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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성령, 재탄생. 재탄생의 12번째 광선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작성시간23.01.28|조회수24 목록 댓글 17

물과 성령, 재탄생


가슴이 순수한 사람은 축복받았다.
그들은 신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마태 15:8)

18.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이다.

20.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지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아니다. (마태 15장)


이 마지막 인용문을 보면, 내가 사람들의 외적인 행위에 주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식 상태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왜 대부분의 그리스도 교인이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찾아내고 자신의 의식 상태를 바꾸기보다는 외적인 행위를 고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일까요?

이제, 바리새인들이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내가 어떻게 말할지 시험했던 것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신을 사랑하라. (마태 22:37)"

거짓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요?

즉 외형을 그럴듯하게 취하면서 신에게 내면의 마음 상태를 숨긴다고 신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음을 다해 신을 사랑하는 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그야말로 영적인 시각장애인일 것입니다.

따라서 볼 눈이 있는 사람들은 구원이 외적인 과정이 아니라 내적인 과정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구원을 위한 필수 요건은 어떤 외적인 기준이 아니고 그것을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의 핵심적인 요건은 내적인 조건으로, 심리를 정화하고 모든 내적인 조건, 곧 의식 상태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교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이 믿는 것과는 달리 이것은 사소하거나 단순한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입으로는 나를 찬미하지만, 어쩌면 마음은 여전히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단순히 나를 주님이요 구원자라고 선언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기꺼이 자신의 심리를 살펴보고
자기 눈 안에서 들보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식의 근본적인 변화이며, 나는 그것을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 바리새인들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2. 어느 날 밤에 예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을 신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께서 함께 계시지 않고서야 누가 선생님처럼 그런 기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3. 그러자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신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4. 니고데모는 이렇게 물었다.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명확하게 설명하려 했습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6. 육에서 나온 것은 육이며
영에서 나온 것은 영이다."(요한 3장)

분명히, 니고데모가 이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했고,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 교인이 이 말을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내가 말한 것은 명백하게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심리적 재탄생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나요?

그것은 너무나 근본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신선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오직 재탄생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고 나중에 다루겠지만, 내가 했던 말이 니고데모의 문자에 얽매인 사고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상적인 의식 상태를 넘어설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실제로 했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나요?

그러려면, 기꺼이 성령(the Spirit)을 따라 흘러야 하는데, 성령은 인간의 관습, 편견과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다.

7. 새로 나야 된다는 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라.

8.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요한 3장)


내 말의 요점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일종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기꺼이 여러분의 의식 상태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전의 마음 상태를 기꺼이 놓아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기꺼이 낡은 자아감,
낡은 정체성의 감각을 죽도록 놔둬야 합니다.​

***​

니고데모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을 때, 니고데모의 마음은 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어떻게 육체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인지 이해하려고 고심했습니다.

그러려면 어머니의 자궁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은 육체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 말은 그야말로 상징이었고,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가졌던 의식 상태와 내가 재탄생의 결과라고 말한 의식 상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차이를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것은 실제로 대단히 심오한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니고데모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대부분의 인간이 신의 나라에 접근할 수 없는 의식 상태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식 상태에 있는 한, 즉 더 높은 의식 상태의 "결혼 예복"을 입고 있지 않는 한,

문자 그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신의 나라 바깥에 머물게 하는 의식 상태에 갇혀 있으며, 구원을 받고 신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더욱 높은 의식 상태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 더 높은 의식 상태로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두 의식 상태의 차이는 단순히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상태는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올라가려면 극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여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주전자에서 물이 모두 사라집니다.

실제로는 물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상태의 변화를 거쳐, 물 분자가 이제 공기 중의 수증기가 됩니다.

물이 새로운 상태로 다시 태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액체인 물에 있던 불순물은 주전자 안에 남겨집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의식의 재탄생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인간적인 불순물을 뒤에 남긴 채, 여러분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른 수준으로 올라갑니다.​

이 비유와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도 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내 말 사이의 연관성이 보입니까?

"물"과 "성령"은
더 깊은 의미를 감추고 있는 상징들입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구원은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칩니다.

최종 목적은 의식의 변형이지만,
이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단계는 "물로 태어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시다.

물과 성령 으로 태어나는 두 단계는 여러분과 나의 관계, 즉 살아 있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물은 그 관계의 일부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상징하고, 성령은 내가 할 부분을 상징합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지구에 온 이유는 여러분이 구원을 받아야 하지만, 여러분 스스로 그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이 신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의식 상태에 있고, 그 의식 상태가 폐쇄된 고리, 즉 출구가 없는 함정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이것을 진퇴양난의 딜레마(catch-22)라고 부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여기서는 거기로 갈 수 없다(You can't get there from here ; 가는 길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쉽게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함)"라는 것이며,

곧 지금의 의식 상태로는
신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러한 의식 상태에 있는 사람을 상징하며, 그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의식 상태가 닫힌 고리와 같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마음의 틀은 이 세상의 것, 곧 감각을 통해 볼 수 있고 외면의 마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겉모습에 너무 집중되어 있어서 그 너머를 볼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말을 문자 그대로만 해석할 수 있을 뿐, 그것을 넘어 그 뒤에 숨어 있는 더 깊은 의미는 파악할 수 없습니다.

더 깊은 의미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들을 영적으로 눈멀게 하는 의식 상태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 "무언가"가 바로 그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따라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과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고, 그들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있으며, 구원받고자 한다면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인간의 의식 상태로 인해 분별력을 잃어서 자신이 옳고,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며, 외부 종교에 속하여 그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구원받을 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상태에 있을 때, 그들은 눈먼 지도자들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비록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보통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 훨씬 더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눈먼 지도자들을 따를 때, 확실히 그들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구원의 과정에서 첫 번째 단계는 여러분이 뭔가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변화시켜야 할 것 중 하나는 여러분의 의식을 기꺼이 바꾸어 모든 거짓 믿음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에 의한 세례로 상징되며, 내가 제자들에게 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한 원래 의도는,

그것이 모든 인간 요소로부터 그들의 가슴과 심리를 정화하는 내면의 여정을 걷겠다는 다짐을 상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나의 가장 중요한 비유 중 하나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주인이 집을 떠나며 어떻게 세 명의 하인에게 각각 다른 달란트를 맡겼는지 설명했습니다(마태 25:14-30).

