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6월 23일 화요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 (마태7,6.12-14)
제1독서<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2열왕19,9ㄴ-11.14-21.31-35ㄱ.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화답송>시편48,2-3ㄱㄴ.3ㄷㄹ-4.10-11(◎9ㅁ) ◎ 하느님이 그 도성을 영원히 굳히셨네.
○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우리 하느님의 도성,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아름답게 솟아오른 그 산은, 온 누리의 기쁨이라네. ◎
○ 북녘 끝 시온산은, 위대한 임금의 도읍이라네. 하느님은 그 궁궐 안에 계시며, 당신을 요새로 드러내신다. ◎
○ 하느님, 저희가 당신의 성전에서, 당신의 자애를 생각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을 찬양하는 소리, 당신 이름처럼, 땅끝까지 울려 퍼지나이다. 당신 오른손에는 의로움이 넘치나이다. ◎
복음<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7,6.12-1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연중 제12주간 화요일독서 (2열왕19,9ㄴ-11.14-21.31-35ㄱ.36)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1)
열왕기 하권 19장 30절에 '유다 집안의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 라고 나오는데, 남부 유다가 앗시리아의 침략으로부터 해방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번영된 미래가 있으리라는 보장을 하느님이 하신다.
이러한 남부 유다의 회복을 대구법을 사용하여 19장 31절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남은 자'는 '생존자'와, '예루살렘'은 '시온산'과 각각 대구를 이루고 있다. 열왕기 하권 18장 13-16절과 관련된 앗시리아의 비문 기록에 의하면, 산헤립은 남부 유다 1차 침입시 약 20만명을 포로로 잡아 갔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2차 원정에서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희생되고 포로로 잡혀갔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남은 자'와 '생존자'는 이러한 난리를 피해 예루살렘성 안과 시온산으로 피한 자를 지칭한다. 이들이 예루살렘과 시온산에서 나온다는 것은 앗시리아가 물러갈 것을 감안한 것으로서, 궁극적으로 그들이 더 이상 은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각자의 처소로 돌아가게 된 상황을 나타내 준다.
한편 '남은 자'에 해당하는 '셰예리트'(sheerith ; a remant)는 30절에서 '남은 자'로 번역된 '한니쉬아라'(hanishiara)와 마찬가지로, 그 어근은 '남다'란 뜻의 '샤아르'(shaar)이다.
이것은 모두 일차적으로 북부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상황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남부 유다 백성을 가리킨다. 그러나 신학적 의미에서 '남은 자'는 어둡고 망가진 세상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하느님께 순종하여 그를 떠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남은 자'에 대한 결정적인 신학적 계시가 나오는 성경 말씀은 로마서 9장 27-29절이다. 여기서 바오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같다 하여도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선언하고 있다.
즉 '남은 자' 사상은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서, 이것은 현실의 암울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베풀기로 정하신 은혜에 기초하여,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구원의 진정한 수혜자들을 의미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문은 일차적으로 앗시리아가 물러감으로 인하여 남부 유다 백성들이 구원을 얻게 되는 상황을 예언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죄와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신약의 백성들까지 염두에 둔 예언이라 할 수 있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본문은 '남은 자'와 '생존자'가 난리를 피해 숨어 있다가, 앗시리아가 퇴각하자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구원 사건이 전적으로 '주님의 열정'에 근거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주님의 열정'에 해당하는 '키느아트 예흐와'(qinath yehah)란 표현이 이사야 예언서 9장 6절과 37장 32절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선택하여 세운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의미한다.
여기서 '열정'으로 번역된 '키느아트'의 원형 '키느아'(qinah ; zeal)는 본래 '시기'나 '질투'를 의미하는데(잠언6,34 ; 에제8,3 ; 즈카1,14),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셔서 빼앗기지 않으시려는 강한 시기심 내지는 질투심을 갖고 계심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주님의 열정'은 당신 백성들을 향하신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의 역설적 표현이다.
