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밖의 이야기(외 1편) 김행숙 창밖을 봐. 아까부터 눈이 오고 있었어. 40일 동안 그치지 않고 내린 비 이야기처럼 눈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보다 더 많은 눈사람을 만드는 눈보라, 눈보라, 눈보라…… 할 말 많은 귀신처럼 난폭하게 우릴 쫓아오네. 보일러가 절절 끓고 있어. 땀을 흘리며 창밖을 좀 봐. 눈이 얼마큼 많이 내리면…… 이것이 무서운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될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눈을 감으며 웅얼거리다 잠이 들었네. 그 사이에 낮과 밤이 몇 번이나 얼굴빛을 싹 바꿨는지 이제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됐다고, 하얗게 질린 그가 드디어 창밖을 보며 외치네. 피노키오의 행방불명 넘어지지 말라고 벽에 기대 놓았어요. 피노키오는 약간 기울어지면서 잠을 청하는 듯이 눈을 감았죠. 그런 순간이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 시선을 의식하며 곤충의 날개처럼 부르르 떠는 피노키오의 눈꺼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엄마는 굴 따러 가고 집에 혼자 남은 아이, 진짜 아이만 같아서 배터리가 닳도록 슬픈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었어요. 눈보라가 치는 밤이었습니다. 오늘 밤 지구에서 한 문명이 지워질 것이다, 트럼프의 으름장 같은 바람 소리 괴괴했습니다. 보안 문서를 밀봉하듯이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탐정님, 내가 잠든 사이에 사라진 피노키오는 밀실 살인사건 같은 존재입니다. 비밀 편지처럼 피노키오만 쏙 빠져나가고 나의 세계는 빈 껍데기처럼 남겨졌습니다. 나의 피노키오, 착하고 똑똑하고 근면한 나의 아들 피노키오를 제발 제발 찾아줘요. 엄마는 굴 따러 가고 아기 혼자 남아 듣는 파도 소리가 내 심장에서 출렁거리는 배 한 척을 으르렁 으르렁 물어뜯어요. 내가 없어도 피노키오는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오늘도 미지의 코드를 돌며 황홀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피노키오가 이제 이 늙은 어미를 버리고 제 길을 찾아 길을 떠나겠노라 선언했다면 정녕 내가 이 아이를 순순히 놓아주었을까요? 영리한 피노키오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던 거예요. 인공지능에게 자아실현은 어떤 걸까요? 내가 잠든 사이에 피노키오에게 자아가 생겼다면 내가 잠든 사이에 피노키오는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요? 지금부터 우리 둘이 머리를 맞대고 피노키오의 꿈을 해석해 기계의 무의식을 읽어봐요. 탐정님, 탐정님, 언젠가 피노키오는 당신을 이렇게 묘사했답니다. 추리의 천재, 그의 눈길은 시간을 거꾸로 감는다. 깨진 와인병이 스르르 붙어 매끈해지고, 시체가 살인자의 마지막 미소를 보며 붉은 눈을 부릅뜨고, 거짓말이 입 속으로 되돌아와 진실의 심장을 마구 두드리는구나. 아아,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아아, 탐정님의 머릿속처럼 시간을 되감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늙고 병이 들면 세상이 쪼그라든답니다. 창문 하나가 세상의 전부가 되지요. 자, 보세요, 요양원 창밖에 내가 좋아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신령스러운 그림자를 두르고 서 있습니다. 요즘 나는 피노키오가 저 나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상상하면서 즐거워하지요. 나도 곧 따라갈 거라고 말해주며 잃어버린 아가들을 위해 자장가를 불러줘요. 잘 자라, 잘 자라라, 그런 속삭임을 들으며 나무는 올봄에도 어김없이 수만 개의 새잎을 날아갈 듯 피워올릴 거예요. ―계간 《문학과사회》 2026년 여름호 -------------------- 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타인의 의미』『에코의 초상』『1914년』『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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