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매일독서복음묵상

2026. 6. 1- 6. 10

작성자로마노|작성시간26.06.09|조회수1 목록 댓글 0

 

 

2026년 06월 01일 [연중 제9주간 월요일]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10~11)

 

예수님께서는 마르코 복음 12장 10~11절에서 시편 118장 22~23절을 인용하셔서 그것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시켜 예언하신다.

원래 시편 118장 22~23절은 곤경 속에 있었던 다윗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버려진 돌과 같이 사람들의 멸시를 받지만, 하느님의 자애로 다시금 돌아와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신약에서 '모퉁이의 머릿돌'에 해당하는 '케팔레 고니아스'(kephale gonias; the head of the corner; the capstone)은 줄곧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히브리 어법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마치시며, 당신 자신을 새로운 성소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버린 돌이라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성전보다 더 크시고 높으시다(마태12,6).

 

사도행전 4장 10절과 11절의 '버림을 받음'과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심'이 나타내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도 역시 시편 118장 22절에서 찾는다.

그리고 베드로1서 2장 7~8절은 시편 118장 22절을 이사야서 8장 14~15절과 관련시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머릿돌'이 아니라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리게 하는 바위'가 됨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돌에 걸려 넘어진다.

 

한편 '내버린'에 해당하는 '아페도키마산'(apedokimasan; rejected)의 원형 '아포도키마조'(apodokimazo)는 '~로부터'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시험하다', '분별하다', '증명하다'라는 뜻을 지닌 '도키마조'(dokimazo)의 헙성어로서, '완전히 시험한 후에 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집짓는 이들(건축자들; the builders)과 포도밭의 소작인들로 비유된 산헤드린의 종교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예수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숙고하고 철저히 검증하며 시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예수님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그러면 포도밭이 자신들의 것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더 이상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고 이권을 유지하며(마르11,15참조), 종교적 위선을 숨기고 무지한 백성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포도밭 주인의 아들, 곧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

 

~~~~~~~~~~~~~~~~~~~~~~~~~~~~~~~~~~~~~~~~~

2026년 06월 0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복음(마르12,13~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17ㄴ)

 

'돌려주다'로 번역된 '아포도테'(apodote; render; give)는 '~로부터', '~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아포'(apo)와 '주다'라는 뜻의 동사 '디도미'(didomi)가 합성되어 '갚다'라는 뜻을 지닌 '아포디도미'(apodidomi)의 명령형이다.

'아포디도미'(apodidomi)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빚을 갚듯이, '필연적으로 어떤 것을 되돌려 주다'는 뜻을 지니는 동사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코 복음 12장 14절의 '우리가 바쳐야 합니다'에 해당하는 '도멘'(domen; should we pay; shall we give)의 기본형이 '주다'라는 뜻의 '디도미'(didomi)인 것을 고려할 때, 이 세금 논쟁에 있어서 예수님과 질문자들 사이의 시각차를 알 수 있다.

바리사이들은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자신이 소유한 것을 '주는'것으로 여겼다.

말하자면, 자신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세상 임금과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위에서 세속사를 움직이시는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여기신다.

 

예수님께서는 국가에 대한 납세의 의무와 하느님께 대한 의무를 둘다 충실히 행할 것을 가르치신다.

당시 유다인들, 특히 바리사이들은 앞의 것을 무시하고, 뒤의 것만을 강조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국가에 대한 납세는 국민의 의무로서 사도들도 권장했다 (로마13,1~9; 1베드2,13~17).

 

비록 로마 제국이 지배국으로서 식민지인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핍박한 것은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1티모2,2).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에 해당하는 '타 카이사로스'(ta kaisaros; what is Caesar's)와 '하느님의 것'에 해당하는 '타 투 테우'(ta tou theou; what is God's)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으신다.

 

데나리온에 담겨진 그 동전의 금전적 가치는 황제에게 돌려야 하지만, 그 위에 새겨진 황제 숭배의 어떤 사상도 용납하지 않고 거부하신다.

이 말씀은 어느 누구도 하느님 외에는 경배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부당한 경배를 요구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과 유사성으로 창조된 인간은 마땅히 신적(神的)인 영광과 위엄을 황제가 아닌 하느님께 되돌려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만유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권세는 하느님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다니2,20.21; 4,34; 요한19,1; 로마13,1).

정치의 상대성과 하느님 나라의 절대성에 관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다.

 

