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8일 오전 5시 호텔을 나와 헹스 노트르 담 대성당 앞을 지났습니다. 어둠이 가시면서 도시는 활기를 찾았습니다. 운하 오른쪽 길에는 이른 아침 조깅하는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길고 긴 직선 산책로는 무동력 바지선이 운항하던 시절에는 말이 배를 끌었던 견인로였습니다. 이른 아침인 데도 낚시꾼들이 채비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운하는 빈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정박중인 페니쉐 몇 척은 흘수 선이 물위에 나와 있어 짐을 싣기 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옆 곡물 엘리베이터는 가동하지 않는 듯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운하 물류가 사양화 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주변에 나무가 없는 곳이면 황량한 도시 근교의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버려진 건물의 지붕은 뻥 뚫렸고 녹 슨 배관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틈으로 보이는 것은 오가는 트럭과 공장 폐기물 더미였습니다. Saint Leonard의 한적한 운하 옆길을 지날 때까지 공장지대가 이어졌습니다.
운하 길을 한참을 걸었습니다. 작은 배 한 척에 남자 혼자 앉아서 스르르 미끄러져 갔습니다. 삽살개 한 마리가 갑판으로 나와 꼬리를 살살 흔들고 있었습니다. 배 주인이 혼자 여행하며 느끼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개일 것입니다.
운하가 La Vesle 강과 겹쳐지면 두 물길이 섞이지 않도록 다리를 만들어 운하가 강 위로 건너갔습니다. 인공 흐름이 자연 강을 가로지르는 곳이었습니다. 다리로 강을 건너는 뱃길. 베슬(La Vesle) 강은 남쪽으로 벌판을 가로질러 앤느 강과 합쳐지고, 앤느 강은 수와송(Soissons)을 지나 결국 세느 강으로 합쳐지고 대서양으로 흘러갑니다. 베슬 강에는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옆 운하 갑문은 비어 있었습니다.
운하에는 바지선 호텔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바지 선에 객실, 식당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잠만 자는 곳은 아니고 손님을 태우고 랭스까지 아니면 다른 포도밭으로 다녀오기도 합니다. 표지판에 산티아고로 가는 조가비가 있었습니다. 독일 아헨(Aachen)에서 베즐레(Vézelay)를 거쳐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곳부터 운하 견인로를 벗어나 포도밭 지역으로 갔습니다.
실르히(Sillery)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주말이어서 문을 연 가게가 없었습니다. 10km를 걸어와서 잠시 쉬었습니다. 이 마을은 영국의 식후 음식인 실라법(syllabub)에 쓰는 와인의 원산지입니다. 실라법(Syllabub)은 크림이나 우유에 와인 설탕을 넣어 두부처럼 굳힌 부드럽고 달콤한 음식입니다.
실르히 마을을 나와 D308도로를 따라갔습니다. 옆으로 넓은 프랑스 군인묘지가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 11,259명의 묘지입니다. 이 마을 인구 1750명 보다 7배 많은 전사자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고속도로를 지나고 철길을 건너갔습니다. 오버패스 위에서 이 지역 포도밭 모습이 잘 보입니다. 갑자기 고속열차가 잠시 정적을 깼습니다. 운하는 쇠퇴하고 고속열차는 흥하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완만한 오르막으로 헹스(Reims) 산으로 가다가 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동쪽 산자락을 탑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지만 근처에 이만큼 높은 곳이 없습니다.
이 산비탈 지역을 지나면 마흔 (Marne) 강을 만납니다. 이 역시 세느 강 지류입니다. 마흔 강에 가기 전에 운하는 언덕을 지나가야 합니다. 언덕 밑 터널 속으로 배가 지나가도록 물길을 연결해 놓았습니다. 그 터널입구까지 운하는 베슬(La Vesle) 강을 따라갑니다.
평평한 들판은 밀밭이지만 산자락 경사지부터는 포도밭입니다. 경사진 포도밭만 보이는 곳입니다. 본격적인 샴페인지역 포도 농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포도밭 언덕에 다가가자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포도농장도 기계화되어 일손이 많이 절약되었을 것입니다. 길 가 밭에 포도밭 상표를 새긴 돌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Pommery, Ruinhart, Mumm, …
질 좋은 샴페인이 생산되는 지방임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풍차 언덕과 우뚝 솟은 등대가 보였습니다. 바다도 아닌데 등대를 세운 것은 광고 때문이었습니다.
