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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네르바> 신인상 당선작 - 강금희. 권이화

작성자이양덕|작성시간14.06.26|조회수20 목록 댓글 0

반딧불이의 비행 외

 

강금희

 


어둠의 도화지 위에 환한 곡선을 그렸어요

꼬리를 당기면 허공이 타들어갔지요

아름다운 개화였죠


과부하의 계절, 누군가 부싯돌을 당기듯

몸을 지펴도

푸른 불꽃은 피지 않아요


속도와 굉음에 매달린 도시의 거친 호흡,

꼬마전구가 나뭇가지에 눈부시게 내려앉고

어둠을 걷어 간 거리의 표정에 불안은 쌓여갔죠


머릿속에서 깜박이는 불씨, 골목 어귀 가로등의 마음으로,

익사 직전 버둥거리는 자세로 심지를 당겨도 허공과의 교신은 불통이었죠


도시는 매초마다 옷을 갈아입고

밤이 사라진 오늘은

길고 캄캄한 터널이죠


꽁무니에 불을 밝혀 새벽을 여는 누군가의 어깨에 착지하고 싶어요

꽃이 피는 허공을 가지고 싶어요

 


크로마뇽人*

 


이것은 시간의 뼈, 먼 옛날 이 동굴에 살았던

누군가의 흔적이다 이름마저 없어

뼈로 이름을 남겼다

 
자물쇠가 채워진 목젖, 말은 태초에 신음 같은 것이었다

짐승의 울음을 흉내 낸 말은

모가 나고 거친 파열음이었을 것이다


오늘을 물고 있는 빙산의 일각,

동굴은 얼마나 많은 어둠을 소모했는지

번뜩이는 눈빛이 얼마나 오갔는지

우리는 다만 뼈 한 조각만으로 흘러간 시간을 가늠할 뿐,


지친 시간 위에 짐승의 울음이 쌓이고

불도 없던 먼 먼 그날

동굴 속에 뼈로 남은 누군가의 죽음은 이제

먼저 간 시대를 알리려고 안간힘으로 누워있다

솟아오른 화석인의 피가

계곡까지 흘러갈 때

한 시대의 매듭은 풀리고 말 것을 예감했던 것이다


맨 주먹으로 먹이를 찾아

어두운 숲을 헤칠 때

달을 끌어당기는 늑대의 울부짖음에

돌무덤을 쓸어안고 거친 숨을 토해냈을,

등뼈가 휜 불안들


이 뼈는 그렇게 시간을 넘고 넘어서

지금 나와 만나고 있다

 

* 프랑스 크로마뇽동굴에서 발견 된 화석 현생인류

 

 

위 내시경

  

 

몸의 동굴을 탐색한다

 
어둠을 쉼없이 먹고 자란 석순,

더듬이를 곧추세우고 많은 세상을 클릭할 무렵

몰래 숨어들어 바닥을 기던 헬리코박터균,

탐험대의 센서들이 지난 시간을

층층이 풀어내는 순간,


비등점 없는 입구에서 날것인 채 통과한 그 정체가 드러난다


속은 온통 검붉은 상흔으로 가득하다 날마다

제 안으로 삼킨 눈물 탓인가

바람벽엔 생채기가 반짝인다


방심한 틈에 두 발을 뻗고 자라난 석순들, 그 앞에

무릎 꿇는 고해성사 시간이 다가온다


덩달아 분가를 시작하는 종유석

동굴 벽을 기어오르는 출혈성 벽화들


해먹 같은 볼기짝을 늘어뜨린

바람난 식욕,

그 모서리마다 새겨진 벽화들이 악취를 풍기기 시작한다

 

 

강금희 :
경남 진주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 졸업.

2012년《시문학》신인우수작품상 당선. 

 

 

~~~~~~~~~~~~~~~~~~~~~~~~~~~~~

 

 

파우스트 밖으로 나오다 외

 

권이화

 

 

방안에서 생쥐 울고 있다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밤에는 외출 금지다, 아버지

나는 바깥 서재가 어디 있는지 찾는 중이었어요

화장실과 서재 사이에서 반짝 별만 마주쳤고요

아버지 별을 바라보던 섬찟한 눈빛과

훈육처방전 내밀던 고양이 앞에서

딸랑딸랑 꼬리 흔들며

호롱불 쬐며

몇 억 년 내려온 저 섬광 어쩌란 말예요, 그래도

처방전에 도장은 찍는 거란다

 

아버지는 옛날 약장수 한물 간 마술사일 뿐,

그러나 뿔 달린 계약서가 좋았다

유성이 비명을 지르며 직선으로 창을 긋고 가는 날은

찍찍 내 코가 벌름거린다고

마왕같이 뿔 난 머리로 내 코를 들이받던

당신의 계약서가 좋았다

 

불면처방전 붙은 불 켜진 파우스트 방

아버지 공들여 키운 메피스토펠레스 그의 방 엿본다

비커 수치 재는 밤이면 온몸에 별이 돋는다며

유리창 빽빽이 뿔의 수치 휘갈기는 사나이

침묵을 가둔 등에서 흰 이빨들 웃고 있다

 

영혼을 팔 수밖에 없는 밤에는 외출금지

 

 

벽에 걸린 두 개의 그림

  

 

여자는 베란다에 서서 멀리 지중해를 바라보고

 

지중해는 벽에서 적막을 통과해 새를 보고 있다

 

새는

벽에 걸린 가슴이 붉은 해와 푸른 지중해를 본다

지중해의 속이 붉은지는 알 수 없다

 

바다를 만만해 하던 새의 날개는

태풍에 떠밀려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하다 털이 빠져,

액자 속에 꿈꾸듯 엎드린 바다도 겁이 난다

 

지중해가 젖은 안구를 통과해 그녀를 보고 있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무서움증을 앓고 있는 새를 훔쳐보다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술술 뿌려

그곳에서 길어 올린 태양과 코발트블루, 신기루를 볶았다

등 뒤에 있던 새우 같은 아이들의 해초내음

그 한 때의 아름다움도 장식해 마지막 성찬을 차린다

 

지중해보다 푸른 저녁 일곱 시

 

새는 맞은편 벽에 새로 걸린

바다의 격랑을 재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

 

남자는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근성은 겁이 없어 보인다

 

그녀는 넋을 잃고 지중해를 바라보던 여자의 방식으로

날개깃을 고르고 있는 새를 보고 있다

 

 

월요일 오후

  

 

저녁 회랑에 기대앉아 편지를 쓴다

자꾸 자꾸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 쓴다

편지는 하루 동안 발효되어 화요일에 부쳐진다

 

항상 당신께 도착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은 월요일 아침이다

 

오늘 아침 베니스 해변에서 노인이 죽었다

소년의 뒤를 따라다니던 눈빛을 거두고

들것에 실려 나가던 백마 한 구

좁은 허리를 다 빠져나간 모래시계를

나는 턱을 괴고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의 밥을 주다 말고 월요일을 고정한다

당신은 월요일 오후 무엇을 하는가

 

소년이 먹던 푸른 토마토의 맛은 아렸지만

내 혀는 붉은 아다지에토

해변을 한 바퀴 돌다가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수평선 너머 흘러가버린 당신의 흰 눈과 노을을 본다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새

저만치 닿을 수 없는 새의 안쪽,

 

화요일 아침 회랑에 기대앉아 편지를 보내면

베니스의 해변을 보내면

이제 편지는 당신의 소년에게 닿을 수 있을까

지금은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이라고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베니스에서의 죽음」

 

 

권이화 :

 본명: 권오성.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전문가과정) 수료. 

 

-<미네르바>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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