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자 <문학秀> 여름호 발표작. 어떤 애착 외 1편

작성자윤배박셈|작성시간26.06.20|조회수8 목록 댓글 0

 

어떤 애착 1편

 

                  심수자

 

밑바닥 갈라진 된장 뚝배기가

언제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기 상태다

 

둥글게 여섯 갈래로 금이 가더니

밑바닥에 안 보이던 꽃잎 드러났다

 

뜨거운 생에 올려진 내 가슴 바닥도

저처럼 바글바글 끓다 보면

눈물 꽃 활짝 피울까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뚝배기에

내 손맛을 익혔다는 핑계로

여전히 끓이는 된장

 

쩍쩍 벌어진 틈새로

시커멓게 새어 나온 비명들이

불 위에서 팔팔 끓다가 새카맣게 조려진 지금

 

끓어 넘친 시간이

툭툭 벌려놓은 틈새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맛은 더없이 깊은 맛

 

유효기간 없는 뚝배기이기에

벙근 꽃잎 온전히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 언덕을 넘어오는

 

 

겨울 끄트머리에 앉아서

도착하지 않은 눈송이를 기다리다가

휘발하기 시작한 생각들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봄보다 먼저 봄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걸어온 겨울 내리막길에서

수묵의 침묵이 펼쳐 보이는 빈 행간

 

내가 나를 잊어버린 생의 이력을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써넣으라는 건지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대책 없이 굴러가며 풀리는 두루마리 휴지를

무슨 수로 따라가 잡으라는 건지

 

내가 걸어왔던 길의 풍경 속

새들 떼 지어 내려앉은 나뭇가지에서

빠르게 피었다 지는 꽃의 속도에 기가 꺾이는 나

 

얼었던 발이 녹고 있는 나무들

고드름으로 맺힌 눈물을 이야기할 때

겨우내 배고픈 새들의 코끝이 간지러워지듯

지저귀는 소리

 

없던 꽃향기는 하늘 가득 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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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4년《불교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술뿔 』 『 구름의 서체』 『가시나무 뗏목』

『종이학 날다』『 각궁 』『 오후의 점술사 』

2014년 <엔솔로지> 젊은 시 20인에 선정

대구시인협회회원. 형상시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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