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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순례

로마로 가는 길 (173) 교황의 도시 비테르보

작성자fidelis|작성시간22.05.13|조회수80 목록 댓글 0

 

바티칸에서 VF 를 걸었다는 “테스트모니움” 증면서를 발급받으려면 최소한 100km는 걸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바티칸의 관리들이 순례자 협회와 짜고 만들어 놓은 규정입니다.  이 테스트모니움을 액자에 넣어 자랑스럽게 자기집 거실 벽에 걸어 놓으려고들 합니다.  이런 관료체제 순종 풍조를 부추기는 것이 관광산업에도 긍정적일 것입니다.

100km alla Tomba di Pietro!

(베드로의 무덤까지 100km!)

성문에 그렇게 써 붙였다면 행정기관이 합세했을 것입니다.  마을 행정 관료들이 절차와 규정을 만들고 예산을 세워 집행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예산까지 쓰고 나면 그렇다고 정해집니다. 사실 여부와는 법적으로나 다툴 문제가 되었습니다.  관료체제라는 이름의 또 다른 문명의 산물입니다.

 

이제 로마까지 진짜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100km는 아니었습니다.  로마가 하도 넓어서 20-30km는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믿자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려고 로마라고 하지 않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의 무덤이라고 하면서 숫자는 대충 씁니다.  직선 거리, 지름길, 비아 프란치제나 트랙 길이, 자동차길, … VF 협회가 제시하는 루트를 따라 몬테피아스코네에서 바티칸까지 거리를 합산해봤습니다. 129.1km였습니다.  18km떨어진 다음 마을 비테르보에 가도 아직 100km 이상 남았습니다.  옛날에는 직선으로 걸었을 거라고 … 

 

몬테피아스코네(Montefiascone)에서 비테르보 (Viterbo)까지18km는 짧고 편안한 여정이었습니다. 빵과 커피가 아침 식사였습니다.  8시에 출발해서 로카 디 파피 (Rocca di Papi - 교황들의 요새)로 올라갔습니다.  공원 관리인이 철창으로 된 공원 문을 열고 있었습니다.  볼세나 호수는 맑고 푸른 하늘처럼 깨끗했습니다.  오늘 걸어갈 비테르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몬테 치미노(Monte Cimino) 산과 몬테 폴리아노 (Monte Fogliano 산) 봉우리들 사이에 등성이가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구름이 많고 멀리 비 내리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긴 베일자락처럼 안개가 그 치미니 산맥 앞 발레 카스텔로네 (Valle Castellone)벌판을 덮었습니다.  앞 뒤 경관이 그렇게 달랐습니다.  

 

 

 

공원 정상부근에 세운 순례자 조형물은 남자 두 사람을 모델이었습니다.  꼿꼿한 체형이 70대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건장한 청년들이 걷는 모습으로 청년 문화라고 했습니다.  노년기 순례는 구부정하게 자세가 변한 사람들이 지팡이 두드리며 걷는다는 선입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조형물 작가는 그런 시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공원 관리인은 60운 훨씬 넘어 보였는데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습니다.

 

성 반대쪽으로 내려가며 좋은 경치를 보며 마을을 떠났습니다.  주민들이 돌아다녔습니다.  목적지가 분명한듯 발바닥이 땅에 오래 붙어 있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민가가 조금 나오더니 급경사 내리막 길이었습니다.  젖은 내리막 길의 비극은 피해야 했습니다.  나무가 우거져 터널이 되었습니다. 올리브 농장을 지나면서 내리막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산자락 비탈에 자리잡은 체볼리(Cevoli)마을 입구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비포장 샛길로 들어섰습니다.  가로수 가지가 하늘을 가린 흙 길 주변은 올리브 농장이었습니다. 문득 발 밑에 돌 포장이 나타났습니다.  로마가도 비아 카시아(via Cassia)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돌 포장이 군데군데 망가지기는 했어도 길의 형태는 여전히 멀쩡한 길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이 길을 걸을 때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경이 흐물흐물한 상태라 길 역사는 공유되었다는 생각일 것입니다.   

 

키위 농장이 나왔습니다.   지주로 받쳐 놓은 철사 시렁위로 덩굴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키위는 어디서나 좀체 보기 힘들었습니다.  

 

길은 보통 비포장에서 포장도로로 바뀌었다가 작은 사당을 만나 샛길로 빠지면서 로마가도의 돌 포장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가로수 그늘이 이어지며 시원한 아침 시간이었습니다.  철길을 따라갔습니다.  농로보다 한참 위 제방 위로 전철화된 단선 철도가 났습니다.  네 칸짜리 기차가 철거덕거리며 지나갔습니다. 철길 밑 통로를 지나 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철길 지나 서쪽으로 가면서부터 철길에서 멀어졌습니다.  이 지점이 오늘 여정에서 가장 낮은 곳이었습니다. 칼데라 화산 테두리 둔덕을 반은 내려온 듯했습니다.

