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매일복음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마태6,24-34)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6|조회수3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두 주인 (마태6,24-34)

 

 

 

1독서<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2역대24,17-25)

17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18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해가 끝나 갈 무렵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러 올라왔다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들어와 백성 가운데에서 관리들을 모두 죽이고모든 전리품을 다마스쿠스 임금에게 보냈다.

24 아람 군대는 얼마 안 되는 수로 쳐들어왔지만유다 백성이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을 저버렸으므로주님께서는 그토록 많은 군사를 아람 군대의 손에 넘기셨다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25 아람 군대는 요아스에게 심한 상처를 입히고 물러갔다그러자 요아스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을 죽인 일 때문에그의 신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그를 침상에서 살해하였다요아스는 이렇게 죽고 말았다사람들은 그를 다윗 성에 묻기는 하였지만임금들의 무덤에는 묻지 않았다.

 

<화답송>시편89(88),4-5.29-30.31-32.33-34(29◎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라.

○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그의 후손들을 길이길이그의 왕좌를 하늘의 날수만큼 이어 주리라

○ 그 자손들이 내 가르침 저버리고내 법규를 따라 걷지 않는다면내 규범을 더럽히고내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을 벌하리라

○ 나는 그들의 죄악을 채찍으로그들의 잘못을 매로 벌하리라그러나 내 자애도 거두지 않고내 진실도 깨뜨리지 않으리라

 

복음<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마태6,24-3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역대24,17-25)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7-19)

 

여호야다 사제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장례에 대하여 기술한 15-16절에 이어지는 17-19절은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직후의 요아스의 타락과 우상 숭배에 대하여 보도한다. 

요아스왕의 정신적 지주였던 여호야다 사제가 죽자, 요아스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상실한 배처럼 산같은 파도에 흔들리고 풍랑을 따라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일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 주위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하느님 앞에서 일관되게 선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여호야다 사제에게 의존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까닭에 여호야다 사제가 그에게 영향을 미칠 동안에는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지만, 여호야다 사제가 죽고 악한 자의 마수가 그의 목을 잡는 순간부터는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로 돌변하고 말았다.

 

한편 17-22절은 요아스가 하느님의 집을 버리고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의 책망의 말씀을 전하는 즈카르야 예언자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죽인 사실이 기록되어 나온다. 그런데 병행 본문인 열왕기 하권 12장에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 달리 요아스의 추악한 부분까지 낱낱이 기록한 것은 아람 군대에 의한 요아스의 대패(2역대24,23-24절)와 신복들에 대한 암살(2역대24,25-26) 사건이 하느님을 버린 자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후대의 독자들에게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어제가 어떠하였든지간에 오늘 하느님 앞에 바로 서서 올바로 살지 않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대신들'에 해당하는 '사레'(sare)의 원형 '사르'(sar)는 본래 '주권을 소유하다', '통치권을 행사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사라르'(sarar)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기본적으로 '통치자'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무려 369회나 사용된 이 단어는 '장관', '감독', '족장', '귀족', '방백', '신하' 등등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번역에 나타나는 '사르'의 공통점은 한 나라의 왕은 아니지만, 왕에 버금가는 권한을 가지고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상당한 권력자라는 사실이다.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에게 찾아온 유다의 '사르'들은 당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로서, 여호야다 사제의 생존시에는 저신들의 목소리를 죽이고 있다가, 여호야다 사제 사후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로 번역된 '알레헴'(allehem)은 '그들에게' 또는 '그들을 향하여' 라는 의미인데, 왕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부추긴 인물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었던 것이다. 또한 '말을 듣게 되었다' 로 번역된 '샤마으'(shamah)는 주의를 기울여 듣고 따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요아스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을 아무런 비판 의식도 없이 듣고 따름으로써, 남부 유다 왕국 전체를 타락의 길로 몰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주체가 요아스 왕을 비롯한 남부 유다 백성 전체임을 보여준다.

