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차례의 밤 외 1편
이은희
어스름 밀려드는 골목의 끝
'잠시라면 괜찮겠지' 금지의 경계선 위에
비겁한 바퀴를 세웠다
차갑고 단단한 표지판을 애써 외면한 채
안일함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정적을 깨고 울리는 날카로운 진동
달려간 그곳엔 내가 심어놓은 무심함이
타인의 분노라는 양분을 먹고
총상 입은 꽃차례로 아득바득 피어나 있었다
아래서부터 위로, 차례로 터져 나오는 원성들
수많은 눈동자가 화살이 되어 꽂히는 길 위에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비명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의 말들은 흩어지는 연기처럼 무력했다
쫓기듯 빠져나온 골목의 잔상
차창 밖 바람은 여전히 차가운데
핸들을 잡은 손등 위로 부끄러움이 차오른다
엔진 소리 멎은 고요한 방안
심장은 여전히 과속방지턱을 넘는 듯 덜컹거리고
눈을 감으면 피어오르던 그 붉은 불빛들
자책의 밤은 길고도 아득하여
잠은 자꾸만 불안을 맴돌고 있다
* 총상꽃차례: 꽃이 촘촘히 피는 형태
고독, 48분간의
이은희
고요한 절벽이다, 궤도는
달의 과녁을
아르테미스의 화살촉이 겨눌 때
나는 사령선 콜롬비아, 그 적막한 뱃속에 갇힌
한 남자를 꺼내 본다
먼지 낀 달 표면에 깃발을 꽂은 닐과 버즈를
지구의 모든 입이 찬양할 때
역사의 뒷면, 잉크가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교신마저 끊긴 채
홀로 유영하던 사내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48분
그곳에선 신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가족의 이름은 뜨거운 커피 한 모금에 녹여 넘기고
창밖으로 띄워 보낸 푸른 유리구슬 하나
부서질 듯 파르스름한 궤도 위에서
마이클 콜린스 그는 비로소 지구를 닮은
제 마음을 읽는다
타인의 박수 소리가 진공에 막혀
아득히 사라진 후에야
입술 끝에 웅얼거리는 발음 하나
“누가 나를 잊어도 괜찮아,
내가 나를 알아주면 돼”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 2호 발사에 대한 기사를 보다가 문득 1969년도 최초의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를 기억하면서~
약력: 2025년 대구문학상반기 신인상. 대구문인협회 . 대구시인협회. 경북아동문학회. 형상시학회 회원.
대구다시인협회 재무국장. 열린시낭송가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