~~~~~~~~~~~~~~~~~~~~~~~~~~~~~~~~~~~~~~~

 

2026년 06월 03일 [연중 제9주간 수요일]

주님에 의해 죽는 것이 승리(勝利).

 

(마르12,18-27)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 복음은 왜, 사람이 반드시 후손을 낳아야 한다고 할까? 원시 복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창세3,15) 15 나(하느님)는 너(뱀)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 여자(교회-성도)는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을 선악의 말로 먹게한 뱀, 그 뱀의 선악의 심판으로 자신에게 죄를 짓게(죽게) 한 그의 머리(생각)를 밟아, 그 뱀의 생각인 거짓말(선악)을 없애줄 후손(구원자,예수)을 반드시 낳아야(깨달아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다.

곧 부활 후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마리아처럼 반드시 우리의 죄를 대속 할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야(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그 원시복음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루가24,27.46 사도28,23 참조) 그래서 본문이 후사를 낳아야 한다는 표현보다 *후사를 일으켜야 한다는 표현을 하신 것이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 성경을 하느님의 뜻으로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뜻으로 잘못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 우리가 생각하는 성 가정이 하늘에는 없다.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로, 같은 형제자매가 된다. 그렇게 새 성 가정이 된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먼저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보자- 다른 신의 상(우상)을 만들어 부자로 살았던 그 불가능의 아브람을 찾아가시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만들어(구해)내신 그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시다.(여호24,2 사도7,2 참조)

하느님께서 후손이 없던 아브람에게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으나 그 약속은 듣지 않고 아브람은 계속 자신의 뜻, 힘, 방법으로 자식을 낳으려 애쓴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의 고집, 힘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의 나이 100세에서 야 후손 이사악을 주신다. 그때서 야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심을 깨닫고 하느님 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브엘느세바(일곱샘), 곧 안식(7)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죄인들을 구해내실, 하느님의 일곱, 그 구원의 약속을 깨닫게 된다.(창세21,30-34참조) 그 아브라함(믿음)의 하느님이시다. 믿음을 만들어 내신 하느님 이시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을 통해 태어난 이사악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죽이려)했던 그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명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그 이사악의 하느님이시다.

 

(창세22,2-3)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골고타의 줄기)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 외아들(獨生子) 예수님도 나귀를 타고 죽음을 향해 가셨다.

 

(창세22,6) 6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가져다 아들 이사악에게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었다. 그렇게 둘은 함께 걸어갔다.

= 대속의 제물(번제물)로 태워질, 죽어질 그 십자 나무(장작)를 예수님도 친히 지고 가셨다.

 

(창세22,9-10)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아들 이사악을 묶어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 힘이 있던 젊은 청년 이사악이다. 자신을 죽이려는 늙은 아버지를 밀쳐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사악은 순명했다. 죽기까지 순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그 이사악(예수)의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이사악을 살리신다. 예비 하셨던 숫양을 대신 번제물로 바치게 하시고 *그리고 이사악의 아들 야곱이다.

아버지와 형을 속여 맏아들의 권리를 차지하고, 도망갔던 야곱이다. 그의 이름 그대로 ‘그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 속이는 자였다. 그래서 도망가 살았던 외삼촌에게 속고, 속이는 삶을 살았다. 그 후 야곱은 외삼촌에게서 다시 도망 나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자신에게 속아, 맏아들의 권리인 하늘의 복을 빼앗긴 형이 두려웠다.

