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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복음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주님의 기도 (마태6,7-15)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6|조회수1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18일 목요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주님의 기도 (마태6,7-15)

 

 

 

1독서<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집회48,1-14)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엘리야여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화답송>시편97,1-2.3-4.5-6.7(12◎ 의인들아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 주님은 임금이시다땅은 즐거워하고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흰 구름 먹구름 그분을 둘러싸고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불길이 그분을 앞서 가며둘레의 적들을 사르는구나그분의 번개 누리를 비추니땅이 보고 무서워 떠는구나

○ 주님 앞에서 산들이 밀초처럼 녹아내리네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우상을 섬기는 자들헛것으로 으쓱대는 자들 모두 부끄러워하리라모든 신들이 그분께 경배드리네

 

복음<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6,7-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제1독서 (집회48,1-14)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서는데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당신은 불소용돌이 속에서 불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3. 9~10)

 

집회서는 유다 지혜 문학의 총결산이라 한다이 책의 원문은 히브리어로 쓰였는데(BC180년경), 원 저자의 손자가 이를 그리스어로 옮겼고(BC130년경), 이 그리스어 본문이 현존하고 있다그리스어 본문의 필사본들은 대부분 이 책의 제목을'시라의 아들 예수의 지혜'라 한다

불가타(Vulgata: 라틴어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스티쿠스' (Ecclesiasticus)라고 하였고전통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는 '리베르 에클레시아스티쿠스'(Liber Ecclesiasticus; 교회의 책)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치프리아누스 시대 이후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새로 입교할 사람들을 교육할 때에이 책의 가르침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우리말 '집회서(集會書)'도 이 불가타와 서방 교회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오늘 독서 말씀은 하느님의 영광과 조상들의 올바른 삶을 기리는 내용중에 일부이다저자는 집회서 44~50장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 인물들을 하나하나 나열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임금현인예언자사제들이다집회서 저자는 사제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특히 아론과 대사제 오니아스의 아들 시몬에 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역사의 인물들에 대한 평은 찬미와 권고와 기도로 마무리한다(50,22~24).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48,1)

'엘리야'란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다'는 뜻이다. '','횃불'의 표상은 여기서는 '사랑' '열정혹은 '심판'의 의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 들였고'(48,27)란 말씀은 48장 3절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와 연결이 되어 있다가뭄 예언과 관련된 말씀 (1열왕17,1; 18,1~3; 1열왕 18,45참조)이다.

 

하늘 문을 닫고 여는 하늘의 신풍요 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왕과 이스라엘의 변절된 신앙에 대한 질타로 가뭄이 예언되고그 결과로 기근(굶주림)을 체험하는 것이다즉 가뭄을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진짜 하늘(햇빛과 비)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또한 집회서 48장 2()의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는 것은 카르멜산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키손천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1열왕18,40). 그리고 집회서 48장 3절에 '세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는 말씀이 나온다

것은 열왕기 하권 1장에 아하즈야왕이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다친 후하느님을 찾지 않고 사자들을 보내어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가서 병의 회복에 관한 문의를 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한 벌(심판)의 이야기이다.

 

두 차례나 엘리야가 예언한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인 대장과 부하 쉰 명을 삼켜버린 사건을 말한다(2열왕1,10.12). 이 두 번과 450명 바알 예언자들과의 카르멜산 대결에서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린 사건을 말한다(1열왕18,38).

 그리고 집회서 48장 9절의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라는 말씀은 엘리야와 엘리야 영의 두 몫을 청하는 엘리사의 이별이야기에 나온다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놓고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올라간 사건을 말한다(2열왕2,11).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48,10) 

이 구절은 말라기 3장 1절과 23절에 있는대로죽지 않고 산 채로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예언자가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거라는 말씀이다.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것이다역사적으로 세례자 요한에 이어 예수님이 활약하셨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세례자(=엘리야)가 예수(=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입장을 취했다.

