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에게 ‘조금만 더 분발했더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저의 메달 색깔은 동(銅)이지만, 진심으로 내가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습니다.”
- 아리모리 유키,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 동메달을 딴 직후 인터뷰 -
“나에게 달리기는 두 종류밖에 없다. 그럭저럭 고통스러운 것과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 다른 선택
은 없었다. 누구나 처절하리만큼 고독하다. 그리고 고통은 늘 그곳에 있다. 그럭저럭 고통스럽거나,
엄청나게 고통스럽거나. 하지만 난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따위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서 귀를 기울인다. 경기장을 메운 사람들의 함성이 들린다. 대지가 흔들리는 울림. 하지만 정
말로 들리는 소리는 자기 안의 조용한 목소리다. 나에게 칭찬할 만한 것이 있다면, 뭔가를 두려워하
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이렇다. 나는 마침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 아리모리 유키, 무라카미 하루키(세계적인 작가)와의 인터뷰 -
동아마라톤을 끝내고 난 후 입술이 터졌다. 아주 많이 피곤할 때 나타나는 바로 그 현상이다. 몇 년
전 비타민C를 복용하기 시작한 후에는 처음이다. 또 하나, 완벽하게(?) 무릎부상이 왔다. 발바닥 때
문에 고생한 적은 많아도 무릎부상 역시 처음 겪는 일이다. 동아마라톤의 기록이라도 괜찮았다면 좋
았을 텐데, 기록도 변변찮은 마당이라 내놓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가 마라톤 하지 말라는 잔소리만 잔뜩 들었다. 그러게, 선수도 아니면서
마라톤을 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마라톤에 빠져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도
하게 된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마라톤은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일본 여자 마라톤 선수인 아리모리 유키는 이 같은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굴곡이
많았던 그녀의 삶이 생각의 깊이를 더했을 것이다. 그녀는 1992년에 이미 마라톤 불가 판정을 받았
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지만 부상으로 양다리를 수술할 수밖에 없었다. 선수생활
을 포기할 만한 시련을 겪었지만 결국 재기해서 1996년 아틀랜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녀는
“내가 나를 칭찬하고 싶다”는 생중계 인터뷰로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몇 년 후 그녀는 세계적인 작가이자 마라톤 매니아인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터뷰를 했다. 하루키는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인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단행본에 그녀와의 인터뷰를 길게 실었다.
시드니 올림픽의 수많은 우승자들을 제쳐두고 겨우(!) 해설자로 나선 그녀와 인터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작가의 눈으로 꿰뚫어 보기에도 “굴곡이 많았던 만큼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마라톤, 아무 생각없이 뛰기만 하면 되는 운동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묘한 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