 

그래서 가족들을 앞서 보내고 기도를 하게 되는데~

(창세32,24-29) 24 야곱은 이렇게 그들을 이끌어 내를 건네 보낸 다음,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도 건네 보냈다. 25 그러나 야곱은 혼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하느님) 나타나 동이 틀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하였다. 26 그는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그래서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 *엉덩이뼈를 다치게 되었다. 27 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고 말하였지만, 야곱은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그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자, “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9 그러자 그가 말하였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 속이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가, 승리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물론 야곱(이스라엘)이 이긴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이긴 것으로 간주해 주신 것이다.

 

(창세32,31-32) 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32 야곱이 프니엘을 지날 때 해가 그의 위로 떠올랐다. 그는 *엉덩이뼈 때문에 *절뚝거렸다.

= 야곱은 절뚝거리는 자가 되었다. 그것이 그의 승리이다. 하느님의 지팡이, 곧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이 야곱(죄)에서 이스라엘(하늘)로 재 창조로 구(求)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으로 살다가 늙어서 야 하느님의 뜻을 찾는 이스라엘로 산다. (창세46,1) 하느님께서 계속 쫓아 다니시면서 이끄신 것이다. 그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결론-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그들은 모두 육적으로는 죽었으나 하느님 안에서 영으로 살아있는 ‘산 사람들’이다. 우리 또한 아브라함 처럼, 이사악 처럼, 야곱 처럼, 하느님의 지팡이 곧 구원, 그 약속의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내 뜻, 고집, 자아를 부인하고, 죽이고,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산(生) 이요, 승리(勝利)인 것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길이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가 그리스도의 지체로, 산 이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깨닫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2026년 06월 04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사랑(信仰)의 出發點은 하느님이시다.

 

(마르12,28-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둘째는 이것이다. 병행복음- 마태33,39에도 ‘둘째도 *이와 같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같은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야고2,8-9)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 인간의 사랑을 차별적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먼저 ‘차별이 없으시고 원수(죄인)까지 사랑하신, 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죄인들을 위해 당신 외아들 예수를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 그 사랑을 알아야(받아야)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해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곧 우리 구원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한 계명인 것이다.

인간의 지각(知覺)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깨달아, 내가 먼저 받고, 그 하늘의 사랑(아가페)을 이웃과 나누는 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시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두 나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 받기 위하여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하느님께서 흙 먼지로 손수 빚어 만드시고, 숨과 영을 불어넣어 주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데, 나에게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출발점,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상-

= 그런데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흙의 먼지에 불과한 그 없음의 존재가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생명체가 된 것, 소중한 존재 맞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흙, 땅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 곧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재창조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이 흙(어둠)의 세상의 빛(생명)으로 보내신 것이다.

빛, 하늘의 존재 예수께서 어둠인 이 세상에 육을 입고 오심, 그 자체가 신의 죽음의 시작이다. 그 어둠, 그 없음의 존재들을 빛, 있음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희생하신, 그것이 십자가의 희생, 대속, 죽음, 사랑인 것이다.

 

(요한1,9-12)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속죄 제물로 보내신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피(죽음)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기게 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히브10,10.22참조) 그 하느님의 뜻, 그분의 약속,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땅의 욕망으로 가득찬 나를 부인하는(비우는)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모르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사랑)의 출발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심을 알아야 한다.(제가 말씀 묵상을 드리는 것이 여러분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 제사 행위보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기특한 말은 했다. 그러한 율법학자에게 아직 하느님 나라가 들어오지 못했다. 아직 사랑의 계명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죽으러 오신, 곧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그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 하러 오신, 그래서 이웃인 율법학자 구원을 위해, 그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번 제물과 희생 제사로 죽으러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훌륭한 선생님 정도로 보고 있으니 그가 어찌 깨달았다고, 하느님 나라가 들어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하신 말씀은 “너는 아직 하느님 나라 밖에 있다” 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루가4,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마태12,28) 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골로3,1-2)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게 해 주소서 의탁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저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

2026년 06월 05일 [연중 제9주간 금요일]

구원 계획에 따라 세상 모든 일을 섭리하시는 하느님!

