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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연중 제11주일] 열두 제자 파견 (마태9,36-10,8)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13|조회수0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14일 일요일

[연중 제11주일열두 제자 파견 (마태9,36-10,8)

 

 

 

1독서<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19,2-6)

이스라엘 자손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진을 쳤다이렇게 이스라엘은 그곳 산 앞에 진을 쳤다.

모세가 하느님께 올라가자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집안에게 이렇게 말하여라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알려 주어라.

4 ‘너희는 내가 이집트인들에게 무엇을 하고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 보았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화답송>시편100,1-2.3.5(3◎ 우리는 주님의 백성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온 세상아주님께 환성 올려라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너희는 알아라주님은 하느님이시다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그분의 백성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2독서<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5,6-11)

형제 여러분,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11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복음<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그들을 보내셨다.>(마태9,36-10,8)

예수님께서는 36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토마스와 세리 마태오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연중 제11주일 제1독서 (탈출9,2-6ㄱ)

 

탈출기 19장은 시나이산 계약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계약'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베리트'(berit) 이고, '베리투'란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 뜻은 본래 '묶는다'(bind)는 뜻이다. 즉 둘 사이를 연결시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약을 맺는다'고 했을때, '맺는다'는 말은 히브리말로 '카랏'(karat)이란 동사를 쓰는데, 직역하면 '자르다'는 뜻이다.

어쨌든 둘이 연결되고 계약을 맺으려면 쌍방이 만나야 되는데, 이 계약이 맺어진 시기가 이집트 땅을 떠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달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탈출19,1)

계약 체결의 장소가 시나이 광야 혹은 산이다. 광야와 산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 시나이 산에서 계약 체결이 이루어졌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산으로 올라가고, 하느님께서 하늘로부터 친히 영으로 강림하셔서 시나이 산에서 서로 만나서 계약을 맺은 것이다.

사실, 계약의 기초인 사랑, 계약의 조건인 순종, 계약에 약속된 축복이 들어 있는 계약 체결을 약속하시는 말씀(탈출 19,4~6)은 오늘 독서에서 다 생략되었다.

 

오늘 독서는 계약 체결을 준비하는 말씀(탈출19,9~11)과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나타나신(theophany) 장면이 나온다(탈출19,16~20ㄴ).

오늘 독서의 근본 주제는 하느님의 신현(神現)도 아니고, 하느님과 모세의 만남도 아니며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만남이다.

즉 '계약 당사자끼리의 직접 대면'(direct meeting between covenant partners)이다.

 

그래서 탈출기 19장 17절이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구름은 당신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고 행동하시는 하느님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계약을 맺기 위해 하느님께서 짙은 구름속에서 (탈출19,9.16) 다가갈 때, 세째날에 있을 것으로 예고된, 하느님의 현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조건이 무엇인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셋째날을 준비하게 하여라'(탈출19,10~11)는 것이다.

 

이것은 제의에 있어서 관습적으로 행하는 제의적 정결 행위를 명하는 것이다.

이 명령은 '금욕'에 대한 요청으로 특별히 의복의 세탁이 언급된다.

창세기 35장 2절에서 야곱이 하느님의 지시로 베델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에 가족들과 자기에게 딸린 모든 사람에게 명을 내린다.

여기서 옷을 빠는 것을 제외하고는, 탈출기 19장 10~11절과 유사한 내용을 발견한다.

1) 이방신상을 제거함, 2) 제의적인 성결, 3) 베델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음.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인간은 특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약한 계약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강한 계약 당사자인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이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늘 독서에는 안 나오지만, 제의적 성결 기간 동안 성적 접촉을 금지하는 것은 (탈출19,15) 구약에서 예를 발견할 수 있고(레위15,16~33; 1사무 21,5~7), 레위기 15장16~18절에 남자의 정자가 묻은 옷이나 가죽을 씻는 의무가 등장하는 것처럼, 탈출기 19장 10ㄴ절과 14ㄴ절에서 주어진 옷을 빠는 것과 탈출기 19장 15절의 규정이 공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렇게 탈출기 19장 10~11ㄱ절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의 준비를 가리키는 반면, 탈출기 19장 12~13ㄱ절은 하느님의 현현 장소인 산 주위에 경계를 치는 것, 즉 산에 대한 준비를 가리킨다.

 

우리는 오늘 독서에서 '제의적 정결'의 영성적 의미를 묵상해 보자.

'계약 당사자끼리의 직접 대면'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상대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을 대표하는 제1속성은 '거룩함'이니 이스라엘 백성은 '제의적 정결'로 다가가야 한다.

물과 기름이 함게 섞일 수 없듯이 속성이 다른 두 존재가 결코 공존할 수 없기에 이스라엘 안에 하느님의 현존을 지속하려면, 그 분과 같은 속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요청되는 것이다.

