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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보면

찔레꽃이 필 때면

작성자박이달|작성시간21.05.09|조회수328 목록 댓글 2

그날은 5월 4일 아니면 9일이었을 것이다. 찔레꽃이 오늘처럼 하얗게 피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연도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4학년때(1963년)인가 5학년땐가였을 것이다. 뭔지는 잊어버렸지만 아마도 학용품을 사기 위해 우보장에 가려고 어머니에게서 10원을 받았는데, 학용품을 사고나면 몇원이 남게 되어 있는 큰돈이었다. 남는 돈으로는 과자라도 사서 동생과 나눠먹으라는 당부를 받았다. 어린이날 선물인 셈이었을 것이다.

장을 보고 나니 2원이 남았다. 이 2원으로 뭘 사야 할지를 재면서 장터를 너댓바퀴는 돌았을 것이었다. 엿장수가 엿가락을 몽당몽당 잘라서 파는 것이 눈에 띄었다 엿 한동가리에 1원이라고 하니 2개를 사서 내 하나 동생 한 개 나눠먹을 심산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아뿔사, 하늘이 노래졌다. 1원짜리 동전이 하나밖에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다. 얼굴마저 노랗게 되면서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1원밖에 없었다. 엿장수를 속여볼까도 생각했지만 여남은 살 꼬마가 노회한 엿장수를 속이는 것은 불가능함을 이내 깨달았다. 엿 한동가리를 사서 반바지의 아랫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귀향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지친 다리를 쉬려고 한길 가에 앉으니 철뚝 아래 언덕에 찔레꽃이 새하얗게 피어 있었다.

밀가루 하얗게 묻은 엿동가리를 꺼내서 만져보다가 이내 다시 집어넣고, 찔레꽃을 한 웅큼 따서 입에 넣었다. 엿처럼 달지는 않았지만 향긋한 꽃냄새가 입안 가득히 퍼지면서 허기를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찔레순도 꺾어 먹었다. 어린 찔레순은 껍질을 벗기고 잘근잘근 씹어 먹으면 달콤한 수액이 톡톡 튀면서 꽤나 요깃거리가 되는 것이었다. 찔레순 많이 먹으면 코에서 뱀이 나온다는 속설도 있었으나 믿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매례보 돌다리를 건너다가 다릿돌 사이로 흐르는 물에 엎드려 맑은 물을 실컷 마셨다. 그 때 그 물맛이 이제와 생각하니 진수무향(眞水無香) 바로 그것이었다. 눅눅해진 엿 한동가리를 어린 아우에게 쥐어주고, 나는 오다가 먼저 한 개 먹었노라고 했다. 1원을 잃어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웠고, 찔레순 꺾다가 가시에 찔린 손가락이 아리지만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보다 더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그 때 눅눅한 엿을 빨던 그 아우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버렸다는 것이다.

남겨진 청상의 제수씨는 어린 두 질녀를 오롯이 잘 키웠고, 모두 출가하여 잘 살고 있다. '장미꽃 피는 집'의 울타리에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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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불사조 | 작성시간 21.05.10 글이 참 좋아. 글재가 뛰어나고 감성이 풍부하구먼.이성희드림
  • 작성자박이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5.1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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