 

'보라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말라3,1)

'보라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려치지 않으리라.'(말라3,23)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몸소 바치셨고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이는 산상 설교의 한가운데에 자리하며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또한 주님의 기도는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바치셨던 이 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나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이시며, ‘하늘에 계신’ 그분께서는 초월적이시고 전지전능하시면서 당신 자녀인 우리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아버지!” 하고 언제든지 부를 수 있습니다.

든든한 아빠, 아버지 하느님께서 굳건히 우리를 받쳐 주고 계시기에 우리는 세상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의 기도 앞부분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드러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기도 뒷부분은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매일의 양식을 청하고, 잘못한 이를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며, 세상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악의 지배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하느님의 손길을 간청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자녀인 우리가 나누는 친밀한 대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일치하여 천천히 그분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시며 우리를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주님의 품 안에 머물러 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용서는 창조하다와 함께 하느님만의 능력을 나타내는 어휘

 

(마태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청하는 것이 빈말 기도라는 말씀이다. 빈말(바톨로게오 - 듣지 못해 말을 못하다) 그 말의 어원은 바트라코스(개구리)다. 그러니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모르는 그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같은 자신의 뜻, 소원을 위해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 하는 것, 곧 개구리처럼 같은 소리로 묵주를 돌린다면 빈말기도가 된다.

 

그러면 빈밀 기도가 아닌 것은, 뒤 31절에서~

(마태6,31.33) 31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하늘의 의로움을 찾기 위한 것이 기도다. 성경 안에, 하느님 말씀 안에 있다. 그 말씀 안에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을 공부하며 찾는 것이 기도다.

 

찾았다~

(로마3,21)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로마5,20-21)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21 이는 죄가 죽음으로 지배한 것처럼, 은총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의로움으로 지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똑같은 소리로 주문 외우듯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아버지의 이름 곧 하느님이 내 아버지이시며 그 아버지만이 그분의 뜻, 사랑만이 거룩하심을 드러내 주시어 참 진리로 깨닫고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하시는 것이다.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하느님의 나라, 그 하느님의 뜻이 땅, 흙인 나에게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그런데 “하늘에서 와 같이”다.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음을 말씀하신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과거 완료형이다.

 

(히브4,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 갑니다. 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로, 안식처로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1,14)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들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루가6,5)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이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일용할 양식(마헬- 내일의 양식) 하느님만이 거룩하신 아버지이시며 그 아버지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져 그 아버지의 나라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하늘, 그 내일의 양식을 청하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 깨달아 잘 먹고, 마시게 해 달라는 구원의 기도라는 말씀이다.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용서(容恕)란 100% 완전하며 영원해야 한다. 인간은 할 수 없는 용서이다. 용서할(내일의)양식, 그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니 하느님의 말씀(새 계명, 새 계약)을 주는 것이 용서이다. 그래서 죄(하마르티아 - 과녁을 벗어나다.)가 아닌 잘못(오펠레테스 - 빚)이다.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것이 죄인데, 그 죄가 아닌 빚진 것을 용서 했듯이 용서해 달라고 청하라는 말씀인데, 무슨 빚일까?

 

(로마1,14-15) 14 나는 그리스인들에게도 비그리스인들에게도, 지혜로운 이들에게도 어리석은 이들에게도 다 *빚을 지고 있습니다. 15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 그 하느님의 말씀,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빚 갚음, 용서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용서 받아 하늘의 의로움으로 거저 구원 받았다면 당연히 기쁜 소식, 그 용서의 복음을 이웃에게 흘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저 받은 복음을 거저 전해주지 않았을 때, ‘잘못한 자, 빚진 자’가 되는 것이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빚을 갚는, 용서를 주는, 용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복음을 전했을 때, ‘잘못한 이를 용서 하였듯이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마태7,7)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 청하여라(아이테오-빚 갚으세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빚을 지셨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당하게 “빚 갚으세요” 하라고 하시는 걸까.

