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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복음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마태6,1-6.16-18)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5|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17일 수요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마태6,1-6.16-18)

 

 

 

1독서<갑자기 불 병거가 나타나더니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2,1.6-14)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엘리야와 엘리사가 길갈을 떠나 걷다가예리코에 도착하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주님께서 나를 요르단 강으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시고 스승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저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그래서 그 두 사람은 함께 떠났다.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 쉰 명이 그들을 따라갔다두 사람이 요르단 강 가에 멈추어 서자그들도 멀찍이 떨어져 멈추어 섰다.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11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나의 아버지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엘리사는 엘리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자기 옷을 움켜쥐고 두 조각으로 찢었다.

13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강 가에 섰다.

14 그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잡고 강물을 치면서, “주 엘리야의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하고 말하였다엘리사가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이렇게 엘리사가 강을 건넜다.

 

<화답송>시편31,20.21.24(25) ◎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마음을 굳게 가져라.

○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얼마나 크시옵니까주님은 당신께 피신하는 이들에게사람들 보는 데서 그 선을 베푸시나이다

○ 당신 앞 피신처에 그들을 감추시어사람들의 음모에서 구해 내시고당신 거처 안에 숨기시어사나운 구설에서 구하시나이다

○ 주님께 충실한 모든 이들아주님을 사랑하여라주님은 진실한 이들은 지켜 주시나거만한 자에게는 호되게 갚으신다

 

복음<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6,1-6.16-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열왕2,1.6-14)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8-11)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요르단강을 내리치자 요르단강이 갈라지는 이적이 일어났다. 여기서 '겉옷'으로 번역된 '앗다르토'(adartho)의 원형 '앗데레트'(adereth)는 길고 헐렁한 소매없는 외투 또는 어깨를 감싸는 망토(mantle, cloak)를 가리킨다.

이 명사는 '장엄하다' 혹은 '영광스럽다' 라는 뜻의 동사 '아다르'(adar)에서 유래된 것으로, '화려함' 내지는 '영광'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러한 자구적 의미는 모세의 지팡이가 그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물이었던 것처럼, 엘리야의 '겉옷' 또한 예언자 직분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함을 보여준다.(1,7.8)

따라서 예언자가 겉옷을 던진다는 것은 예언자직을 위임한다는 의미가 되며(1열왕19,19), 이후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생도들 앞에서 보인 것은 자신이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음을 명백히 하는 상징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12-14절)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일정한 장소나 유사한 사건과 관련된 이적이 성경속에서 다른 위대한 인물이나 사건들과 연관되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요르단강 도하의 이적 역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강(여호3,13)을 건넌 사건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탈출14,16.21)등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한 것과 함께 본문의 이적 사건을 함께 동일하게 수행한 것(12-14절)은 이것을 지켜보는 생도들에게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사의 정통성을 완전히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마른땅'으로 번역된 '하라바'(haraba)는 '건조하다', '황량하다' 라는 뜻의 동사 '하레브'(hareb)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육지'(마른땅 ; dry ground)를 의미하며 성경에 9번 정도 등장한다. 이 단어는 단순히 '육지'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사막 혹은 광야처럼 건조한 땅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본문에서도 요르단강을 갈라 물기가 없는 땅을 건넌 사실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무엇이든지 청하라는 엘리야의 말에 엘리사가 제시한 요청이다. 이 문장은 '제발' 혹은 '원컨대'를 뜻하는 부사 '나'(na)가 '이다' 또는 '있다'를 뜻하는 동사 하야'(haya)와 함께 사용되어, 간절한 기원문의 형태로 되어있다.

