은 자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이는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악인’은 일상에서 우리를 모욕하고 상처 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굳이 “오른뺨”(5,39)을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남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잡이가 상대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등으로 치는 것으로, 당시 노예나 하인을 향한 모욕과 하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에도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5,39)라고 하십니다. 이는 굴욕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욕이 우리 안에서 증오가 되어 커지지 못하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모욕을 사랑이나 선의로 꺾어 버리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라는 말씀도, 천 걸음을 가자는 이에게 이천 걸음을 가 주라는 말씀도, 굴복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선의를 끊임없이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억압의 한 걸음을, 사랑의 두 걸음으로 지워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러합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받고 위로받으며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처럼 삽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은 ‘짝을 찾아라’ 하신다.
(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레위기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讎法)이다. 무조건 참으라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악인- 하느님의 뜻인 덮으심, 그 진리의 생명의 말씀을 사람의 뜻, 욕망의 눈으로 보고 선악의 말로 하는(창세3,5) 그 거짓 말(혀, 이)을 하는 아담과 그의 후손들 이다. 그 거짓말에 넘어가 하늘의 진리, 생명의 말씀을 잃어버린다.
(잠언25,18) 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시편57,5) 5 저는 사자들 가운데에, 사람을 집어삼키려는 것들 가운데에 누워 있습니다. 그들의 이빨은 창과 화살,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입니다.
(마태7,15)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
=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로 착하게 양의 옷차림을 한 사람이 하느님의 오른 말씀, 진리를 말하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 핍박 한다. 때린다. 그때 다른 뺨, 곧 진리로, 예수님으로 돌려대라는 말씀이다.
선악의 그 양의 옷차림을 한 이들이 재판을 건다.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속옷, 아담이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으로 받고~
(창세3,7)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 알몸(부끄러움, 죄)을 가리려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 입은 옷, 무화과나무 잎이다. 아담의 그 선악 행위를 자기 열심, 의, 율법의 옷, 속옷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개짐, 더러움, 죄라고 한다. 부끄러운 죄를 가릴 수,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이사64,5 마태6,33 로마10,1-참조) 모든 죄는 깨끗하고 흠 없는, 정결한 피로만 씻겨 진다. 없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씻긴 이들을 거룩하다, 의롭다 하신다. 피의 권위, 능력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담에게 정결한 흠 없는 어린양을 죽여 피의 새 계약인 겉옷을 입혀주신다.(창세3,21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곧 예수께서 십자나무에 대속으로 달리시어 죽으시고 입으셨던 옷(아마포-요한19,40) 그것이 의로움의 옷, 혼인 예복, 겉옷이다.
(묵시19,7-8) 7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 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생명, 구원의 길임을 그 하느님 구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도의 의로운 행위, 행실인 것이다.
그러니까 아담(사람)의 무화과나무 옷, 그 자기 의로움, 착한 행실을 요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나무의 의로움, 그 겉옷으로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 *천 걸음(밀리온 에이스) 밀리온-천. 에이스-하나. *이천 걸음( 듀오-짝) 직역을 하면, “누군가가 하나의 천(1000) 안에서 억지로 하게 하거든 그 천의 짝으로 가 주어라” 앞에 밀리온 에이스(천)의 짝으로, 그 짝의 천으로 가 주어라 하시는 것인데, 천(1000)은 하나(1)를 뜻하고 하나는 하느님을 뜻한다.
그리고 억지로 하는 이들의 대표가 종(從)이다. 하느님의 진리, 그 하나의 말씀을 인간들의 선악의 두 법으로 받아 그냥 해 버리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라 하신다.
그래서 선악의 기준으로 열심히, 자기 의로움을 위해 살았던 그 유대인들에게 종이라 하셨던 것이다.(요한8,31-36참조)
그러니까 율법(제사와 윤리)을 “천으로, 억지로 하게 하거든 짝인 진리(십자가의 예수)로 가주어라, 인도해라” 하시는 것이다.
(이사34,16) 16 주님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아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그분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그분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 그것이 또한 창조의 원리이다. 저녁(율법)이 되고 아침(진리)이 지나니 날(생명)이 되었다. 저녁의 짝이 아침이다.
