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트료시카 (외 3편)
김명지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을 보고 와 잠든 밤
꿈에
마트료시카 뚜껑을 열고 아버지가 걸어 나온다
골 깊은 주름 너머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인부들이
끌고 가는 명태손수레
목화 같은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길
엿장수의 등장에
작대기를 흔들며 따르는 아이들
명태꾸러미와 엿을 바꾸려는 때
아버지의 기침이 기척으로 들렸다
여섯 다섯 넷 셋
점점 작아지는아버지
그 아버지가 다시 마트료시카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 모두 밧줄로 끌고 가는 파도
하얀 겨울파도
꽃이 태어나는 시간
초닷새 달이
내일 필 꽃의 개수를 헤아려
제 몸에 새겨 넣고
그 옆 별 하나
소란스런 바람더러
제발 자라고 훈수하는 밤
화양연화
돌이켜보니
그날이 우리에겐 최초의 찰나였거늘
먼저 당도한 마음 따라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르던 살갗
雨水
선암사 홍매 아래 섰다
순댓국 한 그릇에 공깃밥 둘
아주 오래전
아이를 놓치고 시장통을 터덜터덜 걷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이천 원짜리 순댓국집에 들어
사정없이 뿌려진 들깨가루를 걷어내고
비닐포장을 쿡쿡 찌르는 비린내
구부러진 허리를 버린 새우젓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오랫동안 순댓국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한 달 내내 우기인 허름한 골목 속
우기의 추위를 건너려고
순댓국집 문을 밀었다
탁자 여섯 개
서른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아이 다섯을 데리고
순댓국 세 그릇에 공깃밥 일곱 개를 시켰다
망설이며 숟가락을 부딪치는 소리,
오래전 놓쳐버린 내 아이가
탁자 앞에 앉아
저도 공깃밥을 시키고 있었다
순댓국 한 그릇에 공깃밥 둘
ㅣ시인의 말 ㅣ
생각해보니 나는 늘 서성거렸다
누구도 돌봐줄 이 없던 시간을 넘어
다 살았겠다 싶던,
생명이 남았다면 쉰에 이르자 했었다
엄머거 닿지 못한 나이
그 나이를 넘어섰다
나를 돌보는 대 익숙지 않아
누군가를 돌볼 궁리에 바쁘게 살았다
조금 느리게
천천히 웃고 살 일이다
-시집 『세상 모든 사랑은 붉어라』중에서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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