특히 왕으로 즉위하여 하느님의 집을 수리하는 데 열정을 바쳤던 요아스는 이제 스스로 그 성전을 버리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 전체도 하느님의 집을 버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선민 유다 백성들이 하느님을 몰아낸 그 자리에 우상을 얹혀 섬기는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요아스 왕 당시 하느님의 진노가 요아스 왕 한 사람의 죄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와 그로인해 우상숭배에 빠진 남부 유다 모든 백성들의 죄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진노'에 해당하는 '케체프'(qetseph)는 구약 성경에서 범죄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인다.(민수17,11 ;1역대27,24)

24절에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 는 진술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하느님의 진노는 아람 군대의 침략으로 가시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하느님의 진노는 요아스와 백성들이 하느님의 집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언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경계가 충분히 행해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19절,33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언자들'으로  번역된 '네비임'(nebiim)은 '나비'(nabi)의 복수형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단 한 명의 예언자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여러명의 예언자들을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보내어진 예언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20-22절에 기록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였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 주는데, 첫째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보내실 때마다 요아스와 백성들이 듣지 않는 강퍅함을 보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요아스와 백성들의 거듭되는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상당한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돌이키려고 부단히 애쓰셨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한 여러가지의 경계를 통하여,그들이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주시는 자비와 인내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들이 '증언하였지만'으로 번역된 '와이야이두'(waiyaidu)의 원형 '우드'(wud)는 본래 '반복하다', '거듭 행하다' 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확고한 진리를 반복적으로 진술하여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 진리를 확실히 알게 할 경우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신명8,19 ;1열왕21,10)

그러니까 여러 명의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말을 전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동일한 경고를 발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와 백성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해당하는 '우일로 헤에지누'(welo heezinu)는 '듣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티다' 라는 뉘앙스를 나타낸다. 예언자들의 증거와 경고가 거듭되는 동안, 요아스와 백성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회개하라는 세미한 음성이 들렸지만,  이미 어둠의 마수에 사로잡힌 그들은 세미한 음성까지도 억누르면서 예언자들을 배척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악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자세이다.

 

 

 

 

 

 

[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상이 결국 우리를 다스리고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며 귓가에 맴도는 주님의 말씀은 “걱정하지 마라.”입니다.

이 말씀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자녀들을 잘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곧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분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당신 자녀들의 어려움과 고통, 눈물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몸소 마련해 주시며 우리를 보살펴 주십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 우리 아버지에 대한 굳은 믿음입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소중한 아드님마저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 환호송처럼,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유한 자녀들이고, 하느님께서는 ‘임마누엘 주님’으로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예수님을 더욱 닮아 가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이며 주님의 종 다윗에게 전해진 시편의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시편 89[88],29)라는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의 귀한 자녀인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무거운 수고와 힘겨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은 내일이 걱정하신다.

(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하느님을 사랑하면 재물을 사랑할 수 없고 재물을 사랑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갈라5,17)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 재물, 돈(맘몬-맘모나스) 신의 이름이다. 곧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축약해 놓은 것이 돈, 재물, 육의 실체이다. 하느님을 인간의 뜻, 욕망을 위해 도와주시는 신으로 섬기고 생각하는 것이 하느님을 바알(세상 신)로 모독, 모욕하는 것이다.

 

(열왕상18,21)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나 백성은 엘리야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호세2,18)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 영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을 인간의 뜻을 들어주는 '바알'로 그 양다리로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보이는 땅의 것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신앙이라는 말씀이다.

 

26ㄱ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 성한 눈, 진리의 눈으로 보라는 말씀이다. 씨. 말씀을 몰라 말씀을 진리로 마음(곳간)에 간직할 수 없는, 간직하지 않는, 간직하지 못하게 하는 존재가 새(사탄)이다.(마르4,3.14-15참조)

 

26ㄴ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말씀을 하늘의 생명, 빛, 진리로 거저 주신 그 은총의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진짜 영화로운 옷, 곧 하늘나라의 혼인 예복, 곧 구원의 옷은 하느님께서 예비 하신 그리스도를 진리로 입혀주심을 믿는 것이다.(창세3,21 에페1,4참조) 하느님의 구원의 새 계약인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을 구원의 진리로 믿는 그것이 하늘의 의로움을 입는, 구원의 옷을 입는 것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십자가의 예수님을 하늘의 의로움, 구원자, 그리스도로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다른 민족이 애써 찾는, 곧 육에 필요한 그 곁들여 받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이미 주셨음을 앞에서 말씀하셨다.

