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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영월부사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이 남긴 영월의 시문

작성자김원식|작성시간26.06.07|조회수51 목록 댓글 0

 

영월부사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이 남긴 영월의 시문

원문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집총간
해역 : 구글 AI 도움

 

▷ 조하망(曺夏望)  병인년(丙寅年, 1746년 영조 22) 윤 3월 초 9일에 부임하여, 정묘년(丁卯年, 1747년 영조 23) 2월 29일 병으로 인하여 사직하였다. [출처 : 영월부읍지 선생안]
     영조 22년(1746) 2월, 65세에 寧越 府使가 되다.
     영조 23년(1747) 2월, 66세에 사직하고 楊湖로 돌아오다. ○ 7월 4일, 졸하다. ○ 9월, 楊根 水南에 장사 지내다. 

     [출처 : 한국문집총간 해제 > 서주집]


한국문집총간 > 서주집 >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 최종정보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越山志感
淸泠浦口鳥飛還。梅竹難尋野草間。從古越中三讓地。祗今江上九疑山。梨花且莫春添月。杜宇應悲夜度關。百世人情如昨日。無心天地太虛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조선 후기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수록된 명작 〈산에 올라 감회를 적다(越山志感, 월산지감)〉입니다. 
이 시는 조선의 대표적인 한시 선집인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선발될 만큼 후대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제목의 '월산(越山)'은 단종의 유배지이자 능이 있는 '영월(寧越)의 산'을 뜻합니다. 
작가 조하망은 1746년 영월부사로 부임했는데, 단종의 애달픈 비극이 서린 청령포와 영월의 산천을 바라보며 느낀 세월의 무상함과 비장한 감회를 칠언율시로 웅장하게 담아냈습니다.

📜 원문 및 번역
淸泠浦口鳥飛還 (청령포구조비환)
청령포(淸泠浦) 나루터에는 새들만 날아서 돌아오고,
梅竹難尋野草間 (매죽난심야초간)
옛날 단종을 모시던 뜨락의 매화와 대나무는 거친 잡풀 사이에 찾기 어렵구나.
從古越中三讓地 (종고월중삼양지)
예로부터 이곳 영월(寧越)은 왕위를 세 번 사양한(양보당한) 비극의 땅이요,
祗今江上九疑山 (지금강상구의산)
지금 흐르는 강물 위로 솟은 산은 순임금이 묻힌 창망한 구의산(九疑山) 같구나.
梨花且莫春添月 (이화차막춘첨월)
배꽃은 피어 봄밤의 달빛을 더하지 말라, (단종의 슬픈 넋 같으니)
杜宇應悲夜度關 (두우응비야도관)
소쩍새(두견새)는 밤마다 고개를 넘으며 슬프게 울부짖는구나.
百世人情如昨日 (백세인정여작일)
백 세대(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인간의 정과 슬픔은 어제 일만 같은데,
無心天地太虛閑 (무심천지태허한)
인간사엔 무심한 저 천지는 너무나도 부질없이 한가롭고 고요하구나.

💡 주요 시어 및 역사적 고사 풀이
淸泠浦(청령포): 영월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입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한쪽은 절벽으로 가로막힌 천혜의 감옥 같은 곳으로, 단종의 고독과 슬픔이 가장 집약된 공간입니다.
三讓地(삼양지): '왕위를 세 번 사양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주나라 때 태백·우중이 왕위를 양보했던 고사나 백이·숙제의 고사(孤竹國)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수양대군에게 억지로 왕위를 찬탈당하고 밀려나야 했던 단종의 비극적인 선위(禪位)를 반어적이고도 슬프게 표현한 구절입니다.
九疑山(구의산): 중국 호남성에 있는 산으로, 성군이었던 순(舜)임금이 남방을 순수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묻힌 곳입니다. 순임금의 두 왕비(아황과 여영)가 이 구의산 아래 소상강에서 피눈물을 흘리다 죽어 대나무에 얼룩이 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시인은 영월의 산천을 바라보며 억울하게 죽은 단종과 그를 가련해하는 백성들의 슬픔을 구의산 고사에 투영했습니다.
梨花(이화)와 杜宇(두우): 배꽃(梨花)과 두견새(杜宇)는 단종의 시 〈자규시(子規詩)〉에 등장하는 상징들입니다. 단종은 영월에서 "달 밝은 밤 두견새 울고 배꽃은 흰데(月白夜蜀魂寃 杏花白啼血寒)..."라며 자신의 처지를 노래했습니다. 조하망은 단종의 시를 직접 인용하듯 배꽃과 두견새를 배치하여 영월의 슬픈 봄밤 풍경을 극대화했습니다.
無心天地太虛閑(무심천지태허한): 이 시의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결구( 마무리)입니다. 인간 세상의 비극(단종의 죽음)은 수백 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슬픈데(百世人情如昨日), 자연과 천지는 인간의 슬픔 따위는 모른다는 듯 너무나 고요하고 한가롭게 순환하고 있어, 그 대지에서 오는 인간사의 허무함과 비장미를 노래했습니다.