 

(마르12,35-40)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 병행복음으로 보면 마태오복음은 바리사이들, 루가복음은 사람들이라 전한다. 그러니 성전 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씀이다.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시편110,1)’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라는 말씀이다.

 

그 부분을 (로마1,3-4)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피조물), 그의 육을 통해 오신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늘의 영이신 그리스도로 확인한다는 것이다. 성자 하느님이신 당신께서 어떻게 피조물의 자손, 아들이 될 수 있느냐?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 말씀으로 피조물들과 하나(한몸)가 되시기에 육을 통해(입은)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육의 자손일 뿐, 영의 후손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이다. 곧 피조물의 인성의 아들이지 신성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성령의 귀로 알아들어라)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하신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자 한 것이다.

 

(2사무7,10)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나탄이 다윗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우리가 심겨 져야할 그 자리, 그 한곳이 그리스도이시다.

 

(에페1,4)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3,16)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곧 십자나무의 대속, 예수그리스도 이시다. 그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불안 해 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불의한 자들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곧 뱀의 말(선악)을 먹은 사람들, 그들의 선악의 논리, 그 심판이 주는 죄와 죄의식, 그 모든 불의에 괴롭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의 죽음, 피, 그 구원의 새 계약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다 씻겨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히브6,16-19)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 예수님께서 당신이 다윗의 자손이 아니심을 말씀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우윗 시대의 육의 구원, 곧 육적 영화를 위한 메시아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심으로 죄인들을 구하려 오신 것이다. 우리의 소원, 뜻을 들어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죽으러 오신분이 아니다.

*이 모든 말씀을 기쁘게 받아 드렸는지, 오늘 본문(37절)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고 전한다. 순간적, 일시적 기쁨이다. 병행 마태복음은 그들은 한마다도 대답하지 못했다고 전한다. 못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본문 다음 구절에서 율법학자(사람)들의 그 선악의 그릇된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요한16,8-9)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9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래서 대신 심판을 십자가로 받으신 그 주님을 진리로 믿지 않는 것이 죄, 불의이다. 그런데 선악의 논리, 그 인간들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준다면 하늘의 용서, 자유, 구원이 없는 그 헛된 신앙으로, 과부의 삶을 살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38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 긴 겉옷,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님의 옷이시다.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 윗자리-권위의식이다. 하느님의 뜻, 말씀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래서 구원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 그분의 뜻을 깨닫지(낳지) 못한 것이 과부, 고아이다. (그래서 성경에 과부, 고아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 하느님께서 정하신 한 곳, 십자가. 그 새 계약이다.

 

(예레31,31-32)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히브8,13) 13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첫째 계약(율법- 제사, 윤리)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낡고 오래된 것은 곧 사라집니다.

= 새 계약- 대속(피), 그리스도이시다.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히브9,15)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그 한가지 일만 말씀하셨다. 교회 에서도 그 새 계약, 그 한가지만을 전해야(말해야)한다.

 

(요한7,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한 가지 일을 하였을 뿐인데 너희는 모두 놀라워한다.

 

(2코린3,6) 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 성령께서 보이는 문자, 그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낳아) 하신다.(요한14,26) 성령께서 제사와 윤리, 그 법의 신앙이 아닌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님을 구원릐 진리, 구원의 새 계약으로 증언하시며 가르치신다. 그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하늘의 용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다. 이 모든 말슴을 받지 못한 것이 과부이다. 그 과부들에게 새 계약을 주지 못하고 계속 제사와 윤리로 열심한 신앙을 살게하는 것이 과부를 등쳐먹는 것이다. (내일 복음과 연결됩니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2026년 06월 06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세상의 과부가 하늘의 짝이 되는 것

 

(마르12,38-44)

38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 과부들에게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용서, 구원 그 새 계약을 주지 못하고, 사람의 뜻을 위한 제사와 윤리의 열심한 신앙을 살게 하는 것이 과부를 등쳐먹는 것이라 묵상했다. 그래서 여러 명목의 헌금, 헛된 예물을 바치게 한다. 그것이 등쳐먹는 것이다.