그리고 '주님의 열정' 앞에 붙은 '만군의'로 번역된 '체바오트'(tsebaoth)는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낸다. 하느님의 약속에 더하여 이러한 표현을 덧붙이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즉 택하신 백성들을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는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전능하심(Almighty)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여기서 ‘거룩한 것’은 하느님께 바쳐진 제물을 떠올리게 하며, 이 구절을 산상 설교(마태 5―7장 참조)에 견주어 보면 ‘거룩한 것’과 ‘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 곧 하늘나라의 복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이방인을 ‘개’에 빗대기도 하였지만, 문맥상 여기서 ‘개와 돼지’는 예수님께서 전해 주신 복음의 진리를 완강히 거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이어지는 구절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겪었던 모진 박해와 시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황금률’이라 불리는, 율법과 예언서, 다시 말해서 구약 성경의 정신을 일깨워 주십니다.
이는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사랑의 이중 계명(마태 22,34-40 참조)과 더불어 예수님 가르침의 요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과 예언서를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의 끝자락에 이처럼 ‘황금률’을 당신 가르침의 결론으로 강조하십니다.
한편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문이 바로 우리를 생명으로 이끄는 문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하늘 나라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예수님을 따라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이는,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이 가르침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천주의 성령님 이재와 저희 죽을 때 이 죄인을 위해 기도해 주소서
(마태 7,6-7.11-14)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영원히 변치 않는 소금, 그 소금 계약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는 것.(탈출30,35 민수18,19참조)
그리고 계약(스타오로스)은 기둥이라는 뜻으로 십자나무를 뜻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의 더러운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그 피로 다 씻으시어 양심까지 깨끗하게, 거룩하게 하시는 계약의 말씀인 것이지요(히브10,10.22참조)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참 진리임을 성령께서 증언하십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 그 소중한 성령의 법, 진주를 개, 돼지. 하느님의 적대자들의 것, 곧 그릇된 세상의 법으로 주지 말라시는 말씀입니다.(요한16,8참조)
그래서~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좋은 성령으로-루가11,3)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이 ‘그러므로’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무시해 버리면 인간의 계명으로, 사람의 이야기로 듣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계명(진리)을 거스르는, 곧 사람들에게 하늘의 생명, 구원을 주지 못하는 그 잘못(죄)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를 빼서도, 무시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접속사는 앞의 원인과 뒤에 결과를 연결 시키는 것이니 산상수훈의 결론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앞 5장 17절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하신 그 결론이 12절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신 것’인데 5장 22절에서 우리의 죄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그 형제이신 예수님께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이 살인인 것이고,~
그 구원의 진리(예수님)와 하나 되지 못하고 육의 욕망을 위한 그 음욕의 마음으로 따르는 것이 간음이다. 그러니 십자가 그 진리를 올바로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리로 구원을 주는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를 하라시며 올바른 하느님의 듯, 하늘의 양식을 구하는 주님의 기도를 주신 후~그 올바른 양식(말씀)을 먹는 올바른 단식으로, 올바른 눈과 재물로 걱정하지 마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이도 심판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신 것이죠.
(로마8,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 이 結論, 구원의 말씀을 믿음으로 완성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본문12절이 ‘그러므로’ 시작되는 것인데~‘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그 남, 곧 십자가의 길을 우리의 구원의 진리로 주신 성령께,
너희도 그대로 그 성령께 ‘믿음과 감사로 보답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10,4)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 인간의 계명으로, 그 인간의 의로움으로 이웃에게 잘해 주는 것, 그것은 인간에 도리이지 구원의 진리가 아닙니다. 자신의 뜻, 원함을 받기 위해 남에게 잘해 주는 것, 그것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도 아닙니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땅의 인간들의 법, 계명으로 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는 칭찬, 자기 의로움의 길은 옳게 보이지만,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는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이니 가지 말라시는 것이지요(루가16,15 참조)
그러면 생명을 주는 비좁은 길은? 당연히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는, 그래서 가지 않는, 믿지 않는 십자가의 의로움, 그 복음의 길인 것입니다.