✍ 총평
지방관(영월부사)으로 부임한 문인이 비극의 역사 현장인 청령포에서 역사적 사실(단종의 유배)과 문학적 고사(순임금의 구의산), 그리고 대자연의 무심함을 엮어낸 조선 후기 회고시(懷古詩)의 정수입니다. 절제되면서도 묵직한 슬픔이 흐르는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한국문집총간 > 서주집 >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 최종정보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錦江亭有吳西坡板詩。亡友申幼言以桃源倅來遊。次題續揭。醉墨依然。爲之一涕和之
泠然風馭太悠哉。三島雲烟幾處㙜。錦水亭空明月在。碧桃花落故人來。紗籠古壁蛛絲老。霞珮朝元鶴羽催。詩社舊遊今白髮。剡溪孤棹夢中廻。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수록된 칠언율시입니다.
이 시는 작가가 영월부사로 재임하던 시절, 영월의 명소인 금강정(錦江亭)을 찾았다가 겪은 문학적 감회와 세상을 떠난 벗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 제목 및 배경 설명 
(시서, 詩序)錦江亭有吳西坡板詩。亡友申幼言以桃源倅來遊。次題續揭。醉墨依然。爲之一涕和之
금강정(錦江亭)에는 오서파(吳西坡, 오도일)가 현판에 남긴 시가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나의 벗 신유언(申幼言, 신수)이 도원(桃源, 강원도 영월의 옛 별호 혹은 인근 고을)의 수령으로 있을 때 이곳에 와서 노닐며 그 시의 운을 따서 지은 시를 연이어 현판으로 걸었었다. 
그가 술에 취해 호기롭게 쓴 먹적(醉墨)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으니, 그를 위해 한 바탕 눈물을 흘리고 그 시에 화답하여 짓는다.
오서파(吳西坡): 조선 숙종 때의 대문장가이자 형조판서 등을 지낸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을 가리킵니다. 그의 호가 서파(西坡)입니다.
신유언(申幼言): 조하망의 절친한 벗이었던 신수(申晌, 1685~1730)를 뜻합니다. '유언'은 그의 자(字)입니다. 조하망은 벗이 남긴 글씨를 보고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 원문 및 번역
泠然風驭太悠哉 (영연풍어태유재)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신선의 마차처럼 참으로 유유자적한데,
三島雲烟幾處㙜 (삼도운연기처대)
신선이 사는 삼신산(봉래·방장·영주)의 구름과 안개 속에 신선대(누각)는 몇 군데나 있는가.
錦水亭空明月在 (금수정공명월재)
금강(동강)의 정자는 비어 있어도 밝은 달은 여전히 비추고 있고,
碧桃花落故人來 (벽도화락고인래)
벽도화(선계의 복숭아꽃) 떨어지는 이곳에 (나는) 옛 친구의 흔적을 찾아왔네.
紗籠古壁蛛絲老 (사롱고벽거사노)
비단으로 감싸 보호해 둔 옛 벽의 현판에는 거미줄이 낡아 가고,
霞珮朝元鶴羽催 (하패조원학우최)
안개 도포 입고 신선이 되어 천존을 배알하러 간 벗은 학의 깃털(날개)을 재촉해 떠났구려.
詩社舊遊今白髮 (시사구유금백발)
젊은 날 시사(詩社)에서 함께 놀던 이 몸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세었는데,
剡溪孤棹夢中廻 (섬계고도몽중회)
친구를 찾아 섬계(剡溪)로 저어 가던 외로운 배는 꿈속에서나 맴도는구나.

