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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됨의 길에서
여러분의 영혼은 반드시 죽게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영혼이 아닙니다.
영적학습장(에덴동산)에서 스승과의 연결을 단절하기로 결심하고, 윤회의 지배를 받게 된 후부터, 생에서 생으로 이어지는 기억을 운반할 이동 수단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래야 바퀴를 새로 만들 필요가, 차라리 여러분 스스로를 재창조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며, - 매번 새롭게 육화할 때마다, 동일한 실수를 반복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동 수단, 즉 분리된 공간은 대부분의 영적인 가르침들에서 영혼<soul> 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물론, 스승의 통제에서부터 벗어나게 되면서부터, 의식적인 자아는 의사결정을 거부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에고가 이러한 의사결정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에고는 단지 이원성적인 의식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뿐이며, 따라서 그 이후부터 에고는 영혼에 대한 통제권이 의식적인 자아보다도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영혼은 이원성적인 의식에 기초한 여러 결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들 가운데 일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나쁘거나, 악하다고 부르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한편 다른 일부의 사람들이 보통 선하다고 부르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말의 요지는 그러한 모든 결정들은 이원성적인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들이거나, 아니면 하늘에 쌓아둔 보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이러한 결정들이 불완전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결정들은 여전히 원인체의 일부로서, 영적으로 여러분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배움의 체험으로 바뀔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실질적으로 모든 영적인 가르침들은 영혼이 부활하거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영혼이 아니라, 의사결정과 부활되는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에너지들입니다.
영혼의 부활은 어떠한 외적인 구세주가 여러분을 대신하여 일을 해주기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어떠한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식적인 자아가 자신이 했던 과거의 결정들을 기꺼이 보려고 해야 하는 과정이며, - 영적인 스승과 함께 일함으로써 - 그러한 결정들을 배움의 체험으로 바꾸려고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배움의 체험이란 처음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었던 의식을 초월하는데 도움이 되는 체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과거의 의사결정이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삶의 영적인 계단을 오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원천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과거의 결정들은 배움의 체험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결정들을 바라보아야 하며, 그것들이 이원성적인 이유를 이해하고, 그러한 결정들을 의식적으로 더 좋은 결정들로 대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식적인 자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려고 할 때까지, 사람들은 과거를 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보려고 하지 않거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했던 행위들을 정당화하고, 방어하려고만 합니다.
이로 인해, 어떤 의미에서는 변화의 필요성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동일한 패턴을 거듭해서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은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며, 따라서 실수마저도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새겨두기 바랍니다. 단, 의식적인 자아가 자기 스스로를 초월하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는 한해서 그러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육체를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영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육체보다 더 큰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이 "더 큰<more> 것"을 영혼(soul)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다수의 영성인들과 종교인들은 자기 자신을 영혼으로 알고 있으며, 영혼은 부활해야 하며, 불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내가 정의했던 것처럼, 영혼은 불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은 영혼, 즉 영혼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결정들은 반드시 죽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반드시 버려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형을 통해 보여주셨던 과정입니다. 십자가는 마음이 지닌 4개 단계에서의 이원성적인 결정들로 인해 움직일 수 없도록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결정들이며, 이것들은 이원성적이고, 실재하지 않는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마음에 기초한 결정들로 대체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원성적인 결정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정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한 결정을 - 영혼의 일부를 - 죽게 해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부활하기 위해, 의식적인 자아가 반드시 영혼을 죽게 해야 하며, 이원성적인 정체성이라는 유령<ghost>, 즉 영혼<마태복음 27:50>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분리된, 필멸의 영혼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것은 진정한 여러분인 의식적인 자아가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됨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필요조건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 자신을 영혼이라고 여긴다면, 만약 영혼이 사라지게 되면, 여러분은 죽게 될 것이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을 버릴 수가 없게 되며, 과거도 버릴 수가 없게 되므로,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삶의 과정, 즉 자기 초월이라는 행위가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여러분, 즉 의식적인 자아가 고차원의 정체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영혼, 즉 불완전한 정체성을 죽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열쇠는 존재의 핵심이 의식적인 자아이며, 의식적인 자아는 하위 존재의 어떠한 측면보다, 즉 영혼보다 더 큰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로지 의식적인 자아가 하위의 정체성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영적인 길에서 진정으로 앞을 향해 전진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전하는 이유는 이것이 아주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타락한 의식에 의해 영향을 받은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 적혀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로마서 3:23>"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게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겸손으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키워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일부의 사람들은 고차원의 세계에서 추락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타락한 의식과 완벽하게 동일시하고 있으며, 이들은 아주 복잡한 정체성을 구축해 왔으며, 이로 인해 그 너머의 것을 보는 것이 대단히 어렵습니다.
- 마이트레야의 메세지
(발췌 영적인 자유에 이르는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