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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묵시록 일곱 교회-7 / 라우디게이아 교회

작성자실베스텔|작성시간11.06.24|조회수208 목록 댓글 0

 

라우디게이아 (Laodikeia)

[라우디게이아 교회]
에페소의 동쪽 150km에 있으며 60년의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십자가와 기둥 등 퇴락한 벽체가 흩어져 있다.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물이 9km가 떨어진 라우디게이아까지 흘러 오면서 물이 식어 미지근하게 된다.

에페소에서 동쪽 내륙으로 17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인구 20여만명의 테니즐리가 있고 이곳에서 북쪽으로 8키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리오디게이아 페허인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 임금 안티오쿠스 2세 (기원전 261-252년 재위)가 이 지역의 전략적 요소 때문에 도시를 창건하고 왕비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이아라고 명명했다.
사도 바올로가 제3차 전도 여행중(53-58년경) 에페소에서 27개월 가까이 머물때 그의 제자 골로사이 출신 에바프라는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450여리 떨어진 곳에 골로사이 교회(골로1,6-7)와, 히에라폴리스와 리오디게이아 교회도 세운 것 같다(골로 4,12-16).
요한 묵시록의 작가는 이 교회를 호되게 꾸짖었다(묵시 3,14-22). 이곳의 교우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영적으로는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비쟌틴 제국은 13세기까지 이고을 방어하다가 셀주크 투루크족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1710년과 1899년에 지진으로 심하게 파괴된 이곳을 1961-1963년 케나다 퀘백시의 라빌대학교 고고학팀이 발굴작업으로 . 로마식 야외 운동장(Stadium)과 두 개의 큰 야외 원형극장 터가 발견 되었다. 아직도 유적 대부분이 땅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한다.

 

 살다 호수

 

순례자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중심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되 굳은 뿌리로 단단한 시선을 유지할 것!

풍요로운 들녘과 농촌 마을들을 지난다.

밭 한가운데 나무들이 서 있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나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넉넉하게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내 안의 정신도 돌아본다.

 

 

 

 

 

친미(親美) 국가인데도 영문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옹기를 쌓아둬야만 옹기가게인 걸 안다. 가게들을 지나면서도 도무지 무엇을 파는 곳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글을 모르던 숱한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묵상하며 성경과 하느님과 예수님을 알고 흠숭했듯이,

나는 오늘 자연'이라는 거대한 그림과 낯선 이방의 세계 속에서 주님의 뜻을, 주님 자체를,

그리고 나를 이끄시는 길을 알아들어야 한다.

 

두 번째 왔지만 오히려 터키의 생경한 눈빛과 만난다.

두려움 가득한 까만 눈, 경계하는, 여전히 내겐 이방의 거친 그 눈빛을.

다르다, 다른 얼굴이다. 너무나 당연한 경험이다. 그러니 나는 널 모른다.

다만 스치며 미소지을 뿐. 이렇게 이방의 눈빛으로도 영원을 통과하는 평화를 빌어줄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 벗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

고마운 섭리의 순간이다. 다시 만나서 고마워! 

 

 

 

 

 

산맥들의 깊은 분지에 자리한 도시 데니즐리를 지나 30킬로미터쯤을 더 달려 콜로새에 닿는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호나즈 산 아래 지금은 작은 언덕일 뿐인 콜로새가 있다.

 

누런 밀밭으로 올라간다. 엉겅퀴가 종아리를 할퀸다. 둘러서서 기도를 드린다.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히에라폴리스나 라오디케이아에 비해 너무도 볼품없이 폐허가 되어 있는 콜로새.

 

 

콜로새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선교여행 중에 에페소에서 27개월 정도 전도할 때

콜로새 출신인 제자 에파프라스가 콜로새에 교회를 창립하고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 교회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콜로 4.12-13).

 

 

바오로가 에페소 감옥에서 콜로새 교회에 보냈다는 콜로새서가 바오로의 친서인지의 여부는

아직도 논란이 있지만 콜로새 교회 신도 필레몬에게 보낸 필레몬서는 친서임에 틀림없다.

 

이천 년 전 생생하게 살아 있던 역사가 지금은 바람결에 스치고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밀밭, 콜로새.  

 

시야가 환히 열리는 콜로새 언덕을 내려와 마지막 편지를 받은 교회이자 책망만 받은 라오디케이아로 간다.

열 때문에 아스콘 냄새가 진동한다. 너무 빠른 버스의 속도 때문에 이정표도 금세 지나쳐버린다.

 

라오디케이아는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기원전 261-252년)가

이 지역의 전략적 요소 때문에 만든 도시로 왕비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케이아라고 명명했다.

이곳은 요한 묵시록(3,18)의 기록처럼 ‘후루기아(Phrygia)’라는 안약 원료의 생산으로도 유명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이 교회를 호되게 꾸짖었다(묵시 3,14-22).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묵시 3,14-22).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진 이 도시는 60년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십자가와 기둥 등 무너진 벽체가 흩어져 있다.

 

 

 

1961-1963년 케나다 고고학팀의 발굴로 로마식 야외 운동장과 두 개의 큰 원형극장 터가 발견되었는데

아직도 유적 대부분이 땅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뜨거운 햇빛 아래 잠시 유적을 돌아본다.

성경에서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한 것은 자연적인 조건 때문이기도 했다.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온천물이 치료에 사용되었고, 타우루스 산에서 흘러나오는 찬물이 기력을 회복시켰는데,

이 두 물이 리쿠스 강에서 합류하여 라오디케이아까지 흘러오면 치유력은 없어지고 물은 미지근해져 버렸다.

 

 

 

부유하지만 그로 인해 눈멀고 귀멀어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한 자신의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부자들.

그럼에도 주님은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영혼'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던지는 쓴소리가 오늘 나에게도 와서 박힌다.

 

 

 

 

 

 

 

라오디케이아는 소아시아 프리지아의 수도로서  골로사이에서 서쪽으로 16마일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1710년과 1899년 대 지진때 완전히 파괴되었다는데, 복원되지 않은 채 이렇게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6.5Km 떨어진 히에라폴리스의 온천물이 수로를 통해 흘러 들어오는데 여기에 도착하면 식어서 미지근한 물이 되어
묵시록에서는 이것을 신앙의 빈곤함에 비유하여 책망합니다.

 

 

 

 

 

초대 그리스도교가 확장되는데 큰 역할을 한 요한묵시록의 일곱 교회.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당시 라오디케이아는 지역적 특성으로 무역업, 의류제조업, 고대의학, 안약 등이 유명했다고 합니다.
경제적 풍요로움 때문인지 이곳 신자들의 신앙이 미지근했나 봅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던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요한묵시록 3, 15~16)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요한묵시록 3, 17)


 

 

 

 

 

 

“그러므로 나는 너에게 권고한다. 너는 나에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돠고 나에게서 흰옷을 사서 입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지고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눈을 떠라.”(요한묵시록 3, 18)


여기서 불로 단련된 금은 고통을 통한 굳은 믿음을 뜻하고, 흰옷은 회심, 안약은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히 노력하고 네 잘못을 뉘우쳐라." (요한묵시록3.19)

 

 

 

 

 

 

비단 그 시대에만 해당되는 말씀이겠는지요. 제 가슴에도 큰 소리로 울려 왔습니다.

 

 

 

 

 

 

이곳은 무너진 교회터 옆의 원형경기장 입니다.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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