(1코린1,18) 멸망할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그런데 왜 어리석음으로 보이는가~
(요한12,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하느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좋아하는, 그 죽음을 부르는 진짜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천주의 성령님 이재와 저희 죽을 때 이 죄인을 위해 기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로마8,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아멘.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복음(마태7,6.12~14)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6)
마태오 복음 7장 1~4절은 타인에 대한 무책임한 심판(비판)을 금하고, 마태오 복음 7장 5절은 자신의 과오를 먼저 해결한 후에 사랑을 가지고 타인의 결점을 지적하여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태오 복음 7장 6절은 비록 상대방에 대한 무책임한 비판을 금한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인 죄악에 대해서까지 묵인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죄와 구별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개들'에 해당하는 '퀴신'(kysin; dogs)의 원형인 '개'로 번역된 '퀴온'(kyon)은 팔레스티나에서 야생 상태로 생활하는 사납고 더러운 짐승이다.
성경에서는 구원의 진리를 모르는 이교도들이나(마태15,26; '강아지들') 신도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유다인들(필리3,2; '개들') 또는 거짓 예언자들을 (묵시22,15; '개들') 개에 비유하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 7장 6절에서도 타락하여 복음을 훼방하며 진리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시 완고하며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다고 본다.
개들이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토 하기온'(to hagion; what is sacred; what is holy)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같이, 이들 역시 복음의 가치를 몰라서 진리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훼손하려 들 것이므로, 이들에게는 복음조차 전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는 문장도 앞의 문장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반복되는데, 그 의미를 한층 더 강조하는 문장의 기교가 사용되었다.
'너희의 진주'에 해당하는 '투스 마르가리타스 휘몬'(tous margaritas hymon; your pears)는 '거룩한 것'에 해당하는 '토 하기온'(to hagion; what is sacred)과 같은 의미이며, '돼지들'에 해당하는 '토 코이론'(to choiron; pigs)은 '개들'에 해당하는 '토이스 퀴신'(tois kysin; dogs)과 같은 의미이다.
돼지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불결하고 부정한 동물로 취급되어 식용이나 사육이 금지되었기에, 여기서는 야생 상태의 맷돼지로 볼 수 있다.
팔레스티나의 야생 맷돼지들은 매우 사나워서 사람들을 어금니로 받고, 발로 짓밟아 해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따라서 마태오 복음 7장 6절은 진주와도 같은 고귀한 천국의 복음을 그 가치도 모르는 영적으로 무지하고 사나운 자들에게 전하면, 돼지와 같은 자들은 복음을 팽개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전하는 자들까지 해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진리의 가치를 모르는 타락한 자들에게는 아예 복음을 전하지도 말라는 명령을 거듭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26년 06월 23일 화요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은 산상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전체를 거꾸로 비추는 거울의 구실을 합니다. “그러므로”라는 짧은 접속사는 앞서 말한 모든 요구, 분노와 보복의 중단, 원수사랑 등을 하나의 문장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오늘 복음은 이 문장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7,12)이라고 선언하는데, 이는 그 정신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이미 있는 도덕적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면서, 그 가르침을 다른 이들을 향한 무한한 관계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입니다.
황금률은 인류의 여러 전통 속에서 되풀이되어 온 윤리적 경구입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사가에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간 사이의 단순한 계산을 넘어섭니다.
이 말은 ‘다른 이의 자리에 서 보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의 방식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이지요.
사실 서로를 향한 윤리는 언제나 관점의 문제를 불러옵니다.
황금률은 나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자리를 떠나, 다른 이의 상처가 보이는 자리로 옮겨 가 보라고 재촉합니다.
그 이동이야말로 산상 설교가 요구하는 핵심이자 실체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다른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요.
황금률이 말하는 바는 다른 이를 나와 같다고 단순화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다름을 인정하며, 그 다름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이라는 초대입니다.
