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작성자L-Andrea|작성시간26.06.20|조회수18 목록 댓글 0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강론>
(2026. 6. 20. 토)(마태 6,24-3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24-34).”

1)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라는 말씀을,
하느님과 재물이라는 두 주인이 있다는 말씀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재물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하느님 위치에 올려놓고,
하느님처럼 섬기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재물을 섬긴다는 말은,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 위치에 올려놓고 섬기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입니다. 따라서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신앙생활보다 세속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마치 시간이 날 때 하는 취미생활처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재물을 섬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도 하긴 해야 하는데, 그래도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신앙인으로서 살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2) “걱정하지 마라.”는, “집착하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살다보면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생길 때가 있고, 그럴 때에 걱정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숨이 막힐 정도라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 그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마태 13,22).” 우리는 어떤 걱정거리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걱정하더라도 하느님을 믿어야 합니다. <걱정되니까 더욱더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걱정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걱정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며 걱정하는 것을, 눈앞에 놓인 많은 음식들 가운데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과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만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하는 이웃이 옆에 있는데도, 그 이웃을 외면한 채, 음식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3) 26절의 “너희는 그것들(새들)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은, 우리 입장에서는 “너희는 솔로몬보다 더 귀하다.”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솔로몬 왕보다 나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 라고 믿는 것이 우리 모두의 믿음입니다. 27절의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라는 말씀과 34절의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라는 말씀은, 야고보서에 있는,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에 연결됩니다.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지지 않을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 뜻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지는 씨앗이 아니라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 곧 살아 계시며 영원히 머물러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3-25).”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그것들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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