💡 주요 시어 및 고사 풀이
錦水亭空明月在(금수정공명월재) / 碧桃花落故人來(벽도화락고인래): 수련(首聯)에서 묘사한 신선의 세계가 함련(頷聯)으로 이어집니다. 인간 세상의 친구(신유언)는 세상을 떠나고 정자는 비어 있지만, 자연(명월)은 그대로입니다. 작가는 선계의 꽃인 '벽도화'가 지는 풍경을 보며, 친구가 마치 신선이 되어 잠시 머물다 간 듯한 환상과 그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紗籠古壁(사롱고벽): 당나라 때 시인 단성식(段成式)의 고사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뛰어난 시인의 글씨나 소중한 시판(詩板)을 훼손되지 않도록 사롱(紗籠, 비단망)으로 덮어 보관하던 풍습을 뜻합니다. 친구의 글씨가 적힌 현판을 귀하게 보존해 두었으나 세월이 흘러 거미줄이 친 모습을 보며 애상에 젖는 대목입니다.
霞珮朝元(하패조원): 도교에서 신선이 옥황상제나 천존을 뵙는 것(朝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친구 신유언이 죽은 것을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갔다"고 미화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剡溪孤棹(섬계고도): 중국 진(晉)나라 때의 명사 왕휘지(王徽之)의 '섬계의 눈 내리는 밤(剡溪雪夜)' 고사입니다. 왕휘지가 눈 오는 밤에 문득 친구 대달지(戴逵)가 보고 싶어 배를 타고 섬계라는 곳으로 밤새 찾아갔으나, 친구의 집 문앞에 이르러서는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섰습니다.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흥이 나서 갔다가 흥이 다해 돌아왔을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시인은 이제 친구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그를 만나러 섬계로 배를 띄우는 간절한 여정도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꿈속에서만 맴돌 뿐(夢中廻)이라며 극도의 슬픔과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 총평
영월의 아름다운 절경인 금강정에서, 옛 명사(오도일)와 죽은 벗(신유언)의 시판을 매개로 삼아 인간의 유한함과 자연의 영원함을 대비시켰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도교적인 신선 세계의 은유(碧桃, 霞珮, 鶴羽)로 격상시키면서도, 결구에서는 왕휘지의 고사를 통해 영영 만날 수 없는 외로움과 백발이 된 자신의 슬픔을 애절하게 완성해 낸 회고·추도시의 명작입니다.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錦江亭。又用西坡韻。
華嶽巴江勢大哉。仙眞消息悄空㙜。雲開古洞潛蛟出。日暖平沙白鳥來。老去風流杯上得。病餘歸夢句邊催。欄頭越女休先唱。愛殺林鶯囀百廻。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이 영월의 명소인 금강정에서 오도일(오서파)의 시 운자를 다시 한 번 사용하여 지은 칠언율시 〈금강정, 또 서파의 운을 쓰다(錦江亭, 又用西坡韻)〉입니다.
이 시는 먼저 떠난 친구를 그리워하며 눈물지었던 앞선 시와 달리, 영월의 웅장한 자연 속에서 병과 노년을 보내는 문인의 담담한 심경과 봄날 금강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시각적·청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 원문 및 번역
華嶽巴江勢大哉 (화악파강세대재)
중국의 화산(華山)과 파강(巴江)인 듯 영월의 산과 강세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仙眞消息悄空㙜 (선진소식초공대)
신선(먼저 떠난 명사들과 벗)의 소식은 아득하고 정자만 고요히 비어 있는데,
雲開古洞潛蛟出 (운개고동잠교출)
구름이 걷힌 오랜 골짜기에는 숨어 있던 교룡이 나올 듯하고,
日暖平沙白鳥來 (일난평사백조래)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평평한 모래사장에는 흰 새들이 날아드는구나.
老去風流杯上得 (노거풍류배상득)
늙어가는 처지의 풍류는 술잔 위에서 겨우 얻고,
病餘歸夢句邊催 (병여귀몽구변최)
병든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꿈은 시 구절 사이에서 재촉되네.
欄頭越女休先唱 (난두월녀휴선창)
난간 머리의 영월 기생(越女)들이여, 노래를 먼저 부르지 말아라.
愛殺林鶯囀百廻 (애살림앵전백회)
숲속의 꾀꼬리가 백 번이나 지저귀는 저 소리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구나.

💡 주요 시어 및 감상 포인트
華嶽巴江(화악파강): 중국 서부의 험준하고 웅장한 명산인 화산(華山)과 거친 물살로 유명한 파강(巴江)을 뜻합니다. 영월 금강정 주변을 둘러싼 기암절벽과 동강의 세찬 물줄기를 중국의 대자연에 비추어 웅장하게 예찬한 수련(首聯)의 도입부입니다.
潛蛟出(잠교출) / 白鳥來(백조래): 대구(對句)를 이루는 함련(頷聯)으로, 금강정에서 바라본 역동적이고 평화로운 대자연의 풍경입니다. 구름이 가득했던 깊은 골짜기가 열리는 모습은 마치 용(蛟)이 솟구치는 듯한 웅장함이 있고, 강변의 모래사장은 햇살을 받아 따스하며 흰 새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평화로움이 대조를 이룹니다.
老去(노거)와 病餘(병여): 조하망이 영월부사로 재임하던 시절(1746~1747년)은 그의 생애 말년이었습니다. 늙고 병든 육신을 이끌고 타향(영월)의 관청에 머물며 느끼는 쓸쓸함을 술 한 잔(杯上)과 시 한 수(句邊)로 달래며,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돌아가는 꿈(歸夢)을 꾸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越女(월녀)와 林鶯(림앵): 경련(頸聯)의 쓸쓸함을 반전시키는 멋진 결구(結句)입니다. '월녀'는 본래 중국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녀(서시 등)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영월(寧越)의 기생이나 무희를 가리키는 중의적 표현입니다. 연회 자리에서 풍악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잠시 노래를 멈추어 달라"고 청하는데, 그 이유는 대자연이 선물하는 숲속 꾀꼬리의 자연스러운 지저귐(林鶯囀)이 인간의 인위적인 음악보다 훨씬 아름답고 사랑스럽기(愛殺) 때문입니다.

