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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의 허준과 실제의 허준 차이(3)-허준은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을까?

작성자게임천국|작성시간03.10.24|조회수303 목록 댓글 0
허준은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허준이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는가를 알려주는 자료는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의 의학 학습 과정은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서 가장 재미를 주었던 부분이며, 여러 학자들 또한 이 부분을 설명하려고 애썼던 부분이다. 추론이나마, "{동의보감}이라는 거대한 저작을 쓴 인물이 어떻게 해서 의학 지식을 높여나갔는가"를 살피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허준의 의학지식과 학문 수준을 어느 정도나마 가늠해볼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은 그의 나이 30세 때부터이다. 다행스럽게도, 허준 나이 30세-36세(1568-1574)의 행적이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에 일부나마 남아 있다. 유희춘이 김안국의 제자였다는 점이 둘의 인연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일기 내용 중 김시흡이 자주 방문하는 것이나, "유희춘이 허준의 어머니 김씨에게 팥 1말을 보낸 것"에서 그런 사실을 엿볼 수 있다.

{미암일기}에 드러난 허준의 행적은 두 가지 측면이 주목된다. 하나는 허준이 유희춘에게 책을 선물하는 대목이다. 1568년 2월 허준은 유희춘에게 {노자}, {문칙}, {조화론} 등 세 책을 선물하였으며, 같은 해 4월에는 {좌전} 10책과 당본(唐本) {모시(毛詩)}를 선물하였다.

{노자}는 도가사상의 대표적인 책이며, {문칙}은 경전과 제자백가의 수사학을 다룬 책이며, {조화론}은 일월성신과 재액(災厄)의 관계를 다룬 도교저작이며, {좌전}은 중국고대역사서이며 {모시}는 {시경} 가운데 1본이다. 선물한 책만을 가지고 허준의 학식을 논한다는 것은 다소 비약이 되겠지만, 훗날 {동의보감}에 광범위하게 인용된 경전, 사서류, 도가류의 문헌을 같이 놓고 짐작해볼 때, 30대 초반에 허준이 이미 유가와 도가의 경전 등을 널리 섭렵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또 값이 상당히 나가는 이런 책들을 유감없이 선물하는 것을 볼 때, 무엇을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는 30대 초반 허준의 경제력이 그다지 궁색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허준의 의술이다. {미암일기}를 보면 유희춘이 의술과 양생이 참으로 밝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처방을 내려 약을 지을 정도의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이 근무하는 의정부에 소속된 의약을 수시로 체크하기도 했다. 유희춘 자신도 의학적 지식이 낮진 않았지만, 관직이 대사성, 승지, 대사헌 등에 오른 그의 집에는 여러 명의 의원이 병의 치료를 위해 드나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의 벼슬이 벼슬인지라 그 중에는 당대의 명의 안덕수, 양예수, 손사균, 이공기 등의 이름도 보인다.

이들은 모두 당시 내의원의 의관으로 있던 사람들이다. 물론, 허준도 유희춘 일가 친지의 병 치료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가? 비록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허준의 의술이 제법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뜻한다. 특히 1569년 유희춘의 얼굴에 생긴 종기를 허준이 완치한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허준은 유희춘의 대단한 신임을 얻었다. 지금은 면종이 그다지 큰 병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중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허준이 그것을 고쳐주었으니 그의 고마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병이 나은 직후인 윤6월 3일 유희춘은 허준을 이조판서에게 천거하는 편지를 냈다.