이 이야기의 핵심은
두 하인은 그들의 달란트를 증식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은 데 반하여, 한 하인은 그의 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가진 것마저 잃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담긴 더욱 깊은 의미는
내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구원이 점진적으로 그들의 의식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도록 나는 여러분에게 촉매, 일정한 양의 "달란트"인 뭔가를 줍니다.

여러분의 과제는 내가 준 것을 증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향나선을 창조하여, 마침내 나의 영(Spirit)과 더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점차 여러분의 의식을 정화하게 됩니다.

이 만남이 불에 의한 세례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제 인간의 의식 상태를 넘어 더욱 높은 의식 상태로 양자 도약을 함으로써 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요점이 보입니까?

물로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그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점차 다음 단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단계로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나는 또 다른 비유에서도 이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다.
하늘나라는 이런 누룩에 비길 수 있다.
(마태 13:33)

내면의 여정을 걷기로 다짐한 사람들은 나에게서 내 영(Spirit)의 한 조각을 받게 됩니다.

이 조각이 누룩을 형성하며, 여러분이 의지만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 의식의 덩어리 전체를 부풀어 오르게 함으로써 마침내 인간의 마음 상태를 초월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외적인 과정이 아니고, 여러분을 위해서 내가 모든 일을 하는 자동적인 과정도 아니며, 결과가 보장된 과정도 아닙니다.

그것은 상호 작용하는 과정으로, 신의 법칙에 따라 내가 여러분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누룩을 줄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여러분이 자신의 재능을 증식할 때만 여러분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 그리스도 의식에 이르는 열쇠 中에서


... 물에 의한 세례로 상징되며, 내가 제자들에게 물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한 원래 의도는,

그것이 모든 인간 요소로부터 그들의 가슴과 심리를 정화하는 내면의 여정을 걷겠다는 다짐을 상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 더욱 깊은 의미는 내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구원이 점진적으로 그들의 의식을 높이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과정을 시작하도록 나는 여러분에게 촉매, 일정한 양의 "달란트"인 뭔가를 줍니다.

여러분의 과제는 내가 준 것을 증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향나선을 창조하여, 마침내 나의 영(Spirit)과 더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점차 여러분의 의식을 정화하게 됩니다.

이 만남이 불에 의한 세례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제 인간의 의식 상태를 넘어 더욱 높은 의식 상태로 양자 도약을 함으로써 신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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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탄생의 12번째 광선

https://blog.naver.com/hyperion11/220802041534



2009년 5월 10일 킴 마이클즈를 통한 상승마스터 예수의 메시지


나, 예수는, 붓다의 이 시리즈 담론에 게스트로서 여기 왔어요. ​그러나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보는 예수로 온 게 아니라, ​상승 이후에 불성을 성취해가는 지금, 현존(I AM)의 완전한 존재로서 온 것이에요.

그렇게 부활의 12번째 광선에 대해 당신과 담화를 나누러 온 거죠. ​

재탄생(Rebirth_부활, 거듭남!)을,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이 들었듯이, 11번째 광선은 포기의 광선, 즉, 낡은 것(오래된 것)을 가도록 기꺼이 내려놓는 초월의 광선이죠. 무엇이 앞으로 올지 모르고 포기하는 입문이죠. ​

하지만, 포기한다고 자동적으로 새로운 자아가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이 그 낡은 것을 포기한 이후에 그대의 의식적인 자아, 그대의 자아감(자기감각)이 다시 태어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
당신의 그 의식적 자아가,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것,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것은 오랫동안 영적인 길을 걸어온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운 걸음이 될 수 있어요. ​

당신은 자신을 보는 게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눈에 든 들보를 보면서, ​뭔가 포기할게 있나 찾기도 하고, 무엇을 내맡겨야 하는지 찾고 있어요. ​이것은 길에서 필요한 단계이죠. ​

당신이 보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에고와 동일시되어, 어떤 거짓된 정체성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에고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어요.

그들은 외적인 길을 따라가면 자동적으로 구원이 보장될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

당신은 영적인 사람으로서,
이 의식은 초월해 올라가고 있겠지요. ​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고,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도록 포기 하려 하죠?

당신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음을 부정하진 않아요, ​

당신은 자유의지로 이원적인 환영들을 받아들였고, 그것들을 통해서 보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포기해야만 하죠. ​

그러나 여전히 그 자아가 아닌 요소를 포기하고 의식적 자아가 더 높은 정체감으로 거듭 새로워지는 단계를 어려워하는군요. ​아직은 스스로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거 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가는 것​

당신이 상당히 어려워하는 것은 당신 눈에 있는 들보를 기꺼이 찾으려는 과정 가운데에도 있어요.​

무엇인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을 기꺼이 인식하려고, 그 문제를 보는데 몰두하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당신이 얼마나 완벽하지 못한 존재였는지에 대한 기억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요

더 이상 과거에 그 문제를 가졌던 그 존재가 이젠 아닌데, ​지금 그걸 내려놓아야 함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군요.

사랑하는 형제여, 이해되나요?

당신이 거듭날 때, 새사람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이죠. ​

그러나 자유의지가 있으니 당신이 새로운 존재란 것을 안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그건 의식적 마음에서 안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실수를 저질렀던, 혹은 어제 버려진 그 사람이,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네요.


예수로서의 내 삶을 본다면, 나는 더 높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몇 번의 입문들을 통과해갔어요.

복음서 기록자들은 그리스도의 길과 내가 통과했던 입문들,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일부 내용은 떨어져 나가고, 일부는 아예 없는 것도 있긴 하지만, 이것을 공식적인 경전들의 행간에서 볼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나의 미션을 통과하기 위해서 더 높은 정체감을 받아들이는 몇 개의 입문들을 가졌었어요.

