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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속의 허준과 실제의 허준(6)-인간 허준>

작성자게임천국|작성시간03.10.24|조회수394 목록 댓글 0
6. 인간 허준

소설과 드라마에서 가장 풍부한 부분이 인간 허준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인격체로서, 의사로서, 리로서 그의 인간 됨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선한 존재, 열심히 노력하는 존재, 타인의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존재, 남의 아픔을 차별 없이 어루만져 주는 존재로 그려져 있다. 역사상 이런 인물을 찾는다면, 우리는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쳐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허준의 생애보다도 더 사료가 부족한 부분이 허준의 인간성에 관한 것이다. 너무나 자료가 없기 때문에 소설가나 드라마 작가는 더욱 용이하게 자신이 상상하는 인물인 성자 슈바이쳐의 상을 허준에 대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역사학자는 너무나 자료가 적기 때문에 그의 인간성을 말할 때 곤혹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요구한다면, 그의 인간성을 말할 수 있는 극히 제한된 사료에 기대어 억지로 거칠게라도 추론할 수밖에 없다. 또 많은 경우, 직접적인 사료의 해석을 통해서 그의 인간성을 설명해내기보다는 그의 생애와 작업을 통해서 "동어반복적으로" 그의 인간성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이랬을 때, 그렇게 얻은 해석이 그렇게 신빙할만한 게 못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 해도 허준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유용할 수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그린 것과 사뭇 다른 것을 말해 줄 수 있고, 그것들을 통해서 형성된 인상을 어느 정도라도 씻겨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허준의 성품을 직접 말해주고 있는 사료는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에서도 말한 바 있는 것처럼 "그가 총민(聰敏)하면서 학문을 좋아했다"는 기록이다. 그는 경전과 사서에 두루 밝았고 의학에는 더욱 정통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머리가 좋고 행동과 판단이 빠르며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던 인물이었음을 말해준다. 두 번 째 기록은 허준이 종1품 작위를 받았을 때 문관들이 그를 평가한 것이다. "허준의 위인 됨이 왕의 총애를 믿고 교만하고 방자했다.", "양평군 허준이 우둔하여 위인이 어리석고 미련하였는데 은총을 믿고 교만했다."

"허준이 본시 음흉하고 범람한 사람으로....", "허준이 본래 흉악하고 참혹하며 도리에 어긋난 악한 사람으로서...."는 내용이 그것이다. 허준에 대한 이런 평가는 모두 허준이 당상관, 동반직에 오른 이후에 나온 평가이다. 또 정치적으로 허준을 공격하던 연장선상에 있는 평가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평가로부터 유익한 정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허준이 당상관, 종2품, 종1품 지위가 올라가면서 그 지위에 걸맞는 행동을 했다는 점이다. 즉 서얼 출신으로 죽어지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의 권한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신분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지 않은 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간접적인 사료로도 제법 괜찮은 것이 있다. 허준의 선조 피난길 호종(扈從)이 가장 좋은 예이다. 문.무관, 의관 할 것 없이 다 도망쳤지만, 허준은 그 험한 길을 따라 나섰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의 본색이 드러나는 법! 허준은 강직하고도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대부들이 너희보다 못하구나" 라는 선조의 안타까운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허준은 대다수 사대부보다도 더 충성과 명분을 중시했다. 또 자신의 학문과 의술을 인정해준 군주에게 의리로 보답했다. 의리를 굳건히 지켰다는 점에서 허준은 늘 명분과 예의를 지킬 것을 부르짖던 보통의 사대부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었다. 그것은 이후 자신감의 표출로 이어졌을 것이고, 문신들의 질시를 받는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과감하고 솔직했던 인물이었던 듯하다. 두 가지 의학적 사례가 이를 시사한다. 첫째는 왕자(왕자)가 두창에 걸렸을 때, 아무도 나서는 이 없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나섰다. 그것은 그가 두창을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실패했을 때 벌어질 참담한 결과를 염두에 둔다면 쉽게 나서기 힘든 것이었다. 가만히 있었을 때에는 아무런 해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지만, 실패했을 때에는 비록 선조가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가 왕자를 죽였다는 비난을 뒤집어 써야 할 형편이었다. 광해군의 두창 때의 경우와 비슷한 모습이 죽음을 앞 둔 선조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데서 나타난다. 그는 계속해서 다른 의관과 문관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센 약을 처방하고 있다. 설사시키는 방법이 그것이다.

보통 보양하는 약들은 잘못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관들은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두리뭉실한 처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허준은 선조의 병이 깊어지자 더욱 센 약을 처방하였다. 그는 선조의 병이 보통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난치, 불치의 단계에 들어 있음을 잘 알았다. 그렇지만 이후 광해군의 말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선조의 병을 고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한 가지 더 살필 것은 그의 의서 편찬과 관련된 것이다. 그는 {동의보감}을 편찬하라는 명령을 받아 일을 착수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14년만에 그 임무를 완수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그의 학문에 대한 '집념'을 읽고자 한다. 소설과 드라마에서는 인생 역정의 집념을 그렸지만, 그보다는 학문에 대한 집념이 좀더 그의 인간상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는 한의학 고금의 의학 내용을 일일이 다 검토하면서, 얼개를 짜고, 또 그것을 수정하고 하는 방식을 통해서 좀더 나은 '완벽'을 향해 나아갔다. {동의보감} 이전에 저술된 저술의 내용을 {동의보감} 안에 담긴 해당 부분의 내용을 비교한다면, 상당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한결 나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동의보감}의 역병 관련 내용과 그 이후의 역병 전문서의 내용을 비교해봐도 이점은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이는 그의 학문에는 휴식이 없었음을 뜻한다.

이상의 내용만으로 인간 허준을 평가한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뒷다리 더듬는 격"이 될 것이다. 그 뒷다리를 만진 느낌이라도 적는다면 다음과 같다. "그는 총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늘 책을 끼고 살았고 매일 책장을 넘겼다. 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끈질겼다. 명분과 의리를 중시했다. 깐깐했다. 솔직하면서도 과감한 성품을 지녔다. 신분의 굴레 안에 찌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웠다." --이런 느낌은 소설 동의보감과 드라마의 작가가 읽어낸 인간 허준상, "의술을 향한 집념"과 다소 비슷하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 "다정다감하고 인자스러웠다"는 인상과 제법 거리가 있다. 내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오늘날의 작가는 오늘날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의사상을 역사적 인물인 허준에 가탁했다. 그와 달리 조선 중기의 실존 인물인 허준은 기술직 의원의 수준을 뛰어넘어 학문에 매진하고, 자신의 학문을 실천하는 꿋꿋한 학자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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