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깨달은이'(대행스님)의 참말씀 11 - 업과 인연 "악한 주인의 노예와 착한 주인의 노예"

작성자테라|작성시간22.04.20|조회수91 목록 댓글 7

1.0. 이 우주에는 진리의 그물이 쳐져 있다.

비유하자면 그물 같고, 체와 같은 법망이 있다.

그것은 곧 인연의 그물이요, 업의 법칙의 그물이다.

우리가 하는 행위 하나하나 · 말 한마디 한마디 · 짓는 생각 하나하나가, 빠짐없이 다 이 그물에 포착된다.


그 그물에는 귀가 없어도 한마디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다 듣는 '귀 없는 귀' · '귀 아닌 귀'가 있고,

눈이 없어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볼 수 있는 '눈 아닌 눈'이 있다.

1.1. 남들이 보지 않는 데서 남들이 모르게 했다고 해도, 모르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한 것을 자기가 알고 있으니 이미 입력이 된 것이고, 내 속의 중생들이 다 알고 있으니 입력이 된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주 간 한마음 법계가 전부 아는 것이다. 일체 만물이 다 가설되어 있으니, '나만 아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1.2.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으니 무슨 뜻이겠는가.

     새라 해서 새가 아니고, 쥐라 해서 쥐가 아니다.

그것은 우주 법계의 귀와 눈을 말한다.

우주에는 진리의 통신망이 빈틈없이 가설되어 있다.​

1.3. 우주와 인간계는 하나이다.

우리의 육신이 수많은 세포들로 그물을 짜 놓은 것처럼 가설되어 있듯이,
지구는 물론​ 우주 전체도 꽉 짜여진 그물처럼 질서정연하게 가설되어서, 모두가 계합된 채 돌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알면 우주 법계가 알고 부처가 알고, 그래서 전체가 안다.

1.4. <말> 이전에 <뜻>이 앞서는 법, 이미 나의 <참주인>(주인공)이 먼저 알고 있다.

내가 들이고 내는 그 일은 들여놓는 대로 한 치도 샐 틈이 없고, 내놓는 대로 한 치도 샐 틈이 벌어지지 않는다.

1.5. ​ 마음의 작용이란 거대한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다.

      한번 일으켜진 생각은 빠짐없이 수록이 된다.

생각한 사람은 그 생각이 사라졌으므로 그만이라고 여기겠지만,

그 생각은 어디 밖으로 나가버린 게 아니라 어김없이 자기 마음 안에 입력된다.
그렇게 해서 잠재되어 있다가 다음 번 생각을 일으키는 데 동원된다.

그러므로 두 번째 생각은 첫 번보다 더 의지적인 생각이 되는데,

가령 처음 생각이 나쁜 것이었다면 두 번째 생각은 조금 더 나빠진 것이 된다.

그와 같이 연거푸 입력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데, 마음이란 이렇듯 자주 생각 내는 쪽으로 기울게 되니,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생각은 점점 자라 마침내 행동으로 옮기게 된다.

마음이 움직여 한번 생각을 일으킨 것이면 빠짐없이 수록이 되는 것이므로,

모든 마음 작용은 현재의식만이 그 전부는 아니다.​

1.6. 숙명통을 컴퓨터라고 한다면,

     그 컴퓨터에는 이제껏 지내오면서 지은 모든 것들이 자동 입력되어 있다.

알고 지은 것이나 모르고 지은 것이나, 선한 것이나 악한 것이나 지은 그대로 뭉쳐 있다.

그러다가 인연 따라 하나하나 다시 나오게 된다.

불의 심판이란 마음의 심판

즉 인연법의 심판을 말한다.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이나 갈등 · 밖에서 부딪쳐 오는 병고액난은,

모두 이 입력 작용에 의해 발생되는 문제들이다.

1.7. 마음은 하늘에서 알고, 땅에서 알고, 법계에서 안다. 거기엔 한 치의 오차나, 한 치의 빈틈도 없다.

고로 마음이 진실하지 않다면,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용납되지 아니한다.


진실한 마음이 아니면, 진리의 곳간 열쇠를 받을 수 없다.

1.8. 거짓이란 바로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속이는 것도 자기고, 속임을 받는 것도 자기이다.

 

주인공은 결코 속일 수 없고 속지도 않는다.

주인공(主人空)이 바로 하늘이요 우주 법계이니, 거기엔 티끌 하나만큼의 빈틈도 없다.

생각 하나 · 말 한마디 · 행동 하나하나 공허한 것은 없다.

엄연하고 빈틈없는 게 법계의 법칙이다.

설사 천하의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다 해도, 법계의 눈은 속일 수 없다.
법망의 세밀함이란 차라리 두렵기 그지없다고 할 것이다.


2.0. 남의 따귀를 한 대 때렸으면, 언젠가는 그 따귀 한 대가 되돌아온다.

    남에게 밥 한 그릇을 주었으면, 언젠가는 내게 밥 한 그릇이 되돌아온다.

