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te Liverpool exhibition – Maria Lassnig
비틀즈로 대변되는 도시-리버풀. 그룹의 멤버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이 한 도시에서 태어났고, 운명처럼 만나 전세계에 울려 퍼진 곡들이 시대를 거쳐 리버풀 전역에 향수를 남긴다. 거칠고 터프한 성격 이면에 자리 잡은 예술가적인 우울함을 보였던 존레논 답게 리버풀의 큼직큼직한 건물 외관과 빠짐없이 등장하는 <가장 위대한 건물 중 하나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one of the greatest buildings & the largest in the world) >이라는 설명이 대변하는 지역 문화를 통해 이곳 사람들의 특징을 가늠해본다. 혹자는 1백여년 전만하더라도 세계적인 무역항이었던 이곳을 거대한 괴물이 지배하는, 화려했던 경제력과 문화에 취한, 옛 향수에 갇힌 유령도시라고도 이야기 한다.
그래서일까?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에서 기획한 대형전시의 컨셉 – 문화 수도 <Tate Liverpool blockbuster exhibitions that prove we’re still The Capital of Culture>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테이트 리버풀의 외관 – 주황색 기둥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다>
2010년 피카소 Peace and Freedom을 시작으로 마그리트 The Pleasure Principle(2011), 터너 모네 톰볼리 Later Paintings(2012), 샤갈 Modern Master(2013), 몬드리안과 그의 작업실(2014), 잭슨폴록 Blind Spots(2015)에 이어 테이트 리버풀이 6번째 블록버스터 전시 <Maria Lassnig and Francis Bacon: Invisible Rooms>의 막을 올렸다. 보이지 않는 방(Invisible Rooms)이라는 제목으로 마리아 라싱(Maria Lassnig, 1919-2014)과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작품을 각각 다른 전시장에 큐레이팅, 관객들로 하여금 10년 터울의 두 작가가 이야기 하려는 공통 분모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은 마리아 라싱의 작품을 시작으로 프란시스 베이컨 작품으로 이어진다.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와 에곤실레(Egon Schiele, 1890-1918)로 기억되는 오스트리아.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범람하는 미술계에서 이곳은 더 이상 이들의 아류를 원하지 않았던 것 일까? 이들이 죽은 다음해인 1919년에 태어난 마리아 라싱(1919-2014)은 여성으로서 부단히, 견고한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Body Awareness 라는 것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미술로 풀어낸다. 몸에서 일어난 깨달음과 인식으로 자신의 언어를 구축한 그녀는 프리다 칼로와는 다른 서늘함을 작품에 분출한다. 과연그녀만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몸의 사회적 인식이 요구하는 깨달음을 정직하게 작품에 쏟아내며 어떠한 사조에 흔들리거나 편입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하는 자신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
Body Housing
1950년대는 라싱이 큐비즘과 초현실주의, 앵포르멜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에 깊숙히 빠져들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1945년 Self-Portrait를 시작으로 신체가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body housing을 선보인다. 작은 규모의 실험적인 작품이었던 바디하우징에 대하여 라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 코, 잎의 중요한 특징에 앞서 머리는 공간 요소를 해체시키고 완벽한 회색의 색면은 뺨, 이마, 목이 되어 퍼져나가 배경과 상충되어 위치한다.”
Expressive Self-Portrait 1945 60x48 / head(Kopf) 1956 각각 좌/우
20대 후반과 30대의 라싱이 그린 작품이다. 라싱은 1950년대 초반 파리에 방문하였는데 이때 경험하였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작품은 캔버스에 보여지는 신체의 존재, 제스처에 대하여 강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왼쪽의 초상화와 오른쪽의 두상을 그린 작품은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당시 미술의 흐름을 읽고 놓치지 않고 쫓아가고자 하였던 그녀의 눈이 가히 얼마나 부지런하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Figurations
1961년 파리로 이동한 그녀는 앞서 제작하였던 연작에 깊은 영향을 받았던 앵포르멜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난다. 그녀는 누워서 혹은 무릎을 꿇은 채로 작품을 완성하고 이것들을 body sensation figurations라고 이름 붙였다. 이것은 그녀 작품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으로 캔버스는 신체의 인상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신체에 대한 묘사의 통합적 요소까지 갖출 수 있었다. 60년대 초반부터 캔버스 화면에 등장하는 하얀 직사각형은 라싱의 회화에 형상을 위한 단계로서 작업하며 다시 등장한다.
