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잇는 연결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성서상으로 구약시대부터 아브라함(창세 12,10-13,1)을 비롯하여 요셉과 그 형제들(창세 37장 : 42-43장), 모세(탈출 2,16-4,23), 출애급 당시의 이스라엘백성(탈출 13,17 이하 :민수기와 신명기), 예언자 엘리야(1열왕 19,4-19)가 이 시나이 반도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의 뜻을 받았다.

수에즈만과 아카바만 사이의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써 남부는 험한 산악지대이고 북부는 황량한 광야이다. 넓이 6만1천 평방 Km 의 시나이 반도는 낮에는 작열하는 햇빛이 내리 쬐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 한다. 계곡이 거의 없어서 물을 구하기 힘들고 대표적인 오아시스로는 파이란 오아시스가 있다. 모세가 애굽에서 팔레스틴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통과한 곳이 이곳이고 아라비아의 유목민인 아말렉족과 싸움을 벌인 곳이며, 이스라엘 자손들이 40년동안 유랑하며 하나님의 만나와 메추라기를 공급받던 곳도 이곳이다. 모세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과 출애굽 사건은 가장 큰 사건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겠다.
시나이 반도는 6만2천 ㎢ 크기의 대륙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을 연결하는 지리학적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남은 홍해, 동은 아카바만 (평균 깊이 1,850 ㎞). 서는 수에즈만 (평균 깊이 110 m), 북은 지중해로 둘러 쌓인 곳이다. 북부는 기후가 온화하며 평균 강우량 150㎜에 이르고, 비옥한 계곡과 오아시스가 많이 있는 남부는 평균 강우량이 60㎜ 정도이다.
현재 시나이 반도에는 25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약 60%가 아랍계열의 유목민인 베두윈 족이다. 이들 베두윈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좇아 물과 꼴을 찾아서 광야를 이동하고 있으며, 대추야자, 올리브, 귀리등을 재배하여, 식량과 가축들의 사료로 쓰기도 한다.
이들을 규제하는 법은 이집트 국법이라기 보다, 그들만의 부족법이다. 이들은 정착을 위한 농경이나 집을 짓지 않으며, 임시 거주처는 야자수잎 등으로 만들어 지는데 물론 지붕없는 구조로 지어진다. 엘 아이리쉬 지역이나 바란 오아시스 지역의 유목민들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반 유목민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시나이 반도의 여기저기에서 중동전의 전흔을 찾아볼 수 있는데, 수에즈 운하 근처의 높은 모래 둔덕들은 군용 참호를 만들었던 자리들이다.
이 지역의 관할권을 두고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집트와 터키가 다투었고, 중동전 과정에서는 이스라엘에 점령되기도 했다. 1982년 이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반환하였고, 1988년 이후로 이집트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타바의 힐튼 호텔은 이스라엘이 1970년대 후반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집트 영역 안에 있다. 시나이 반도의 개발은 1967년 3차 중동전 이후에 이스라엘이 점령하면서 구체화되어, 다합, 누에바, 샤름 엘 쉐이크 들에 정착촌을 건설하였고, 홍해변에 고속도로를 1971년에 완성 시켰다.
■ 출애굽 현대의 시나이 반도 내의 아스팔트 길과 전통적으로 말하는 출애굽의 길은 꼭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나이 반도와 나일 계곡 (아라비아 사막)을 연결하는 수에즈 운하의 해저 터널을 지나서 15Km 정도 남행하면 대추 야자나무가 무성한 조그만 오아시스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을 아랍어로 오윤 무사(OYUON MUSA), 성경상의 마라의 샘(탈출 15:23)이다.
수에즈만 (홍해)를 따라 남행하여 와디 파이란 (WADI FAIRAN) 계곡을 계속 따라 가면 성가타리나 수도원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라스 사라팁에서 우측길로 60 Km 정도 더 가면 엘드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엘림(탈출 15:27)으로 간주되는 장소로 종려나무 70여 주와12개의 샘이 있고 4세기 때 건립 된 조그만 교회가 하나 남아 있다. 다시 와디 파이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파이란 오아시스(FAIRNA)에 도착한다. 이 오아시스가 성서의 르비딤 인데 이곳이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처음으로 아말렉족와 여호수아가 전쟁을 치룬 곳이다.(탈출 17:8-16) 이 계곡을 와디 히브린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히브리(유태)가 지나 갔다는 뜻이다. 파이란 오아시스는 길이가 4 Km 정도인데 시나이 반도 내에서는 가장 큰 오아시스이다.
그리고 와디 엘세이크로 들어가 50 Km 정도 가면 성 가타리나 수도원이 나온다. 이 수도원 자리가 시나이산 아래인데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이다.(탈출 3:1) 모세의 출애굽 600년 후에 이스라엘의 예언자 엘리야도 정상에서 하느님과 대화 하였던 성산이다. 시나이산 정상에는 기원 4세기경에 세워졌던 조그만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 시나이 산(Mt. Sinai)파이란 오아시스를 지나면 표고 2,285m의 시나이산이 있고 그 옆에 가타리나 산이 보인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오늘날 시나이 산으로 추측되고 있는 호렙산에서 가시나무 떨기 속의 불꽃을 보고 다가 가다가 야훼의 음성을 들었다. 모세는 여기서 출애굽의 사명을 받았고 또 여기서 십계명을 받았으므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는 이를 '거룩한 산(The Holy Mountain)'으로 여긴다.
성서에서 시나이 산과 관련하여 맨처음 등장하는 사람은 모세이다. 모세는 하느님의 지시대로 이집트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던 동족을 이끌고 시나이 산에 이르렀다. 모세는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기 위해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탈출 19,3 : 24,9) 그곳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계명을 전하려고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고(탈출 19,14), 시나이 산에서 40일을 보내기도 하였다.(탈출 24,18).
또한 엘리야는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바알 우상을 섬기자 호된 질책을 하였는데(1열왕 16,29-18,46), 이에 이세벨 왕비가 자기를 해치려고 하자 시나이 산으로 도망을 갔다(1열왕 19,9-15).
오늘날 시나이 산을 찾는 순례자들은 해발 1,500m 지점에 위치한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부터 오르기 때문에 실제로 걷는 거리는 약 800m정도이다. 마지막 750여 개의 돌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성 삼위 일체 성당과 이슬람교 사원이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