베흐즈내(Verzenay) 인구 1050명. 샴페인이 생산되는 양조장 마을입니다. 재배하는 포도는 100% 피노 누아의 우수한 품종입니다. 대략 150만평의 땅에 250 포도농가와 85명의 샴페인 취급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도밭을 꼽으라면 물랑 드 베흐즈내(Moulin de Verzenay)를 들 수 있습니다. 마을 옆 작은 산이 온통 포도밭입니다.
물랑 드 베흐즈내(Moulin de Verzenay) 언덕에는 커다란 옛날 풍차가 서 있습니다. 이 언덕에서 멀리 헹스까지 잘 보입니다. 관광객들을 태우고 다니는 마차가 포도밭 가운데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의 포도밭 관광은 헹스에 있는 여행사들이 상품화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었습니다. 파리 등지에서 놀러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풍차는 1818년에 Tinot-Vincent 부부가 세웠는 데 두 종류의 곡식을 빻는데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전쟁 때는 관측소로 사용되다가 1923년 Heidsieck라는 독일계 사람이 사들였는데 샴페인 전문가 집안이었습니다. 그 선조 찰스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샴페인을 소개하고 루이지애나 주에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남북전쟁 당시 스파이 혐의로 몰렸으나 링컨 대통령이 풀어주자 프랑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군들이 사용했다가 1949년 원해 모습으로 복구했습니다. 이 풍차가 서 있는 몽 뵈프(Mont-Bœuf)에서 그 아래에 엄청나게 펼쳐진 포도밭을 보면 프랑스 포도주의 본고장에 온 것을 알게 됩니다. 산비탈 마다 포도주 맛이 다르다고 할 만큼 포도주 맛을 내는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마을 반대쪽 포도밭 가에 등대가 있었습니다. 등대 방향으로 사람들이 제법 오고 갔습니다. Phare de Verzenay라고 부르는 와인 박물관입니다. 바다도 아닌 곳에 등대를 세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자 했던 목적이 있었습니다. 샴페인 브랜드 광고 목적으로 조셉 굴레라는 사람이 20세기 초에 세웠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는 사교 장 역할을 해서 광고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조선이 임금이나 바라보고 공자왈맹자왈 하던 시절에 프랑스에서는 시골 농부들조차 마케팅 기술을 발휘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정보가 몇 초 만에 지구를 돌고 돌지만 그래도 광고를 위한 관심 끌기는 여전히 색다른 소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실제 등대 랜턴이 설치되어 회전합니다. 밤이면 등대 불 빛이 샴페인 들판을 쓸고 지나갑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이 등대를 관측소로 운용하자 포탄세례를 받아 파괴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포도밭 관련 사진 기계를 전시하고 포도주를 팔고 있었습니다. 등대로 올라가려면 101 계단을 밟아야 합니다. 입장료 3 유로. 박물관 포함하면 9유로. 몽타뉴 드 행스(Montagne de Reims) 산비탈의 포도밭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습니다.
다음 마을로 가는 길은 굴곡이 있어서 좀 오르내리며 걷습니다. 기온이 올라 땀이 났다. 사람들이 제법 오고 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해서 일일이 인사를 해야 했습니다. 베흐지(Verzy) 인구 1000명. 이 마을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7세기에 세웠고 200년 걸려서 완공되었지만 농장이 되었다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 마을에서 여러 차례 기적을 행한 성 바슬(Saint Basle)의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성 바슬 경당이 있어서 옛 수도원을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이 수도원 때문에 이 지역에 수 많은 십자고상이 서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 근교에 있는 조용한 기도의 장소였을 것입니다. 가벼운 차림으로 걷는 사람들이 길에 있었습니다. 근처 어딘 가에 차를 세워 두고 온 듯했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보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숲의 푸르름, 새소리, 나비, 진흙 구렁조차 이들에게는 기분 전환 거리였을 것입니다. 지도 한 장 들고 산속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버려진 벙커라도 만나면 대단한 발견이 되어 포도주 기운에 떠벌릴 것입니다.
