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원래의 사랑에 다시 연결되기
2007년, 4월 7일 성모 마리아 구술문에서 발춰
이 세상에 있으면서 실제로 사랑을 표현하는 누구에게나 위협받는다고 느낄 정도로 반-사랑에 갇힌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고 해를 입지 않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노출 될 때, 어떻게든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깎아내리고 그들을 통해 흐르는 사랑의 흐름을 막아야만,
말 그대로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 죽을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공황 감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지구는 반-사랑이 많은 행성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이 자랄 때 보던 방식으로 이 행성을 바라봐선 안됩니다.
이곳을 특정한 존재들이 원하는 만큼, 혹은 거의 그들이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신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세계라고 봐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인 여러분은 제물로 이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수많은 존재가 반-사랑에 같혀버린 이 세상으로 내려오길 원했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고,
그들에게 반-사랑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경험할 기회를 주기 위해 사랑의 햇빛을 가져오길 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여러분은 상황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고 그 상황으로 들어오기로 자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이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멍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상처를 정당화하고, 학대를 정당화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행성의 현실을 받아들일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되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심지어 "신은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느끼는 매우 역기능적이고 비생산적인 태도를 극복할 수 있으므로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여러분에게 어떤 부당한 일이 행해졌고, 신이 여러분에게 불공평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마음의 틀로 들어갈 때,
여러분은 필연적으로 여러분이 이곳에 와서 뿌리 뽑으려고 했던 그 반-사랑 의식의 희생양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을 통해 흐르는 신의 사랑의 흐름을 차단하게 됩니다. 이제 신의 사랑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이 여러분을 포기했다고 느낍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신이 여러분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통해 흐르는 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는, 여러분을 향한 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랑은 고정적인 힘이 아닙니다. 사랑은 붙잡을
수도 없고 통제될 수도 없고 멘탈 박스 안에 넣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오직 흐르게 놓아둬야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반-사랑의 의식에 갇혀버릴 때, 여러분은 흐름을 차단하게 되고 이제 더 이상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뭐가 남을까요?
오직 조건적인 사랑만 남습니다.
반-사랑에 갇힌 사람들에게 필요한 세속적인 사랑말입니다. 확실히,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진정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향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불가능한 탐색, 결코 끝나지 않을 탐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욕망을 조건적인 사랑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이 받는 사랑이 어떤 조건에 부응해야 하고 사랑이나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사람을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가져오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것은 딜레마가 됩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교사인 우리는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자존감이나 여러분의 정체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여러분을 깨울 수 있을지 딜레마에 봉착합니다.
이원성 의식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직도 여러분 존재의 핵심에 남아있는 그 사랑에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고 이 세상의 멘탈 박스 안에서 삶과 우주를 바라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내 말은 여러분이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시각으로 이곳에 오지 않았고, 이곳에
내려오기로 결정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설령 멍들고 상처받아서 신의 사랑의 흐름을 차단하고 신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낄지라도, 나는 여러분이 사랑으로 이곳에 왔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더 높은 영역에서 이곳에 왔고 신이 부당하게 이곳에 보냈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그 더 높은 영역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한층 더 높은 영역에서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흐름이 처음 형상 세계로, 가장 최근의 형상 세계로 하강하기로 결정한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 결정은 여러분의 진정한 신적 자질, 여러분의 진짜 신성한 개성을 표현하고, 세상에 빛을 밝히기 위해 세상에 선물을 가져오려는 사랑과 열망에 기반을 둔 결정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외적인 허울을 넘어서서 여러분 존재 안에 있는 그 사랑의 핵심에 다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오직 여러분이 지금 현재 사랑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을때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즉 우리가 여러번 설명했듯이, 오래된 정체감을 죽게 놓아둠으로써 현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정체감을 죽게 두려면, 반드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래된 정체감을 죽게 내버려 두면
더 높은 상태의 정체감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끔찍한 사람이고 변화가 필요한 비참한 죄인이라고 인지하는 부정적인 각성을 하게될 때 여러분의 자존감은 산산조각이 나버립니다.