 

(마태5,45)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 그러니 하늘의 진리, 의로움이신 그리스도를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내일 걱정은 내일이, 곧 내일(하늘)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맡기라는 말씀인데,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마태6,11)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 일용 할 양식이 아람어로 마헬- 내일의 양식, 곧 말씀의 구원, 그 내일의 양식임을 배웠다. 그 말씀을 먹고 의탁 하라, 믿어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본 6장의 시작 말씀이, 말씀을 땅(육)의 것을 위한 땅의 말로 받아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구원)을 받지 못한다.”(1절)로 시작하셨던 것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오늘의 목숨을 연장 시키는 노후 준비를 하지만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준비하신 그 내일, 사후 준비가 이미 된 사람이다.

 

독서(2코린12,2.4.10) 2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세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진 일이 있습니다.

= 셋째 하늘- 내일의 하늘, 나라다.

낙원까지 들어 올려진 그는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는데그 말씀은 어떠한 인간도 누설해서는 안 되는 것(말씀)이었습니다.

= 인간의 뜻, 지혜로 누설할 수, 깨달을 수 없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으로 깨달으면(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신다) 그 말씀에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1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진리로 깨달았을 때, 그 모든 시련 들이 땅의 것을 부인(否認)시켜 하늘을 향하게 하여 내일의 구원으로 이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야고1,12외 다수) 땅의 것을 부인할 때, 약해 졌을 때, 말씀이 강하게 일하신다. (에페3,20 필립2,13테살1서2,13참조) 그러니 말씀을 사람의 지혜, 생각, 계명 으로 들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신 것이다.

 

(티토3,5-7)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6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7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영원한 보호자 성령님! 내 안에 늘 함께 하시며 가르쳐 주시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복음(마태6,24~3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24)

 

마태오 복음 6장 24절은 하늘 나라의 시민된 자가 재물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를 기록한 마태오 복음 6장 19~24절의 결론에 해당한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재물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길 것인지 양자택일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여기서 '섬기다'에 해당하는 '둘류에인'(douleuein; serve)의 기본형인 '둘류오'(douleuo)는 '종', '노예'라는 뜻을 지닌 '둘로스'(doulos)와 같은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로서, '종으로서 예속되다', '노예처럼 섬기다'는 뜻을 갖는다.

즉 노예는 그 목숨이 주인에게 예속되어 있으며, 주인의 명령에 대해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당시 상황을 염두에 볼 때, 이것은 종이 목숨을 바쳐 섬길 대상은 절대로 하나 이상이 될 수가 없다는 뜻이다.

 

한편, '재물'에 해당하는 '마모나'(mamona; mammon; money)의 원형 '맘모나스'(mammonas)는 히브리어로 '믿다', '신뢰하다'라는 뜻을 지닌 '아멘'(amen)과 같은 어근을 갖는 아람어에서 유래하여 '신뢰하는 자'라는 뜻을 갖는다.

 

고대로부터 재물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며 집요하게 추구하여 왔던 것 중에 하나이므로, '맘모나스'(mammonas)는 '재물'과 동의어으로 쓰였다.

영어의 '재물'을 뜻하는 '맘몬'(mammon)이 이 단어에서 나왔다.  

여기서는 이 '재물'이라는 단어를 의인화시켜 섬김의 대상으로 삼아 '재물'이 충분히 사람들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묘사하고 있다.

 

  

 

 

[연중 제11주간 토요일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섭리에 대하여 분명하게 가르치십니다.

섭리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지혜와 힘으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과 사건을 믿는 이의 구원을 위하여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힘이 우리를 이끌고 있으니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섭리는 진지한 삶의 태도를 먼저 내세웁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하여 이해가 깊은 이들은 개인의 내적인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운명의 흐름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섭리는 믿음을 요구합니다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하느님 나라와 거룩한 정의를 먼저 바라는 믿음으로써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들이 질서를 찾게 됩니다.

사물인간상황운명과 같은 주변 세계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개인의 생각과 방식에 따라 형태를 갖춥니다.

믿음으로 질서 잡힌 삶을 살아가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8)라는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을 얻게 됩니다곧 믿는 이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구원에 도움이 됩니다.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까지도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섭리에 대한 가르침은 결코 가볍지 않은 요구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추구를 첫자리에 놓는 믿음입니다그러나 이 요구는 우리에게 위대한 약속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가진 이에게 구원으로 이끌리는 삶을 마련하여 주실 것입니다.(로마노 과르디니예비 기도 학교, 154-158면 참조).

