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애착 외 1편
심수자
밑바닥 갈라진 된장 뚝배기가
언제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기 상태다
둥글게 여섯 갈래로 금이 가더니
밑바닥에 안 보이던 꽃잎 드러났다
뜨거운 생에 올려진 내 가슴 바닥도
저처럼 바글바글 끓다 보면
눈물 꽃 활짝 피울까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뚝배기에
내 손맛을 익혔다는 핑계로
여전히 끓이는 된장
쩍쩍 벌어진 틈새로
시커멓게 새어 나온 비명들이
불 위에서 팔팔 끓다가 새카맣게 조려진 지금
끓어 넘친 시간이
툭툭 벌려놓은 틈새에서
진하게 우러나는 맛은 더없이 깊은 맛
유효기간 없는 뚝배기이기에
벙근 꽃잎 온전히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
봄, 언덕을 넘어오는
겨울 끄트머리에 앉아서
도착하지 않은 눈송이를 기다리다가
휘발하기 시작한 생각들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봄보다 먼저 봄을 만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걸어온 겨울 내리막길에서
수묵의 침묵이 펼쳐 보이는 빈 행간
내가 나를 잊어버린 생의 이력을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써넣으라는 건지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로
대책 없이 굴러가며 풀리는 두루마리 휴지를
무슨 수로 따라가 잡으라는 건지
내가 걸어왔던 길의 풍경 속
새들 떼 지어 내려앉은 나뭇가지에서
빠르게 피었다 지는 꽃의 속도에 기가 꺾이는 나
얼었던 발이 녹고 있는 나무들
고드름으로 맺힌 눈물을 이야기할 때
겨우내 배고픈 새들의 코끝이 간지러워지듯
지저귀는 소리
없던 꽃향기는 하늘 가득 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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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2014년《불교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술뿔 』 『 구름의 서체』 『가시나무 뗏목』
『종이학 날다』『 각궁 』『 오후의 점술사 』
2014년 <엔솔로지> 젊은 시 20인에 선정
대구시인협회회원. 형상시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