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는 내일부터 수행하기 전에 먼저 “귀의”를 잠깐 수행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대원만심성휴식실수행법(大圓滿心性休息實修行法)>에 있다. 이 책이 없거나 기억하지 못하겠으면 다음과 같이 관상하라.
앞의 허공에 사자좌(獅子座)를 관상한다. 사자좌 위에 연꽃, 해와 달이 있다. 그 위에 자신의 근본 스승이 계신다. 스승을 부처님으로 볼 수 있고, 스승에 대한 신심이 크면 스승의 모습 그대로 관상하면 된다. 신심이 부족하면, 스승을 석가모니 부처님, 문수보살, 관음보살 등의 성존(聖尊)으로 관상한다.
이어서, 스승과 시방삼세의 여러 부처님을 하나로 생각한다. 주변에 바다처럼 많은 공행, 호법 등의 성존이 둘러싸고 있다. 이와 같은 귀의경(歸依境) 앞에 한마음 한뜻으로 귀의한다. 귀의의 목적이 무엇인가?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말을 경당에서 수천 번, 수만 번 했다. 물리도록 들은 도반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도 말했고, 현재도 말하고, 미래에도 말할 것이다.
왜 그런가? 이것까지 포기하면 우리가 대승 불교의 수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남녀가 “내가 너를 위해서 산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사는가? 중생을 위해서 산다! 이 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귀의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건강해지려고, 정신적으로 좌절을 겪어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귀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생을 위해서 귀의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물론 출가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발심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재가자들은 어떤가? 전에 재가다들에게 왜 귀의하는가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귀의를 하면 나를 보호해 주실 것 같았다, 붓다께서 불가사의한 가피의 힘을 가지셨으니 우리 집안이 평안하고 일이 잘 풀리게 해주실 것 같았다 등등이다.
중등의 근기를 가진 사람이 이런 목적을 위해 귀의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괜찮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귀의하는 것이다.
이어서 귀의경 앞에서 이렇게 관상한다. 지금부터 세세생생토록 나는 시방삼세 여러 부처님과 나의 근본스승을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티베트어로 이렇게 기도한다. “라마라쟈썬체오, 상제라쟈썬체오 최라자썬체오, 게덴라자썬체오” 티베트어로 외우지 못하면 “스승님께 귀의합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법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라고 외워도 좋다.
이렇게 여러 번 염송하다가 마무리할 때 이렇게 관상한다. 나와 다른 모든 중생이 삼보에 녹아들어간다. 삼보는 여러 부처님과 하나인 근본스승에 녹아들어간다. 근본스승은 무연의 법계로 녹아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 집착이 없는 경계에 잠깐 안주한다. 그리고 이 선근을 회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