 

(최정훈 바오로 신부)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재물(財物)은 육()의 힘이 될 수 있는 세상의 스팩(SPAC)’들이다.

 

복음(마태6,24-34)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 재물(財物)은 육(肉)의 힘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사람의 명예, 의, 지혜, 지위 등, ‘세상의 스팩(SPAC)’들이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 사람(아담)이 하느님과 동행했을 때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시며 돌봐 주셨기 때문이다. (창세2,325)

 그러나 뱀의 유혹으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에덴 나무(말씀)으 열매를 선악(善惡)으로 따 먹은 후에 걱정하게 된 것이다.(창세3,7-10)

하느님의 말씀, 뜻을 떠난 아담들은 이제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곧 세상의 힘을 원하는 신앙을 산다면, 하느님을 떠난 걱정의 신앙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요한6,26-27)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호라우-깨달음으로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 예수님이 영원한 하늘의 양식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27,3참조) *띵, 사람의 모든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다.(호폴로스 아폴리옴- 멸망, 파괴하게 하다)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마음)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 새들에게는 씨를 주지 않으셨다. 짐승의 먹이, 풀을 먹이신 것이다. 사람은 귀(貴)하기에 씨(말씀)를 주셨다.

 

(창세1,29-30) 2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30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그대로 되었다.

= 씨는 하늘의 양식을, 풀은 땅의 양식을 모형(模型)한다. 씨는 영(靈)의 양식인 말씀이며, 풀은 육(肉)의 양식인 사람의 말이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을(신명8,3) 생명의 양식으로 마음 곳간에 담으면 되는데, 말씀을 선악의 사람의 말로 먹었기에 아담처럼 ‘부끄럽다’ 스스로 판단해, ‘걱정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 너희 ‘자신의 본질(本質)을 알아라.’ 하신다. 너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흙의 티끌, 그 ‘없음의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 하느님의 뜻을 떠난, 솔로몬이 누린 인간의 온갖 영화(榮華)가 짐승들의 옷보다 못하다는 말씀이다.

 

30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하느님이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다.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다.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 죄인(罪人), 아담(사람)에게 무엇을 입혀 주었는지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죄인(罪人), 아담(사람)을 되살리시기 위해, 흠 없는 깨끗한 어린양을 대신 죽이셔서, 손수 만들어 입히신 가죽 옷, 구원(救援)의 옷이다.

 

(요한1,29)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려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이시다. ‘씨, 제라’는 후손(後孫), 아들이라 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시다.(요한1,14)

그러니까 보이는 예수님 안에 보이지 않는 구원의 말씀, ‘죄(罪)를 덮어주시는 진리(眞理)의 옷’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먹고, 입는 것이다.(로마13,14)

그런데 아담처럼 썩어 없어질 땅의 양식을 위해 헛된 수고(愁苦), 열심, 자기 의(義)로 걱정을 하며 헛된 신앙을 살고 있음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말씀씨 없는)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하늘의 너희 아버지(말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 하느님의 ‘의(義)의 통치(統治)로 돌아가라,’ 들어가라는 말씀이다. 곧 우리의 의(義), 보물이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골로2,3 로마3,24-25 참조)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 내일은 ‘피조물의 시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늘의 시간이다. 곧 하늘의 일은 하늘이 한다는 것이다.(이사46,4) 사람의 수고(愁苦)와 열심(熱心), 의로움으로 가는 하늘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에페2,8-9 로마10,1-3 참조)

 

(시편103,8-17) 8 주님(야훼)께서는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신다. 9 끝까지 따지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며 10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 11 오히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그분의 자애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굳세다.

12 해 뜨는 데가 해 지는 데서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우리에게서 멀리하신다. 13 아버지가 자식들을 가엾이 여기듯 주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니 14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15 사람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 들의 꽃처럼 피어나지만 16 바람이 그를 스치면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17 그러나 주님의 자애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 위에 머무르고 당신의 의로움은 대대에 이르리라, (~아멘)

 

보호자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보물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심을우리 안에서 늘 동행하심을 잊지 않게 하소서그리하여 말씀 안에서 근심걱정을 하지 않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소서진리로 기쁨의 삶을 살게 하소서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2026년 06월 20일 토요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목숨을 …… 걱정하지 마라”(마태 6,25).