한편, '영'으로 번역된 '루아흐'(ruah)는 '바람' 내지 '영'(靈)을 뜻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 능력'이란 의미로 쓰였다. 또한 '두'(갑절)로 번역된 '쉐나임'(shenaim)은 '반복하다' 라는 뜻의 동사 '샤나'(shana)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둘'로 해석되며, 원래 '입'을 뜻하지만 추상적 의미로 '부분'(portion)을 뜻하는 명사 '페'(phe)의 연계형 '피'(phi)와 결합되어 '두 몫'(a double portion)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두 몫의 비교 대상에 대해서, 종전까지는 엘리사의 받을 능력이 엘리야가 받았던 영적 능력의 두 배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예언자 지망생(생도)들 중에서 맏아들이 가지게 되는 분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이것은 한 집안에서 맏아들이 다른 형제들의 받는 몫의 두 배의 유산을 차지하며, 그 가문을 잇는 권리를 가지는(신명21,17) 히브리 전통과 관련된 표현으로서, 자신을 엘리야의 영적 장자와 같이 취급하여,그의 예언자직을 계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12절에서 엘리사가 사라진 엘리야를 '아버지'로 호칭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사의 요구는 엘리야보다 더 많은 능력을 행하고 싶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승이 가진 능력을 자신도 가지며, 스승이 걸어간 예언자의 길을 자신도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엘리사에게 임한 능력은 갑절이 아니라 단순히 엘리야의 영감 그 자체였다(15절)는 예언자 지망생들의 증언도 이러한 해석이 타당함을 보여준다.

 

'네가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본문에 사용된 동사 '히크쉿타'(hiqshsitha)는 '어렵다' 혹은 '곤란하다' 라는 뜻의 동사 '카샤'(qasha)의 사역형으로서, '네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엘리사는 엘리야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예언'(prophecy)을 하고, 이적을 일으키는 영적 능력을 가지며,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였으므로, 어떠한 인간도 그것을 부여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이러한 엘리야의 고백 배후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즉 영적 능력을 주고 예언직을 계승케 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재산을 떼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오직 하느님만이 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야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예언자직을 계승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데려가시는'에 해당하는 '룩카흐'(luqqah)는'라카흐'(laqqah)의 강조 수동형이며, 문맥상 이 동작의 주체는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본문에서 엘리야의 말은 엘리사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목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실 하느님의 일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여주셔야만 가능한 특별한 은혜에 해당한다. 이같은 내용들을 고려할 때, 본문의 엘리야의 말은 그가 영적 능력 부여를 통한 예언자직의 위임을 하느님께 완전히 맡기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승천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께서 엘리사에 대한 영적 능력 부여와 예언자직 계승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일차적으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행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두 인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행하고 있으며, 행동과 말에 있어서 일치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후에 엘리사가 행동과 말에 있어서 엘리야의 능력을 그대로 전수받아, 그와 같은 능력있는 종으로 사명을 감당할 것을 예시하는 효과를 지닌다.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갑자기'에 해당하는 '웨힌네'(wehinneh)는 접속사 '와우'(wau)와 '보라'를 뜻하는 '힌네'(hinneh)가 결합되어, '그런데 보라'로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뒤이어 나올 충격적인 사건에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불'의 이미지는 엘리야가 예언자직을 감당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각각의 현장에서 나타난 '불'은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먼저, 카르멜산에서의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엘리야가 쌓은 제단 위에 임한 불은 엘리야가 전하는 말과 행하는 사명에 신적 인증을 확인시켜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1열왕18,24-38). 아울러 그를 잡으러 온 아하즈야의 군사들에게 내려진 불은 불의한 자들에게 엘리야가 하느님의 예언자임을 확인시켜주면서 동시에 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보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9-16).