 

(이사1,13.15-17)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제사, 제물짐승의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그리스도의 새 계약으로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찾아주는 선행이다. 곧 고아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과부에게 하느님을 남편으로 깨닫고 믿게, 그래서 하늘의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선행이다.

제사, 예물을 계속드리게 하고 온갖 전례 행위에 바쁘게 하는 것, 악행이다.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죄를 없애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히브10,16-18) 16 “그 시대(십자가 새 계약)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 죽어야 할 죄인이 그리스도의 피, 그 새 계약으로 하늘의 새 생명을 얻었으니, 살아났으니 감사해서 *죽은 그 목숨 값으로 생명 같은 돈을 바치는 것이 헌금이다. 그렇게 헌금과 예물은 다른 것이다. 아는 만큼, 깨달은 만큼 바치는 것이 헌금이다. ‘많이 바치면 많은 복을 주시겠지? 우리의 뜻, 소원이 이루어지겠지’. 하는 것은 헌금이 아니다. 그 거래하는 제물(예물)드림을 ‘장사하는 강도’라 하셨다.(요한2,16 루가19,46참조)

 

(히브10,14) 14 한 번의 예물(십자가의 예수)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를 전부 바쳤다고 칭찬하는 주님이 아니시다. 가난한 이가 자신의 삶을 , 목숨을 온전히 다 바쳤음을, 의탁했음을 기특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마태5,3) 3 “행복하여라(복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세상의 부자는 자신의 삶, 목숨을 온전히 버리지 못한다. 하늘나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은 12장의 결말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지금까지의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먼저(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마르12,6-8) 6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7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8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속죄 제물, 예물로 성문 밖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그 한번의 예물로 자신이 거룩하게 영구히 완전하게 됨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황제에게 내는 세금)

(마르12,17)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 세상의 과부, 그 자신을 황제, 세상의 것으로 의미 없음으로 보내고 하느님의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피로 얻는 거룩, 완전한 자로, 하느님의 짝이 되어 감사의 영광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부활 논쟁)

(마르12,26-27)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 과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산 이가되어 그 산 자로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큰 계명)

(마르12,29-31)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과부 자신은 하느님을 목숨 바쳐 사랑할 수 없는 존재로 하느님께서 목숨 바쳐 자신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과부인 자신을 이웃으로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셨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줄 수 있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큰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다윗의 자손 예수?)

(마르12,37)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 예수님은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곧 피조물의 자손, 아들이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제사와 윤리)의 헛된 예물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고, 오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의탁하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다.

 

☨은총의 천주성령님!

오늘 과부가 받은 은총을 저희도 받고 싶습니다.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멘!!!