몽타뉴 드 헹스(Montagne de Reims)는 샴페인 지역 중에서 피노 누아(Pinot noir) 품종의 포도를 주로 재배하는 곳입니다. Pinot-소나무 noir-검은색이 이름의 뜻입니다. 짙은 포도송이가 원뿔의 솔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지역은 백악질 토양이어서 이 품종의 포도재배에 적합하다고 합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보다 좀 더 남쪽 부르고뉴 지방에서도 많이 재배하고 있습니다. 미국 같으면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소노마(Sonoma) 지역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습니다. 포도에서 포도주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 기술이 없으면 품질유지가 힘든 품종입니다.
포도는 떼후와(Terroir), 즉 재배환경에 민감하여 맛이 달라지는 작물입니다. 커피, 마늘, 초콜릿, 호프, 토마토가 이런 작물에 해당합니다. 토질, 배수, 일조량, 지형 등의 재배환경 등을 종합해서 떼후와라고 합니다. 이 지역의 재배환경 즉 떼후와는 피노 누아(pinot noir) 포도주 고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쥬라기에 형성된 지층에 경사지여서 물 빠짐이 좋은 지형입니다. 포도농사에 알맞은 지질과 지형입니다. 다음 그림은 프랑스 동북부 평원의 지질 구조입니다. 연두색의 샴파뉴 지역에 해당합니다.
와인 전문가들은 피노 누아(pinot noir)를 가장 매력적인 포도품종으로 선호하고 있습니다. “가장 섹시한 와인”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도 밭을 지나 몽타뉴 드 헹스(Montagne de Reims)의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숲에는 난장이 너도밤나무 군락이 있어서 겨울이면 숲 속 분위기가 좀 거시기 하다고 합니다. 1000 그루가 자라고 있다는 데 다른 지역에 옮겨 심으면 죽는다고 합니다. 이곳이 유일한 자생지입니다. 이 나무는 기껏 5m 이상 자라지 않고 옆으로 무성하게 퍼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서 가지가 보이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있어서 누에고치처럼 보인다. 잎이 떨어져야 뒤틀린 가지들이 보이는데 웃자란 잔 가지는 땅에 닿아 있게 됩니다.
이 숲에서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나왔습니다. 이미 30km 가까이 걸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진이 빠져서 결국 뜨헤팔(Trepail) 마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에서 숙소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빌라 마흐메히(Villers-Marmery)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인구 500명의 작은 마을인데 식당과 호텔이 있었습니다. 호텔은 예약이 차서 방이 없었습니다. 내일 이곳을 통과하는 뚜흐 드 프랑스 (Tour de France) 자전거 경주 때문에 일시에 사람들이 몰려온 탓이었습니다. 인근에 방 구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고 외진 마을에는 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잘 곳 찾는 게 항상 문제야.
동네에 들어가 숙소를 못 잡으면 관공서 Marie를 찾아가시오.
순례길에 있는 이들 잘 곳 찾아주는 것도 그 사람들 업무이거든요.
대부분 착해서 학교 건물이든 창고 같은 곳이든 지붕 아래 잘 곳을 찾아 줍디다.”
관공서를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습니다. 어제 헹스 대성당에서 구한 숙소 목록을 들고 근처 숙소에 전화를 했습니다. 2.5km 떨어진 레 쁘띠 로쥐(Les Petites Loges) 마을에 방이 있었습니다. 하염없이 더 걷거나 버스정류장 지붕 밑에 자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펑퍼짐한 밀밭 들판을 지나 도착하니 오후 5시 이후에 손님을 받으려는 데 빨리 왔다고 한마디 들었습니다. 삐걱거리는 주택내부는 세월을 말해주었습니다. 목조주택의 아늑함이 있었습니다. 빨래하고 주인이 즐기는 무선장비들을 구경했습니다. 좀 오래된 아마추어 무선통신 설비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세상을 연결해서 오지가 아니면 별 쓸모가 없는 옛 이야기였습니다.
베슬 강 벌판의 작은 마을. 인구 500명. 이렇다할 산업시설이나 눈 요기 거리가 없는 그저 농장 일하다가 잠이나 자는 마을입니다. 동네에 식당이 없었고 빵집도 문 닫은 지 오래되었다고 했습니다. 주인에게 부탁해서 저녁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햄, 빵, 볶음밥(차가운 음식), 치즈, 포도주, … 프랑스 사람들은 잘 먹고 삽니다. 식사비 포함 55유로. 내일 아침 5시 출발이라고 했더니 좀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해 뜨기 전이면 익숙하지 않은 새벽 시간일 겁니다. 미리 아침을 차려 두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느긋하게 사는 사람을 일찍 깨울 필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