본문에 나오는 불명거와 불말의 경우는, 그동안 엘리야의 사명 가운데 '불'이 하느님의 임재와 보호, 신적 인증을 상징하고, 병거(수레)와 말이 당시 군대의 전쟁 수행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인 것(탈출14,7;판관4,3)을 감안할 때, 이것은 지금까지의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최종적인 신적 인증임과 동시에 그를 도우시는 하느님의 도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갈라놓았다' 에 해당하는 '와이야프리두'(waiyaphridu)의 원형 '파라드'(pharad)는 '나누다' 혹은 '분리하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병거와 불말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분리시켰음을 나타낸다. 진작에 엘리야는 엘리사와 헤어질 것을 고집하여 이 시점까지 이른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만남과 이별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명을 마친 엘리야를 하늘로 인도하시고, 앞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엘리사를 지상에 남기시기 위해, 초자연적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부자지간처럼 가까웠던 이들을 완전히 격리시키신 것이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회오리 바람에 실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빠세아라'(basearah)이다. 그런데 나선형으로 공기가 선회하며 일어나는 바람인 '회오리 바람'을 묘사할 때는 일반적으로 '쑤파'(supha)라는 단어가 쓰인다.

본문에 등장하는 '싸아르'(saar)는 성경에 16번이나 나오는데, 기상학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인 '돌풍'이나 몹시 센 바람인 '폭풍'을 나타낼 때 사용되며 대개 날씨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동반된다.(이사29,6) 아마도 본문의 '싸이르'는 급작스럽게 불어닥친 강력한 돌풍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빠세아라'는 '~안에서'(in)란 뜻의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 및 명사 '싸아르'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싸아르를 타고' 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싸아르 안에서'나 '싸아르 가운데' 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또한 원문에는 엘리야가 불병거와 불말을 타고 승천했는지 혹은 바람 그 자체를 타고 승천하였는지의 여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싸아르'라는 단어가 하느님의 임재(theophany)에 뒤따르는 폭풍우를 가리킬 때 쓰인(욥기38,1) 사실을 통해 미루어보건대, 엘리야는 불병거나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서, 본문을 통한 엘리야의 승천 방법 그 자체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엘리야의 모습을 감추신 것으로 풀이된다.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전통적으로 유다인들은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조건으로 자선, 기도, 단식이라는 세 가지 종교적 신심 행위를 강조하였습니다.

자선, 기도, 단식은 하느님과 형제들 그리고 나 자신과도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은총을 얻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 기도, 단식을 말씀하시면서 이를 행할 때에 제자들이 갖추어야 하는 올바른 자세를 깨우쳐 주십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먼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존경을 받으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하는 이들을 ‘위선자’에 빗대며 경고하십니다.

또한 그들은 받을 상을 현세에서 이미 다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남몰래 자선을 베풀고, 골방에 홀로 숨어 아버지께 기도하며, 단식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행하는 이들은 장차 하느님 아버지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자선, 기도, 단식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있었던 작은 노력과 실천들을 어떠한 지향으로 행하였는지 곰곰이 성찰해 봅시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세상의 영예와 존경과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오직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고자 하였는지, 그래서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영원한 선물에 마음을 두었는지.

 

우리 삶의 방향이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영예를 향할 때,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점점 멀어질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여 하늘나라의 상을 받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마태6,1-6.16-18)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앞 절의 말씀을 다시 강조 하시는 것이다. 앞 절에서 하느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으로 빛이신 하느님의 빛이신 예수님을 깨달아 받아들이면 어둠인 우리가 그분(빛, 진리)과 하나가 되는 것이 완전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빛, 진리를 이웃에게 흘려주어야(기도)함도 배웠다. 그 보이지 않는 빛, 진리를 흘려주는 일이 의로운 일인 것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생명의 빛, 구원의 진리로 깨달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진리를 이웃에게 흘려주는 그 의로운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른 자선이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교회)과 거리에서 하듯이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보이는 자선(慈善, 흘려주는)은 사람들의 칭찬으로 이미 상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뜻, 생각)이 아닌 스스로 생각해서 하는, 부는 나팔(말)인 것이다.

