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침내 아이들의 참다운 놀이는 ‘자유와 해방’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디 전래놀이나 민속놀이 속 특정한 놀이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놀이’라고 착각하지 말자. 특히 성인이 주도하는 놀이라면 더더욱 놀이가 아니다. 성인 주도형 놀이활동에 대해서는 이제 심각한 논의가 필요하다. (p.143)
학교를 뜻하는 라틴어 ‘슐레’의 원래 의미는 ‘한가한 곳’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교육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들은, 학교가 원래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고, 만나서 함께 놀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존재 이유를 되찾아 올 때 비로소 풀 수 있을 것이다. (p.153)
만약 서로 웃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웃음’이라고 말한다. (p.155)
누가 내게 왜 놀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웃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또 왜 놀이운동을 하냐고 물으면 웃으려고 한다고 답하겠다. 웃음이 없는 자유놀이는 가짜 놀이다. 웃음과 울음이 모두 있어야 진짜 놀이다. (p.156~157)
「진짜 놀이, 진짜 웃음을 찾아서」
현재 나는 공공형 실내 놀이터이자 아이들의 놀이를 지원하는 ‘3호 숨쉬는놀이터’의 운영자로 일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아이들이 잠시 놀다 가는 공간을 넘어서는 놀이지원센터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관리자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아이들이 놀이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만들어내고 함께 즐기는 ‘코플레이(co-play)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린이 놀이 동아리’다.
매달 새로운 놀이 컨셉을 경험해 본 뒤, 남은 시간은 자유롭게 노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는 근처 아이누리돌봄센터 하중점의 초등 저,고학년 아이들 20여 명이 매주 금요일마다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홉스코치 챌린지, 4월에는 오리엔티어링을 했고, 5~6월은 인형극을 진행 중이다. 사실 처음 동아리를 기획했을 때 의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놀이를 친구들에게 알리고, 서로 모여 같이 즐기도록 하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3호 놀이터가 자신들만의 ‘아지트’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 매몰찼다. 아이들이 오고 가는 짧은 5분 거리의 안전, 인솔자 동행 등 안전사고에 민감한 현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를 가장 힘빠지게 만든 것은 놀이터에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조금이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행정적 요구였다. 기관에서의 활동이 "그냥 좋은 시간 보냈다"로 끝날 수 없다는 점은 잘 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보면 이것이 어른들의 욕심일 뿐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오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언제 놀아요?"다. 자유를 찾아 놀이터에 왔는데 또다시 프로그램에 묶여야 한다는 것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조차 본능적으로 알고 묻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놀이 경험을 통해 "이런 놀이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놀이활동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때, 혹은 친구들과 있을 때 그 놀이를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자발적으로, 스스로 선택해서 한 놀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루벤시아 2차 단지 내에서 진행 중인 아빠 놀이모임 ‘파파고’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아빠와 자녀가 일요일 낮 시간만이라도 함께 놀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놀이의 종류와 환경을 성인인 아빠가 모두 결정해 두고선 이를 ‘자유놀이’라 우기기엔 책의 표현대로 한 편의 희극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놀이운동가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가 있다.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던 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왜 놀아야 해요?"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놀 시간, 놀 장소, 놀 친구가 부족해진 것을 넘어, 이제는 놀고 싶어 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마저 잃어버리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아이들의 마음속에 놀이의 씨앗을 곳곳에 심어두려 한다. 환경의 제공과 아이들의 선택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가면서 말이다. 그래서 아빠 놀이모임에서는 매달 놀이 컨셉만 정해 아빠와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할 뿐, 어른이 주도하는 진행은 하지 않는다. 오면 알아서 놀고 가게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한다. 그렇게라도 모여 노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노는 경험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축적한 아이들은 나중에 더 잘 놀 수 있게 된다. 종국에는 어른의 개입 없이도 아이들이 스스로 모여 놀이를 만들어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친구와 함께 마음껏 즐길 줄 아는 '알아서 잘 노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것, 그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2장을 읽으며 가장 깊이 붙든 단어는 ‘웃음’이다. 웃음이야말로 자유놀이의 꽃이며, 아이들이 진짜 제대로, 신나게 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시선에는 시시해 보이거나 "뭐 저렇게 재미없게 노나"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웃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들은 이미 온 마음으로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어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의 잣대를 내려놓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놀이를 바라보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