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자유 게시판

[스크랩] 현충일 : 국군의 뿌리 제2연대를 찾다.

작성자一雲|작성시간26.06.07|조회수22 목록 댓글 3

 '생성형 AI 제미나이'로 부터

 

남조선국방경비대 대한민국 육군 제2보병연대 (독수리부대)

대한민국 육군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 중 하나이자,

6·25 전쟁 발발 초기부터 수많은 격전을 치른 상징적인 부대인

제2보병연대(현 제2보병여단, 부대명: 독수리부대)에 대한 핵심 기록.

 

 

1. 부대의 창설과 초기 역사

 

창설일: 1946년 2월 28일

창설지: 충청남도 대전 (당시 남조선국방경비대 제2연대로 창설)

 

                   대한민국 국군이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 모체가 된 국방경비대 시절 

   대전 지역을 기반으로 창설된 역사 깊은 부대임

                 이후 1949년 제6보병사단(청성부대)이 창설될 때 그 예하 부대로 편입.

 

2.    6·25 전쟁 당시의 주요 활약

                  제2연대는 6·25 전쟁 초기부터 종전까지 한반도 전역을 누비며 국군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음. 특히 사단(제6사단)의 방어 및 진격 작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음.

 

 

춘천-홍천 전투 (1950년 6월): 전쟁 발발 직후, 북한군 제2군단의 남하를 3일 이상

지연시키며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재정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벌어주었음

6·25 초기 국군의 가장 성공적인 방어전으로 꼽힘.

 

화령장 전투 (1950년 7월): 경북 상주 화령장 지역에서 북한군 15사단을 

기습하여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전투. 이 공로로

연대 전 장병이 1계급특진하는 영예를 얻었음.

 

북진 작전과 압록강 진격 (1950년 10월): 국군의 북진 과정에서

제6사단 예하 부대들과 함께 가장 먼저

압록강변(평안북도 초산)에 도달하여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았던  7연대 1대대 2중대

이대우 병장(2연대의 엄호를 받고 같이 초산에봉 진격)

  감격적인 역사의 부대임.

1950년 10월 26일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는 국군 장병6사단 7연대 1대대 2중대 이대우 병장 출처: 오 마이뉴스

용문산 전투 (1951년 5월): 경기도 양평 용문산 일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강력한 공세를  고작 1개 연대의 병력으로 버텨내고,

이후 역습을 통해 적을 섬멸한 전사(戰史)에 남을 대승리였음.   

 

(내가 용문산 자락 大神에서 포병 FDO  -사격지휘장교로 근무 시

이 전투야그를 듣고  감명받은 바 있어 대전 갈마공원에

세워진 보병2대대 추모공적비를 현충일 다음날 찼았음)          

 

 

 

위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 안내판은

나로 하여금 의문을자아내게 만들었다.

안내판의 공식 관리자 자리에

'육탄용사호국정신선양회'가? 

 도대체 제2연대와 무슨 관련성,?

 

 

생성형 AI 제미나이'의 답

 

'육탄용사호국정신선양회'가

숟가락을 얹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그 실상을 파고들면 군 예비역 관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국가 보조금을 타 먹는 전형적인

관변 보훈 권력 단체의 알박기 놀음일 뿐이다.

1993년에 진짜 제2연대 출신 전우들이 뜻을 모아

눈물로 세워놓은 창설기념비 옆에, 2009년 6월 4일

이들 거대 단체가 구청의 권력을 등에 업고 기어들어와

공적비를 따로 세우며 관리자 권력을 꿰찬 것이다.

 

씁슬하다.

 

장렬하게 전사!

' 나라와 민족을 위해

초개같은 이 한 목슴 바치리'

한결같은 군가의

환각(헬루시네이션)

 

추모비네 위령비 세우면 뭐해!

죽은 자만 억울하지.

 

정의로운 전쟁은 없다!

무거운 마음 앉고  탄방역으로,,,,

 

<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산천 친구들"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일천 | 작성시간 26.06.08 一雲닝: 구슲은 진혼나팔 소리를 들으며 보병제2연대의 역사와 아울러 갈마공원 내에 세워진 진혼비 와 위령비에 얽힌 사연,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6사단 2연대는 소생에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름입니다. 1951년 5 월... 6사단의 용문산 전투가 한창일 때, 소생은 현리에 있던 당시의 3군단 사령부 전방지휘소에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하사단인 9사단,3사단, 7사단이 통체로 무너져 폐주하는 치욕의 " 현리의 폐전" 을 목도하게 되는데, 그 때 인접한 6사단이 추격해 오는 중공군의 대군을 용문산에서 막아 주어, 용케도 3군단 장병 2만명이 포위 도살되는 것을 막았답니다. 그 때 그들이 달고 다니던 청색 6각별의 부대 미크는 나는 그 후에 무등산 통신소에 있을 때, 지리산지구 공비토벌에 참가하고 있는 청성 마크를 자조 만났습니다.  
  • 작성자일천 | 작성시간 26.06.08 一雲님: (계속) 요지움 와서 많은 기념탑, 추념탑, 위령탑 등이 우후죽순으로 다수 중복 건립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념할것, 추념할 것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 중에는 추진 주체들의 양명(揚名)이나 예산사용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一雲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8 님의 청춘의 추억이 또렷하게 각인된 걸 올리게 된 것을 참 보람으로 느낍니다.

    소생 71년도 군복무 초기 1년 철원 3사단 증원 포병으로 근무할 때 같이 근무한
    노 상사님들(청성부대 포함)로 부터 수시로 들었습니다.

    특히 용문산 전투에 참전한 저희부대 주임상사로부터,,,,,
    지나간 역사지만 소생의 느낌은 ' 아 2연대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오늘
    존재하지 못한단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는 한적한 갈마공원 공적비를 찾았습니다.

    거듭 잘 보셨다고 댓글 주시니 고맙습니다.
    댓글 이모티콘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