 

(민수10,7) 대회를 열 때에 부는 나팔 소리는 비상 나팔 소리와는 다르게 불어야 한다.(공동번역성서)

= 소리와 다른(르아)- 소리로 귀를 먹게 하다. ‘나팔을 불어라 내말을 전하라.’ 그러나 귀를 먹게 하는 사람의 뜻, 생각, 그 헛된 말을 진리로 전하지 마라 하시는 것이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왼손이 모르는 그 일을 하라는 것, 오른손(덱시오스 -오른편) ‘올바르다’의 그 오른편이다. 그 반대편 왼손(알스테로스- 왼편) 그른 편. 곧 하느님 나라의 옳음, 진리를 주는 말을 해라. ‘율법(세상)이 칭찬하는 말을 하지 마라’는 것이다.

 

(마태25,34.41)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덱시오스)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알스테로스)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숨은 일(크르푸토스- 내적인 것) 곧 문자, 말씀(로고스) 안에 숨겨진(레마) 진리다. (파네이로스- 껍데기, 겉모양) 보시는 -(불랙보우) 아버지가 보게 해 주시는 그 내적인 것, ‘진리로 해’ 그러면 그 내적인 것, 진리로 넘겨주신다, 갚아 주신다는 말씀이시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기도(프로쉬콤마이)- 어디어디를 향해 원하다. 흘려주다. 먼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담아 내려주시는 빛과 비, 그 흘려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원하여 받는 것이 기도이다. 그리고 이웃에게 흘려주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뜻, 욕망을 위해하는, 보이는 기도는 위선(僞善)의 기도라는 말씀이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골방- 번제물을 드리는 제단 옆에 있는 방이다. 그곳에는 제사를 드리기 위한 제물과 기름, 등잔대 등 온갖 기물(器物)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다. 그러니 그 숨어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는, 흘려 받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이다.

*제물(祭物)은 우리 죄를 대속하신 새 계약의 예수님을, *기름은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증거자, 구원의 양식이신 성령을, *등잔대는 주님과 성령과 함께하는 그분들을 진리로 드러내야. 밝혀야 할, 전해야 할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못하고 있기에 교회(우리)에게 단식을 하라고 하신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사람(세상)의 욕망을 위한 그 사람의 말(義), 그 가짜 빛을 흘려주지 않도록, 그 헛된 것을 끊는 올바른 단식을 하라는 말씀이다.

 

(이사58,6) 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흘려주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늘의 자유를 몰라 사람의 선악의 말, 규정과 교리로 ‘불의한 멍에’에 묶여있는 이들을 풀어주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끊는 것이 단식이다.

 

17그래서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 단식할 때 너의 머리(생각, 뜻)에 기름(성령)을 바르고 너의 얼굴(영)을 씻어라(없애라)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의 생각, 뜻, 그 영을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하느님의 뜻(진리, 새 계약)을 전하기 위해 하느님의 영, 성령께 의탁하라는 말씀이다.(로마8,1- 히브10,9-22참조)

그래야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시는 선행을 할 수 있다.(코린토2서9,6ㄴ-11참조) 그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성도의 행실, 실천, 선행이다.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보이는 것을 위해, 보이는 것으로 하는, 곧 사람의 생각, 뜻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헛된 것으로 하느님께 받을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2베드1,3-4) 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부르신 분을 알게 해 주심으로써, 당신이 지니신 하느님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생명과 신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내려 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아멘)

= 오늘 하늘에 떠있는 구름(비- 말씀)이 그동안 힘들었던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위로(慰勞)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그리고 구원의 약속임을 알게 하시니 더욱 아름다운 하늘, 오늘이다.

구름은 흐른다, 살아있다는 것이다. 바람에 의해 움직이고 살아 있는 것이다. 곧 말씀은 성령에 의해 움직이고 일하신다는 것이다.(요한14,26 코린전2,21- 에페3,20 필리2,13 테살전2,13 참조) 그래서 성령을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로 주신 것이다.