 

~~~~~~~~~~~~~~~~~~~~~~~~~~~~~~~~~~~~~~~

2026년 06월 07일[성체 성혈 대축일]

 

당신 말씀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시편147,15)

주님~ 自己否認이라는 낮은 자리에서 당신의 말씀(생명)으로 살게 하소서~

 

(요한 6,51-58)51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우리는 세상의 생명을 산다. 그런 우리에게 다른 생명을 주시겠답니다.

 

52 그러자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다른 생명- 영원한 생명으로~~ 영원하신 분의 죽음, 그분의 살과 피로 얻는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죄인들의 죗값으로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살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 진실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요한6,29참조)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참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

 

(요한1.1-4.14)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하느님이 말씀이시고 그 말씀이 육을 입고 오신 외아들 예수님, 외아들- 모노게네스, 하나를 가진 자-하나로 가진 자.

온 세상이 선악의 그 둘로 갖었지만 외아들은 생명으로 그 하나로 갖으신 분입니다. 그 예수님이 죄인들의 생명의 물이며 양식이신 것입니다.세상의 음료(물)는 다시 목마르지만 ~~

 

(요한4,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 생명수, 그 물(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을 영원히 솟게 하기에~~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 먹고 마시는- 현재형으로 계속을 뜻합니다. 말씀은 어제로부터~ 오늘을 흘러~ 내일까지 계속 유효한 것입니다. 에덴의 강에서 묵시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기까지~~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안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 그러나 그 하늘의 빵은 사람에 입맛에 맞지 않는다. 맛이 없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빵을 맛있게 먹이시기 위해 굶주리게 하신다.

 

오늘 독서 (신명8,2-3) 2ㄱ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불 뱀이 있고 물이 없는 광야의 삶을 허락 하신 것. 광야-세상은 참 생명수가 없는 곳으로 사람들의 시련(뱀)이 있는 곳입니다.

 

2ㄴ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3ㄱ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 만나의 뜻이- ‘이것이 뭐냐?’

 

3ㄴ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만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먹었던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지요. 그렇듯 예수님의 살과 피, 그 빵의 의미를 모르고 먹고 마신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루가22,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예수님의 살과 피는 새 계약입니다.

 

(요한6,63)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 성체를~ 파스카의 제물, 몸이 아닌(루가22,16-18)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 그 피로 맺는 구원의 새 계약으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 계약~

(히브10,14.17-18.22)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십자가)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이 말씀을 믿었을 때, 그 모든 말씀의 약속이 내 안에서 거룩한 생명으로 솟아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말씀을 진리로 먹은 성숙한 이는~

 

(히브6,1-3) 1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인 교리를 놓아두고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다시 기초를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기초는 곧 죽음의 행실에서 돌아서는 회개와 하느님에 대한 믿음, 2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입니다.

=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 이는 내 밖의 것에 더 이상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성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앎이란 누리는 것입니다. 아멘.

 

부속가

21. 천사의빵 길손음식 자녀들의 참된음식 개에게는 주지마라.

22. 이사악과 파스카양 선조들이 먹은만나 이성사의 예표로다.

23. 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 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

 

2026년 06월 08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복음(마태5,1-12)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그)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 직역하면 그 산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주셨던 시나이 산에서의 그 말씀(계명)을 다시 주시려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13,16)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 사람의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 뜻으로 알아듣지 않고 하느님의 뜻으로 알아듣는 것이 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령께 의탁해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가난- 풋토코스(해결 방법이 없는 가난) 페네스(해결방법이 있는 형제적 가난) 여기서는 풋토코스다. 그러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분의 뜻을 깨닫고 나의 구원에 나의 그 무엇도 보탤 수 없음을, 곧 땅의 모든 행위가 가치 없음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하늘나라를 받아 들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 되는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슬퍼하는- 판테오(파스카)라는 뜻으로 현재형이다. *위로- 파라칼레오(초청을 받다) 그러니까 파스카로 청을 받아 그 파스카의 어린 숫양의 죽음으로 내가 죽어야, 슬퍼야 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곧 앞에서 묵상했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구원에 보탤 수 없음을 아는 그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버리고, 죽이는 그 슬퍼함으로 속죄 제물인 어린양(예수)을 계속적으로 먹어야 복이라는 말씀이다.

 

(요한6,53-54)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 요즘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새 계약이라 배웠음을 기억해야한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 사람의 것(온유)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유하심으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 온유의 어린양,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그 온유를 담은 온유한 사람(그릇)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온유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2코린10.1) 1 여러분과 얼굴을 마주할 때에는 겸손하고 떨어져 있을 때에는 대담하다고들 하는 나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직접 권고합니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 땅(사람)의 의로움이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음을 알고 하늘의 의로움을 갈망하는 사람은, 죄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구원의 의로움인 십자가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흡족해진다.

 

(로마3,24)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 마음이 가난해서 곧 자신을 비워(버림, 부인) 자비의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이다.

 

(티토3,5) 5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유다1,21)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예레17,9)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히브10,14.22) 14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 하늘의 평화를 내가 먼저 받아 이웃에게 전해주는 그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다. 땅의 평화는 순간적이며 영원하지 못함을 아는 그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받아들이고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욕망, 욕심, 탐욕, 그 죄악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며 하늘의 평화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그 세상의 것으로 평화를 바라며 만족하려는 그 사람들의 생각, 욕망을 부수시고 하늘의 참 평화를 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셨다.

 

(마태10,34)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땅, 세상, 인간들, 그 스스로의 의로움은 구원의 가치, 능력이 없고, 하늘의 의로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십자가가 주는 의로움만이 구원의 힘, 진리이니 그 십자가의 의로움을 받아야 구원될 수 있다고 말하면, 전하면 박해와 핍박을 받는데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 사람들의 모욕, 박해와 사악한 말을 받아보지 못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을 만족시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2코린1,3-5)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4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 5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듯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리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

= 우리의 환난, 그 안에는 하느님의 위로가 들어 있음이다.

 

☨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행복하나이다. ~아멘!!!

 

 