(신명32,1-2) 1 하늘아, 귀를 기울여라. 내가 말하리라. 땅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라. 2 나의 가르침(말씀)은 비처럼 내리고 나의 말(말씀)은 이슬처럼 맺히리라. 푸른 들에 내리는 가랑비 같고 풀밭에 내리는 소나기 같으리라.
= 아래에 내려주신 말씀(물)으로 위, 하느님의 뜻(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아랫 말에 갇혀버리면 죽음(死亡)이라는 것이다. 아랫것으로 위에 것을 깨닫지 못하고 아래에 갇혀 버리면 그것을 땅, 어둠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아랫것으로 위에 것을 깨달으면 빛, 하늘이 된다. 그래서 짝이다.
하느님의 말씀, 계명, 율법은 하느님을 설명하는 것이기에 법으로 받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과 믿음과 짝하지 못하는 법(제사와 윤리)으로 지키려 했기에 신약이 구약의 율법을 죄라고 하신 것이다.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속옷을 달라는(아이테오-빚 갚아)이에게 겉옷, 진리를 밝히 보여 주라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먼저 약속하신 그 창세 전 약속, 빚 갚으세요, 넘겨주세요.라는 것이다.(에페1,4참조)
(마태21,22)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
= 하느님의 듯인 우리 구원의 약속, 계약, 그 복, 선물을 구하면 반드시 들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꾸려는 (다네이조 - 선물) 선물로써 빚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들을 문자 그대로 도덕과 윤리로 받아 말하면 죽음을 주는 거짓말로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비록 뼈를 깎는 희생이 요구 되더라도, 언제나 봉사하고자 하는 열의 속에 살아 가지고, 그래서 이웃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신자이건, 비신자 이건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했을 때,
하느님 진리의 말씀을 전해 주어 그의 영을 구하는, 살리는 그 사랑의 봉사가 아니고, 인간들의 선악의 말을 짝으로 하여 뼈를 깎는 희생으로 열심한 봉사를 하자고 한다면 거짓말, 거짓 행위를 하는 것이다.
(마태5,20)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14,6) 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영원한 호자이신 성령님! 저희 닫힌 눈과 입을 열어주시어 율법과 세상과 짝하여 사는 저희를 진리의 말씀과 짝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5,38~42)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38~41)
마태오 복음 5장 38절에서 구약의 형법 규정(탈출21,24; 신명19,21; 레위24,20)과 고대 형법의 근간을 이루었던 '동태복수법'(lex talionis)의 내용이 소개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절대 불변의 율법이며, 고대 세계에 널리 통용되던 정의 구현의보루라고 생각되었던, 악(惡)을 행한 자에 대하여 동일하게 보복을 가하여 징계하는 '동태복수법'을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해석해 주신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서 '맞서지'로 번역한 '안티스테나이'(antistenai; resist)의 원형 '안티스테미'(anthistemi)는 '반대하다', '대신하다'는 뜻이 있는 전치사 '안티'(anti)와 '두다', '세우다' 등의 뜻이 있는 '히스테미'(histemi)의 합성어로서 '~에 대항하여 일어서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행해지는 복수와 더불어 법정에서의 공방까지 가리킨다.
그리고 '악인'으로 번역된 '포네로'(ponero; evil person)의 원형 '포네로스'(poneros)는 마태오 복음 5장 37절에서 '악'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로서 '악을 행하는 자', '비열한 자'라는 뜻이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신에 대해 위해를 가하는 비열한 상태에 대해 그 어떠한 복수도 삼가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피해자가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피해 보상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교훈으로서 '동태복수법'을 절대 진리로 알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29절에서 '치다'로 번역된 '라피조'(rapizo; strike; smite)는 막대기로 '때리다'(마태26,67)는 뜻이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비록 손으로 때리는 것이지만, 큰 고통을 줄 만큼 매우 세게 쳤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손으로 뺨을 때리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다.
특히 히브리인들은 오른손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른뺨을 때렸다는 것은 정면에서 손등으로 치거나 뒤에서 손바닥으로 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유대 풍습에서 손등으로 때리는 것은 손바닥으로 때리는 것보다 두 배나 모욕을 주는 것이다.