 

☨ 감사합니다. 아버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복음(마태6,1~6.16~18)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1-3)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5-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너희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6-17)

 

마태오 복음 6장 1~18절까지는 당시 유대인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였던 위선에 대한 예수님의 경계의 말씀이 들어 있다. B.C.586년 남부 유다 멸망 이후 포로 시대의 상황에서 유대인의 전통과 예식을 고수하려는 강한 민족주의적 배경 아래 생성 발전한 유다교는 구약 성경의 내용을 왜곡하여서 지나친 형식주의가 퍼져 나갔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적 행위 가운데는 위선적 요소가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구약 율법을 빌미로 해서 저지르는 대표적인 위선을 거론하신다. 종교적 위선에 대한 경고(마태6,1)에 이어, 특히 자선(마태6,2~4), 기도(마태6,5~15). 단식(마태6,16~18)에 있어서 근본 의미를 밝혀 주시며, 위선을 버릴 것을 촉구하신다.

 

'위선'이란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의(義)임이 지적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에 해당하는 '프로스 토 테아테나이 아우토이스'(pros to theathenai autois; to be seen by them)에서 '프로스'(pros; to)는 '~하기 위하여', '~을 목적으로'라는 의미를 가지며, '보이다'에 해당하는 '테아테나이'(theathenai; be seen)도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이다.

 

여기서 다른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만으로 의로운 일을 행하는 위선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고 '조심하여라'에 해당하는 '프로세케테'(prosechete; take heed; be careful)는 '주의하다', '삼가다'의 뜻을 가진 '프로세코'(prosecho)의 현재 명령형이다.

이것은 마치 걸음걸이가 서툰 어린 아이의 뒤를 따라가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자상한 표현이다. 또한 '하지 않도록'에 해당하는 '메 포이에인'(me poiein; not to do)은 마태오 복음 6장 1절 이하의 내용이 실생활 가운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는 행위에 관한 교훈이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부터 4절까지는 유다교에서 종교 규정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던 '자선'에 해당하는 '엘레에모쉬넨'(eleemosynen; thine alms)에 있어서의 위선에 대한 교훈이 나온다. 여기서 주어가 '너희'가 아니고 '너'라는 단수인데, 이것은 모든 사람 각자가 자선을 행할 때 이 규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또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에서 '때'로 번역된 '호탄'(hotan; when)은 '~할 때는 언제든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만약 자선을 한다면' 정도의 가정법적인 뜻이 아니라, '각 사람은 반드시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데, 자선을 베풀 때에는'이라는 필연적 의미를 지닌다.

 

마태오 복음 6장 2절의 '위선자'에 해당하는 '호이 휘포크리타이'(hoi hypokritai; the hypocrites)의 기본형 '휘포크리테스'(hypoktites)는 '가장하다', '꾸미다'는 뜻이 있는 '휘포크리노마이'(hypokrinomai)에서 유래하며, 원래는 '연극 배우'를 뜻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밖으로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가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마태15,7; 마르7,6).

이런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는 회당과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선하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나팔을 불듯이 자랑까지 하여 그들의 행위가 실제로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과시에 목적이 있음을 보여 주었다.

 

한편,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에 해당하는 '아페쿠신'(apechousin; they have)의 원형 '아페코'(apecho)는 희랍 고전 문헌에서 '어떤 것을 받고 영수증을 주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받았음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그러니까 여기서 등장하는 위선자는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확실한 반대 급부가 없으면, 자선을 베풀지 않는 자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선을 베풀므로, 자선을 베풀 때 이것을 목격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게 됨으로써, 그들이 목적했던 것을 이룰 수 있기에 그들은 충분한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마태오 복음 6장 3절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에서 원문에는 '손'이라는 단어가 없고, '너의 왼쪽~너의 오른쪽'만 나온다. 새 성경 번역문과 달리 원문에 '손'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은 구체적인 형체보다 추상적인 개념을 보다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다.