내가 이것을 기꺼이 하지 않았다면, 내 미션은 어떤 수준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멈춰있었을 거예요.

​그러면 나는 십자가에 매달려 마지막 한계의 유령(환영)을 포기하는 즉, 부활하는 궁극적인 미션까지 가지도 않았겠죠. ​

이것이 우리 모두가 상승을 성취하는데 있어 직면하는 입문입니다.


상승은 자동이 아니다

무엇이 승천(상승)일까요? ​
무엇이 상승 과정이죠?

더 이상 당신이 필멸의 인간이 아니라 영원불멸의 영적 존재라는 것을 허용​(accept 받아들이는, 수용하는)하는 것입니다. ​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상승할 수 없어요.

과거에 우리가 준 시혜들(은총, 보혜사) 같은 가르침에 기초하여, 한번 그런 자격요건들을 성취하면 어느 날 갑자기 휙~상승하는, 특정한 자격요건들을 성취하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성취해야할 자격요건들이 분명히 있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상승의 과정이 자동적인 과정은 아니에요, 그것이 기계적인 과정은 아니지요, ​

그것은 창조적인 과정이랍니다.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따른 문제입니다. ​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까요?
"죽음을 넘어선 생명을 선택하라"고 내가 말한 의미가 무엇인가요? ​

그래요, "생명을 선택하라"는 의미는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자아감, ​즉 당신이 이전보다, 심지어는 일초 전보다 더 한 자아의 감각을 선택하라는 뜻입니다.

에고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영적인 길이 갖는 전체적인 개념을 왜곡하려고 시도하죠. ​

에고는 여기서 두 가지 유리함을 가지고 있어요. ​당신이 긴 여정을 걷는 점을 이용해 그 궁극적인 목표가 아주 먼 미래에나 일어날 거라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죠.


상승마스터들의 이전의 많은 학생들은 그들이 상승해서 그리스도가 되리라 믿었지만 그런 일은 오로지 먼 미래에나 일어날 거라 여겼어요.

분명히 지금은 아니라고, 확실히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오늘 당장 바로 일어나지는 않는다고 믿었어요.

의식적 자아가 즉시 정체성의 감각을 이동하여 그리스도가 바로 될 수 있음을 믿지 못하게 하려고 에고가 시도하는 것이죠.

에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또 다른 것은 어떤 궁극적인 상태가 있고, 궁극적인 입문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것을 통과해 나가야 영원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아이디어를 거짓교사들과 에고가 이용한다는 것이죠.


상승 영역에서도 성장을 한다


형제여, 이 메신저가 상승마스터들로부터 그 개념을 들었을 때, 킴은 많이 의심을 했어요,

왜냐하면 처음에 상승마스터들은 완벽한 존재들이어서 상승한 후엔 성장 같은 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킴의 내면에선 그 개념을 안 받아들여,
그저 진실이 아니겠거니 생각했어요.

​나중에 상승마스터들도 성장하고 우리처럼 자아감을 초월함을 인정했을 때, 상승마스터들에게도 상승으로 이끄는 유효한 길이 제시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

당신이 보는 것처럼 나는 특정한 수준의 그리스도로 상승하였어요. 이제 나는 붓다수준을 성취해가고 있죠,

그것은 그리스도보다 더 높은 수준인데, 상승한 이후 아직 성취하진 못했어요. ​(이 메시지가 나온 2010년 이후 메시지에선 예수가 붓다의식을 성취했다고 함).

나의 재능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어요.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

나의 자아감을 매번 연속해서 재탄생하게끔 허용해야만 가능합니다. ​

그리스도의 단계에서 붓다의 수준을 성취하려면, 당신은 최소한 10,000번을 다시 태어나야 해요.

그래서 이 말을 이 행성에 있는 대부분의 인류가 가진 의식수준에서 상승한 상태까지 이동하기 위해, 여러 번 계속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세인트 저메인 자신이 상승하기 위해서, 백만 번의 옳은 결정들을 해야만 했던 상승의 자질을 들었겠죠.

올바른 결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LIFE)의 결정입니다.

당신이 더 높은 자아의 감각 안으로 거듭나려는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인류들이 속해 있는 보다 낮은 의식 상태와 그리스도 의식 사이의 갭을 한 번에 채우는 게 가능할까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절대 그런 일이 없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겁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의식은 매순간
더 높은 정체성의 감각으로 이동할 수 있어요,

더 높은 자아의 감각으로 말이에요, ​
이것은 정말로 진행 중인 과정이에요.

2,000년 전에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한 것은, 매일 매일 그는 인간적인 자아의 부분을 죽이고 더 높은 자아의 감각으로 재탄생하도록 허용했다는 의미입니다. ​

그렇다면 그처럼 매일 죽는 것도 좋지만, 매일 여러 번 죽어서 속도를 높이면 훨씬 더 좋겠지요.


궁극적인 입문이 있다는 꿈을 포기하세요

궁극적인 어떤 입문이 있고,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서 미래에 거기에 도달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으세요.

대신, 생명의 강은 하나의 과정이고, 언제나 끊임없이 흘러가는 움직임이고, ​지속적이고, 영속적으로 자아를 초월한다는 그 진리를, 그 실재를 허용하세요.

​붓다가 설명한 것처럼, ​특별한 자아의 감각에 집착하게 되면 죽음의 의식, 바로 이원성 의식으로 당신은 빠져듭니다.

상승한 상태에서도, 영구적이고, 고정된 정체성의 감각을 갖지 않아요. 당신은 끊임없이 상승하죠. ​

사실 상승한 마스터들이라고 말하는 대신 상승하고 있는 마스터들이라고 말하는 게 맞는 말이겠네요.