사실 흙, 그 없음의 존재인 우리는 하늘의 생명, 진리, 안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먼저 하늘의 생명, 진리, 안식을 주시겠다고 당신의 손을 들어 맹세로 먼저 약속을 주셨던 것이다.(탈출6,8외 다수)

그 하느님께서 당신의 맹세, 그 약속을 지키셔야 한다. 그 빚을 갚으셔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약속, 그 빚을 다 갚으신 것이다.

 

(마르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빚을 갚으러 오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죽음으로 빚을 갚아주신 그 주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 그리고 이웃에게 그 진리의 주님을 전하는 것, 흘려주는 것이 이웃에게 빚을 갚는, 용서하는 것이고, 용서 받는 길이다.

그런데 그 용서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용서하려 애쓴다면 그 사람의 의로움으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 땅(地獄)에 갇히게 될 뿐이다.(로마10,1- 참조)

그러나 그 하느님의 뜻, 진리의 말씀을 모르는 뱀의 유혹을 먹은 그 선악의 구조의 사람(아담)들은 계속 그 거짓 유혹에 빠져 자기 의로움을 위한 신앙 생활로 불태운다. 그러면 하늘의 용서, 구원, 하늘의 생명을 받지 못하게 되는 그것이 악(惡)이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아멘)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 ‘십자가의 복음을 주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이웃 사랑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복음을 흘려주지 않으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그 큰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 하느님의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님은 나만의 허물을 대속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허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2코린11,2-3) 2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 3 그러나 하와가 뱀의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처럼, 여러분도 생각이 미혹되어 그리스도를 향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 뱀의 간교, 뱀의 선악의 논리를 진리로 삼는 인본주의로 오늘 사도는 그 선악의 법, 계명을 예수님과 관계없는 다른 복음이라 했다. 많은 이들이 뱀의 유혹으로 그 다른 복음에 빠져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신앙으로 악에 빠져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다.

 

☨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의탁합니다. 아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6,7-15)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7~8)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에 해당하는 '메 밧탈로게세테'(me battalogesete; do not keep on babbling; do not use vain repetitions)에서 '빈말을 되풀이하다'로 번역된 '밧탈로게세테'(battalogesete) 원형 '밧톨로게오'(battologeo) '말을 많이 하다', '생각없이 말하다', '쓸데없이 말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기도는 카르멜 산에서 바알의 예언자들이 했던 기도나(1열왕18,26), 에페소에서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외쳐댔던 아르테미스 숭배자의 예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9,34).

 

또한 하느님을 대상으로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기도를 반복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믿는 이들 가운데서도 은총의 지위를 상실하고 죄중에 기도하거나, 하느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기도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이들이 때로는 눈물로 애원하고, 때로는 논리적으로 하느님을 설득하는 조로 미사여구를 늘어 놓으며 장황하게 기도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하느님 앞에 아무 의미없는 말들을 많이 쏟아내는 것에 불과하며, 이런 기도는 하느님 대전에 올라갈 수가 없다.

 

마태오 복음 6장 8절 '알고 계신다'에 해당하는 '오이덴'(oiden; knows)은 완료형이다.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말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동작은 끝났지만,  동작의 결과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이미 기도하는 이의 형편을 과거로부터 알고 계셨음을 보여 준다.

우주의 삼라만상과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께서 직접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당신께서 선택한 자녀의 청원 내용을 모르실 리가 없다.

따라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아니고,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진실한 기도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고 하더라도, 그 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가장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기도'에 대한 해설은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복음 (루카11,1~4)을 참조하십시오~~^*^

  

 

 2026년 06월 18일 목요일

[연중 제11주간 목요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마태오 복음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6,8)라는 선언에 이어 주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그러니 이는 불안이나 부족함을 달래고 채우려는 기도가 아니라아버지의 선하심을 바탕으로 한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6,9)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아버지로서 친밀함을 동시에 붙드는 고백이자 외침입니다.