말하자면, 행위로 이루어지는 자선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동정이나 또는 자선을 계획하는 것조차도 은밀히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성경에서는 오른쪽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반면에 왼쪽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선한 의지로 자선을 베풀려고 할 때, 이것을 저해하는 악한 충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악한 충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자선을 베풀라는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기도할 때에'에 해당하는 표준 원문에는 '프로슈케스테'(proseuchesthe) 라는 2인칭 복수형이 아니고, '프로슈케'(proseuche)라는 2인칭 단수형으로 나오므로 '또 네가 기도할 때에'로 번역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실제로 기도하는 사람 개개인에 대해 교훈을 주시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도하다'에 해당하는 '프로슈코마이'(proseuchomai)는 '~을 향하여'라는 방향을 나타내는 전치사 '프로스'(pros)와 '원하다', '고대하다'는 뜻이 있는 '유코마이' (euchomai)의 합성어이다.

 

여기서 전치사 '프로스'(pros)는 단 하나의 방향을 나타내는 단어이기에, 기도는 오로지 하느님께 응답받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져야 하며,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칭찬을 받기 위한 다른 목적이 포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시 유다인들은 유다인 시간으로 3시(오전9시), 6시(정오), 9시(오후3시)가 공식적인 기도 시간이었고, 위선자들은 이 시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기도를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거나 앉아서도 할 수 있지만, 굳이 서서 기도하는 것은 자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신앙심을 과시했던 것이다.

 

마태오 복음 6장 6절의 '골방'에 해당하는 '타메이온'(tameion; closet)는 '창고', '내실', '침실'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가장 일차적인 뜻은 식료품 등의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루카12,24)이다. 당시 피지배 국민으로서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던 유다인들은 가족들을 위해 아무도 모르는 '창고'에 식량을 숨겨 두었고, 식량을 가지러 들어갈 때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이렇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식량 창고'는 생명과도 같은 가장 중요한 비밀 장소로 여겨졌다.

 

 

 

 

 

[연중 제11주간 수요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제1독서에서 엘리사에게 이어진 사명을 통해서 하느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름을 묵상하게 됩니다. 

엘리야의 사명이 엘리사에게 넘어가며 주님의 시간과 사업은 계속 이어집니다. 

엘리야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엘리야라는 한 인간의 생애에서 본다면, 그 사명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의 생애는 하느님의 사명이 완전히 이루어지기에 너무나 짧습니다. 

온 생애를 통한 엘리야의 헌신에도 이스라엘은 아직 회개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뜻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하느님께서는 엘리야를 하늘로 불러올리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간에서 엘리야의 사명은 엘리사에게 넘어갔고, 구원사는 변함없이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저마다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사명으로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복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 하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무엇도 이루어진 것이 없어 보이고, 목적지는 너무나 멀어 보입니다. 

교회와 사회는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할 듯이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명은 다른 이를 통해서, 다음 세대를 통해서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시간 안에서 그분 계획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희망합니다. 

우리 노고의 열매가 비록 이 시대에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희망 속에서 사명을 한결같이 수행하여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입니다. 

그분께서 맡기신 사명을 묵묵히 충실하게 실천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나라가 성장합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성경과 사람과 예수님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진리)을 찾는 것이 기도(단식)다.

 

(마태 6,1-6.16-18)

1ㄱ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 보이는 사람의 의로운 일로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의로움으로 전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시는 겁니다.

 

(마태6,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1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ㄱ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 위선자- 휘포크레테스(연기자) 십자가의 대속, 그 주님의 의로움을 분명하게 전해주어 이웃이 하늘의 생명을 받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자선입니다.

 

(로마3,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그러나 세상의 제물 등을 주는  나의 의로움으로 자선을 한다면~~

 

2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사람들의 칭찬으로 이미 받은 것, 그러나 그 칭찬으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루가16,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오른 손, 덱시오스(오른편)  왼손- 그 반대편

세상이 알 수 없는 그 오른 하느님 나라의 일을 세상의 일, 사람의 뜻으로 주지 말라 시는 것입니다.

 

(1코린1,21)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하느님의 일 그분의 뜻은 세상 우주 만물과 성경 율법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 그 숨겨져 있는 일, 곧 하늘의 진리를 깨닫는 일을 하라 시는 것입니다. 그 일이 기도입니다.