~~~~~~~~~~~~~~~~~~~~~~~~~~~~~~~~~~~~~~~

 

2026년 06월 0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소금과 빛의 짝인 말씀을 찾아서~

 

복음(마태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탈출30,34) 3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향료들, 곧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을 장만하여, 이 향료들과 순수한 유향을 섞는데, 각각 *같은 분량으로 하여라.

= 세 가지 향(香)에 유향을 같은 분량으로 섞는 것,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이 같은 유향의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유향은 대사제의 예물이다.(마태2,11)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같은 뜻인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 사제의 일이다.

 

(히브7,27) 27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하신(히브10,18) 죄의 제사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소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계약의 말씀이다.(요한1,14)

 

(탈출30,35) 35 너는 향 제조사가 하듯이, 이것들을 잘 섞고 소금을 쳐서 깨끗하고 거룩한 것을 만들어라.

= 죄인인 우리가 말씀으로 깨끗하고 거룩해진다는 말씀이다. 곧 대사제로 오신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으로다.(히브10,9-12 참조)

 

(레위2,13) 13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

=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곧 소금처럼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피의 새 계약에 대한 감사의 예물(禮物), 제물(祭物)로 바쳐야한다는 말씀이다.

 

(민수18,19) 19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에게 들어 올려 바치는 거룩한 예물(속조 제물의 어린양, 예수) 들은 모두, 영원한 규정(계약)에 따라, 내가 너와 너의 아들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너의 딸들에게 준다. 이는 너와 너의 후손들을 위하여 주님 앞에서 맺은 영원한 *소금 계약이다.” (~아멘)

 

(2열왕2,19-22) 19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어르신께서 보시다시피 이 성읍(교회)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나빠서 이 땅이 생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 새 계약의 물(말씀), 곧 영원한 소금 계약인 새 계약으 말, 가르침이 아닌 율법(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으로 생산력, 곧 하늘의 생명을 얻는, 사는 그 새로운 피조물, 새 창조의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20 이 말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시오.” 하고 일렀다. 그들이 소금(새 계약의 말씀)을 가져오자,

= 새 계약은 구약에서부터 말씀하셨다.(예레31,31~)

21 엘리사는 물이 나오는 곳에 가서 거기에 *소금을 뿌리며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 물을 되살렸으니(새 창조), 이제 다시는 이 물 때문에 죽거나 생산력(하늘의 생명)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22 그러자 그 물은 엘리사가 한 말대로 되살아나서 오늘에 이르렀다.

 

(2코린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골로4,6) 6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새 계약의 말씀)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누구에게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아야 합니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시편27,1) 1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36,10) 10 정녕 당신께는 생명의 샘(물- 말씀)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

 

(시편119,105.130) 105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130 당신의 말씀이 열리면(깨달으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이들을 깨우쳐 줍니다.

= 소금계약, 새 계약의 말씀으로다.

 

(지혜7,26-27)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영원히)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 ‘지혜(智慧)’- 하느님의 구원의 영(靈), 힘이시며(1코린1,24 2코린13,4), 하느님의 영원한 소금계약인 피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시다.(히브1,3)

 

(마태4,16)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 빛이신 하느님을 거부한, 그래서 어둠인 세상에 ‘독생자(獨生子) 예수를 세상의 빛으로 보내셨음’이다.