​끊임없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높은 자아감으로 재탄생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사실 내가 2,000년 전에 가져와 지구에 구현해내려는 것이고, 지금 현존의 완전함 속에 재탄생의 12번째 광선을 대표하는 위치로서 그 기반을 잡아가고 있어요. ​

사람들이 자신의 오래된 정체성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특정한 지점을 초월하도록 가속화시켜, 새로운 자아감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이 상황은 한발 앞선 영적인 추구자로서는 참으로 최고의 기회이죠. ​

그렇지만 당신이 완전히 다시 거듭나려면, ​지금 당신이 새로운 자아의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것은 "저기 밖에" 여전히 거리감 있고 언젠가 가져올 이론적인 개념이 아니에요.

당신이 어제는 어떤 실수를 했을지 몰라도 그 실수를 보고, 그 실수했던 의식을 보면서 그걸 내려놓으면, ​당신은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난 존재이죠.

​오늘의 자아는 어제의 실수로 만들어진 자아이거나, 만 년 전 육화했을 때 만들어진 자아가 아니랍니다.

그러므로 오랜 자아의 감각에 대한 감정에 집착할 필요가 없고, 그 기억에도 매달릴 필요가 없어요.


죄책감은 건설적인 목적이 없다

물론, 어제의 당신이 누구이고, 어제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수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몇 생애 전에 했던 일도 기억할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

이 메신저는 에고와 거짓교사들이 그의 마음속에 실수(에 대한 기억)를 투사했었던 그 시기를 통과하며, 계속해서 말했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실수를 했던 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하지 않고 있고, 지금의 나는 그 실수를 하지 않았어. 그러니 나는 그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

당신도 이런 시기를 통과하게 될 거에요. ​당신이 걸음마를 배우던 시절을 돌아보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어요.​

겨우 몇 달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면서 어설프게 넘어진다고 죄책감을 느끼던가요? ​지구에서는 왜 이런 것에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나요?

​어른이 되서도 과거에 실수한 것, 혹은 과거 생애동안 만들어 놓은 실수들로 죄책감을 왜 그렇게 느껴야하나요? 그저 가게 내버려두세요.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은 이것보다 더 한(큰, the more)존재입니다. 예전의 자아감을 돌아보고 뭐든지 잡으려 한들 천국에선 아무런 효력이 없어요. ​

과거를 잡으려는 것은 오로지 아래, 거짓교사들, 타락한 존재들로부터, ​에고로부터, 집단의식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오는 것이죠. ​그게 어디서 오든, 그것은 비실재한 것이에요. ​

비-실재는 실재인 당신의 의식적 자아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분명히, 우리 모두는 이것이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란 것을 이해해요.


당신의 그 오래된 의식상태를 털어버리도록 불꽃과 함께 당신에게 기원합니다.

당신이 나의 불꽃으로 끌어올려져 쉽게 이 환경에서 벗어나지만 다시 오래된 패턴 속으로 후퇴하는 것도 인정해요. ​

당신이 오래된 패턴 속으로 후퇴하면서 무엇이 따를까요? 당신은 과거를 생각하며 말하겠죠, "오, 예수가 나한테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바로 해버렸네. ​나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아 죄책감을 느껴야해." ​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전의 패턴으로 끌려가는 거예요.


에고는 고정된 정체감을 원한다.

여기 진실을 말하자면, 에고는 생명의 강과 함께 흐를 수 없어요. 에고는 지속된 일정한 자아의 감각을 유지할 수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고정된 정체감이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에고는 당신이 스스로를 끝없이 초월해 갈 때 존재할 수 없어요. ​당신은 밖으로 나가, 몇 가지 낡은 이전의 관행에 조종될 수 있지만, ​당부하는데 단순히 그것을 포기 하세요!


당신이 거듭난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무엇이 돌아오든 그것을 포기하세요. ​당신의 재탄생을 허용하세요.

​어떤 더 낮은 의식상태에서 언제든 투사가 되어도, ​거짓인 것을 보고, 그것에 빠지지 말고, 빠져 들어가 확대 해석하지 말아요. 당신의 의식적 자아는 거짓을 통과해서 왔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

​그러나 당신의 세속적 자아는 여전히 그 관행에 직면해 있던지, 혹은 대중의식에서 투사된 것들과 함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자신에게 "​나는 이것을 포기하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체험하고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래요, 실제로 당신이 육신을 갖고 밀도 높은 구체에서 걷는 한, 대중의식에서 투사된 관행들(momentums)에 직면할 것이나, ​한번 그 거짓말을 통과해 보게 되면, 당신에게 직접 겨냥된 이 투사를 단순히 포기하고 거듭남을 받아들여야 함을 인식하지요. 이제 이것은 당신이 아니라는, 당신은 이것보다 더 한 존재입니다.


매번 에고가 뭔가를 당신에게 투사하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거듭남에 다가가도록 이용하세요. 더 높은 정체감을 허용하면, 에고는 사실상 아주 듬성듬성하게 흩어질 거예요. ​

계속되는 자아상승으로 인해 에고는 매우 불안해지고, 산산이 부서져버리죠. 그렇게 당신은 쉽게 에고를 초월하여 가속하게 되는 거죠.


​여전히 분리된 자아의 잔재들이 남아 있겠지만, 의식적 자아는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게 되요, 의식적 자아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것들에 근거한 정체성 감각에 영구히 자신을 고정시키지 않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고정된 정체감을 벗어난 영적인 존재이지만, 끊임없는 ​생명의 흐름과 같이 흘러가며 중단 없이 자아의 감각을 초월해가게 되죠.

당신은 이 세상의 것들에 근거를 둔, 고정된 영구성 혹은 반영구적인 정체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당신에게 현재 자아감의 어떤 한계가 나타날 때마다, 그것을 가게 내버려두고 다시 태어나세요. 더 한 존재로 재탄생함을 받아들이세요(You accept that you are reborn as MORE).

​에고는 그대를 속박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왕자도 그대를 통제할 수 없게 되어요, ​사랑하는 그대여.