자신의 나쁜 측면을 극복하려면 자아감을 파괴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에고를 넘어서는 자아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아를 파괴하지 않고 이기심을 극복하세요.
사실 이 세상에는 전통적인 종교와 새로운 영적인 운동 양쪽 모두에서, 영적인 성장의 길은 모든 자아감, 즉 모든 분리된 자아감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보다시피 이런 믿음은 부정에서 나옵니다.
다른 부정을 만들거나 또 다른 부정적인 행위인 처음의 부정을 파괴해서 부정을 제거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잘못을 되갚아 준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또 다른 불완전한 행위로 불완전함을 바로잡을 수도 없습니다.
뭔가를 파괴하는 것은 방법이 아닙니다.
내면 깊은 곳에, 육체의 생존본능과 에고의 생존본능을 넘어서는 기본적인 생존본능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진짜 신성한 개성은 생존하기를 원하고 성장하기를 원하며 이 세상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합니다. 원래의 존재 이유, 즉 이곳에 온 이유를 충족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자아감을 파괴하려고 하면, 결국 자신과 싸우면서, 에고의 거짓 자아감뿐만 아니라 신성한 개성의 진정한 자아감도 파괴하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많은 자아감을 파괴할 수 있지만 결국 내적인 갈등이 너무 심해져서, 너무 비논리적이고 너무 모순적이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 방법은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방법은 자기 부인이나 자기 파괴를 통해서가 아닙니다. 자기 초월을 통해서입니다.
오랜 자아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 자아를 초월하고, 그 오랜 자아를 대체할 새로운 자아, 더 높은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요령은,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었듯이, 오랜 자아를 죽게 놓아둘 때까지는 새로운 자아로 태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서운 부분이 대두됩니다.
오랜 자아의 죽음과 의식하는 자아의 더 높은 정체감으로의 부활 사이에는 우주적인 간격이 있을 것입니다. 오랜 자아가 죽게 놓아둘 때, 여러분은 말 그대로 진공상태에 빠지는 것처럼 느낍니다.
내가 그렇게 느낀다고 말한 것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의식하는 자아는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의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옛 자아를 포기하는 순간이 닥치면, 그 옛 자아 이후로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쳤을 때 겪었던 일입니다.
예수를 두려움과 마비 상태에서, 그 공황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가 이 세상으로 오게 한 더 높은 사랑으로 통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사랑을 발견했고, 의식적인 마음으로 원래 이곳에 왜 왔는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삶의 희생자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신이 그를 부당하게 이 세상에 보냈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시련과 고난을 겪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이곳으로 오기로 자원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더 깊고 깊은 내면의 사랑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분리된 자아의 마지막 흔적인 유령을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기꺼이 그렇게 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모든 것의 본질적인 열쇠는 존재의 더 깊은 사랑에, 여러분이 빛과 사랑을 가져오기 위해 더 밀도가 낮은 구체로 하강하기로 자원하게 만든 원래의 그 가장 깊은 내면의 사랑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명상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원래의 사랑에 다시 연결되세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원래의 사랑에 다시 연결되려는 이 생각은 숙고할 만한 주제입니다.
나의 풍요를 위한 과정은 여러분이 그 내적인 사랑에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장담하지만 그 과정은 광범위한 사람들, 아주 오랫동안 반-사랑에 갇혀 있던 사람들도 도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아무리 멀리 반-사랑으로 내려갔다고 해도,
읽고 또 읽고 공부하고 내 책에 몰입해서 기원문을 하다 보면, 결국 돌파할 것입니다.
장담하지만 나는 유능한 영적인 교사입니다.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라도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발로 차고 소리를 질러도, 내 가슴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몫의 제멋대로인 아이들을 다루어 왔고, 그중 하나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그도 잘 알고 있겠지만, 예수는 결코 수월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함께 앉아서 그의 장난기와 고집, 옳다고 끝까지 우겼던 것을 떠올리며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인간의 몸속에 있을 때는, 어떤 인간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런 결함들은 모두 비실재이고, 초월할 수 있고, 몽땅 두고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결점을 초월할 수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놓아버려야만 초월할 수 있습니다.
