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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러닝 이야기

[50대, 나는 왜 42.195km를 달리려 하는가?] 1편 - 약봉투가 두꺼워지던 날, 나는

작성자이소식|작성시간26.06.14|조회수28 목록 댓글 0

 

2022년 4월 23일.

나는 처음으로 달렸다.

정확히는, 달리려고 했다. 스마트폰에 '런데이'라는 앱을 깔고, 이어폰을 끼고, 집 앞 골목으로 나섰다. 앱에서는 경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30분 달리기 도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 몸이 달리기를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것을.

2분을 뛰면 숨이 찼다. 걷다가, 뛰다가, 다시 걷다가. 30분 동안 겨우 2킬로미터를 이동했다. 50년을 살아온 몸이 그렇게 솔직하게 현실을 보여줬다.

 

약봉투가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1972년생. 2022년, 나는 막 쉰이 됐다.

오십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를 나는 오래 외면해 왔다. 바빴고, 건강하다고 믿었고, 운동은 언젠가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에 갈 때마다 약봉투가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고지혈증 약. 전립선비대증 약. 그리고 어느 날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압도 좀 신경 쓰셔야 할 것 같아요." 3개월치, 6개월치씩 한 움큼씩 받아오는 약들. 집에 쌓이는 약 봉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나의 50대란 말인가.

몸무게도 슬그머니 100킬로그램을 넘어서고 있었다. 거울을 정면으로 보기가 싫어졌다.

 

유튜브에서 달리기를 만났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밤 유튜브를 보다가 달리기 영상을 클릭했다. 처음엔 그냥 스크롤하다 멈춘 영상이었는데, 하나를 보니 둘이 나오고, 셋이 나왔다. 알고리즘이 나를 붙잡았다.

영상 속 사람들은 말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삶이 바뀌었다고. 체중이 빠지고, 약을 끊었고, 무엇보다 사는 게 달라졌다고.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어딘가에서 작은 불씨가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런데이였다. 처음 달리는 사람을 위한 앱. '30분 달리기 도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0분이면 나도 하겠다 싶었다.

틀렸다. 30분이 그렇게 길 줄 몰랐다.

 

그래도 나는 계속 나갔다

처음엔 25분을 걸었고, 5분을 달렸다. 그렇게 2킬로미터를 겨우 채웠다. 다음 날 근육통이 왔다. 허벅지가 계단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다음 날 또 나가고 싶었다.

조금씩 달리는 시간이 늘었다. 걷는 구간이 줄었다. 2킬로가 3킬로가 되고, 3킬로가 5킬로가 됐다. 페이스가 붙기 시작했고, 달리는 내가 조금씩 낯설지 않아졌다.

그러다가 다쳤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빠르게만 달렸고, 무거운 몸이 감당해야 할 충격은 고스란히 무릎과 허리로 갔다. 달리고 쉬고, 달리고 쉬고. 그 패턴을 3년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어느새 하프마라톤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21킬로미터를 완주했을 때의 그 기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청천벽력

2026년 1월 13일.

한의원에 다른 이유로 갔다가,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당 수치가 당뇨 전단계 수준이에요."

설마,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니겠지. 그런데 아닌 게 아니었다.

3년을 달렸는데. 열심히 살았는데. 충격이었다. 그날 집에 오는 길이 유독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충격이 나를 다시 세웠다. 이번엔 제대로 하자. 달리기만이 아니라 먹는 것도. 생활 전체를. 그날부터 식단을 바꿨다. 먹는 순서를 바꾸고, 탄수화물을 줄이고, 야식을 끊고, 매일의 기록을 세밀히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6개월도 안 돼서 20킬로그램이 빠졌다.

처음으로 내 몸이 가볍다는 걸 느꼈다. 달릴 때 발이 다르게 느껴졌다. 예전만큼 숨이 차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리와 무릎이 덜 아팠다.

 

그리고 나는 경주를 신청했다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에 마라톤 완주에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봄이 지나고, 어느 날 핸드폰을 열었다가 경주마라톤이 10월에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풀코스. 42.195킬로미터.

예전의 나라면 스크롤을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열심히 접수가 열리는 5월 31일을 메모해 두었다.

요즘 러닝붐으로 마라톤 접수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5월 26일 오후 7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역시나 접수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열심히 참고 인내하면서 드디어 풀코스 마라톤 접수에 성공!

신청을 마치고 나서 잠깐 멍했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52살. 초보 러너. 풀코스.

말이 되는 조합인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40대에 하지 못했던 것을, 50대에 처음 달리기 시작한 사람이, 이제 42킬로미터를 달리겠다고 한다.

이상한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약봉투가 두꺼워지던 그날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 이 결심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진다.

출발선에 서기까지, 나는 이 과정을 여기에 써내려 가려 한다.

 

다음 편에서는 하프마라톤과 풀코스 사이, 그 21킬로미터의 간극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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