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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향교 대성전 상량문

작성자마립간|작성시간01.07.03|조회수284 목록 댓글 0
경주향교는 경주시 교동 17-1번지에 소재하며 우리나라 향교중 가장 오랜 세월을 뛰어 넘어 한자리에서 이어진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본래 이자리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요석궁'이 있었던 유서깊은 터입니다. 신라 최고의 학자이자 31대 신문왕 때 국립대학교인 국학을 창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두를 정리하여 집대성하였고, 화왕계를 지어 왕을 가르친 홍유후 설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요.
이 설총이 국학을 창설하고 국학의 태학박사를 맡게 됩니다. 국학을 창설할 때 자신이 태어난 집에다가 학교를 세워 통일신라시대를 이끌어가는 인재를 양성하게 됩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지방의 교육기관인 향학이 되었고, 조선시대에는 향교가 되어 역시 지방교육기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경주향교는 대설향교로서 경상도내에서 규모가 가장 컷고 학생수도 가장 많았습니다.
현재의 건물배치는 조선 성종 23년 당시 경주 부윤이었던 최응현이 성균관의 건물배치를 그대로 본따 다시 지을 때의 배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성균관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4곳(성균관, 경주, 나주, 전주향교) 뿐인 전묘후학의 건물배치를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유교건축의 교과서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쪽의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공자를 비롯한 유현들을 제사하는 제향공간이며, 뒤쪽의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입니다.
이 향교가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대전란을 맞아 전소된 것을 난이 끝난 직후인 선조 33년(1600)에 기공하여 선조 35년(1602)에 완공된 대성전의 '도리이상 해체보수공사(2000년 6월)' 때에 발견된 종도리에 묵서로 씌어진 중건 상량문으로서 상당한 사료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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