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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순례

로마로 가는 길 (25) 솜므(Somme) 전투의 참호

작성자fidelis|작성시간21.09.07|조회수175 목록 댓글 0

 

19세기까지 영국, 러시아까지 유럽의 왕실들은 모두 합스부르크 가를 매개로 하는 혼맥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전의 세계질서는 작은 국제적 다툼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여러 나라가 패거리를 이루어 세계 대전을 일으키는 데는 왕실 이해관계와 종교적인 이념 다툼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제국 건설의 야망을 실천에 옮긴 나폴레옹조차 그런 욕망 분출이었습니다.

 

돈의 물결이 왕실 족보를 깔아뭉개기 시작한 20세기에 이르면서 왕정은 황혼을 맞았습니다.  합스부르크가는 이빨 빠진 늙은 모습으로 주저 앉는 중이었습니다.  나라마다 국익을 위해서 또는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힘을 과시하려는 욕망이 넘쳤습니다. 무시당했던 독일의 경우, 갓 통일한 뒤라 그런 분위기가 심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서슬 퍼렇던 합스부르크 왕가를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는 계기였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자 마자 유럽대륙에 연쇄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여론이 들끓어 어쩌고저쩌고 분기탱천하다가 딱 한달 후인 7월 28일 세계대전 (1914 – 1918)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전쟁에서 해가 가기 전에 프랑스 군 백만명이 전사했습니다.  전사자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어서 동네마다 과부들이 넘쳐났습니다.  기관총, 독 가스, 탱크, 비행기, 곡사포 등 살인기계들이 등장하자 인명 손실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금방 끝날 것 같던 전쟁은 군화가 애국심과 함께 닳아 빠질 때까지 4년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잠시 다녀오겠다고 떠난 전선은 지구전 또는 소모전으로 인력과 물자를 마구 갈아 없애다시피 했습니다.  참호전의 결정판이 솜므 전투의 대량 인명 살상이었습니다.

 

영국군 참호:  https://ko.wikipedia.org/wiki/솜_전투#/media/파일:Cheshire_Regiment_trench_Somme_1916.jpg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의 모습: https://pt.wikipedia.org/wiki/Ficheiro:Trench_construction_diagram_1914.png

  

바뽐(Bapaume)에서 뻬혼느(Péronne)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협회가 제시하는 31km루트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군사묘역을 차례로 도는 여정입니다.  포장도로 구간이 많습니다.  영연방 출신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로 보였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은 비포장 농로를 이용하여 남으로 내려가는 27km 루트입니다.  VF 길표지가 없는 루트이기 때문에 GPX 트랙데이터를 미리 내려 받아 두어야 합니다.  밭 가장자리 길은 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에 푹푹 빠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이 루트에도 독일군 묘지를 비롯 군사묘지 몇 곳이 있습니다.

 

기술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 동네 성당에서 출발기도를 바쳤습니다.  난리가 나기만 하면 부서졌던 성당.  독일군들도 성당에 다녔을 텐데 다른 동네 성당이라고 포를 쏘아 댔습니다.  전쟁 끝나면 다시 짓고 또 부서지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하느님은 둘 중 어느 편을 들어야 하느냐?” 

“두들겨 맞는 이를 감싸 안고 대신 매를 맞았을 거야.

약한 자 편에서 같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총 맞고 죽어 갔다고…”

 

서로 사랑하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애국심인지 뭔 지가 말씀보다 더 솔깃해서 남의 나라 쳐들어가 죽이고 죽었습니다.  속상하신 하느님은 어쩌라고 …

 

왜 종교색 짙은 여행기에 맨날 전쟁 얘기만 쓰느냐고 했습니다.  여행 목적이 그렇다고 답 했습니다.  남의 아픔을 보고 적어서 그것을 알리고 우리가 덜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실용적인 이유와 아픔 속에 하느님이 계시니 그것을 찾아온 것이라고.  평화의 나라에 가면 그 때 찬미와 찬송을 바칠 거라고.

 

바뽐의 새벽
바뽐 성당 피에타 상

 

 

 

아침 해는 늠름하게 들판의 곡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지평선에 드문드문 숲이 보이고 밀, 옥수수, 콩, 채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앞 뒤로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빝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이는 트랙터가 반가운 인적 없는 들판이었습니다. GPS 트랙 데이터를 확인하며 갈림길을 지나갔습니다. 