물론 자신의 병을 고친 것이 큰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유희춘이 보기에 허준이 자신의 집을 드나들던 어의들 못지 않은 학문적 식견이나 임상적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그를 추천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과 허준의 모친, 그리고 자신의 스승인 김안국의 친분 관계가 작용했으리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상당한 학문적 소양과 의학적 능력, 이 것 우리가 30대 초반까지 허준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대략의 모습이다.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의 의학 학습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의학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공부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미암일기}조차도 거의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니, 단 한 가지 사실을 말해준다. 적어도 허준이 31세 이전까지는 내의원과 관련이 없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즉 그가 내의원, 전의감, 혜민서 같은 관아에서 의학을 학습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는 그가 당시 의관(醫官)이 되던 가장 흔한 길을 따르지 않았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방식이란 전의감과 혜민서 등에서 이루어진 교육을 받아 의과 또는 취재에 합격한 경우를 말한다. 당시 전의감에서는 의학생도 50명, 혜민서에서는 의학생도 30명을 두어 의학공부를 시켰으며, 지방에서도 규모에 따라 8명에서 14명까지 의학생도를 뽑아 가르쳤다. 물론 의학생도들만이 의과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도가 아니라도 의과에서 볼 시험과목을 공부하여 18명을 뽑는 초시와 9명을 뽑는 복시에 합격하게 되면 의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의과 장원은 종8품, 2등은 종9품, 3등은 종9품을 받았으며 차차 승진해서 높은 품계로 나아갔다. 허준이 관직을 받는 형식은 이런 경우와 크게 다르다. 허준은 의학생도를 거치지 않았다. 허준은 추천 케이스로 내의원 고위직에 올랐다.

허준은 어떤 방식으로 의학 공부를 했을까? 스승의 가르침 또는 독학의 길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유의태나 삼적대사와 같은 기인이사를 만나 심오한 의학의 이치를 깨닫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소설에서 허준의 라이벌로 그려진 양예수의 경우가 이런 모델에 따른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몽인(1559-1623)이 쓴 {어우야담}에서는 양예수가 대제학까지 지닌 호음 정사룡(1491-1570)을 만나 학문의 길로 들어섰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어우야담}보다 훨씬 후대의 저작인 {이향견문록}(19세기)에서도 양예수는 뛰어난 은자 "장한웅이라는 인물에게서 의학을 배운 것"으로 나와 있다. 두 책에서 지적한 스승은 다르지만, 양예수가 좋은 스승을 만나 학문과 의학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허준에 관한 기록을 보면 양예수의 것과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민간에서 떠도는 전설 같은 구전 설화를 제외하고는 문헌에 나오는 기록들이 한결같이 스승에 대한 언급이 없다. 스승을 말하는 대신{의림촬요}의 기록처럼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전과 역사에 두루 밝았다."는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 18세기의 저작인 이희령(1697-1776)의 {약파만록}에서도 "허준은 어려서 술업에 정통하였으나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하였는데...."라 하였으며, 19세기 저작인 {이향견문록}에서는 {의림촬요}의 것과 동일한 내용이 보인다.

이 내용은 모두 허준의 스승보다는 허준 자신의 개인적 자질과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당시 유성룡, 정렴, 정작 같은 유학자들은 모두가 독학으로 의학의 깊은 경지에 들었으며 우리는 허준에게서도 그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설령 그에게 스승이 있었다고 해도 그 스승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인물처럼 '엄청난' 인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 어느 기록에서도 허준의 스승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의 학습과 수련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기대 이상의 관심을 쏟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젊은 시절의 허준에게서 우리는 단지 후에 피어오를 싹만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만이다. 이후에도 그의 삶은 40여 년 더 펼쳐졌다. 그가 내의원에 들어간 이후 10여 년이 지난 후 그의 저작이 겨우 하나를 마쳤으며, 그보다 다시 10여 년이 지난 후에야 거대한 저작 {동의보감}의 집필이 시작되었다.

그보다 다시 10년이 지난 후에야 3종류의 간단한 저작이 출간되었고, 그보다 다시 3년이 지난 후에야 노작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그보다 3년 뒤에 전염병 전문서 2종이 출간되어 나왔다. 내의원 출사이후 40여 년 동안 계속 깊어지는 그의 학문 세계에 견준다면, 어린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의 그의 의학과 학문 세계란 단지 기초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절차탁마 대기만성(切磋琢磨 大器晩成)"--이는 허준의 삶에도 꼭 들어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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