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간 속에 / 김광욱
태양이 밝아도
나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
햇빛이 눈부셔도
나는 그대를 보지 못한다.
어둠이 짙어도
나는 나의 촛불을 켜지 못한다.
밤이 아름답지만
나는 내 밤을 새울
시를 쓰지 못한다.
나의 도시엔
보석처럼 아름다운 밤이 있지만
나의 밤이 아니다.
그대를 만날 수 없다.
나의 거리엔 내가 없다.
그대의 내가 없다.
나의 그대가
나의 태양이
나의 어둠이 없는 것과 같이
이 도시엔 빛도 어둠도 없다.
나는 서 있다.
허지만 이내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나를 내세우지 못한다.
나는 군중 속으로 마음 놓고 걸어가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므로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으므로.
나는 걷는다.
허지만 내 모습은
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만약 그대의 시간 속에 있다면
교회의 십자가가 시계풀처럼 많은
이 도시에서
그 중 어느 십자가 하나를 선택하여
내 어깨에 지고
짊어지고
그대에게로 가고 싶다.
피를 흘리면서라도
그대에게로 가고 싶다.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