또한 등 뒤에서 때린다는 것은 상대방이 모르게 불의의 공격을 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 다른 뺨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실제로 왼쪽 뺨까지 때리도록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직접적으로 복수하지 말고 고통과 모욕을 견디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어떤 문제에 직접 대응함으로써 복수가 악순환되는 것을 막고, 오히려 상대방을 너그럽게 대하는 관용과 무저항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5장 40절의 '너를 재판에 걸어'에서 '재판에 걸다', '송사하다'로 번역되는 '크리노'(krino; sue at the law)는 '재판하다'는 뜻도 있고, '비난하다', '헐뜯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반드시 재판을 염두에 둔 상황이라고 볼 필요가 없다.
이 구절은 재산상의 분쟁이나 강도를 당한 상황에서 속옷까지 가지려는 상대에 대하여 저항하지 말고 오히려 애덕을 베풀라는 뜻이다.
그 당시 속옷은 겉옷보다 가격이 싸고 보잘 것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 반면에 겉옷은 가격도 비싸고, 일교차가 심한 팔레스티나에서 밤에 덮고 자야 하는 필수품이기에 전당잡힐 수조차 없는 품목이었다(탈출22,26; 신명2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옷을 달라는 자에게 더 비싸고, 없으면 당장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겉옷까지 아무 저항없이 양도하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5장 41절에서 '억지로 ~가게 하거든', '가자고 강요하거든'로 번역된 '앙가류세이'(anggareusei; force~to go; compel~ to go)는 페르시아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강제로 봉사하게 하다'는 뜻을 지닌다.
즉 페르시아 국왕이 조서를 전달할 때 사람들을 징발하여 짐을 지게 만들거나 문서를 전달하게 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양민 징발 규정이 적용되었고, 로마의 식민지 유다에서도 시행되었다.
마태오 복음 27장 32절에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천 걸음'에 해당하는 '밀리온 헨'(milion hen; one mile), 즉 '오리'를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기꺼이 '오리'를 더 동행해 주는 너그러움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늘 말씀은 상대방에게 호의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그것을 묵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독서인 나봇의 포도밭 이야기는 탐욕에 사로잡힌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해질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아합은 매우 탐욕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모략을 세우거나 직접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내 이제벨과는 달리 하느님과 율법의 가르침을 두려워하였기에, 거짓 증언으로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욕망에 매우 충실한 사람으로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불의와 폭력에 내던져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을 감았습니다.
나봇이 무고하게 죽었지만, 아합은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조금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저지른 악행의 결과를 마음속으로 기대하며, 겉으로는 모른 척하였지만 그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무죄한 의인이 희생한 대가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었습니다.
욕망은 아합에게 나봇의 죽음을 가리고, 포도밭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아합과 닮았습니다.
이제벨처럼 직접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그 악행의 결과가 자신에게 이익으로 돌아올 때 그것을 뿌리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빈부 격차를 가속화하며 가난한 이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악법과 불의한 구조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만일 그 법으로 어떤 이득을 얻게 된다면 기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욕심은 고통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눈을 감게 하고, 지금 곧바로 얻게 될 이익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보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자신의 욕망을 비우고, 어려운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희생적 선택이어야 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복음(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동태(同態)보복(報復)법(法)-☞ 동일한 방법으로 보복(報復)하는 것,
(레위24,19-20) 19 동족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자기가 한 대로 되받아야 한다. 20 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
= 19절 동족(同族 아미트),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는 동족. 이웃에게 상해(카탄 뭄)를 입힌 사람은 ,<카타-넘겨, 뭄- 점, 흠, 더러움> 곧 말씀을 점, 흠으로 넘겨준 사람은 그대로 되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점’은 날 때 부터 가지고 나온, 생전의 것, ‘흠, 더러움’은 태어난 후, 그 생전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그 점과 흠, 더러운 제물은 안 받으신다.
그러니까 사람(아담)으ㅟ 본능인 선악 구조에 의해, 후에 만들어 낸 것들을 하느님은 받지 안으신다는 것이다. 19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태보복법이 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언급이다. 곧 깨끗한 것이 아닌, 더러운 것을 가진 자가 그 더러운 것을 이웃에게 넘겨주는 자들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까를 설명하는 말이다.
죄‘를 알게 하는 선악의 율법주의’로 넘겨주면 그대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눈은(아인)- 샘, 말씀을 뜻한다.