 

5ㄱ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 위선자- 휘포크레테스(연기자) 내 진심이 아닌 다른 이가 준 말을 대사 외우듯 하지 말라는,(중얼중얼)것입니다.

 

5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골방, 성전 안에 제물과 기름 등으로 제사 준비하는 방으로 그 제물과 제사의 의미, 곧 하느님의 구원(용서-치유)의 새 계약을 깨닫게 되면 이미 갚아 주셨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히브리인 들은 골방을 약방으로도 씁니다.) 그러니 너희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7절이하~)입니다.

그리고~

16ㄱ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 침통한 - 스퀘리토스(어둠 그림자 덮여진) 하느님의 진리를 덮는, 그래서 어둠인 너희의 뜻을 위한 제사와 윤리, 그 율법, 그 사람의 규정과 교리의 가르침(양식)을 끊는 단식을 하라 시는 것입니다.

 

16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 내 머리를 부인하는 끊는 단식으로 기름 부음 받으신 분- 그리스도 예수님을 내 머리로, 나는 그분의 지체로 낮아지게 되면~~내 얼굴이 깨끗이 씻겨지는 것입니다.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숨은일, 크레토퍼스(내적인 일- 진리) 보이는 사람들의 행위가 아닌 하늘의 일, 진리를 청하면 분명한 것으로 깨닫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2026년 06월 17일 수요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경고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여기서 의로움은 단순히 도덕적인 품행을 뜻하지 않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삶 전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의로움이 하느님을 향한 길이 아니라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무대로 어떻게 바뀌는지를 꿰뚫어 보십니다인간은 늘 인정 욕구에 목마르고 그 욕구를 채우고자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제법 있지요.

유다 사회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을 향한 경건한 삶을 가다듬어 왔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들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고 끊임없이 가르치고는 하였지요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선행이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될 때하늘의 상급은 사라지고 땅의 인정만 남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나팔을 불지 마라.”(6,2)라는 말씀은 과장이면서도 정확한 풍자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과장된 자기 연출의 유혹과 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자는 그저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면을 쓰고 경건함과 올바름을 연기하는 사람이며종교 행위나 교회 제도로 자신의 삶과 명예를 챙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향하여 서 있는 듯하지만사실은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합니다.

기도는 회당의 중심이 아니라집 안 가장 깊은 방에서 홀로 시작됩니다단식은 인정받거나 혜택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며 삶에서 조용히 하느님을 찾는 행위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앞에서 세상의 그 무엇이 그리 가치 있겠습니까사람과 세상 눈치를 보다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결과일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알아야 알 수 있다.

 

복음(마태6,1-6)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 ‘조심 하여라’가 원어 성경에는 맨 앞에 쓰여져 있다. 성경에서 맨 앞에 쓰였다는 것은 가장 중요함을 나타낸다. 그리고 ‘보이려고(데오망)’는 속의 내용을 못봐 봉는 밖으 것만을 말하며, 그 보이는 것으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나타나는 현상을 주면 상(償)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상(償)은 하늘의 것이다. 곧 땅(세상)으 것을 위해, 세상이 칭찬하는 사람의 의(義), 명예를 위한 일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다.

 

(로마10,2-3) 2 나는 그들(율법자)에 관하여 증언할 수 있습니다그들은 하느님을 위한 열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열성입니다. 3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엘레모스-영적자선)을 베풀 때에는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스스로 나팔(작 말)을 불지 마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위선자(僞善者)?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영광이 아닌 자신들의 뜻, 소원, 영광을 위해 제사와 윤리를 열심히 지켰던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세상이 칭찬하는 방법으로, 곧 사람의 마음, 그 속 아닌 겉모습을 깨끗하게 하는 그 자선(慈善), 그 위선의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루가11,39) 39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로마16,18) 18 그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배를 섬기는 자들로서달콤하고 비위에 맞는 말로 순박한 이들의 마음을 속입니다.