 

오르막을 걸어 작은 산 옆을 지나갔습니다.  발레 카스텔로네에서 유일하게 돌출한 산이었습니다.  오르막 끝에 낡은 집이 한 채 있었고, 옆 잔디밭에 벤치와 탁자가 마련된 순례자 쉼터가 있었습니다. 출발해서 8km쯤이었습니다. 아침 9시 전이었습니다.  전망이 좋았습니다.  북쪽으로 몬테피아스코네 능선의 성과 성당 돔이 특별했습니다.  성으로부터 내려오는 비탈 경로를 따라 마을과 농경지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쪽으로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구릉지대는 간간이 나무들이 우거지고 뭔가 심었을 들이었습니다.  남동 방향 비테르보는 검은 구름을 이고 있었습니다.

   

 

 

비포장 도로를 따라 내려가서 SP7번 도로를 넘어 계속 갔습니다.  좁은 길을 거대한 트럭이 쓸고 가다시피 했습니다.  누군가 배낭을 지고 뒤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만나는 순례자였습니다.  빗 방울이 떨어지고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판초 자락을 휘날리며 걸었습니다.  들판에서 표지판 지시대로 방향을 틀고 또 틀어서 노천 온천을 만났습니다.  바냐치오 온천(Parco Termale del Bagnaccio)이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Aque Passeris”라고 부르던 곳이었습니다.  들판 가운데 철망 울타리를 쳐 놨습니다.  주변에 가게나 건물이 전혀 없이 그냥 노천탕만 있었습니다.  영업하는 스파는 북서쪽 1km정도 떨어진 SR2 도로변에 있다지만 나무에 가려 건물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주차장에는 타고 온 차량들이 줄 맞추어 서 있었습니다.  

 

온천에 나이든 백인 남녀가 벌거벗은 채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공기가 쓸쓸해서 노천 온천이 제격일 것입니다.  노천탕 입장료가 일인당 7유로지만 순례자들에게는 무료라고 했습니다.   노천탕이 다섯 개 있었습니다.  각 탕마다 온도가 달랐습니다.  온천수가 솟구칠 때 온도는 63 °C, 알칼리 성이고 유황성분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1번 탕은 찬물, 번호대로 점점 온도가 올라가 5번 탕이 50 °C 가 넘어 가장 뜨겁다고 합니다.

 

유황냄새와 시큼한 하수 냄새가 섞였습니다. 온천을 그냥 바라만 보고 떠났습니다.  온천을 지나니 해송이 가로수처럼 늘어선 직선 길이었습니다.  이 길의 끝에 이탈리아 공군기지가 있었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가끔 비행기 이륙 소음이 들렸습니다. 

 

뒤따라오던 아가씨는 벨기에에서 온 멜라니라고 했습니다.  힘이 넘치는 20대 초반. 몬테리죠니부터 로마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아마 전에 벨기에에서 몬테리죠니까지 걸었을 것입니다.  어제 밤 텐트 치고 자다가 비를 맞았다며 젖은 텐트가 무겁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베트랄라까지 걷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직 스페인 까미노는 가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확 트인 벌판을 가로 질러 갔습니다.  밀을 심는 들판이어서 여기저기 밀짚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농가 주변에는 나무들이 있고 채소밭도 보였습니다.  한동안 같이 걷다가 비테르보 입구에서 헤어졌습니다.  얼마 안되는 거리였는데 젊은 사람과 보조를 맞추느라 몹시 힘들게 걸었습니다.  나이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비테르보에 다가가면서 집들이 많아졌습니다.  공동묘지가 연이어 두 곳이 있었습니다. 새로 조성하는 곳은 양철 때기로 가림을 해 놓았습니다.  옛 묘지(Cimitero San Lazzaro di Viterbo)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묘지 앞에는 성묘객들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묘지 근처에서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차량이 많은 로터리를 지나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차역에서 밀라노로 가는 기차표를 93유로에 샀습니다. 생각보다 비쌌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요금은 철도의 관료화 현상을 말합니다.  나이든 사람 할인 혜택은 유럽 사람은 되고 아니면 정상요금으로 비싸게 받습니다.  유럽사람인지 여부는 여권이 아닌 별도의 “쯩”이 필요합니다.  유럽연합을 통해 관리들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난민이든 주민이든 이 “쯩”을 받게 됩니다.  유럽 바깥 관광객에게는 없는 것입니다.