✍ 총평
앞서 친구 신유언의 시판을 보고 지었던 시가 짙은 애상과 그리움에 침전되어 있었다면, 이 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영월의 웅장한 강산을 조망하는 여유를 보여줍니다. 비록 몸은 늙고 병들었을지언정, 인위적인 노래(越女唱)보다 자연의 소리(林鶯囀)를 더 사랑하는 문인의 고결한 자연 친화적 태도와 노년의 운치가 칠언율시의 격식 속에 아름답게 녹아 있는 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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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錦江亭雨中。用西坡別韻贈金生 思渾。
急雨鏖簾電影生。投林恠鳥自呼名。迷雲絲竹添幽咽。和墨江山半晦明。老我覊遊渾漫興。愛君詞調有新鳴。封侯宿計眞堪笑。李廣何妨卧北平。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수록된 칠언율시 〈비 오는 날 금강정에서, 서파(오도일)의 다른 운자를 사용하여 김생 사혼에게 주다(錦江亭雨中。用西坡別韻贈金生 思渾)〉입니다.
이 시는 조하망이 영월부사로 재임하던 시절, 비 내리는 금강정(錦江亭)에서 '김사혼(金思渾)'이라는 젊은 선비(金生)를 만나 그의 뛰어난 문재(文才)를 찬탄하고, 불우한 처지에 있는 그를 위로하며 인생의 달관을 격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원문 및 번역
急雨鏖簾電影生 (급우오렴영화생)
세찬 비가 주렴을 치듯 쏟아지고 번갯불이 번쩍이는데,
投林恠鳥自呼名 (투림괴조자호명)
숲으로 날아드는 괴이한 새(두견새 등)는 제 이름을 스스로 부르며 우는구나.
迷雲絲竹添幽咽 (미운사죽첨유인)
자욱한 구름 속에 울리는 풍악 소리는 깊은 오열을 더해가고,
和墨江山半晦明 (화묵강산반회명)
먹을 섞어 그린 듯한 눈앞의 강산은 어둡다가 또 어렴풋이 밝아오네.
老我覊遊渾漫興 (노아기유혼만흥)
늙은 이 몸의 나그네 생활은 그저 부질없는 흥취일 뿐인데,
愛君詞調有新鳴 (애군사조유신명)
그대의 시와 가락에는 새로운 울림(재능)이 있어 참으로 사랑스럽구려.
封侯宿計眞堪笑 (봉후숙계진감소)
공을 세워 제후에 봉해지겠다던 옛날의 계획은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니,
李廣何妨卧北平 (이광하방와북평)
한나라의 명장 이광(李廣)이 우북평(右北平)에 은거하며 누워 지낸들 무엇이 해롭겠는가.

💡 주요 시어 및 고사 풀이
怪鳥自呼名(괴조자호명): 숲속의 새가 제 이름과 같은 소리로 운다는 뜻입니다. 영월의 맥락에서 이는 주로 '자규(子規, 소쩍새/두견새)'를 의미합니다. 자규는 소리 내어 울 때 마치 자신의 이름(자규)을 부르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여 시문에서 자주 쓰이며, 영월에 서린 단종의 비극과 한(恨)을 청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和墨江山半晦明(화묵강산반회명): 비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영월 동강의 풍경을 묘사한 함련(頷聯)의 명구입니다. 비 오는 날의 산수가 마치 화가가 붓에 먹을 듬뿍 묻혀 흐릿하게 그려낸 수묵화(和墨) 같으며, 날씨에 따라 어두워졌다가 잠시 빛이 나는(半晦明)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했습니다.
金生 思渾(김생 사혼): 시의 수취인인 '김사혼'은 당시 영월 지역이나 인근에 살던 재능 있는 젊은 문인(生)으로 보입니다. 조하망은 경련(頸聯)에서 늙고 병든 자신과 달리, 젊은 김사혼이 지은 시의 가락(詞調)이 참신하고 뛰어난 청각적 울림(新鳴)을 가지고 있다며 깊은 애정과 찬사를 보냅니다.
李廣何妨卧北平(이광하방와북평): 결구(結句)에 쓰인 핵심 고사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의 명장 이광(李廣)은 평생 흉노를 상대로 수많은 공을 세워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렸으나, 조정의 운과 정치적 상황이 따르지 않아 끝내 제후로 봉해지지 못하고 불우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는 한때 관직에서 물러나 우북평(右北平)이라는 변방의 향리에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 총평
조하망은 과거 시험에 낙방했거나 재능에 비해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해 낙담해 있을 젊은 선비 김사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전설적인 영웅 이광조차도 제후가 되지 못하고 시골에 누워 지냈는데(卧北平), "우리가 세상에서 출세하지 못한들(封侯宿計)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 아름다운 영월의 강산에서 시를 지으며 지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비 오는 날 금강정의 어둡고 비장한 풍경을 빌려 시작해, 따뜻한 인간미와 인생을 달관한 노학자의 격려로 마무리되는 감동적인 증시(贈詩)입니다.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西江上遊
離離石丈老癯仙。對對穹林隱翠烟。何許漁樵盟主宅。松窓蘸水白鷗眠。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수록된 칠언절구 〈서강의 상류(西江上遊)〉입니다.
이 시는 작가가 영월부사로 재임할 때 영월을 흐르는 동강(東江)과 서강(西江) 중, 기암괴석과 고요한 평사가 어우러진 서강(西江)의 아름다운 상류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맑고 고요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월의 비극적 역사에 대한 슬픔보다는, 대자연의 고요함과 그 속에 동화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노래했습니다.

📜 원문 및 번역離離石丈老癯仙 (이리석장노구선)
줄지어 솟은 기암괴석(石丈)은 늙고 수척한 신선(癯仙) 같고,
對對穹林隱翠烟 (대대궁림은취연)
마주 선 우거진 숲들은 푸른 안갯속에 은은히 가려져 있네.
何許漁樵盟主宅 (하허어초맹주택)
어부와 나무꾼(자연을 벗 삼는 이)의 맹주가 사는 집은 어디쯤일까,
松窓蘸水白鷗眠 (송창잠수백구면)
소나무 창문은 강물에 잠길 듯 다가서 있고, 그 앞엔 흰 갈매기가 졸고 있구나.