이러한 친밀함은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저희라는 복수형 표현 안에서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그다음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중심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6,9)는 하느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는 종말론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에제 36,23 참조), 백성이 현재의 삶에서 그분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포함합니다(이사 29,23 참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는 구약의 야훼 통치 사상을 재해석한 종말론적 청원으로이미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뜻이 …… 이루어지게 하소서.”(6,10)는 순종의 윤리로앞선 두 청원을 더욱 간절히 요청하는 백성의 호소가 됩니다.

이어지는 청원들은 인간의 삶을 다룹니다. “일용할 양식”(6,11)은 모호한 내일의 잔치가 아닌오늘 하루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의 용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조건이 됨을 강조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6,13)는 삶의 시련에 주저앉지 않게 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리하여 악에서 구해 달라는 마지막 청원이 이어지지요.

결국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주권과 자비 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조용히 봉헌하며 내맡기는 기도가 됩니다우리 삶이 힘들고 지칠 때주님의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祈禱는 보이지 않는 것을 하는 것.

 

복음(마태6,7-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 우리는 다른 민족 사람들, 곧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구하지는 않나? 그렇다면 ‘빈말, 헛된 기도’를 하는 것이다.

빈말- ‘씨가 없는 말’이다. 곧 하느님의 뜻인 말씀(씨)이 없는 기도(祈禱)다.(마르4,14 참조)

미사(Missa), 또한 마찬가지다. 미사는 성경말씀, 문자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뜻, 곧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를 우리의 죄의 속죄 제물로 내주셔서 구원의 제사를 완성하신 그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는 것이 미사(Missa)다.

세상의 것을 얻어내기 위해 미사를 드린다면 빈말, 헛된 미사를 드리는 것이다. 미사는 오로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감사, 기쁨의 잔치여야 한다.(요한4,23 참조)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 굳이 청(請)할 필요가 없다. 왜? 육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청하지 않아도 주신다. 자식(믿는 이들)에게 세상의 것은 기본으로, 곁들여 주시기 때문이다.(마태6.31-33) 다만 사람의 성향과 기질, 처지에 따라 그 삶의 구원에 필요한 만큼, 알맞게 주신다.

가난(家難)하게도, 부유(富裕)하게도 하실 수 있다. 건강하게도 사도 바오로처럼 고통(苦痛)에 시달리게도 하신다.(2코린12,7-9) 그러니 굳이 청(請)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9ㄱ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 창조주 하느님이 우리(내) 아버지시란다. 땅, 흙의 티끌, 어둠인 내가 하늘의 존재, 빛의 존재로 바뀌는 상황이다. 육(肉)의 아버지는 내 생명, 죄를 책임져 주지 못하신다. 하느님 아버지는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시다. 나의 아픔, 슬픔, 고뇌, 죄악까지, 모두 품어 생명으로 바꾸어 주시는 능력, 자비, 사랑의 아버지시다.

영원한 안식, 영원한 자유,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아버지시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매(枚)를 드시는 정의(正義)의 아버지시다. 하늘로, 빛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다. 그 아버지를 믿고 의탁 할 수 있도록 기도(祈禱) 하라는 것이다.

 

9ㄴ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 거룩하신 아버지시다. ‘거룩’은 아버지께만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이름이 더렵혀 졌다. 아버지의 뜻,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약, 계명의 말씀이 아닌, 육의 만족을 위해 세상의 것을 구하며 살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아버지의 이름이 무시(無視)당함으로 더렵혀 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큰 죄악(罪惡)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다. 그래서 그 죄의 대속으로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다 씻기시는 ‘피의 새 계약’을 세우셨다. 그 새 계약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넣으시어 하느님의 뜻, 계명, 말씀을 ‘다 지킨 자’로,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회복(回復)시키시는 것이다. (예레31,33- 에제36,16-27참조)

 

(에제36,22) 22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이스라엘 집안아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

= 그러니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는 피의 새 계약을 이루어 주소서믿게 하시어 저희를 회복시켜 주소서’ 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그렇게 거룩하신 아버지 안에 우리 또한 거룩이 된다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원리다.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하늘의 거룩, 생명을 위한 새 계약의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뜻이다.(요한1,1-. 9-14 루가17,21 참조)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요한6,29) 그런데 ‘하늘에서와 같이’다.

