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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가방 러닝 이야기

[50대, 나는 왜 42.195km를 달리려 하는가?] 3편 — 나는 언제부터 사람들 신발만 쳐다보게 됐을까?

작성자이소식|작성시간26.06.20|조회수28 목록 댓글 0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얼굴보다 발을 먼저 봤다.

길을 걷다가, 카페에 앉아서, 마트 계산대에 줄을 서면서. 시선이 자꾸 아래로 향했다. 저 사람 신발, 나이키 페가수스네. 저건 아식스 젤카야노다. 저 분은 호카를 신었네. 내가 갖고 싶었던 바로 그 모델이잖아.

달리기가 내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순간은,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이 러닝과 맞물려 돌아갔다

달리기에 빠진 사람의 하루는 다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달릴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날씨를 확인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어디서 달릴지를 생각한다. 밥을 먹으면서도, 씻으면서도, 그날의 러닝 루트가 머릿속에서 그려지고 있다.

나의 모든 일정이 러닝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를 데려다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홈스쿨링 때문에 군포 수리산 쪽을 오가는 날이면, 차에서 내려주고 나서 바로 생각했다. '근처에 운동장이 있나?'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찾는 게 달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원이든, 운동장이든, 학교 트랙이든.

한번은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갔다. 물론 나의 캐리어에는 러닝화가 한 공간을 차지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 근처를 달리곤 했다.

낯선 도시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그 기분, 러닝은 어느새 어디서든 나와 함께였다.

 

나만의 훈련장들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는 나의 전용 훈련장이었다.

이른 아침, 캠퍼스 안을 달렸다. 학생들이 오기 전의 조용한 시간. 내 발소리만 들리는 그 공간이 좋았다. 캠퍼스를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바람이 불어도, 추워도, 그 길을 달리는 게 좋았다.

군포 시민운동장도 단골이었다. 매주 숲놀이를 데려다주고 나면 바로 운동장으로 향했다. 400미터 트랙을 빙글빙글 돌았다. 단조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반복이 좋았다. 바퀴가 쌓일수록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 땀이 흘러내리는 게 뿌듯했다. 너무 즐겁고, 너무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달리기가 가장 순수하게 즐거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신발을 탐하고, 인스타를 순례하고

러닝에 빠지면 장비에 눈이 간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다.

인터넷을 열면 러닝화를 검색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아식스, 호카 등등. 구매 후기를 읽고, 유튜브 리뷰를 보고, 가격을 비교했다. 실제로 살 수 있는 형편이 안 될 때도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다 길에서 내가 점찍어뒀던 모델을 신고 가는 사람을 발견하면 눈이 저절로 따라갔다. 부럽고, 또 언젠가는 나도 저 신발을 신고 달리겠다 싶었다.

좋아하는 러너들의 인스타그램도 빠지지 않고 들여다봤다. 그들이 달리는 코스, 페이스, 착용한 장비, 식단. 하나하나가 공부였다. 러닝 대회 일정을 찾아보고, 언젠가 나도 저 대회에 나가겠다고 마음속으로 메모했다.

그때의 나는 달리기라는 세계에 완전히 입덕한 상태였다.

 

과학이 된 달리기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애플워치를 샀다.

심박수, 페이스, 거리, 케이던스. 숫자들이 손목 위에서 실시간으로 살아 움직였다. 달리기가 데이터가 됐다. 오늘 평균 심박이 얼마였는지, 지난주보다 페이스가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생겼다.

그리고 스포츠 워치라는 신세계를 만났다.

가민, 코로스, 순토. 러너들 사이에서 '워치 덕후'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말이 있는데, 나도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큰 맘먹고 장만한 코로스로 인해 나의 러닝은 한층 더 과학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 숫자에 빠져들면서, 정작 중요한 걸 놓쳤다. 몸이 보내는 신호보다 데이터를 더 믿었다. 심박이 높아도 달렸고, 피로가 쌓여도 기록을 채우려 했다. 체계적인 달리기가 아니라, 숫자를 쫓는 달리기였다. 조금 더 일찍 제대로 배웠더라면 부상도 줄었을 텐데. 그 아쉬움은 지금도 남아 있다.

 

러닝화 한 켤레가 바꾼 것

달리기는 신발 한 켤레면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신발 한 켤레가 일상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는, 직접 달려봐야만 안다.

아침에 일어나는 이유가 생겼다. 낯선 동네에서도 달릴 곳을 찾는 눈이 생겼다. 지나가는 사람의 신발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50대의 내 몸이 아직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이 지금의 나를 경주마라톤 출발선으로 데려가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당뇨 전단계 진단 이후, 식단과 러닝을 동시에 바꾸며 20킬로그램을 감량한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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