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憐憫(연민)과 惻隱之心(측은지심)

작성자실베스텔|작성시간11.03.29|조회수190 목록 댓글 0

      憐憫(연민)과 惻隱之心(측은지심)

 

憐憫(연민)은 ‘불쌍히 여김, 가엾이 여김’의 뜻으로 이는 사랑(愛)과 구제(恤)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정이다.

憐은 불쌍할 련(哀의 뜻), 사랑할 련(愛의 뜻), 가련할 련(可憐의 뜻)

憫은 딱할 민(憂恤의 뜻), 불쌍할 민(憐의 뜻), 근심할 민(憂의 뜻)

 

惻隱之心(측은지심)은 맹자(孟子)의 四端設(사단설)에 나오는 말로 ‘불쌍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이는 어진(仁)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惻은 슬플 측(痛의 뜻), 아플 측(愴의 뜻), 불쌍할 측(哀의 뜻)

隱은 숨을 은(藏의 뜻), 숨길 은, 불쌍히 여길 은(惻의 뜻)

맹자는 四端說에서 ‘無惻隱之心 非人也’라 하였고, ‘惻隱之心 仁之端也’라 하였다.

유가(儒家)의 ‘憐憫’이나 ‘惻隱之心’은 사랑(愛)과 어짐(仁)에서 나오는 것으로 이는 사람의 착한 본성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덕목(德目)임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살던 싯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났으나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고통 받는 것에 연민의 정이 들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에 들어갔다. 마침내 ‘대 각성’에 이르게 되어

‘부처’가 되었다. 그리하여 ‘대 자비의 종교’인 불교를 창시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는 슬픔의 가시를 뽑아주고 대신에 자비심과 참된 지혜를 심어 주었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사상은 자비심(慈悲心)으로 이는 유교의 仁과 그리스도교의 사랑과 같은 개념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연민과 자비심이 깊은 분이셨는지는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마태복음 5-7장)로 제자들과 따르는 많은 이들을 가르치신 다음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 주셨다.

마태복음 8-9장에는 주로 나병환자를 비롯해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가엾이 여겨 고쳐 주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예수님은 병자들뿐만 아니라 굶주린 이에게 빵의 기적을 일으켜 먹여주시고,

마귀 들린 자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어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하시었으니 이 모두가 연민의 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카복음 10장 29-37절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초주검이 된 사람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치는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그를 돌보아

주었다. 이처럼 불쌍한 이를 돌보는 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라고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이처럼 예수님은 적대자들에게까지 연민의 정을 느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심이 이런

연민과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보아 유교의 덕목인 측은지심은 바로 그리스도교의 덕목인 사랑과 불교의 자비의 사상과 다름없음을

알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위대한 성인들은 가장 보잘것없고 나약하고 불쌍한 이들에게

연민의 정을 가지고 그들을 돕고 구제해야 한다고 한결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자들은 물론 가난한 많은 이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야 함은 물론, 죄의식 없이 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도 연민의 정으로 대하여 속죄의 길로 안내하여야

할 것이다.

상대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연민의 정을 가지고 대하면 불화 없이 따뜻한 인간관계로 화목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나는 이웃에 얼마나 연민의 정을 갖고 대하며 살아왔는가를 깊이 반성해 봅니다.

진정한 사랑은 측은지심에서 나옴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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