(묵시5,6)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 일곱은 안식(安息 싸바스-일곱번 말하다)의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네가 한 말, 그대로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점, 흠 있는 눈의 말을 하면, 더러운 그대로 점. 흠 없는 말을 하면, 깨끗한 그대로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보고, 듣고, 말한 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선악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심판으로,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하늘의 용서, 구원으로 갚아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잠언25,18-19) 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진리의 말이 아닌 것)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19 환난을 당할 때(진리)에 배신자를 믿는 것은 부서지는 이요 비틀거리는 발과 같다.
(마태8,11-12)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율법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를 가치로 여기며, 진리의 말씀을 지키지(킵-마음에 간직)않는 그 율법 자들은 씹을 말씀(씨)이 없어 이빨끼리 부딪치게 되는, 그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악인(惡人 포노레스)- 율법의 수고로 고통스러워 아파하는 자, 그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그가 너의 오른 뺨(오른-올바른), 곧 네가 간직한 오른 그 진리의 말을 치거든, 다른 뺨, ‘참 진리이신 십자가의 예수께로 돌려 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대신 맞으시고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이사50,6)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1베드2,21-25)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푸람나우- 속았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 ‘돌아왔습니다.’- ‘에피 스트레퍼.’ 본문,‘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와 같은 단어다.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 속 옷, 아담(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고,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判斷)해, 그 알몸을 가리려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나무 잎’이다. (창세3,7) 아담의 그 행위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신의 알 몸, 곧 하느님의 창조 일을 부족한, 부끄러운 것으로 스스로 판단한 교만(驕慢)인 것이다. 그것이 율법주의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를 무화과나무 열매에 비유하신 것이다.
‘씨도, 열매도 아닌 것이 열매인 척’하는 위선(僞善), 교만(驕慢)을 뜻한다. (우리가 먹는 무화과는 열매가 아닌 꽃이다.) 곧 아담(사람)이 선악의 눈으로 보고, 따 먹고, 스스로의 수고(愁苦), 의(義)로 만든 옷은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속옷이다. 그래서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하여 부끄러운(죄) 존재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에게, 그의 부끄러움(죄)을 하느님께서 덮어주신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아담(사람)을 살리시려, 어린양을 죽이시고 남긴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곧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벗어 놓으신 그분의 수의(囚衣), 아마포 옷이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덮을 수 있는 겉옷, 가죽 옷이다.
(요한20,6-7)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 예수님의 수의(壽衣) 아마포를 입는 것이 의(義)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선교(宣敎)는, 이웃 사랑은, 이 아마포 옷을 진리의 옷, 겉옷을 주는 것이다. *진리(眞理)는 우리의 말로도, 율법으로도, 자연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속옷과 겉옷을 함께 주는 것이다. (로마1,20참조)곧 선악과(善惡果)로 생명을 설명하고, 악으로 선을 설명하며, 죄로 의를 설명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시(啓示) 방법이다.
이 땅에는 의(義), 선(善)은 없고(마태19,17), 악(惡), 죄(罪)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 죄로 선, 의를 깨달았다면, 받았다면 왜 죄악(罪惡)이 나쁘냐? 하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논리(論理)다. 그래서 바오로가 ‘율법은 나쁜 것이다.’ 하다가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좋은 것이다’.(로마7,7-13)_
죄가 철저히 죄가 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을 생명 하나로 갖는 것이 ‘모노게네스’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그 하나를 가질 수 없기에 ‘하나’를 가지신 하느님의 외아들(모노게네스)을 겉옷으로 입는 것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 ‘하나를 갖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를 전해주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 천(밀리온)+ 하나(에이스) 이천(듀오-뛰엣, 짝), 곧 “율법을 갖은 이가 율법을 강요하거든 그 율법의 짝인 진리 하나를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곧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만들어 입은, 그 자기의(自己義)의 옷, 그 속옷을 요구하거든, 짝인 ‘그리스도의 의(義)의 겉옷,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로마3,20-24참조)
(이사34,16) 16 주님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아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그분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그분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자신의 알몸인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이 입혀주신다’. 그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의 핵심(核心)이다. 지옥(地獄)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간다. 그러니 ‘생명, 구원의 말씀을 달라는 이’를 물리치면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천주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저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겉옷,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말씀)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