= 구약(舊約)에서 이미 약속하셨던 새 마음이 되어야한다.

 

(에제36,26)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너희 몸에서 돌(옛 계약-율법)로 된 마음을 치우고(새계약-십자가)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보충 히브10,15-18)

 

(히브10,22)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우리의 몸은 맑은 물(새 계약의 말씀)로 말끔히 씻겨 졌습니다.

= 새 계약은 옛 계약인 십계명(十誡命)의 실체다. 새 계약은 용서, 생명을 주지만, 옛 계약, 십계명은 심판으로 죄와 죽음을 준다.(야고2,10 참조) 십계명을 피의 새 계약, 그 하나(1)로 보지 못하고 열(10) 개로 받아 세상의 법으로 지키려 한다면 죽음이라는 것이다.

십계명의 원뜻은 ‘그 계명의 십(10)’ 이라는 뜻이다. (10은 완성, 완전, 충만, 그 하나를 뜻한다) 곧 모든 율법, 그 옛 계약 안에 ‘내용, 실체,’ 그 ‘하나’라는 것이다. 거기에서 ‘십일조’가 나온 것이다. 십일조 또한 돈이 아닌 새 계약에 대한 감사로 내 영광을 버리고(否認), 하느님의 영광을 받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 것, 완전한 사람이 된 나를 드리는, 그 하나를 말한다. (나중에 이 부분은 더 설명해야 한다.)

 

(요한5,41. 12,43)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인간들의 계명에 정신을 팔지 마라’는 것이다.(티토1,14)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자선(慈善)은 죄인들에게 심판이 아닌 용서(容恕), 생명(生命)을 주는, 곧 그들의 죄로 대신 죽으신 피의 새 계약인 십자가(十字架)복음을 진리의 계명, 말씀으로 주는 것이니 ‘조심하라‘ 하신 것이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 오른손, 오른, 바른, 그 ‘참 손’은 하느님의 손, 일을, 왼손은 그 반대쪽인 사람의 손, 일을 뜻한다. 그러니 세상의 반대쪽 일을 하라는 말씀이다. 곧 세상이 어리석게 보는 ‘대속(代贖)의 십자가(十字架)’다.

 

(1코린1,18.24) 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24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하느님의 힘, 지혜인 십자가의 복음을 주는 일은 보이지 않는다. 숨겨진(숨은)일이 된다.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그러면 숨은 일(크르토푸스-내적인 것)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숨겨진 일,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기도(祈禱) 또한 마찬가지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골방, 제사의 제물을 보관하는 제대(祭臺)옆에 붙은 방이다. 제사 제물은 희생 양(羊)이신, ‘속죄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模型)한다.

그러니까 보이는 제물 안에 보이지 않는 제물이신 우리 죄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사를 완성하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또 그 그리스도를 주는 올바른 자선을 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산상수훈(山上垂訓)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살인하지 마라”가 ‘희생제사 드리지 마라’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성부 하느님과 관계를 잘못 맺게 되면 희생(犧牲)제사를 자꾸 드리게 되고, 그러면 성자 하느님과 관계를 잘못 맺게 되어, 남편이신 그분과 분리되어 간음(姦淫)하게 되는 것이며, 성령 하느님과도 관계를 잘못 맺게 되어 진리(眞理)가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올바로 정립(正立)될 때, 하느님의 완전함, 사랑의 상태가 되는 것이며, 그 완전한 사랑을 전해주는 것이 올바른 자선(慈善)이다.

 

(요한4,13-14)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옛 계약십계명)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새 계약의 말씀)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성경(聖經)문자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계약, ‘모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율법그 옛 계약에서 건저 내시어 새 계약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사람이 되게 하셨으니그 생명의 말씀을 받아 이웃에게 주는 올바른 자선으로 나와 이웃을 살리는 신앙을 살도록 마음을 열어주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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