 

'거룩함'(聖性)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코데쉬'(qodesh)로서 '카다쉬'(qadash)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그 뜻은 '구분하다', '분리하다'이다.

이스라엘이 거룩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장소, 시간, 사건, 사람들 안에서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는 무엇인가를 드러내야 함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거룩하지 않은 세상에 어우러져 살면서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 마음 안에 거룩하신 하느님을 담고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속화(俗化)된 세상과 사람들과 일들에서 벗어나 무인도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거룩한 상태로, 즉 하느님을 알고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이 땅인 전부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별제된' 태도로 일관되게 살라는게 아닌가!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영광과 일만을 위해 사는 성별(聖別)된 사람이란 누구인가?

세례 성사 때의 거룩한 은총 지위를 유지하는 사람,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와 지위와 신분을 거룩하게 유지하는 사람, 항상 하느님 대전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사람,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성삼위 하느님'의 내주(內住)를 항상 의식하고, 삼위일체 하느님 앞에서 심성(心性)의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레위 11,44; 19,2; 20,7.26; 21,6.8; 1베드1,15)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당사자인 이스라엘 백성이 '제의적 정결'을 회복하고 유지해야만 하느님을 뵈올 수 있고,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연중 제11주일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가 수고한 대가로 얻는 것일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하느님께서도 우리가 노력하고 애쓴 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당신 나라에 참여할 권한을 주신다고 우리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나약하던 시절곧 죄인이었을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죄인은 하느님 앞에서 전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불경한 자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서도 착한 사람을 위하여서도 선뜻 내놓기 힘든 그 귀한 목숨을아무런 공로도 없는 죄인을 위하여 내놓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그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연민과 동정은 복음서 곳곳에서 당신의 구원 활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분께서는 가엾은 마음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태 14,14 참조), 더 많은 가르침을 주려 하시고(마르 6,34 참조), 그들의 배고픔까지 걱정하시어 빵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십니다(마태 15,32 참조).

여기에는 혜택을 입게 된 이들의 어떠한 공로도 선행되지 않습니다아버지 하느님을 닮은 아드님의 연민과 사랑이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기서 거저로 옮긴 그리스 말 도레안은 선물을 뜻하는 도레아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이는 보상이 아닌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든 그저 우리를 사랑하셨고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내주셨으며그분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저 받았다면 거저 줄 줄도 알아야 하고무상으로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무상으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이웃에게 보답이나 대가를 기대하는 선행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연중 제11주일]

 

치유(고침)는 하늘의 存在, 곧 在 創造이다.

 

(마태 9,35─10,1-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 구원은 하늘나라의 복음, 곧 하느님의 말씀(뜻)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고, 마시고, 깨달은(낳은) 그 사람이 받는 것이다. 

죄인들의 생명의 양식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이다. 

곧 그분의 대속의 죽음, 그분의 십자가의 길이 구원의 진리임을 믿고 의탁하며 살 때, 이 지옥같은 세상으로부터 하느님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기쁨과 안식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계명으로 받아 짐 같은 신앙으로, 또 자신의 욕망을 위한 말씀으로 신앙을 하니 성경은 그들이 병들고 허약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허약한 이들에게 희망인 하늘나라의 복음이 들어가 고침을 받는 것이다.

이 세상(땅)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영원한 힘, 그 본성, 신성(사랑)이 담겨져 지탱하고 존재하는 것이다.(로마11,8 히브1,3) 

그렇듯 하느님의 창조물인 피조물은 그 하느님으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그 하느님의 뜻이 아닌 인간의 뜻을 위해 살았을 때. 하느님의 뜻이 깨어지는, 즉 창조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창조주의 힘을 받지 못해 허약해지는 병자가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하느님의 말씀(약속)이 선포되어 그 말씀(약속)이 병자에게 들어가 그 말씀(약속)으로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것이다. 허약한 그 병자 안에 빛(하늘)이 들어가 어둠(질병)이 사라지는 것이다.

 

(요한17,17)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코린6,11)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에페5,26) 26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 물, 창에 찔리신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이다.

 

(히브10,10) 10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착하신 목자이신 주님, 양들- 곧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는 그분의 착하심, 그 의로움을 구원의 진리로 믿었을 때, 힘이, 생기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의 희생, 열심, 그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에 이르려는 거짓 가르침을 들어, 착한 목자의 의로우심, 그 구원의 말씀이 주시는 사랑의 힘, 희망의 힘이 없어, 기가 껶여 있는 것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일꾼, 하늘의 낫, 불로 일하는 천사들이다.(묵시14,17~) 곧 하느님의 뜻으로 일 할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 하늘의 일을 올바로 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할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다.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앞 35절에서 예수님께서 고치셨던 당신의 권한을 주신 것이다. 고침은 예수님 처럼 말씀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등, 그 사람의 말을 비유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 세상의 방법으로 사람의 뜻을 위한 그 길로 가지(하지)말라고 하신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하느님의 길, 그분의 뜻, 방법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곧 말씀을 사람의 뜻, 그 길로 잘못 들어 하느님의 길을 잃어버린 그들(죄인)을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그 주님을 전하라, 주어라는 말씀이시다.