오직 대신할 무언가가, 그 불완전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 때만, 그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래의 사랑에 다시 연결될 때, 그 사랑의 근원에도 다시 연결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 근원에서 왔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현재의 정체감보다 더 무한하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멀리 있는 은하의 이미지와 이 물질 우주의 광대함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이 여러분에게 어떻게 다른 관점을 주는지 보세요.
여러분은 물질 우주의 광대함에 비하면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습니다. 원래의 사랑에 연결될 때, 여러분은 한결 더 높은 수준에서 더 넓은 관점을 취합니다. 여러분은 관점을 10억, 10억 배 확장합니다.
신의 사랑은 광대한 물질 우주보다 무한히 더 크기 때문에,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됩니다. 그런 관점을 통해서 여러분이 이 행성에서 붙들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터무니없을 정도로 하찮은지 알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 원래의 목적에 다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의 천사가 그리스도 자아의 형태로 여러분의 가슴속에 나타나 여러분의 신성한 계획의 어떤 측면을 시작할 때라고 상기시키는 입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거절하는 대신, 일일이 설명하는 대신, 왜 지금 그렇게 할 수 없는지, 10,000번의 생애 동안은 몰라도 오늘은 아니라고 영리하게 추론하는 대신,
그저 내려놓고 "오 주님, 당신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지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멀리 떨어져서 여러분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여러분의 상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오직 밀도가 높은 이 세상으로 들어오면서 잃어버린 더 넓은 시야를 확보했을 때 여러분이 했던 더 높은 선택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시혜
사랑하는 이들이여, 내 기원문을 해준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그 기원문들은 내가 특별한 시혜를 베풀 수 있도록 여러분의 가슴을 열어줍니다. 그 시혜는 여러분에게 내려놓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내려놓을(surrender)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을 곱으로 증식해서 여러분의 개인적인 내려놓기가 집단의식에 배가된 영향력을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한계를 내려놓음으로써, 여러분은 자유로워지고 상당히 많은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지만, 여러분의 내맡김으로, 그들은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 위에 있는 우리와 아래에 있는 여러분 사이에 8자 형상의 흐름을 얻게 됩니다.
예수가 육체의 생명을 기꺼이 내려놓기로 한 것럼, 기꺼이 내려놓겠다는 여러분의 의지는 유일하게 배가될 수 있는 요인이므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들의 말처럼 예수는 많은 사람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러 왔습니다(마태 20:28).
더 깊은 의미는 붙들고 있는 대신 기꺼이 내려놓은 예수의 의지는 진정한 희생, 즉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제물이 되었고, 인류에게서 일정량의 짐을 덜어내어 다른 사람들이 더 쉽게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이원성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나는 지금 여러분에게 내려놓을 기회를 주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슴들이여, 음악과 함께 흐르세요. 생명의 강과 함께 흐르세요.
가슴과 마음과 존재의 내면에서 여러분이 어떻게 내려놓고 있는지 느끼도록 하세요.
계속 생명의 강의 흐름 밖에 있도록 강둑에서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놓아버리세요.
그냥 여러분 안에 있는 무언가를 어떻게 놓아버리는지 느껴보세요.
여러분은 놓아버리고 생명의 강, 신의 사랑의 바다와 함께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분리도 없고, 어둠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분노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생명 자체와 하나입니다. 어떤 것도 분리될 수 없는 생명의 강에서 여러분은 하나입니다.
모든 것이 빛이고 그림자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명상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어떤 것을 내려놓으면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러한 교류에 기꺼이 참여해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며, 내 가슴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봉인합니다.
분명히,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이 새로 찾은 평화와 내려놓기를 방해할 게 뻔한 반-사랑의 세력들에게서 여러분을 봉인합니다.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신성한 어머니의 양육하는 사랑에 봉인될지어다. 그 사랑의 흐름인 영원한 현재에 봉인되어 있을지어다."
이루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함으로써 치유하기 | 킴 마이클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