그래서 이 규범은 자기 수양의 기술이 아니라,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 때로는 행복과 기쁨 앞에 멈추어 서서 그의 삶에 머물러 보는 열린 태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의 황금률은 인간적 격언이라기보다, 다른 이를 통하여 끊임없이 나아가는 초월의 자리입니다.
그 초월의 끝에는 하느님께서 꼭 함께하실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진리(길)는 하나다. 하늘의 길을 땅의 길로 착하지 말자.
(마태7,6-14)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 거룩하고 진주(보석) 같은 하느님의 말씀을 짐승, 다른 민족들에게 주지 말라는 말씀인가? 그러면 전교는 누구에게 해야 하나. 그런 말씀은 아닐 것이다. 먼저 앞5절에서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성경은 모든 인간이 그 욕망과 선악의 눈으로 살아가는 짐승이라 하신다.
(코헬3,18) 18 나는 인간의 아들들에 관하여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어 그들 자신이 다만 *짐승일 뿐임을 깨닫게 하신다고.
= 그러나 자신이 짐승일 뿐임을 알고 그 짐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청했을 때,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씀도 주셨다.
(마르7,26-28)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마태15,28)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 자신이 개, 돼지 짐승인 뿐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이 된 여자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는 말씀이시다. 본문에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는 말씀은 ‘거룩한 진주를 짐승의 것으로, 그들의 말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의 의로움, 욕망을 세워주는 선악의 말, 그 계명으로 주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구원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그 자기부인으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기부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안 되기에 거룩하고 진주인 좋은 것, 성령을 청하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찰하여 그분의 올바른 가르침, 깨달음으로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힘 이신 성령이시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생명의 말씀)을 청하는데 돌(선악의 법)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거짓말)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 좋은 것,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 성령이시다.(루가11,13)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 “그러므로”가 아주 중요하다.
앞 (마태5,17)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5장 17절과 본문 7장 12절 사이의 모든 계명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다 완성혔음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대로 ‘예수님께 해 드려야 한다,’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며 황금율인 것이다.
예수님이 내 소원을 들어 주시는 구원자가 아닌, 영의 구원을 위한 길, 진리로 믿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받는 구원임을 믿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의(義), 열심을 길로 믿고 의지했던 그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만을 길, 진리로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께서 바라시는 대로 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을 문자 그대로 사람의 지혜로 보고, 우리의 열심한 윤리의 삶으로, 남에게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실천하는 것이 신앙(황금율)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誤算)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도 다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사람의 도리(道理)이지 신앙(信仰)이 아닌 것)
사람이 사람에게 원하고 받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하늘의 용서, 생명,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황금율이 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받는 하늘의 생명, 구원, 그 황금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가 아닌 하느님의 덮으심,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로 얻는 용서, 생명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 ‘도덕과 윤리의 삶으로 열심히 살아 우리의 구원을 이루자’가 하느님의 진노(震怒)를 산 바벨탑 사건이며 카파르나움 이었다.(창세11,4- 루가10,15참조) 그렇게 살면 다른 민족들의 칭찬도 받고 영광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가르친다.
그 많은 이들이 옳다고 가는 길은 넓은 길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넓은 길이 영원한 멸망의 길이라 하신다. 그러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길이란, 많은 이들의 욕망의 눈에 어리석게 보이고(1코린1,23) 인간의 열심, 의로움을 기각해 버리시는, (마태6,33 로마3,24. 이사64,5 참조)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그 길이 진리(眞理)임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협착(狹窄, 좁고) 그 비좁은 길을 가기 싫어한다.
(요한12,43) 43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 그러나 하느님은 당신께 선택받은 이들(죄인)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억지로라도 끌고 가신다.
(요한21,18)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 그때 그 하느님의 이끄심이 매(枚, 채찍)로, 곧 우리에게 시련(試鍊)으로 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의 부르심, 사랑의 손짓이라는 것이다.
(1베드1,5-7)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멘)
☨ 하느님의 힘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