세상의 왕자는 한계 있는 존재이다

이 세상의 왕자는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있나요? 이 세상의 왕자는 필멸의 존재입니다. ​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 악마가 거대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할지라도, ​그 악마는 제한된 힘만을 가질 뿐이죠, ​악마는 오로지 제한적인 인식만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악마가 원하는 것은 당신에게, 당신이 고정된 정체감을 받아들여 어떤 특정한 수준으로 되돌아가게 붙잡아 두고, 다른 사람들한테 또 달려가 고정된 정체감을 수용하도록 만들려고 하지요. ​그는 자신의 라운드를 다 돌고 돌아와도, 당신이 여전히 고정된 정체감에 빠져있길 바라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이 그 정체감을 초월한다면, 그 악마가 돌아와, 충격을 먹고 ​"그 사람 여기 없네, 어디 간 거지?" ​그리곤 이제 그는 당신의 새로운 정체감을 따라잡고 어떤 고정된 정체감으로 돌아가도록 해야만 하죠. ​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서 주의를 빼앗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해야 하는데,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과거 정체감을 초월한다면, 그 악마는 힘이 쭉 빠져버리고, 이 세상의 왕자는 너무나 당황해서, 더 이상은 그의 통제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죠. ​

그렇게 되면 가속되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이 세상의 왕자조차도 그의 오래된 정체감을 초월 해야만 해요. 그렇게 모든 것이 끌어올려 지는 겁니다.


"만일 내가 들어 올려 지면, 모든 사람들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이것은 집단의식을 끌어올린다는 의미도 되요. ​

고타마(붓다)가 작년, 새해에 설명한 ​"그대가 어둠의 군주가 있는 사원에 들어가면, 그대는 거기 어두운 군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네. 그것은 모두 빈껍데기이고, 궁극적인 실재가 없지"처럼 되는 것이죠.


집단의식의 중력에서 그대 스스로를 끌어내도록 가속화하기 위한 열쇠는 ​자신을 끊임없이 가속화하는 것이에요. ​

그렇게 해야 당신은 그들이 무엇을 당신에게 투사하든 상관없이 그것을 이용하여 그대의 정체감을 초월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지요. ​

당신이 새로 태어난 것을 허용하세요. ​​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랍니다.


에고 혹은 거짓 교사들 혹은 집단의식 혹은 당신을 따라잡으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겠지요. ​

당신을 따라잡는 것은, 당신이 물리적 육체 안에 있을 동안이겠지만, ​바로 당신은 다시 거듭나도록 허용하세요.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런 당신을 따라잡으려고 애써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항상 따라잡기 게임을 하는 지점에 오게 되겠지만, ​당신은 당신을 통제하도록 고정된 정체감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환전상들의 테이블을 뒤엎죠. ​

그런 환전상들은 당신을 또 따라 잡으려하고, ​이건 고양이가 쥐 잡듯 공격을 늦출 수 없는, 어느 정도 당신은 즐기기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이원적 극성에 있는 상대편을 없애려고 하는 이원적인 게임은 하지 않지요.

대신 더 영리하고 한 수 앞서서 이 세상의 힘을 초월하려는 더 높은 버전의 게임을 당신이 즐기려고 하겠죠.


당신의 존재가 거듭나는 과정에 진실로 몰입하면 이건 아주 쉽게 할 수 있어요.

이제 당신이 궁극적으로 부활(재탄생, 거듭남)하는 지점에 오게 될 때, 거기서 이 세상의 왕자는 당신의 자아감에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당신은 그 왕자보다 한 수 앞서는 즐거움 같은 것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되고, ​이제 다른 것들에 당신은 집중하죠.


​즉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죽음의 의식에서 올려서 거듭나게 할지 시범보임으로써 그들을 깨우는 일에 몰두하게 되죠. ​그들을 깨워 현재의 자아감에 도전하도록 가르치죠.


12번째 광선의 입문들


12번째 광선의 입문들은 한 번에 하늘로 부활하여 영원히 어떤 고정된 정체성을 갖게 되는 그런 입문들이 아니에요. ​

사랑하는 그대여,
재탄생(거듭남)은 존재들의 영원한 과정이에요.

우리가 말해온 것처럼, ​세상은 마터-빛 위에 어떤 정신적인 이미지가 투사되어 창조된 것이죠. ​

​매초마다 스크린에 많은 개별적 이미지들이 투사되어 영상들이 투영된 영화에 비유하는데, ​그대의 물리적 감각들은 그 개별적인 움직임들을 볼 수 없어요.

당신의 자아감이 재탄생하는 지점에서 당신은 현재 불균형 되고 부족하고 가난한 상태에 있는 지구행성이 단순히 정신적 이미지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죠. ​

그 정신적 이미지가 바뀌었다면, 지구는 더 높은 실제로 즉각 구현되었을 것도 알게 되지요​.

그렇다고 이것이 지구가 즉각 움직여 하나님의 왕국으로 바로 구현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

만약 그랬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정체감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을 거예요. ​그들은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없어서, 여러 정체성 위기를 겪었겠죠, ​그러니까 지구는 점진적으로 올려 져야 해요.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 같은 상승호스트들과 지구를 창조한 엘로힘 역시도 지구의 어둠, 그 불완전한 이미지들을 없앨 만큼 즉각적으로 많은 빛을 가져올 권능을 갖고 있어요. ​그러면 지구는 원래 설계된 순수함을 바로 드러내겠죠.

그러나 그렇게 했었다면, 지구에 사는 더 낮은 의식상태로 하강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했을 거예요. ​


​그들은 지구에서 제거될 수밖에 없어요. ​
말 그대로 죽음이죠.

그들의 자아감은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없으므로 물리적으로 죽게 되요. 그리고 나면 그들은 다른 행성으로 가야합니다.

​지구는 성장을 위한 플랫폼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지구를 끌어올리는 그런 방식에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지구의 거주민들의 의식을 올리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해요.


지구에 많은 사람들이 자아감을 상실할 만큼 많은 빛은 방출할 수 없으므로 우린 아주 섬세한 균형을 가지고 적당한 양을 풀어놓고 있어요.

​스스로를 끊임없이 매일, 매 순간 재탄생하도록 허용하고 그 빛에 조율하여 ​12광선의 입문을 통과해가는 육신을 입은 당신이 정말 필요​합니다.