그런 되갚음은 철칙이다. 철두철명한 법칙이다.
무심코 떨어뜨리는 생각 하나하나라도, 결과가 없는 법은 결코 없다.

2.1. 업(業)이란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마음 속에 쌓이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생각을 따라 일어나 마음 속에 채곡채곡 쟁여진 것이다.

본래 주인공 자리는 공하여 업이라는 실체가 없고 그럼으로써 업이 붙을 자리도 없건만,

공한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놓을 줄 모르고 생각으로 지어서 제 등짐을 쌓아올리는 것이다.

그저 자기가 자기인 줄만 알고 '나' · '나의 것' 하면서 쌓아올려 놓고서는, 업에 치이고 윤회에 말리고 하는 것이니, 말하자면 제 손으로 제 살을 갈갈이 뜯어 놓고는 아프다 하고 약 발라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2.2. 불성이 있기에 만법에 응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원리 자체가 응보를 하고,
<사람의 행이 어떠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원리가 응보하는 것이다.

'사람이 되었다 · 벌레가 되었다 · 소가 되었다' 이러는 것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음이 중요하다.

2.3. 자기가 먹은 것에 걸린다. 자기가 행한 것에 걸린다. 자기가 말한 것에 걸린다.

    육체에 걸리고 삼독심으로 또 걸리고 하니, 그렇게 쌓이고 쌓인 것이 어디로 가겠는가.

업이라는 것은 한 올만큼의 어긋남도 없다.


그러므로 제 앞에 닥친 고를 원망하고 탄식할 게 아니라, 자기를 되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지은 대로 자기가 받는다.

번연히 알면서도 지키지 못한 것은 알면서 받고, 몰라서 지키지 못한 것은 모르게 받는다.


2.4. 선업도 업이다. 일단 기록된 이상 그 입력이 거꾸로 나를 지배하게 된다.

악업은 나쁜 과보를 낳고 선업은 선한 업보를 낳을 뿐이지,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악업과 선업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

비유해 보면 둘 다 노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 경우는 <나쁜 주인을 만나서 갖은 고생을 하는 노예>라면,

다른 한 경우는​ <좋은 주인을 만나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살아가는 노예>​인 것이다.

2.5. 과거로부터 지고 나온 습을 채곡채곡 쟁여 놓는다면,

비유하건대 저 달나라까지 가기만큼 그렇게 많고 무거울 것이다.

그것을 짊어진 채로 살고 있으니, <억겁 동안 쌓인 노비 문서에 짓눌려 사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자기의 노비 문서가 제일이라 하고, 그것을 무거운 줄도 모르고 좋다고 애지중지하고 있으니,

그것이 사는 모습인가.

중생들은 그게 사는 것이라고 하나, 창살에 갇히고 천야만야한 벽에 갇힌 것이 어찌 사는 것이랴.


자유권을 갖고 자재롭게 살지 못하면서 닥치는 일마다 하나하나에 끄달려 지내니,

기가 막힐 일도 많고 불이 날 일도 많은 것이다.


2.6. 과거로부터 인연 지어 온 업이 세포 하나하나에, 위장 · 심장 · 간장 · 소장 · 대장 · 신장 · 척추 등 구석구석에 집을 짓고 소임에 따라 운행하는데, 악업은 악으로만 나가는 반면 선업은 또 선업으로만 나간다.

그러니 악이 많고 선이 적으면, 마음 속에서 · 몸 속에서 악의적인 문제가 수없이 술술 나오게 된다.
하던 일이 잘 안되게 하고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게 하니, 그것이 악행의 원인인 것이다.

<악행>이라면 남에게 해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항상 둘로 보아 남을 원망하여 내 탓으로 돌릴 줄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라

<내가 괴로운 게 악업의 과보>인 것이다.​

2.7. 즐거운 것 괴로운 것 · 잘 되는 것 안 되는 것 · 기쁜 것 슬픈 것 · 좋은 것 싫은 것 · 잘생긴 것 못생긴 것 · 똑똑한 것 똑똑하지 못한 것 ·우환과 액난과 행복, 그런 모든 일들은 다 자기가 마음으로 지은 결과이다.

자기가 저지른 것이 천차만별로 들어 있다가 인과로서 솔솔 풀려나와, 살아가는 내 앞길에 가로놓이는 것이다.

2.8. 배우가 역을 맡았을 때 연출가가 써 준 대본에 따라 대사도 외고 연기도 해야 하듯이,
  <우리도 짊어지고 나온 인과응보의 대본에 따라 배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본이 싫든지 좋든지 간에

오늘의 나에게는, 한 발짝 떼어놓기 전까지의 습에서 한 치의 에누리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전자의 습이 수미산만하게 쌓여 있으니, 이를 어찌하겠는가.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업보 · 팔자 운명을 부수고 나가야 할 것이다.



ㅡ "한마음 요전" (대행스님 법어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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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1 인과법이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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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1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믿음,행위,실천) - 3분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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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1 예수의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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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1 에고 역할의 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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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테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4.21 서로 사랑하라 - 송정미 (Feat. 김현철, 강명식, B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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