 

 

 

이 루트에서 나무가 거의 없는 넓을 들판을 휘돌아 걷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밀, 콩, 유채를 심은 밭.  늦 가을이면 흙덩이가 벌판을 채워 더욱 쓸쓸하게 할 것입니다.  백 년 전인 제1차 세계대전 솜므(Somme) 전투 현장에 근접하여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바뽐 (Bapaume), 빼혼느(Péronne), 그리고 서쪽 알베흐(Albert)를 연결하면 거의 정 삼각형이 되는 지역이 솜므 전투 지역이었습니다.  포격, 기관총 화망, 총검 돌격, 독 가스, 탱크, 참호, 철조망으로 상징되는 전투가 벌어진 참혹했던 벌판이었습니다. 

 

1916년 7월 1 일 솜므 전투 첫날 영국군 58,000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이중 2만명 정도가 죽었습니다.  미 육군 편제로 보면 전시 3개 보병사단이 하루 전투에 한 곳에서 전멸했다고 보면 됩니다.  날이 가며 대대규모 또는 여단 규모의 병력 손실이 이어졌습니다.  영국군 총 사령과 헤이그의 오판과 야심이 불러온 참사였습니다.  첫날 그렇게 많이 둑었으면 원인분석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돌격시키고 다 죽으면 다음 부대 돌격을 3개월간 반복한 바보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15 km전진하는 동안 사상자 40만명, 프랑스 군 20만명, 독일군 50만명이 발생했습니다.  살아서 돌아간 이들도 상당수는 팔 다리가 없거나 독가스로 얼굴이 문드러진 상태였습니다.  이 전투에 참전했다가 사지가 멀쩡하게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 중에 소설가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 1892 ~ 1973)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설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톨킨은 통신장교로 자원 입대하여 군사훈련 후 배속된 부대가 이곳에서 벌어진 솜므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몇 달 참호 전을 겪다가 참호 열병에 걸려 후송되었습니다.  질퍽거리는 참호는 그 자체가 생지옥이었습니다.  갈곳없이 그 자리에 몇 달이고 있어야 하는 곳.  참호열병은 5일 간격으로 고열을 비롯 전신이 아픈 병입니다.  이가 옮기는 박테리아 균이 일으킵니다.  지금이야 테트라사이클린 계열 항생제를 열흘 투약하면 낫는 병이지만 약이 없던 당시에는 몇 달이고 지독하게 시달렸던 모양이었습니다.  영국군 30%, 독일군 20%가 이 병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톨킨은 병이 나아 서부전선으로 귀대해 보니 소속 부대가 전멸한 뒤였습니다.  고향에서 같이 왔던 입대동기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병을 옮긴 이 몇 마리가 그를 살렸습니다.  훗날 이곳에서 전투 경험을 판타지화 해서 소설 “반지의 제왕”을 쓸 때 활용했습니다.

 

참호열(trench fever) 증상: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Major-signs-and-symptoms-of-trench-fever_fig1_304745957

 

 

히엥꾸흐(Riencourt-lès-Bapaume) 마을을 지나면 72기의 묘가 있는 만체스터 묘지(Manchester Cemetery )가 나옵니다.  이어서 인구 260명의 작은 마을 빌레 오 플로(Villers-au-Flos)를 지나갔습니다.  이 마을로 들어가면서 왼쪽으로 보면 마을 북쪽 끝에 100년 자란 활엽수 숲이 키가 훨씬 커 보였습니다.  독일군 전사지 묘지(cimetiere allemand de villers au flos)였습니다.   잘 관리된 2,449기의 묘마다 까만 철 십자가가 키 큰 나무들 밑에 줄지어 있었습니다.  몽매한 독재자들에게 끌려 나와 이곳에서 젊음을 내 버린 사람들.  레마르크의 소설 주인공 파울 보이머가 누워 있을 지도 모릅니다.  어떤 묘지 철십자가에는 화환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백년 전 조상 묘소에 성묘를 왔다 간 것 같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맞서 싸웠으면서도 묘지는 존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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