 

(요한8,12) 12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하늘)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세상)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12,46)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세상, 두려움)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테살5,5) 5 여러분은 모두 빛(하늘)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세상)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15,19)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어둠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저희가 소금같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세상의 소금, 빛이 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소금계약)가 아버지의 뜻(빛)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2026년 06월 10일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율법보다 하느님의 약속이 먼저 계셨다.(갈라3,17)

 

복음(마태5,17-20)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 보이는 하늘과 땅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구원의 뜻이 하느님의 은혜로 ‘다 이루어졌음’을 깨달아 믿게 되면(보이는 것을 믿지 않게 되면, 없어지면)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로마1,19-20 갈라,10-2 참조)

 

19ㄱ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 가장 작은 자? - 하느님 나라에는 큰 사람 밖에 없는데~

 

19ㄴ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 하느님 나라는 율법을 100% 완벽하게 다 지켜야 들어간다. 하느님 나라는 빛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1%라도 있으면 못 들어간다.(신명28,1.15- 참조) 빛 앞에 어둠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율법을 완전히 다 지킬 수 없다. 율법으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로마3,20) 그래서 세상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이다.(로마,19) 그래서 사랑이신 하느님은 그 죄인들을 구하시려 당신 외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신 것이다.(갈라4,4)

그 예수님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율법이 요구하는 죄값을 십자가에서 당신 목숨으로 대신 갚으셨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심으로(갈라3,13) 율법을 완성하셨다. 곧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래서 그분의 부활로 우리가 거저 의롭게 되었다.

믿음으로 받는 의로움이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킨, 그 율법의 의(義)를 능가하는 큰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절이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 뜻, 욕망, 의(義)를 위한 율법 신앙, 곧 세상의 것을 위해 세상의 논리대로 살려고 애썼던 나를 버리고, 부인(否認)하고 하늘의 의로움이신 예수님의 지체로 그분과 한 몸이 되어 큰 사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을 인정하지 않고,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을 열심히 지킨 자신의 열심, 의로움으로 자신의 뜻과 구원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양다리 율법 신앙이다.

 

그래서 독서에서 하느님을 바알로 섬기지 말라고 한 것이다~

독서(1열왕18,20-21) 아합 임금은 20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바알의 예언자들을 카르멜산에 모이게 하였다. 21 엘리야가 온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 주님께서 하느님이시라면 그분을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십시오.”

= 하느님께서 절뚝거리게 만든 사람이 있다. 하느님과 씨름 하다가 다리를 다친 야곱 이다.(창세32,31) 그런데 야곱의 절뚝거림이 하느님을 이긴 그의 승리라 하신다. 왜? 절뚝거리는 자는 반드시 목자(牧者)의 지팡이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께서 창조 이전 예비 하신 착한 목자 그리스도다.

그리스도 예수님, 당신의 목숨을 내놓고 율법을 완성하신, 그래서 율법의 의(義)를 능가하는 하늘의 의(義)를 전가시켜 주신 십자가의 대속, 그 복음, 그 새 계약의 말씀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다.

 

(1코린15,57)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1요한5,4-5) 4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

= 우리가 절뚝거리는 불구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의 말씀에 의지할 때 (하느님 사랑을 의지할 때) 율법도, 세상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승리가 된다.

그 예수님을 내가 사랑하고(믿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 승리의 예수님을 이웃에게 전해 주어 하늘의 용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며,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구원에 합당한 사랑이 인간에게는 없다. (1요한4,9-10)

 

(로마13,8)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로마3,19-25. 야고2,8-10 갈라3,10-29 오늘 묵상(黙想)글이 이곳에 다 들어있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죽음의 법에 묶여 살 수 밖에 없는 저희가 율법, 그 옛 계약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새 계약의 말씀으로 빛의 나라, 하늘을 현실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의 마음에 성령이 불을 놓으시어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나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약)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