 

(마태18,11) 11 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것들을 구하러 왔기 때문이다.

 

(마르코10,45) 45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하늘나라의 복음, 죄인들의 기쁜 소식이다.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 말씀을 선포하는 것, 하늘나라를 주는 것이다. 그것이 고침, 곧 재 창조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치유는, 그 하늘 존재로의 고침, 재 창조인 것이다.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어떻게? - 하늘나라의 복음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그 십자가의 복음으로, 그러면 사탄의 유혹을 받은(먹은), 그 거짓 예언자들의 거짓 가르침으로, 병들고 허약했던 이들이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사탄, 마귀가 쫓겨가는 것이다. 그것이 복음, 말씀의 힘이다.

 

(로마3,20-24)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인간의 의로움)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 오늘도 말씀으로 저희를 재창조하신 주님 감사합니다.~아멘.!!!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마태9,36-10,8)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36~38)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langchnisthe)  '~을 불쌍히 여겨 마음이 움직이다'(be moved with compassion for)이다.

 '보기에 답답하고 딱해서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단순한 감상적인 느낌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죄와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인간들을 향해, 인간들을 창조하셨고 또한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마음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이유가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태오 복음 사가가 전한다.

 여기서 '시달리며'에 해당하는 '에스퀼메노이'(eskylmenoi; fainted; harassed)는  '지치고 쇠약해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기가 꺾여'에 해당하는 '에르림메노이'(errimmenoi; helpless; scattered abroad)는 '의지할 데 없고 길거리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결핍 상태에 있었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구심점이 없었다.

 

이런 차원에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을 포함하는 온 우주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예수님은 여기서 영적인 목자의 의미를 통해 영적으로 방황하는 인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구원하실 메시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9장 37절에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라는 의미는 '양(羊; lamb)의 수효가 많음'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말씀이다.

 즉 하느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테우'; Basileia tu theu; the Kingdom of God) 가 드디어 도래했으며,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을 불러모아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파할 일꾼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일꾼의 수에 대해 언급하시는 이유가 단지 해야 할 일에 비해 현재의 일꾼의 수가 너무 적기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일꾼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것은 그 다음 장인 마태오 복음 10장에서 언급되는 열 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일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구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수확할 것이 많다'는 의미는 '추수할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에, '일꾼이 적다'는 표현 역시 '일꾼을 선발할 때가 임박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보내 주십사고'에 해당하는 '에크발레'(ekballe; to send out; he will send forth)는 '에크발로'(ekballo)의 변형인데, '밖으로'라는 뜻의 '에크'(ek)와  '던지다'는 뜻이 있는 '발로'(ballo)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던지다'는 뜻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축출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꾼은 인간의 의지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파견된 자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르심(성소; 聖召; Vocatio)을 받은 주님의 일꾼은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役事)만을 기다릴 수 없다.

 

여기서 '청하여라'에 해당하는 '데에테테'(deethete; ask; pray)는 '제발 허락해 달라', '청하여 ~하라'는 의미를 지닌 매우 간곡한 부탁을 말한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 추수 밭에 합당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수확할 밭의 주인님이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점점 죄의 유혹이 많아 믿음의 생활이 힘들고, 선악의 분별력을 잃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속출하는 이 시대에, 아버지께 가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갈림없는 사랑과 온전한 봉헌과 추종을 통해 확실하게 착한 목자의 성소길을 생명을 바쳐 걸어갈 수 있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많이 달라고, 성소의 주인이신 주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일찌기 '성소란 있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는 말씀을  신부님으로 부터 들었다.

 이 말씀은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성소를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부르심을 받고,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잘 살다가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죽어 관 속에 들어가야 성소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유 의지의 협력처럼, 부르심을 받은 사제와 수도자도 자신의 성소를 아끼고 사랑하고 잘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소 받는 당사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은총 없이 성소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6년 06월 14일 일요일

[연중 제11주일(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오늘 복음은 군중을 보시고”(마태 9,36)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시선이 언제나 사람들에게 머물러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5,1 참조).

이들은 고통과 질병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난 이들이며(4,2425 참조), 시대와 사회의 상처가 만들어 낸 불의이고 불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9,36). 여기에 쓰인 그리스 말은 애가 탄다애간장이 녹는다’ 정도의 의미로다른 이의 처지를 자기 안에 끌고 와 그 고통과 불행에 함께하는 깊은 자비를 뜻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 이 자비는 대개 인간의 육체적 어려움과 고통을 향합니다이는 곧 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지 미리 밝힙니다교회의 첫 선포는 논리적 설명이나 사변적 논쟁이 아닌구체적 치유와 돌봄이었습니다.