매순간 더 낮은 자아감과 더 낮은 진동을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단순히 인식하세요. ​더 이상 그런 낮은 의식상태에 영향 받지 않는 거듭나는 자신을 받아들이세요.



한 사람이 했던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시범을 보임으로써, 심지어는 당신 자신에게 시범을 보임으로써, ​당신의 자아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에요. ​

특정한 신체적 병을 가졌거나 감정적 정신적 상태에 있었거나 이것저것 성격적인 분열을 겪었더라도, 그 사람이 이제는 당신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를 보여 보세요. ​​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에게 가능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답니다. 상승마스터들의 오랜 좌우명은, "한사람이 한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다." 이에요.

2,000년 전 내가 했듯 한사람만 시범보이는 것으론 이 시대엔 충분치 않아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시범보이길 원하며,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이들이 한 것을 보고, 나 또한 할 수 있다고 여기길 바래요. ​​

이것이 자유의 물병자리 시대의 의식으로 이동하는 문턱에서 필요한 것이에요.


​이 시대는 정말로 창조적인 자유의 시대입니다.

다시 창조하는 자유는, ​당신의 그 자아감을 다시 창조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무력으로 통제해야한다고 여기는 그들의 환경, ​심지어 지구의 물리적 환경도 다시 창조할 자유이죠.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이미지를 보강하고 하나님에게 구원받기 위해선 외적인 구원자와 외적인 종교가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전통종교와
당신은 교양 있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물질만능의 과학, ​

이 두 가지는 사실 '인류는 신체를 가지고 초월하여 물리적 환경을 바꿀 집단적인 힘이 없다' 는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있어요.



인류의 자아감은 부활해야 합니다


인류의 자아감은 거듭날 수 있어요. ​​
그것은 사실 역사를 통해 여러 번 드러났었죠.​ ​

중세유럽 사회에서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사람이 하루아침에 깨어나 ​"오, 이제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아"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죠. ​절대로 그렇진 않아요, ​

사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몇몇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죽음을 당하고 거듭거듭 나서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진 거죠.


아무튼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에 기초한 집단적인 자아감은 죽고, ​지구가 둥글다는 새로운 인식에 근거하여 인류의 자아감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많은 변화가 이어졌죠. ​

르네상스와 산업혁명과 과학혁명 등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과학은 아직도 변화를 가져오는데 기여를 하고 있어요.

비록 중세시대에 가톨릭이 사람들을 물질만능으로 타락하게 만들었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앞으로 오는 몇 십 년 안에, 과학은 스스로 물질만능을 넘어서 도약할 것입니다. ​
물질 만능주의로는 과학을 제대로 장악할 수가 없어요. ​

낡은 사고방식으로 종교와 영적인 사람들을 계속해서 장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

사실 오늘날 아주 많은 영적인 사람들이 가톨릭교회에서 장악한 중세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크리스천 운동의 최초의 의도(취지)​


지구를 대표하는 진정한 교회로서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가톨릭교회조차도 더 높은 자아감으로 거듭나고 있어요. 실제로 그리스도를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조직이란 앞으로도 없을 거예요.


그​리스도가 무엇인가요? ​
끊임없이 다시 탄생하는 과정 아닌가요?

​그리고 어떤 조직이란 필요에 의해서만 지속성을 가지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랄 수 없죠. ​

그리스도란 계속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이원적 창조, ​즉 반-그리스도의 마음에서 튀어나온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에게 또 다른 보혜사(comforter)인 성령(Holy Spirit)을 부어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라는 말처럼 2,000년 전 내가 시작한 운동은 계속적으로 거듭나게 되며 지속적으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에고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외견상 지속되는 거듭남의 혼란한 상태처럼, 얼핏 모순덩어리로 보이는 영적인 지혜의 가르침들을 다룰 수가 없죠.

상승호스트들에게 조율할 수 없어서, 오늘날 더 낮은 영체들에 조율하고 있는 채널러들 가운데서도 일부 찾을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살아있는 그리스도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점진적인 계시라고 부르는 성령의 흐름에 유지되어 함께 호흡하며, 끊임없이 ​스스로 초월할 잠재력도 있어요.

그래서 그리스도가 현재 있는 종교 안에서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요성이 있어요. ​불성 역시 재탄생할 수 있겠죠.


​물론 붓다가 새로운 가르침과 새로운 인식을 가져올 수 있는 전진하는 감각과 자아를 창조하기 위해 왔었던 것인데, 현대의 불교신자들이 아직도 물리적으로 2,500년 전 혹은 2,000년도 더 된 경전을 공부한다는 게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요? 사랑하는 형제여, 이 아이러니를 볼 수 있나요?


더 깊은 이해로 다시 탄생한 수피 전통의 신비 이슬람은 거절하면서, ​수세기 전에 가져온 코란을 무슬림들이 돌아보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나요? ​

모든 종교에서도 이것을 볼 수 있고, 과학에서도 보고, 도처에서 그것을 봅니다. ​이것은 재탄생을 거절하고 오래된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기꺼이 거듭 나려는가

사랑하는 형제여, 그런 것들을 명확히 보는 영적인 사람으로서, 이제 돌아서서 거울을 들여다보세요, ​​

오래된 정체감을 붙들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살펴보세요.

​​"어떻게 해야 내가 쉽게 거듭 새로 태어나고 더 이상 이전의 그런 끔찍한 사람에서 벗어날까? ​어떻게 그걸 좀 쉽게 할까?"

​그대는 이 세상의 왕자와 그 에고의 추론에 빠져버렸던 것이죠.

우리가 이 시리즈 담론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에고는 말하죠. "오, 너는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너는 날 무시할 순 없어. 너는 모든 것을 포기하지 못해."


​그렇지만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

매순간 그 에고라는 녀석이 당신에게 세속적인 모자란 자아를 가지고 다가오면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나는 널 포기한다. 물러가라~
그리고 현존으로서 내가 다시 태어난다!"