💡 주요 시어 및 감상 포인트
石丈(석장)과 癯仙(구선): '석장'은 바위를 높여 부르는 말이며, '구선'은 몸이 갗고 수척한 신선을 뜻합니다. 서강 상류 절벽을 따라 뾰족뾰족하게 줄지어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모습을 세속을 초탈하여 서 있는 늙은 신선들의 모습으로 멋지게 비유(의인화)했습니다.
穹林(궁림)과 翠烟(취연): '궁림'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진 큰 숲을 말합니다. 서강의 맑은 물줄기 뒤로 우거진 수풀 위로 푸르스름한 강안개(翠烟)가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시각적 풍경을 묘사했습니다.
漁樵盟主(어초맹주): '어부와 나무꾼의 우두머리'라는 뜻입니다. 동양 문학에서 어부와 나무꾼(漁樵)은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에 묻혀 사는 은자(隱者)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어초맹주'는 자연을 가장 깊이 사랑하고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진정한 은퇴 문인이나 풍류객을 의미하며, 시인 자신을 투영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松窓蘸水(송창잠수) / 白鷗眠(백구면): 이 시의 백미인 결구(結句)입니다. '잠(蘸)'은 붓에 먹을 찍거나 물에 적신다는 뜻입니다. 강가에 바짝 붙어 있는 소나무 집 창문이 마치 강물 속에 푹 잠겨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물과 집이 가깝게 맞닿아 있는 정취를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창문 앞 평화로운 모래사장이나 바위 위에서는 인간을 경계하지 않는 흰 갈매기(白鷗)가 한가로이 졸고(眠) 있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완벽한 고요함(물아일체)을 청량하게 완성해 냅니다.

✍ 총평
앞서 보셨던 금강정 연작들이 비 오는 날의 쓸쓸함이나 세상을 떠난 벗에 대한 한(恨)을 담고 있었다면, 이 시는 햇살 맑은 날 서강 상류에서 느낀 극치의 평온함을 노래합니다. 기암괴석(바위)과 우거진 숲, 강가에 맞닿은 창문, 그리고 졸고 있는 갈매기를 차례로 시선에 담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완벽히 돌아오고 싶어 하는 문인의 은일(隱逸) 사상을 담백하고 아름다운 터치로 묘사한 명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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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淸泠浦
水咽成寒瀨。山哀蹙翠巓。如何有此地。直欲問高天。行殿徵遺礎。平㙜鎖暮烟。當年臣祖筆。漬血子䂓篇。西邊小石㙜。俗傳端廟宴坐處。先祖副學公旣遯嶺表。遙和端廟杜鵑詞故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수록된 오언율시 〈청령포(淸泠浦)〉입니다.
이 시는 조하망이 영월부사로 재임할 당시 단종의 가장 애달픈 유배지였던 청령포를 직접 찾아가 지은 작품입니다. 특히 시 아래에 붙은 작가의 자체 주석(自註)을 통해, 그의 선조가 단종을 향한 충절을 지키기 위해 영남으로 은거하여 단종의 시에 화답했던 가문의 가슴 아픈 역사가 함께 얽혀 있음을 밝히고 있어 깊은 문학적·역사적 가치를 지닙니다.

📜 원문 및 번역
水咽成寒瀨 (수인성한뢰)
강물은 목메어 울며 차가운 여울이 되어 흐르고,
山哀蹙翠巓 (산애축취전)
산도 슬퍼하며 푸른 봉우리를 찡그린 듯 솟아 있네.
如何有此地 (여하유차지)
어찌하여 천하에 이런 비극의 땅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直欲問高天 (직욕문고천)
저 높은 하늘을 향해 곧장 묻고만 싶구나.
行殿徵遺礎 (행전징유초)
단종이 계시던 어소(行殿)의 흔적은 남겨진 주춧돌로 겨우 짐작하고,
平㙜鎖暮烟 (평대쇄모연)
평평한 바위 제단(소담이 쌓은 돌탑)에는 저무는 저녁 안개만 자욱하게 갇혀 있네.
當年臣祖筆 (당년신조필)
그 옛날 (단종의 신하였던) 제 선조께서 붓을 들어 쓰신 시는,
漬血子䂓篇 (지혈자규편)
피눈물로 얼룩진 단종의 자규시(子規篇)를 절절히 뒤따른 것이었답니다.