군중의 처지를 묘사할 때, ‘시달리다로 옮긴 그리스 말은 가죽을 벗기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목자 없는 양”(민수 27,17; 참조에제 34)의 심상과 연결되며마태오 복음사가가 유다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조용한 비판이기도 합니다목자의 자리곧 돌봄과 보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제도와 율법그에 따른 심판만 남아 있지는 않은지 오늘 복음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구실을 충실히 하지 못하는 목자들을 대신하여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마태 9,37). 여기서 추수는 심판의 상징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종말론적 부르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 가는 이들이 예수님께 몰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종말이 다가왔음을 보여 줍니다.

내 삶의 한 조각으로 이웃의 조각난 삶을 이어 붙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종말이고 구원이겠지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연중 제11주일 복음  (마태9,36-10,8)

 

권한하늘의 용서치유그리고 구마의 힘은 말씀이다.

 

(마태9,35-10,1.5-8)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 하늘나라의 문(門)인 하늘나라의 복음(福音)으로 고쳐 주셨 이다. 

목자(牧者)없는 양들 처럼이라 하셨으니, 복음은 목자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요한10,9.11) 9 나는 문이다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 하늘 문(門), 길을 잃어버린 양(죄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목자(牧者) 예수 그리스도!

 

(2티모2,8)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그분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이것이 나의 복음입니다.

= 죄인들의 죄로 죽으셨고, 죄인들을 의롭게 하시려 되살아나시어 하늘나라에 데리고 들어가시려는 그리스도, 들어가시려는 그리스도! 그것이 복음(福音)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으로 새롭게 된다. 곧 하늘의 평화, 자유, 안식, 생명, 구원, 용서, 치유의 “예”가 되신다.

 

(2코린1,19) 19 우리 곧 나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 되시면서 아니요!”도 되시는 분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그분께는 늘 !”만 있을 따름입니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히브1,3) 3 아드님(예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하면 본문의 사람들처럼 율법(제사와 윤리)과 거짓사도(師徒)들의 헛된 가르침곧 땅(세상)나라의 가르침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신앙(信仰)이 무거운 짐이 된다내일(영원한 시간)의 희망(希望)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8,24) 24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로마15,12) 12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이의 뿌리에서 줄기가 돋아나리니 그가 일어나 민족들을 다스리고 민족들은 그에게 *희망을 걸리라.”

 

(히브6,18-19)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맹세로 보장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이 두 가지로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따르는 많은 이들이 무거운 짐, 희망이 없는 가르침에 시달리기에~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땅, 세상나라에 가르침이 아닌, 하늘나라의 복음(福音)을 진리(眞理)로 가르칠 일꾼을 청(請)하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근거로 가르칠 일꾼을 청하라는 말씀이다.

 복음을 올바로 깨닫고 믿게 해주실 성령(聖靈)께 의탁하여 십자가(十字架)의 복음(福音)만을 듣고, 구원(救援) 간직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말씀의 힘인 용서(容恕), 치유(治癒), 구마(驅魔)의 권한(權限)이다.

그래야 거짓 가르침을 쫓을 수 있다. 그래야 거짓 가르침으로 허약(虛弱)해진 이들에게 희망(希望)을 주어 새로움 삶, 생명으로 살릴 수 있다.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 땅, 세상나라의 사람들의 감동적 이야기로 가르침을 받으면 어찌 구마와 하늘의 치유(용서, 생명, 구원)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늘의 복음, 곧 길 잃은 양들, 죄인들을 위해 죽으시는 착한 목자의 대속(代贖),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宣布)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 선포로 고쳐 주셨듯이 복음으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하늘나라의 대속, 그 용서의 복음을 몰라 죄의식으로 앓는 그 죽음의 상태인 이들, 그리고 영적(靈的) 나병(癩病)인 자신의 죄로 영이 죽어가는 데도 고통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늘의 대속, 하늘나라의 복음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

 

*꼭 기억합시다.~

(티토2,14)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어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 선행(善行), 구원(救援)의 믿음(信)과 복음(福音) 선포(宣布)다.

 

구약에서부터~

(탈출19,5) 5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

 

이제 오늘날에는~ 착한 목자의 죽음, 곧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을 진리로 믿으면, 그리고 고백하면(선포하명) 하느님의 사람, 하늘이 된다.

 

(신명4,20) 20 그러나 너희는주님(야훼)께서 도가니(지옥곧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셔서 오늘 이처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백성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하느님의 용서치유구마의 권한인 말씀을 잃지 않고 구원의 복음으로 지키게 해 주소서그래서 병들어 허약한 저와 이웃이 하늘이 되게 하소서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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