 

(히브4,3) 3 믿음을 가진 우리는 안식처로 들어갑니다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안식처는 물론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은 세상 창조 때부터 이미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이미 다 이루어져 있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도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다. 곧 이 땅의 나라가 어둠이며, 아버지의 나라가 영원한 빛의 나라임을 깨닫고 갈망(渴望)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사제(司祭)의 가르침> 하느님나라는 인간적인 나약함에서 오는 유혹(誘惑)에 빠지지 않으며 사탄이 지배(支配)하는 악의 나라에서 해방(解放)되어있는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일용할 양식, 아람어로 ‘마헬’, ‘내일의 양식’이다. 내일은 땅의 날, 시간(時間)이 아니다. 앞으로 올 하늘의 날, 시간이다. 곧 하늘의 생명(生命)을 위한 양식을 구(求)하라는 말씀이다.

 

(창세1,29)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 씨, 생명의 양식인 말씀이다. 씨는 썩어지고, 죽어서 ‘살리는 양식’이 된다. 씨(제라)는 아들, 후손(後孫)을 뜻하며 예수님을 가리킨다. 죄인들의 양식으로 먹히러 오신 예수님이시다. 곧 매일(每日) 주시는 복음(福音)과 독서(牘書)의 말씀을 그리스도로, 하늘의 양식으로 먹는 것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마태4,4) 사람의 뜻인 세상의 말을 구원의 양식으로 먹는다면? 당연히 하늘에 들어가지 못한다.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 하느님의 말씀을 먹어야, 곧 깨닫고, 믿어야 모든 용서가 이루어진다. 우리의 용서(容恕), 방법(方法)은 죄의 기질(器質)에 따라 형벌(刑罰)로 갚게 하시는 것이다. 당시(當時)에는 십자가(十字架)에 달아 죽이는 것이었다.(신명21,22-23) 

그렇듯, 십자가의 형벌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죄를 없애는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祈禱)임을 놓치면 안된다. 그러니 ‘당신이 대신 죽게 청(請)하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우리의 친구(親舊)로 죽으시겠다는 것이다.

 

(요한15,13)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사람은세상은 절대 줄 수 없는 용서(容恕).(예레2,22)

 

 

(1베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 보이는 우주(宇宙), 보이는 자연(自然)의 아름다움에 빠져, 또 보이는 사람의 의로움에 만족해 한다면 유혹에 빠지는 것이며, 그것에 머무는 것이 악(惡)이다.

그 보이는 것이 사라질 헛된, 참 이 아님을 깨닫고,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원한 의(義), 생명의 말씀을 먹는 것이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며, 악에서 구해지는 것이다. (로마8,24 히브11,3참조)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 다른 사람의 허물, 잘못이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 용서 받았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용서다. 그것이 곧 새 계약을 믿는 것이며, 그 믿음으로 내 안에서 아버지의 용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제사(祭祀)와 윤리(倫理), 그 옛 계약의 자기 의(義)의 길을 고집하면 용서는 없다.

* 지금까지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빈말기도’가 아닌 ‘올바른 기도’다. 그러나 이 ‘올바른 기도를 하는 이들’이 적다. 믿는다는 많은 이들이 다른 민족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며 올바른 기도라 오해(誤解), 착각(錯覺)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聖靈)께 의탁 해야 한다.

 

(로마8,24-26)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25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26 이와 같이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주님의 기도는, ‘성령을 청하고, 찾고, 두드려서, 받아야’ 할 수 있는 기도다. (루가11,9-14)

 

하느님의 지혜계시의 성령님!

우리의 보호자로 늘 함께 하시며 올바른 기도로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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