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외 2편) - 고광헌

작성자김 명|작성시간11.12.04|조회수64 목록 댓글 0

상처를 상으로 받아야 시인이지 (외 2편)

 

   고광헌

 

 

 

김경미 시인 문학상 받는 날, 예쁜 축하 화분이 왔는데요, 리본에 쓰인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

 

祝 受傷!

 

상처를 상으로 받으니 축하한다는 건데요, 세상 어떤 시보다 더 시적이더라고요, 가슴속에 죽비가 떨어지데요,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한 상 받아내는 운명이잖아요

 

 시인에게 상은 그저 아름다운 모욕이겠지요

 

 

 

어머니가 쓴 시

 

 

 

어머니

머리에 보자기 두르고

학교 오시던 날

 

누런 보리밭 옆 운동장으로

5월 하늘 새까맣게

무너지던 오후

 

더이상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지지 않았다

 

쪽 풀린 어머니의 검은 머리칼

서울 와서

가발공장 여성노동자

데모에서 보았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수업료

 

그때

어머니 전생애를 잘라

조용히 머리에 두른 것이다

 

 

 

시간처럼 무거운 물건 보지 못했네

 

 

 

어머니, 오늘도

왜 죽지 않느냐고

왜 목숨이 이처럼 질기냐고

 

날마다

시간과 전쟁을 벌이는 어머니

정말 무거운 물건은 시간이다

 

얼마나 두려우면

저처럼 죽음에 맞불을 놓으실까

 

일평생 쌓아올린 생의 품격

낱낱이 헤치면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기품 넘치던 우리 어머니

 

탐진 안씨, 갑자, 례자, 지동댁

 

시간처럼 무거운 물건은 보지 못했네

 

 

 

                          —시집 『시간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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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헌 / 전북 정읍 출생. 경희대 체육학과 졸업. 1983년 〈광주일보〉신춘문예와 시 무크지 『시인』으로 등단. ‘5월시’ 동인으로 활동. 시집 『신중산층 교실에서』『시간은 무겁다』. 사회평론집 『스포츠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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