📝 원문의 자체 주석(自註) 풀이
西邊小石㙜。俗傳端廟宴坐處。先祖副學公旣遯嶺表。遙和端廟杜鵑詞故云。청령포 서쪽에 있는 작은 돌제단은 민간에서 전하기를 단종(端廟) 임금께서 생전에 멍하니 앉아 계시던 곳(노산대)이라 한다. 
나의 선조이신 부학공(副學公)께서는 세조의 찬탈 이후 영남(嶺表)으로 은거하셨는데, 멀리서 단종 임금의 두견새 시(杜鵑詞, 자규시)를 전해 듣고 그 운에 맞추어 슬프게 화답하셨기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부학공(副學公): 집현전 부제학(副提學)을 지냈거나 홍문관 부학(副學) 등을 지낸 조하망의 조상을 뜻합니다. 이 주석을 통해 조하망은 자신이 영월부사로 부임하여 단종의 유배지를 둘러보는 것이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조선 초기 단종을 향해 충절을 지키고 낙향했던 가문의 핏줄과 역사가 이어지는 숭고한 참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주요 시어 및 감상 포인트
水咽(수인)과 山哀(산애): 수련(首聯)에서 청령포를 감싸고 흐르는 동강의 물소리를 '목메어 운다(咽)'고 표현했고, 깎아지른 절벽 산세를 '슬퍼서 푸른 이마를 찌푸리고 있다(蹙)'고 묘사했습니다. 대자연에 인간(단종과 백성들)의 거대한 슬픔을 이입한 명문장입니다.
直欲問高天(직욕문고천): 왜 이렇게 착하고 어린 임금에게 가혹한 유배지가 생겨나야 했고 비극적인 죽음이 있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의 모순을 신(하늘)을 향해 처절하게 되묻는 격정적인 구절입니다.
遺礎(유초)와 暮烟(모연): 단종이 거처하던 소박한 집은 사라지고 주춧돌만 뒹굴고 있으며,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돌을 깎아 쌓았다는 망향탑(노산대 부근)에는 쓸쓸한 저녁 안개만 갇혀 있어(鎖) 인생무상과 성쇠의 비장미를 더합니다.
漬血子䂓篇(지혈자규편): 단종이 영월에서 지은 피눈물 나는 시인 〈자규시(子規詩)〉를 의미하며, 자신의 선조가 목숨을 걸고 영남 땅에서 그 시에 화답 시를 남겼던 가문의 충절을 결구에서 엄숙하게 완성합니다.

✍ 총평
이 시는 조하망이 영월에서 남긴 수많은 단종 회고시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장엄한 작품입니다. 청령포의 지리적 고독감을 시각·청각적으로 극대화한 뒤, 가문의 선조(부학공)가 단종에게 바쳤던 충절의 역사와 결부시킴으로써, 영월부사로서 영월의 산천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물 어린 가문적 책임감과 역사적 슬픔을 오언율시 속에 깊이 있게 투영해 냈습니다.





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落花巖
彰烈嘉名大字新。殘碑錯記落花春。誰知宮裏尋常女。却勝島中五百人。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앞서 서술한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 〈회계록(會稽錄)〉에 실린 〈낙화암(落花巖)〉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일반적인 백제 부여의 낙화암 회고시가 아니라, 단종의 애달픈 역사가 서린 강원도 영월의 '낙화암'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단종이 승하하자 그를 모시던 궁녀와 시종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동강(東강) 절벽에서 투신했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 바위를 영월의 낙화암이라 부르고 숙종 때 그 충절을 기려 창절사(彰烈祠)를 세웠습니다.

📜 원문 및 번역
彰烈嘉名大字新 (창렬가명대자신)
'창절(彰烈)'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큰 글씨가 사당에 새롭게 빛나고,
殘碑錯記落花春 (잔비착기낙화춘)
옛 부서진 비석은 백제 삼천삼백 궁녀의 '낙화암의 봄'을 잘못 기록한 듯하네.
誰知宮裏尋常女 (수지궁리심상녀)
그 누가 알았으랴, 단종을 모시던 왕실 안의 평범한 여인들이
却勝島中五百人 (각승도중오백인)
제나라 전횡(田橫)을 따라 죽은 섬 안의 오백 장사보다 훨씬 더 훌륭할 줄을.

💡 주요 시어 및 감상 포인트
彰烈(창절/창렬): 1705년(숙종 31년)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과 충신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영월에 세워진 창절사(彰烈祠)를 뜻합니다.
국왕이 직접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賜額) 사당이기에 '아름다운 이름의 큰 글씨가 새롭다(大字新)'고 표현했습니다.
殘碑(잔비)와 落花(낙화): 흔히 '낙화암'이라고 하면 백제 의자왕 때의 삼천궁녀를 떠올리지만, 시인은 영월 동강의 낙화암에 서서 '부서진 옛 비석(부여의 낙화암 기록)들이 오히려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합니다. 백제의 낙화암보다 영월 낙화암 여인들의 충절이 더 순결하고 깊음을 강조하는 시적 장치입니다.
宮裏尋常女(궁리심상녀): 단종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될 때 따라와 시중을 들다가, 단종이 승하하자 동강 바위에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린 평범한 궁녀와 관비(官婢)들을 의미합니다.
島中五百人(도중오백인): 중국 초한지 시절, 고조 유방에게 굴복하지 않고 섬(전횡도)으로 도망쳤다가 주군인 전횡이 자결하자 따라서 자결한 500명의 장사(壯士)를 뜻하는 고사입니다.
✍ 총평
시인은 힘없는 처지의 평범한 궁녀들(尋常女)이 보여준 절개가, 중국 역사상 가장 의리 있는 남성 집단으로 칭송받는 '전횡의 오백 장사'보다 오히려 더 숭고하고 뛰어나다(却勝)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영월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여인들의 충절을 역사적 고사를 빌려 강렬하게 예찬한 명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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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莊陵李寢郞 範中 嶺人也。來話嶺外古事。仍開夜席。命韻口占。
越峀生眉江有聲。迎春歌曲倦遊情。回波袖外翻翻雪。影轉虛簷宿鳥驚。
其二
西京鳴珮捴新聲。東峽林巒白首情。却訝玄氷江欲裂。春雷一夜蟄龍驚。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인 《서주집(西州集)》 제3권에 수록된 연작시 〈회계록(會稽錄)〉 중 일부입니다.
이 시는 영남(嶺南) 출신의 인물이자 단종의 능인 영월 장릉(莊陵)의 참봉(침랑)을 지낸 이범중(李範中)이 찾아와 영남의 옛이야기를 나누며 열린 밤 연회에서, 정해진 운자(命韻)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은(口占) 칠언절구 두 수입니다.
📜 원문 및 번역 배경 설명
 (시서, 詩序)莊陵李寢郞 範中 嶺人也。來話嶺外古事。仍開夜席。命韻口占。장릉(莊陵)의 침랑(참봉)인 이범중(範中)은 영남 사람이다. 그가 와서 영남 지방의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윽고 밤 연회를 열게 되었는데, 운자를 정해 주기에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었다.

