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마트료시카 (외 3편)/ 김명지

작성자김명|작성시간18.11.07|조회수103 목록 댓글 0


 버지, 마트료시카 (외 3편)



  김명지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을 보고 와 잠든 밤

 꿈에

 마트료시카 뚜껑을 열고 아버지가 걸어 나온다


 골 깊은 주름 너머로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인부들이

 끌고 가는 명태손수레


 목화 같은 눈송이가 펄펄 날리는 길

 엿장수의 등장에

 작대기를 흔들며 따르는 아이들

 

 명태꾸러미와 엿을 바꾸려는 때

 아버지의 기침이 기척으로 들렸다


 여섯 다섯 넷 셋

 점점 작아지는아버지

 그 아버지가 다시 마트료시카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우리 모두 밧줄로 끌고 가는 파도

 하얀 겨울파도




 꽃이 태어나는 시간



 초닷새 달이

 내일 필 꽃의 개수를 헤아려

 제 몸에 새겨 넣고


 그 옆 별 하나

 소란스런 바람더러

 제발 자라고 훈수하는 밤




 화양연화



 돌이켜보니

 그날이 우리에겐 최초의 찰나였거늘

 먼저 당도한 마음 따라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르던 살갗


 雨水

 선암사 홍매 아래 섰다




순댓국 한 그릇에 공깃밥 둘



 아주 오래전

 아이를 놓치고 시장통을 터덜터덜 걷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이천 원짜리 순댓국집에 들어

 사정없이 뿌려진 들깨가루를 걷어내고

 비닐포장을 쿡쿡 찌르는 비린내

 구부러진 허리를 버린 새우젓을 내려다보며

 그래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후 오랫동안 순댓국을 먹을 수가 없었다

 한 달 내내 우기인 허름한 골목 속

 우기의 추위를 건너려고

 순댓국집 문을 밀었다


 탁자 여섯 개

 서른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아이 다섯을 데리고

 순댓국 세 그릇에 공깃밥 일곱 개를 시켰다


 망설이며 숟가락을 부딪치는 소리,

 오래전 놓쳐버린 내 아이가

 탁자 앞에 앉아

 저도 공깃밥을 시키고 있었다


 순댓국 한 그릇에 공깃밥 둘




 ㅣ시인의 말


 생각해보니 나는 늘 서성거렸다


 누구도 돌봐줄 이 없던 시간을 넘어

 다 살았겠다 싶던,

 생명이 남았다면 쉰에 이르자 했었다


 엄머거 닿지 못한 나이

 그 나이를 넘어섰다


 나를 돌보는 대 익숙지 않아

 누군가를 돌볼 궁리에 바쁘게 살았다

 

 조금 느리게

 천천히 웃고 살 일이다




 -시집 『세상 모든 사랑은 붉어라』중에서 (201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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