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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에 기사화 된 왜구의 만행 - 인간 표적으로 총탄 실험

작성자베레타(인천)|작성시간26.06.15|조회수21 목록 댓글 0

Deokin Lee

 

[프랑스언론에 비친 1904년 그해 겨울의 조선인(한국인)에 대한 일본군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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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비 일러스트레(LA VIE ILLUSTRÉE) 제320호), 1904년 12월 2일.

“일본의 잔혹성(LA CRUAUTÉ JAPONAISE)- 한국에서의 인간 표적(CIBLES VIVANTES EN COR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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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넬 페라슈(LYONEL PERR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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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당사의 특파원은 그가 우리에게 보낸 충격적인 사진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왔다. 일본인들이 일류 군인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들이 스스로 증오를 사는 데 탁월하다는 점 또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일종의 일본 보호국이 되었다. 만약 일본인들이 정의와 인도주의로 그들을 대했다면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대한 이 자의적인 지배(손아귀)에 순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주인이 된 이후로 이 평화로운 나라-어쩌면 지나치게 평화로운 나라-에 진정한 폭정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주민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과도한 세금을 지우고, 군사적 강제 노역을 부과할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그들을 학대하고 고문하고 있다. 만약 이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전하는 사진들만으로도 이러한 고발이 진실임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 스냅 사진들은 세 명의 한국인이 처형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은 간첩 혐의-만약 그렇다면 사형선고가 그나마 설명이 될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단지 친러시아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일본 군사법정은 간첩혐의가 입증된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을 증오하지 않거나 일황의 대리인들에게 미온적인 동조만을 보인 불행한 용의자들에게도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일본인들은 피고인들을 절대 현지(한국인) 재판관에게 넘기지 않는다. 현지 재판관들이 충분히 엄격하지 않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 '반항적인 우두머리들'은 군사 법정의 처분에 맡겨지며, 군사 법정은 그들의 목을 베는 책임을 집행한다.

이번 상황에서는 세 명의 사형수가 산개하여 배치된 다수의 군인들에게 표적 역할을 하도록 결정되었다. 처형이 일종의 사격 실험이 된 것이다. 가련한 한국인들이 총살당한 환경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포를 초월하며, 처형의 연속적인 단계 동안 일본군 장교들이 촬영한 이 사진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단 9명으로만 구성된 사격 개시 대원(결과적으로 사형수 1명당 총 3정)은 25m가 넘는 거리에서 사격했다. 사격은 개별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 학살을 위해 지정된 군인들은 각자 원하는 대로 사격했다. 그동안 장교들은(130쪽) 야전 쌍안경을 통해, 이 자유 사격의 결과를 지켜보았다.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불쌍한 한국인 포로들은 눈을 가린 채 단단히 묶여 십자가 모양으로 세워져 있었다. 장교들은 먼저 묶인 끈이 단단한지 확인한 뒤, 초원의 초록과 붉은 배경에 흉하게 돋보이는 이 세 개의 하얀 점, 즉 세 명의 희생자들을 향해 병사들이 천천히, 한 명씩 사격을 가했다; 독자 여러분은 사진 가운데 하나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오른쪽 끝에서 조준하며 쏘는 마지막 병사와 장교 왼쪽에 있는 병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병사들은 쏠 준비를 하며 적절한 순간을 노리고 있다. 이 사진들은 믿기 힘들지만 일본인들 스스로가 판매에 내놓은 것으로, 그들이 어떻게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비극적인 아침의 나라’로 바꿔놓았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러시아 측이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힌 부상자들이 당한 잔혹한 행위에 대해 지적했을 때, 일본 측은 그러한 행위가 극소수의 병사들에 의해서만 저질러진 것이며 장교들은 그와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진들이 증명하듯이, 이 끔찍한 총살은 장교들에 의해 지시되고 감독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일본 문명의 외관 아래 옛날의 야만인들이 숨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말이 옳다는 듯이 보인다. 현재의 전쟁을 끔찍할 정도로 잔혹한 성격으로 만든 이 황인종들, 실패 시 자살하는 이 장교들, 부상자들을 고문하는 이 병사들은 아무리 유럽식 군복을 입고 있다 해도 우리와는 여전히 매우 다르다. 아쉽게도 백인 병사들 역시 과격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 관해 우리 전쟁의 상세한 역사는 그야말로 교훈이 된다. 어쨌든 이러한 행태는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혐오하는 것을 충분히 정당화한다. 이 혐오는 심지어 증오에까지 이르며, 군대가 점령한 많은 마을에서 상황은 매우 긴장되어 있어 일본 병사들에게는 최소 5명 이상의 무리를 지어 다니도록 권고되고 있다. 도쿄 정부가 평화롭고 친절한 아름다운 한국의 주민들을 상대로 군대가 저지르는 잔혹 행위에 대해 신속히 제동을 걸기를 기대해 본다. 진정한 문명은 군사 장비의 우수성보다는 인권을 존중하는 데서 드러난다(1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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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대한 설명]

살아있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유 사격 후, 총탄의 효과를 조사하는 일본인들[가운데의 사형수는 첫 번째 발사에 턱에 총탄을 맞았고, 오른쪽의 사형수는 오른팔에 총탄을 맞았다](129쪽 전면 사진의 설명).

살아있는 표적들-일본군 장교들과 하사관들이 사형수들의 결박이 단단한지 확인하고 있다(130쪽 상단 사진의 설명).

살아있는 표적들-25m 거리에서 자유 사격: 첫 두 발의 총성(130쪽 하단 사진의 설명)

살아있는 표적들-첫 번째 효과: 가운데에 있는 한국인은 턱에 부상을 입었고, 오른쪽에 있는 한국인은 팔에 부상을 입었다(131쪽 상단 사진의 설명).

살아있는 표적들-사격 후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시신을 유기한다(131쪽 하단 사진의 설명).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왜구가 우리에게 저지른 악랄한 역사의 교훈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출처 :

https://www.ddanzi.com/index.php?mid=free&page=7&document_srl=88522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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