其一 (첫 번째 시)
越峀生眉江有聲 (월수생미강유성)
영월의 산봉우리는 눈썹처럼 솟아 있고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는데,
迎春歌曲倦遊情 (영춘가곡권유정)
봄을 맞는 노래 가락 속에는 나그네 생활에 지친 감회가 서려 있네.
回波袖外翻翻雪 (회파수외번번설)
춤추는 소매가 허공을 돌 때마다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듯하고,
影轉虛簷宿鳥驚 (영전허첨숙새경)텅 빈 처마에 달 그림자 비치자 잠들려던 새가 놀라 날아가네.

其二 (두 번째 시)
西京鳴珮捴新聲 (서경명패총신성)
서경(평양)에서 패옥 울리며 부르는 노래는 모두 새로운 가락인데,
東峽林巒白首情 (동협임만백수정)
동쪽 골짜기(영월) 숲과 산봉우리에는 흰머리 노인의 회포만 깊어가네.
却訝玄氷江欲裂 (각아현빙강욕裂)
문득 들려오는 저 소리, 두꺼운 얼음 언 강물이 터지려는가 의아했는데,春雷一夜蟄龍驚 (춘뢰일야칩룡경)
한밤중 들려온 봄천둥 소리에 숨어 있던 용(단종의 넋 혹은 자연의 생기)이 놀라 깨어났구려.

💡 주요 시어 및 감상 포인트
장릉(莊陵)과 침랑(寢郞): '장릉'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 숨진 단종(端宗)의 능입니다. '침랑'은 능을 지키는 종9품 관직인 참봉(參奉)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비극적인 역사가 서린 영월의 겨울·봄 교체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越峀(월수): 영월(寧越)의 산봉우리를 뜻하는 동시에, 봄날 여인의 고운 눈썹(眉)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산세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回波袖(회파수): '회파무(回波舞)'라는 옛 춤을 출 때 휘날리는 옷소매를 뜻합니다. 연회 자리에서 춤추는 무희의 옷소매가 마치 눈발이 날리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표현입니다.
蛰龙(칩룡): 겨울잠을 자며 숨어 있는 용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겉으로는 겨울 얼음이 깨지는 소리(江欲裂)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봄을 알리는 천둥소리에 만물이 깨어나는 자연의 섭리를 극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또한 단종의 애달픈 역사적 배경과 맞물려 미묘한 여운을 줍니다.
전체적으로 쓸쓸한 나그네의 감회(倦遊情, 白首情)와 밤 연회의 화려함(翻翻雪), 그리고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자연의 생동감(春雷)을 대비시켜 감각적이고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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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州集卷之三 / 詩○會稽錄
六臣祠
後代君臣薄。乾坤獨此祠。周旋戶長在。心事子䂓知。 b064_275b怨水來三蜀。陰雲接九疑。羞他虎丞相。等死太無奇。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2008

