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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성지(로마) : 카다콤베(Catacomb)

작성자실베스텔|작성시간11.12.03|조회수119 목록 댓글 0

다녀온 성지(로마) : 카다콤베(Catacomb)
 paxkorea    | HIT : 453
안식처"흙구덩이 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 묘지를 카타콤베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폴리 ·시라쿠사 ·몰타 ·아프리카 ·소(小)아시아 등의 여러 지방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로마 근교에 많다. 카타콤은 원래 그리스어 ‘카타콤베’로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며,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면(面)한 성(聖)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지하에 묘지를 두는 풍습은 동방에서 전래되었으나 그리스도 교도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지하묘지의 풍습이 더욱 성행한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그러나 게르만 침입 후 지하매장을 하지 않게 되어 카타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구조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通廊)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또한 통랑의 곳곳은 넓은 방처럼 되어 지도자급 교도의 묘실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통랑의 벽면(壁面)에도 시체를 두는 벽감(壁龕)을 일정한 규칙으로 설치하였다. 여기에 남겨진 수많은 벽화는 고대 이교미술(異敎美術)과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의 변천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예술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흥미롭다. 그 밖에 비명(碑銘)과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이 예술의 상징으로서 그린 물고기 그림 등이 남아 있다.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피난을 겸한 예배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현재 그 유적은 로마시의 관광 코스에 포함된 것도 있으며, 순례자 등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카타콤베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있다. 구 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대소 25개의 카타콤베가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고 한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곳은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서 5층으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이다. 이 곳에는 3세기의 교황님들의 유골이 모두 모셔져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 성 세실리아의 묘도 있다.

'휴식처' 라는 뜻의 그리스어 '케에메트리아' 에 해당하는 카타콤베는 처음에는 가족 공동묘지였으나, 고대 로마에서는 일반적인 지하묘지를 카타콤베라고 했다. 로마인들은 일반적으로 화장을 했지만 그리스도 교도들은 묘를 만들었다. 로마 초기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 교도들이 묘지에 숨어 집회와 의식을 행했으므로, 이후 그리스도 교도의 성당이나 묘지를 카타콤베라 일컫게 되었다.

카타콤베는 너비가 1m, 높이 2-3m의 통로 벽에 직사각형 또는 윗 부분이 반원형인 벽감을 파서, 유해를 넣고, 연와 또는 대리석판으로 덮은 다음 석회로 밀폐하였다. 그곳에는 사망자의 이름, 연령, 사망일 등이 새겨지며, 때로는 상징적인 그림과 축복의 말이 새겨진다. 이 곳의 2층 3층으로 파 내려간 지하통로는 복잡한 미로가 되어 혼자서 다니기가 무척 어려우나 순교자와 성인이 수없이 묻혀 있어, 그리스도 교도들의 순례지로 찾는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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