예수님께서는 권위 있는 어조로 인간의 가장 깊은 불안을 들추어내십니다.

목숨은 먹고 살아야 하는 구체적 생존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이는 단순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라불안으로 삶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삶에 대한 염려는 삶을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축소시켜 버립니다.

새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삶의 자세를 보여 줍니다.

새는 씨를 뿌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하늘의 아버지께서 먹이시지요.

여기서 초점은 노동을 부정하며 요행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먹이고 입히는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6,27)라고 물으십니다.

불안과 걱정은 우리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 삶을 소진할 뿐입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참된 것바로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6,33)을 찾아야 합니다.

그분의 의로움은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이 정확히 알려 줍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7,12).

신앙은 주어지는 오늘을 건네받는 태도입니다오늘우리 삶은 나의 노력이나 걱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누군가가 먹고 입는 문제로 힘들어한다면그것은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의로움을 우리 서로가 챙기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어지는 오늘을 걱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아야겠습니다.

적어도 먹고 입는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게 서로 챙기면 좋겠습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걱정 근심을 주님께 맡겨 드려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 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6,25) 

돈과 재물은 인간의 삶을 유지하고 향상 시키는데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인가를 성취하게 해주고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큰 힘을 지니고 있다 보니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 매력에 이끌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돈과 재물을 중요시 하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네 삶에서 돈과 재물을 대하는 태도는 여러 가지인데, 그것을 보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아 가는지 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돈과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중요시 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과 재물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사는 사람도 있지요. 

돈과 재물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 여기며 사는 사람은 일견 그것을 하느님보다 더 중시하는 사람보다 나은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양다리를 걸치며 사는 사람이기에 역시 하느님을 도구화 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느님을 최고의 가치요 삶의 중심으로 모시지 않는 삶의 태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돈과 재물을 섬기며 사는 사람은 늘 근심걱정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한다 해도 그것으로 소중한 목숨을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있다가도 없어질 재물은 늘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인간에게 불안을 안겨줄 뿐입니다. 변하고 흔들리는 가치를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며 붙들고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얼마나 불쌍한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재물에 대한 애착과 숭배는 우상숭배이며 돈은 우상화하면 하느님을 섬길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렇게 살면서 걱정하여도 자기 수명을 조금도 늘릴 수 없습니다(6,27).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늘의 새들도 거저 먹여주시거늘 새들보다 더 귀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삶에서 중요한 것은 굳건한 믿음이요,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의탁의 자세입니다. 삶이 고통스럽고 인간관계가 꼬이고 경제적으로 궁핍함을 느낄 때 우리는 인간적인 해결책과 재물의 힘에 기대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6,30-34) 

주님! 저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외롭고 힘들어도 오직 당신만을 갈망하게 하시고 당신만으로 만족하는 지혜로운 제가 되도록 굳건한 믿음을 주소서. 당신만이 참 행복의 원천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온전히 의탁하라

 

일상을 살아가면서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남모르는 걱정을 안고 살아갑니다. 사실 모두가 근심걱정을 하지만 결정적으로 무엇을 걱정하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것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은 그만둬야 하겠습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랍니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라고 합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시편저자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시편37,4-5).하였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진 사람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이는 주님께 의탁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여 근심을 끌어안고 삽니다. 그러나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입니다. 믿고 맡기며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는 주님의 처분을 기다릴 뿐입니다.

 

루카복음에 보면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주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10,41-42).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듣는 마리아의 위치를 확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안에 머물면 쓸데없는 일로 바쁘지 않을 것이요, 또 괜한 걱정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음식과 몸을 보호하기위한 의복의 걱정에 앞서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안에 있고, 주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공중의 새나 들판의 꽃들조차도 하느님의 안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재로 ‘만물의 영장’입니다. 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우주 만물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돌보심을 믿고 신뢰하며 모든 근심걱정을 송두리째 맡겨야 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이러한 물음은 인간적인 걱정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노력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여정에 우선적인 선택이 주님이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의탁하고 섭리에 맡기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 맡기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1베드5,7).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의 영원한 생명에의 약속에로 이끌고 계시다는 확신 속에 뽑아주신 좋으신 분께 대한 응답으로 오늘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최선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영원한 새 삶이 시작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반영억라파엘신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