 한시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시인인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의 문집 《서주집(西州集)》 제3권에 수록된 〈육신사(六臣祠)〉라는 작품입니다.이 시는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과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낸 충신 엄흥도(嚴興道)를 기리기 위해 영월에 세워진 육신사(현 창절사)를 찾아 그들의 충절을 찬양하고, 단종의 비극적인 역사를 슬퍼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後代君臣薄, 乾坤獨此祠 (후대군신박, 건곤독차사)
해석: 후대의 임금과 신하의 도리가 박해졌는데, 천지간에 홀로 이 사당만이 우뚝하구나.
의미: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해 군신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 세태를 비판하며, 오직 신의를 지킨 이들을 모신 육신사만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周旋戶長在, 心事子規知 (주선호장재, 심사자규지)
해석: (단종의 곁에서) 주선하던 호장(엄흥도)이 아직 살아 있는 듯하고, (단종의) 그 슬픈 심사는 오직 자규(소쩍새)만이 알고 있도다.
의미: ‘호장(戶長)’은 영월의 호장으로서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를 가리킵니다. ‘자규(子規)’는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투영해 〈자규시〉를 지었던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단종의 맺힌 한과 슬픔을 상징합니다.
怨水來三蜀, 陰雲接九疑 (원수래삼촉, 웅운접구의)
해석: 원망 어린 저 물줄기는 머나먼 삼촉(蜀)에서 흘러오는 듯하고, 음산한 구름은 순임금이 묻힌 구의산(九疑山)까지 이어졌구나.
의미: 단종이 유배되어 피를 흘리며 죽어간 영월 청령포의 물과 하늘의 풍경을 중국 고사 속 비극의 장소에 비유했습니다. ‘삼촉’은 촉나라로 망명하거나 유배 가던 험난한 길을, ‘구의산’은 성군 순임금이 붕어하여 묻힌 곳으로 임금의 죽음과 그로 인한 천지의 슬픔을 나타냅니다.
羞他虎丞相, 等死太無奇 (수타호승상, 등사태무기)
해석: 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남은) 호랑이 같은 정승들을 부끄럽게 만드니, 어차피 한 번 죽는 목숨이거늘 저들의 죽음은 너무나 기이할 것(값어치)이 없구나.
의미: 권력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단종을 배반하고 세조 편에 섰던 고관대작(호승상)들을 매섭게 비판합니다. 사육신과 엄흥도처럼 대의를 위해 죽거나 헌신한 삶에 비해, 변절자들의 삶과 죽음은 아무런 가치도 없이 초라할 뿐이라는 강력한 어조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이 시는 18세기 문장가인 조하망이 영월 부사 시절 등을 거치며 단종의 애사가 서린 영월의 육신사를 참배하고 느낀 소회를 적은 명작입니다. 빼앗긴 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의리와, 서슬 퍼런 칼날 아래에서도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충절을 대조적인 시어를 통해 극대화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二十二年【丙寅】영조22년【병인 1746】
寧越府使曺夏望(영월부사조하망) 영월부사 조하망(曺夏望 1682~1747)이
改製常用祝文(개제상용축문) 상용축문을 고쳐짓고,
以每年寒食及十月二十四日(이매년한식급십월이십사일) 매년 한식 및 10월24일에
一體行祭(일체행제) 한꺼번에 제사 지내게 하였다.
又改落花巖明 曰彰烈(우개낙화암명 왈창렬) 또한 낙화암이라는 이름을 ‘彰烈巖 창렬암’으로 바꾸었는데
而未及鐫石(이미급전석) 바위에 새기지는 않았다.



祝文曰(축문왈) 그 축문은 다음과 같다.
<상용축문 常用祝文>조하망(曺夏望)
端廟至德(단묘지덕) 단종의 성덕은
在周奉伯(재주봉백) 주나라 태백과 같거늘
蓁蓁百粤(진진백월) 초목 무성한 영월 땅에서
事變罔極(사변망극) 망극한 변고 일어났지.
嗟惟絳幘(차유강책) 아 붉은 두건 쓴 병사와
爰曁紅袖(원기홍수) 붉은 소매 저고리 입은 시녀는
間關絶峽(간관절협) 험준한 골짜기까지 힘겹게 따라와
昕夕左右(흔석좌우) 조석으로 곁에서 모셨다네.
仙馭莫追(선어막추) 선왕의 수레 따르지 못했으니
奚惜一死(해석일사) 한 번의 죽음 어찌 아끼겠는가!
拚得分明(변득분명) 결연히 목숨을 버린 것은
固自有所(고자유소)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게지.
嵯峨鐵壁(차아철벽) 깍아지른 절벽에서
其水淵淵(기수연연) 깊디깊은 강물 속으로
爭赴如歸(쟁부여귀) 집으로 돌아가듯 대수롭지 않게
孰後孰先(숙후숙선) 나린히 다투어 뛰어드니
烈氣天咷(열기천도) 매서운 기상에 하늘도 흐느끼고
寃氣嶽坼(원기악탁) 원통한 기운에 저 산도 무너졌지.
江山不老(강산불노) 강산은 언제나 옛 모습 그대로요
月星永晣(월성영절) 일월성신은 영원히 빛나건만
人情自激(인정자격) 사람 마음은 절로 격렬하도다!
百歲如昨(백세여작) 그 옛날이 마치 어제 일인 양
是日芬苾(시일분필) 오늘 향기로운 제수 마련하여
爰有禮式(원유예식) 이렇게 제향 의식 설행하노니
英靈洋洋(영령양양) 성대한 혼령이시여!
庶幾來格(서기래격) 내려와 흠향하시길. 【『영월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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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망 曺夏望
조선 후기에, 대사간, 승문원부제조, 영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1682년(숙종 8) ~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에, 대사간, 승문원부제조, 영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아중(雅仲), 호는 서주(西州). 조문수(曺文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한영(曺漢英)이고, 아버지는 금구현령 조헌주(曺憲周)이며, 어머니는 이일상(李一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1년(숙종 37) 사마시에 합격, 1722년(경종 2) 장릉참봉(章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그 뒤 동몽교관(童蒙敎官)·공조좌랑·의령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판결사·승지·참찬관(參贊官)을 지내면서 어사를 파견하여 양정(良丁)을 살필 것을 청하였다.
1739년 승지를 지내고, 1741년 대사간, 다음해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경포대를 중수, 상량문을 지어 그 문장으로 격찬을 받았다. 1745년 승문원부제조(承文院副提調)를 지내고, 이듬해 영월부사로 전임하였다가 병으로 사퇴하였다. 저서로 『서주집』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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