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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한상우 바오로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작성자L-Andrea|작성시간26.06.23|조회수31 목록 댓글 0

 

한상우 바오로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기 19,9ㄴ-11.14-21.31-35ㄱ.36   마태오 7,6.12-14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진주와 좁은 문)

진주는 진주를 알아봅니다. 진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에겐 진주는 한낱 돌에 불과합니다.

진주는 쓰라리고 비좁은 곳에서 조개와 한몸이 됩니다.

좁은 문을 통과 하기 위해서는 작아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면 아예 빠져나갈 문은 자연스레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작아진다는 것은 쓰라린 고통도 빛나는 진주가 되게하는 것입니다.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것이 거룩한 것으로 변화됩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이들에게 항상 열려있는 문입니다.

실상은 좁은 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받아들이는 문입니다.

진주가 되려하지 않기에 문은 항상 좁고 불가능한 것입니다.

 

진주는 바로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좁은 문 또한 우리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정녕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십자가를 지지않는 우리자신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이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기에 어느 누구도 그 문을

들어설 수 없게 합니다.

편안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좁은 문은 분명 크나큰 도전입니다.

큰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길은 분명코 십자가의 길입니다.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가 되는 이 길을 우리 모두 더많이 사랑하며 걸어갑시다.

 

이제라도 하느님의 진주가 되기를 희망합시다. 사랑을 주기위해서는 진주가 되어야 합니다.

기다리고 인내하고 침묵하는 십자가가 되어야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진주 같은 하루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우리가 사랑을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작고 빛나는 진주가 되어 사랑으로 좁은 문을 통과하십시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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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기 19,9ㄴ-11.14-21.31-35ㄱ.36       마태오 7,6.12-14

 

엠이 봉사자들과 함께 강릉을 다녀왔습니다.

강릉에서 선교장과 참소리 박물관을 보았습니다. 선교장에서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냥 볼 때는 무심코 넘어가는 것들도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연못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해설사는 연못에는 연꽃이 있어서 연못이라고 하였습니다.

연꽃을 심은 이유는 아름답기도 하고, 정화의 작용도 있지만, 연꽃을 심는 이유는

연잎에 고인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 연꽃 위에 떨어진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생각하니 운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나무를 심는 이유도 설명을 들었습니다. 대나무가 침입자를 막고, 땅을 보호하는 의미도 있겠지만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소리가 아름답다고 합니다. 설명을 들으니 새롭게 알 것 같았습니다.

 

참소리 박물관에서도 해설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정과 노력이 참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소리를 모으고, 소리가 전달되는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소리는 영화로 발전하였고, 영화는 많은 신화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목적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왕’처럼 대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왕비’처럼 대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남편이 아내를 ‘하녀’처럼 대하면서 ‘왕’처럼 대해 주기를 바란다면

아내 역시 남편을 ‘종’처럼 대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월급만 타오는 ‘기계’처럼 여긴다면 남편 역시 아내를 집안일만 하는 ‘기계’처럼 대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라보는 거울은 늘 거짓이 없습니다.

내가 거울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으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도 환하게 나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내가 거울 속에서 잔뜩 화난 얼굴을 보이면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 역시 화난 얼굴입니다.

거울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듯이 우리가 만나는 이웃에게 친절하고, 환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의 이웃도 그렇게 우리를 대할 것입니다.

 

때로 물에 글을 쓸 수 없듯이, 우리의 선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거울에 먼지가 있거나, 흠결이 있으면 나의 웃는 얼굴이 제대로 비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역시 나의 얼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십시오.’

 

좁은 문은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그것은 나눔과 희생입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봉사자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노벨 평화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교구청에도 매월 이발 봉사를 하시는 형제님이 계십니다.

참 고마우신 분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글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무한 경쟁의 시대에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친구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람은 어둠 속에 빛나는 별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감사와 친절입니다.

주변을 보면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서 주인에게 돌려주는 분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간직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분도 있습니다.

 

좁은 문은 눈에 보이는 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눔과 희생, 배려와 양보, 감사와 친절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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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열왕기 19,9ㄴ-11.14-21.31-35ㄱ.36          마태오 7,6.12-14

 

오늘 <복음>은 산상설교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중요한 세 가지의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가르침이요,

<둘째>는 “너희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는 가르침이요,

<셋째>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입니다.

 

<첫째> 말씀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두 가지 원리 중 하나입니다.

앞 장면에서 우리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마태 7, 1)는 이웃과의 화합의 원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이와는 대조되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태 7, 6)는

이웃과의 단절의 원리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는 결코 남에게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가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분별 있고 신중하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르기”

(마태 7, 6) 때문입니다.

 

세속적이고 악한 생활로부터 영적인 분별력과 신중함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균형 있고 조화 있게 행동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세속정신과 이방종교들과 함께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별 있는 행동을 이렇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 2)

 

이러한 분별의 귀중함에 대해서 요한 카시아누스는 그의 <담화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분별의 은총 없이는 완전한 덕이 없다”(담화 2, 3)

사부 성 베네딕도께서도 <수도규칙>에서 ‘분별을 모든 덕의 어머니’(64, 19)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둘째> 말씀은 흔히 황금률이라 불리는 사랑의 원리입니다.

이는 6장 33절의 말씀과 더불어 산상설교의 2대 강령이기도 합니다.

 

곧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이

수직적인 관계의 황금률이라면,

여기 7장 12절의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는 말씀은

수평적인 관계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결코 ‘정직은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공리주의적 금언이 아닙니다.

또한 ‘주는 양만큼 똑같이 받을 것’을 기대하는 이해타산의 합리주의적 금언도 아닙니다.

오히려 철두철미한 ‘이타적인 사랑’으로 남에게 베풀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겸손하게 ‘먼저’ 남에게 베풀라는 적극적인 사랑에 대한 요청입니다.

곧 사랑을 타인에게 기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사랑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마태 7, 12) 입니다.

 

<셋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을 규명하는 네 가지 비유 중 첫 번째로,

좁은 문과 넓은 문의 비유입니다.

곧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7, 13-14 참조)는 요청입니다.

 

이 문은 좁은 문이기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버려야할 것들은 버리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의 길이지만 자신을 비우고 들어가는 문이기에 많은 이들이 선뜻 들어서지 않는 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생명의 문이신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분의 이끄심에 의탁하는 자라야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들은 이 세 가지 말씀이 우리의 삶 안에서 실현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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