Maria Lassnig, proposal for a
sculpture, 1966-7
<Maria Lassning, Figure with Blue Throat, 1961(좌) / Harlequin Self-Portrait, 1960-1 (우)>
1960년대 자유를 갈망하던 시절, 그녀는 큐비즘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선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마치 싸이 톰볼리의 작품처럼. 대담하고 무의식적으로 완성한 작품처럼 보이지만 필자는 그녀가 고도로 계산하여 작업했다는 것을 짐작해본다. 색으로 표현된 공간에 대한 지배 능력. 라싱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어떻게 표현해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것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Kitchen / War
라싱의 자화상은 종종 사물이나 혹은 기계에서 출현하는 자신의 신체를 묘사하였다. 1963년 Armchair-Self Portrait에서 그녀는 앉아있는 것에 대한 신체 감각을 표출하였다. 후에 그녀는 모나하텀이 보여줬던 작품을 회화에 옮긴 것 마냥 주방기구들의 하나의 무기가 되어 캔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좀 더 특이한 것은 작품 속의 사물을 의인화 시켜 자신을 그 안에 집어 넣었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결국 자신을 정직하게 풀어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그녀의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1991년 걸프전쟁에 대해 그녀는 ‘매체가 쏟아내는 정기간행물’로 간주하며 자신의 이미지와 전쟁, 죽음을 결합시키며 작품을 전개해 나갔다.
Kitchen Bride, 1988
war
American Realism
1968년 뉴욕으로 건너간 라싱은 아메리칸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적용시킨다. 라싱은 이를 통해 외모묘사에 있어 좀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 너머로 보이는 사진의 가능성과 한계점, 회화를 통해 라싱이 자신을 재현해 내는 과정에 깊게 들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작가는 결국 자신을 캔버스에 옮긴다.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러나 그 과정이 정직해야 한다는 단순한 명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변에서 수없이 많은 가면과 화장에 덧칠해진 살아있는 송장을 만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라싱은 신체는 두 개이고 캔버스 내에 또 다른 캔버스를 그려 회화적으로 리얼리즘을 자신의 끝자락까지 잡아당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제 2의 프리다 칼로가 연상되지만 그녀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자신을 끌어내고 있는 마리아 라싱. 라싱은 좀 더 무덤덤하게 그러나 내면은 좀 더 차갑게 현실을 고발하면서 자신을 보이고 있다. 리얼리즘에 대해 라싱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이를 더 증명한다. <리얼리즘은 나에게 위급사항, 내 능력을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증거, 세상 밖을 가져오는 즐거움, 괴짜들에 대한 안쓰러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참여였다>
Maria Lassnig, Double Self-Portrait with Camera, 1974
Maria Lassnig, New Self, 1972
Maria
Lassnig, Self-Portrait with Stick,
1971
Inside and Outside the Canvas
라싱은 끊임없이 몸에 대하여 연구하고 이를 작품으로 쏟아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표현방법 또한 계속 변화하면서. 1960년대 초반 라싱에게 캔버스가 주제를 문제 삼아 처음 출현하게 된 것이라면 80년대 들어 라싱은 Inside and Outside the Canvas라는 시리즈를 통해 신체 재현의 핵심을 처음으로 보인다. 예술가의 신체가 캔버스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라싱은 작품에 보여진 것처럼 누워, 혹은 트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니면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오는 듯한 모습 등을 연상시키며 자신을 작품에 던진다.
Maria
lassnig, inside and outside the canvas iv,
1984-5
아래는 라싱의 다른 작품 사진들이다. 작품 이외에 그녀는 미국에 거주하는 당시 예술가로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과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고민을 애니메이션 필름 영상으로 제작한다. 자신의 내면세계에만 빠져 고립된 시각으로 작품을 완성한 것이 아니라 여성, 예술가, 필름제작자 등 여러 모습으로 라싱은 자신의 예술을 관객들에게 설득시켰다. 작품 이미지들과 유투브 영상을 함께 링크한다.
유투브 영상 링크 첫번째는 라싱의 필름제작 영상이고, 두번째 링크는 2014년 뉴욕 MoMA에서 진행된
프레스 리뷰 전시장 관련 영상이다. 특히 두 번째 영상은 미술관에 걸린 라시의 작품을 좀 더 살펴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5oEHwZE0
https://www.youtube.com/watch?v=RRjT2AdHVP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