당신이 이런 다짐을 매번 하면서, 계속 노력한다면, ​그 같은 포기의 여세를 몰아서 거듭남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때 에고와 이 세상의 왕자는 맥을 못추 게 되요.

그들은 계속되는 거듭남을 쫓아갈 수 없고, 그들은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죠. ​그 에고를 훌쩍 넘은 자아감에 가속 패달을 밟아보세요.


그렇지만 당신이 로자리를 지속적으로 하며, 에고를 소멸시키는 빛을 기원한다 할지라도, ​

행성 지구차원에서 나온 당신 자신의 에고가 있을 때는 그 에너지로 그 에고를 먹여 살릴 수도 있으니 집단의식을 또 높일 필요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 역시 똑같이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가능하고, ​그때 당신은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각성을 가져오는 파트가 되는 거예요.


그것은 과거를 초월하는 나 자신이 부활할 뿐 아니라, 인류가 부활하는 것이고, 사회가 부활하고, 행성 지구가 부활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어요. ​

낡은 정체감으로 인해, 현재 드러나고 구현된 모든 불균형과 가난, ​그리고 물리적 질병들과 전쟁 분쟁과 갈등 같은 많은 한계들이 생겨났지만, ​우린 그 오랜 정체감에서 벗어나 거듭날 수 있어요.



문제를 키우지 마라


붓다가 설명해온 것처럼, 이원성 의식으로 이원성 의식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분석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어떤 문제를 풀 수 없어요.

오로지 당신은 거듭나는 존재로서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그 문제는 더 이상 당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요.


​문제는 어떤 특정한 의식 상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그 의식상태에서 벗어나 ​거듭나게 되면, 그 문제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그들의 빛을 그 의식상태 속으로 던져주지 않게 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빈껍데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어떤 한 지점, 일부 그리스도화 된 존재가 나타나는 시점이 와요. ​


​이제 인류가 충분히, 인류의 임계수치가 그런 의식상태를 포기하게 되면, 개별적인 그리스도화 된 존재가 나타나 공개적으로 도전하게 되죠. ​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집착하고 있던 이원성 의식은 붕괴되고 중지되죠. 이제 모두는 깨어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오, 이제 분명해 ."


여기서 실제는 무엇일까요? ​
어떻게 오랜 방식이 거짓이라는 게 확실해질까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명백해진 것은 확실히 그리스도를 성취한 한 존재가 대담하게 함선 3척을 가지고 바다를 항해하여 돌아와 ​"나는 새로운 땅을 발견했고, 나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역사를 통틀어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그들은 종종 그리스도화 된 존재로 보기 어렵게 인간적인 약점을 확실히 가지고 어느 정도 위장해서 나타나지만, 그리스도 수준을 분명히 성취한 것이죠. ​그럼으로써, 그들은 집단의식 속에 있는 특정한 환상에 도전하는 도구가 되었어요.


공공연하게 공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그 환상을 보면서 깨어나게 되었죠. ​

영국의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 : 영국의 정치가·박애주의자·저술가·노예 폐지론자)는 노예에 대한 환영을 극복하는데 수년간 도전하고 노력함으로써 마침내 돌파구를 찾게 되었어요.


이제 영국 사람들은 옛날을 돌아보며 말하지요. ​"애초부터 명백히 잘못된 노예문제가 어떻게 포기가 거론될 만큼 문제가 되었을까?"

그러나 그리스도를 성취한 어떤 사람이 그 환영을 없앨 때까지는, ​환전상들의 테이블을 뒤집기 전까지는, ​그 문제는 [그런 방식으로] 보지 못했어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외적인 마음으로 보게 되고 갑자기 그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그것은 실로 의식에 있어서 지진처럼 거대한 변화이지요, ​모든 게 확 바뀌고, 새로운 관점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도록 돕기


비록 이전에는 그것을 사람들이 볼 수 없었어도 ​관점이 변화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것들을 보게 됩니다.

당신들 가운데 많은 수가 그것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특정한 육체의 질병을 가지고 육화해 오고 있지요.

얼마 전만 해도 암은 사형선고처럼 인식되어 아무도 이 병에서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이제 많은 이들이 살 수 있다고 새롭게 인식하고 있잖아요. ​


이것은 결국 의식의 변화로 가져온 것으로 보이지 않나요?

앞으로 암은 그저 다른 어떤 병처럼 치유될 수 있다는 수준까지 올 거예요.

페니실린이 발견되기 전에는, 폐렴은 치명적인 병으로 거의 아무도 살지 못했으나 집단의식에서의 변화가 그 치유방법을 발견하게 만들었고, ​이제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평범한 병에 불과하지요.

이것은 마음상태의 한계를 포함하여 어떤 제한된 상태에 관한 사례이고, ​전통적인 종교의 거짓말을 포함해서 말이죠.


​사랑하는 형제여, 사람들에게는 도전할 필요가 있는 수많은 환영들이 있어요.

​자신을 살펴보고 심사숙고해서 사람들을 집착하게 만드는 이런 환영들 가운데 ​어떤 것에 도전하려고 육화하게 되었는지 당신이 자원한 ​신성한 계획의 일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면, 당신이 거듭나도록 허용하는 지점에 신중하게 올 필요가 있고, ​어떤 특정한 환영들에 도전할 그리스도의식 수준을 가지도록 허용할 수 있게 되지요. ​

당신의 내면에서 그런 신념들이 자주 느껴졌기 때문에 행동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것이죠.

"이것을 해야 만해, 이것을 할 권리가 있어, 이것을 성취해야만 할까?" 등으로 분석하지도 않느냐구요?

절대 아니에요,
당신은 그저 열심히 할 뿐이에요.


당신은 그 불꽃, 현존(your Being)에서 오는 그 불꽃으로부터 흐르죠. ​

그 불꽃은 항상 거기 있지만 당신이 더 높은 정체감으로 거듭나기 전엔 흐를 수 없었어요.

