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영성의 집에서 마주한 환희의 기억

작성자Jo Peater|작성시간26.06.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2002년, 대한민국은 온통 월드컵의 열기로 들끓었습니다. 당시 저는 부산에서 100평 규모의 팬시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습니다. 평생 직장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내 사업'을 시작하며 느꼈던 것은 막연한 자유였습니다. 하지만 곧 현실은 달랐습니다. 놀면 곧바로 수입이 줄어든다는 압박감이 하루가 다르게 목을 죄어왔고, 상인들의 고단한 삶과 그 속의 애환을 몸소 체험하며 사람 사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온 국민이 우리 선수들의 승리에 열광할 때, 저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승리할 때마다 물건값을 10%씩 내리겠다”라고 매장 앞에 광고를 붙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듯했지만, 첫 승리 이후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가 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네 번의 승리로 할인율이 40%까지 치솟자, 솔직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창고에 쌓여있던 재고까지 모두 꺼내 진열했습니다. 덕분에 매장은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고, 창고는 재고 정리가 되어 깨끗해졌습니다. 비록 큰 수익은 없었을지 몰라도, 국가적인 환희를 손님들과 나누며 즐겁게 보낸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우연한 기회로 부산 사하 성당의 금요 철야 기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지하 성당에 모여 기도와 성가를 나누는 형제자매님들을 보며, 그들이 품고 있던 '성령 회관'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불산에 영성의 집을 짓기 위해 험한 산을 오르며 기도하던 봉사자들의 노고는 결국 결실을 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철야 기도가 신불산 영성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매주 금요일이면 산의 고요함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신불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2박 3일 성령 세미나를 신청했습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쉴 틈 없는 강의와 토론이 이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봉사자들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는 참가자들을 위해 헌신했고, 우리들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깊은 고백성사를 보았습니다.

그 세미나에서 만난 한 형제님의 이야기가 지금도 선명합니다. 건축업을 하던 그분은 가족들과 해변에서 피서를 즐기다 보트 사고로 딸을 잃을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습니다. 인공호흡을 해도 숨이 돌아오지 않던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딸이 다시 살아나면 꼭 성당에 나가 냉담을 풀겠다”라고 서원했고, 기적처럼 아이는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을 미루다 동업자의 권유로 이 세미나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토요일 밤, 그분은 그토록 원하던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며 아이처럼 기뻐했습니다.

세미나 마지막 날, 수녀님의 안내로 미사 맨 앞줄에 앉게 되었습니다.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미사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던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주던 그 환희의 기억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삶의 고비마다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결국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이렇게 무심코 지나칠 뻔한 순간에 찾아오는 작은 은총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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