 

 

 

비테르보(Viterbo) 인구 67,600명, 해발 326m.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도시였습니다.  마을 이름은 라틴어로 “Vetus Urbs, 고대 도시”라는 뜻이었습니다.  로마가 옛 에트루리아인 정착촌을 점령하면서 시작되는 도시의 역사였습니다.  도시는 중세 성곽이 높게 둘러 싸고 있고 그 외곽으로 현대도시가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이 성곽은 천년 전에 쌓았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려면 긴 담을 끼고 걸어야 했습니다.  저 멀리 육중한 포르타 피오렌티나(Porta Fiorentina)성문이 보였습니다.  성벽이 높아서 안쪽의 건물지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든 차든 성문을 통과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비테르보는 교황의 도시였습니다.  13세기에는 교황이 주재하는 곳이어서 여러 교황들이 연달아 이곳에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교황선출(Conclave - 콘클라베)을 위한 방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교황이 마을에 자리잡으려 하자 동네 귀족 중에 저항세력이 나타나 교황파 가문(구엘프 가문들)들과 대립하였습니다.  11세기에 프리드리히 1세(바르바로사-붉은 수염 왕)가 지배했을 때 세력기반을 다졌던 귀족 집안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급기야 독일의 프리드리히 2세의 개입을 불러왔고 독일에서 벌어진 교황파 대 황제파(기벨린) 대결이 이탈리아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지역 토호들은 교황세력을 이기지는 못했고 도시는 교황천하가 되었습니다.  이 대립은 14세기 아비뇽 유수 때까지 이탈리아를 불안에 떨게 하는 중세 유럽의 대표적인 환난이 되었습니다.  비테르보는 몬테피아스코와 마찬가지로 교황 세력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교황궁전이 세워져서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비테르보의 전성기는 교황청의 아비뇽 유수(1309-1377)와 함께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온 뒤에도 교황이 둘이었다가 셋이 되는 혼란기가 있었고, 종교개혁, 르네상스, 가톨릭 개혁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프랑스 군의 점령으로 근대를 맞이했습니다.  중세 시대가 지나가면서 수많은 사건들이 도시를 휩쓸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군 사령부가 있었던 관계로 연합군 공습 목표물이 되어 구시가의 상당부분이 파괴되고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제까지 보아온 구시가 모습과는 달리 비테르보 성안 거리는 넓어서 마차가 다닐 정도였습니다.  상당히 관료적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살아 움직이면서 제도를 위한 제도가 덧붙여진 게 현대 관료 제도였습니다.  법적 규정과 절차라는 철홍성은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습니다.  거리에 고급 의류 가게들, 기념품, 휴대폰, 식당, 등의 가게가 연이어 있었습니다.  플레비시토 광장(Piazza del Plebiscito)에 갔습니다.  수십명의 데모꾼들이 붉은 깃발과 푸른 깃발을 들고 모여 있었습니다.  경찰들 역시 차량 여러 대를 타고 와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12시였습니다.  샌드위치와 맥주로 점심.

 

성 밖에 있는 여행자 사무소에서 스탬프를 찍고 시내 지도를 얻었습니다.  구시가로 가는 엘리베이터 타는 법을 알려주어 찾아갔습니다.  구시가로 가는 중간 골짜기가 깊어 엘리베이터로 내려 갔다가 골짜기 건너 다시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대략 3층 정도의 높이를 오르내린 것 같았습니다.  골짜기에 조각 작품들을 잔디밭에 늘어놓았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니 피아짜 산 로렌초(Piazza San Lorenzo) 광장이었습니다.   교황궁과 인근의 로지아 데이 파피(Logia dei Papi)의 아름다운 7개 아치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교황궁은 박물관이 되어 유료 입장입니다.  산 로렌조 대성당 (Cattedrale di San Lorenzo)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었습니다. 대성당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다 나왔습니다.  내부 투박하고 웅장했습니다.  성당 바닥의 모자이크가 화려했습니다.  천정은 석가레가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앞세우고 들어왔습니다.

 

 

https://visit.viterbo.it/la-cattedrale-san-lorenzo-ripresa-magnificamente-dallalto/

 

 

숙소를 찾아가 씻고 잤습니다.  시내구경보다는 잠이었습니다.  비가 요란하게 내렸습니다.  갑자기 헤어진 벨기에 아가씨 멜라니가 걱정되었습니다.  아마 비 속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축축한 공기에 뭔가 따뜻한 것이라도 마시고 싶었지만 그냥 내쳐 잤습니다.   

 

어두워져서 근처 케밥 집에 갔는데 식재료가 떨어졌는지 주인이 근처 가게로 채소를 사러 황급하게 다녀왔습니다.  토마토, 오이 같은 신선 재료로 만들어 준 케밥 샌드위치를 들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케밥을 주문하고 만드는 사이에 근처에 있는 분수대 야경을 보고 왔습니다.  비 내리는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좀 있었습니다.  로마가 가까이 있든 말든 내리는 비가 먼저 마음에 쓰였습니다.  숙소에서 불을 꺼도 가로 등불 때문에 천둥 소리만 들리고 번개 불은 별로 였습니다.   시간 되면 켜지고 시간 되면 꺼지는 가로등은 관료체제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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