​비로소 당신은 세상의 사원에 들어가 환전상들의 테이블을 뒤엎을 권리가 있고, ​그들에게 그 성전에 있을 권리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 '성전(사원)'은 사람들의 마음과 집단적인 의식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나는 하나님의 현존으로 네가 실재하지 않음을 선언한다.

​"너는 이 행성에 있을 권리가 없다.
나는 하나님의 왕국으로 이 행성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내가 했던 그 일들을 하라


내 미션의 본질적인 목적이 바로 그 거짓말을 드러내고, 그 거짓에 도전하고, ​당신이 거짓말을 초월하여 오를 수 있게 시범을 보이는 것이지요. ​

나를 믿는 사람들과 내가 걸었던 길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했던 것, 그리고 나보다 더 위대한 것들을 형제들이 할 것이라고, 내 마음속에 있던 가장 높은 비전으로 말하였어요.


​과학의 시대인 현대에 맞지 않는 엉뚱한 기적들을 형제들이 할 필요는 없죠. ​

사람들을 붙잡아두고 있는 사원의 사제들, 그들의 하나님을 지키려고 거짓으로 사람들을 가두어, 사람들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가지 못하게 하는 이 시대에 활보하는 현대의 환전상들에게 도전하라고 당신에게 요청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인식과 이 해면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당신은 내가 2,000년 전에 했었던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들을 할 수 있어요. ​

더 수준 높은 가르침을 가져올 수 있어요. ​
당신은 할 수 있어요! ​

심리적인 면에서 그 거짓말들과 에고가 어떻게 침투하는지, 이 세상의 왕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외적인 힘들이 내부의 적을 통해 사람들을 어찌 통제하는지를 드러낼 수 있어요.


우리들 모두는 이것을 할 가능성(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그리스도 단계에서 거듭나도록 허용할 필요가 있어요. ​

우선 작은 그룹의 사람들에게 그렇지만 잠재력이 더 큰 그룹의 사람들에게 그 거짓말이 실재하지 않음을 드러내서 가속하는 것을 실례로 보여주는 것이죠. ​


​처음부터 거짓에 근거했기 때문에
비-실재에서 나온 의식은 생명이 없어요.


이것이 당신을 위한 나의 비전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미 부활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당신이 거듭난 존재라는 것을 알지 않나요?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런 존재로 행동해야 되지 않나요? ​사랑하는 형제여, 그 문제를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 예수는 지금의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그렇지만 당신은 내가 보는 것처럼 더 한 존재입니다(MORE that I see). ​

위에서 이미 더 한 존재입니다.

여기 아래에서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위에서처럼 여기 아래에서 모든 것이 될 수 있어요.


이것을 잘 숙고해 보세요, 사랑하는 형제여. 당신은 스스로를 재탄생한 존재로 인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여 지금의 당신이 됩니다.

그리고 옛것을 회고하거나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입니다.



[출처] 부활의 12번째 광선 The twelfth ray of re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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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25 예수님 메시지ㅡ 거짓교사들이 사람들을 이원성에 빠지게 하는 방식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OJg/365?svc=cafeapp

    Breakthrough 20 Idolatry of spiritual teachers (돌파구 20. 영적인 교사들의 우상 숭배)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OJg/358?svc=cafeapp

    사람들이 자신의 눈 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이유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10P/1349?svc=cafeapp

    '악의 평범성' 충격적인 진실 ㅡ개인의 고통을 먹고사는 조직의 사념체 '펜듈럼'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OJg/341?svc=cafeapp
  •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25 예수님 메시지 ~ 모든 인간들의 성장을
    파멸시키고자 배정된 어둠의 존재들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10P/549?svc=cafeapp

    나르시시스트에게 가장 소중한 것 한 가지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XpA/1011?svc=cafeapp

    나르시시스트의 '강약약강'에 대하여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XpA/2087?svc=cafeapp

    나르시시스트의 극단적인 서열의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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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시시스트ㅡ상대가 용서를 베풀 수록 더욱 교활해지는 사람들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XpA/1192?svc=cafeapp
  •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25
    판단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판단하세요.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OJg/338?svc=cafeapp

    황금률을 어기는 자에게 구원은 없다.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6sP/1017?svc=cafeapp

    양심이 답이다 - 인간의 길, 人間道를 밝히다.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OJg/168?svc=cafeapp
  •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25
    "살기를 풀어내다"
    ㅡ인간의 짐승성

    1.2.3챠크라 이슈.

    ㅡ무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대물림된..물질세상. 국가. 사회. 집단. 개인. 집안. 조상. 부모. 형제. 자식으로...지구 곳곳을 지배하는 집단 에너지. 영체.
    https://story.kakao.com/sjin7979/dN3gDSqcvGA

    인간의 짐승성!

    '살기. 독기'
    ㅡ시기.질투

    ㅡ두려움의 노예. 욕심. 욕망이 지배
    ㅡ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

    뺏고, 뺏기고..
    속임수.거짓.가식.위선.기생.착취.사기.배신.살인

    ㅡ사탄의 의식. 사탄의 종
    ㅡ기생충. 바이러스. 암세포. 흡혈귀. 살모사
    *

    '배은망덕' : 은혜를 베푼 사람을 배신함
    '신부작족' :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함

    '견리망의' : 이익을 탐하여 의리를 배반함
    '면종복배' : 앞에서는 복종하는 체하다 뒤에서 배반함

    '인면수심' :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짐승처럼 흉악함

    '구밀복검' : 입에는 꿀이 있고 뱃속엔 칼이 있다는 뜻으로 친한 척하고 속으로 해칠 생각을 지님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Dmeo/2279
  • 작성자*테라*ㅡ셀프튜닝-레이키 마스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1.25 '순진무구함'은 문이다.
    순수한 가슴♡사랑은 열린 문
    https://story.kakao.com/sjin7979/jLLNmAAjKJa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에게 대접 하라의 숨은 의미 by kim michaels
    https://m.cafe.daum.net/royalcountrol/N10P/1052?svc=cafeapp

    지식을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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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정 문제를 보려고 하지 않는 것 - 상승마스터 마이트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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