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의 ‘긔루-’의 정체를 찾아서

작성자김기홍|작성시간10.07.14|조회수769 목록 댓글 0

<님의 침묵>의 ‘긔루-’의 정체를 찾아서
배 석 범

1.서론
일상어의 어원을 찾는 것이 어학도의 주요 임무 가운데 하나이듯이, 정체 불명의 시어의 근원을 찾아가는 것도 어학도의 몫이라 생각된다.
어학도가 시가를 연구 대상으로 할 때, 작품의 가치까지 평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가치평가를 위한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자료 자체만을 다룰 것인가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시어를 일상언어와 동일하게 생각한다면 시어 자체만으로도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시어가 궁극적으로 시 체계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밝혀내는 것이 문학 연구의 목적에 더욱 합당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문학이 우리 삶을 보다 윤택하고 한 차원 높은 경지로 이끄는 효용성을 갖는다고 할 때 원칙적으로 문학(시)의 연구는 작품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가치 평가까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 부분에 있어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초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앞으로 구체적으로 논의되겠지만) 만해의 시어 ‘긔루-’가 만해의 ‘님’ 연구의 핵심이면서도 이 시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님의 침묵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시어 ‘긔루-’에 대한 의미 구명이 우선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본고에서는 1920년대 한용운의 시어로 잠깐 쓰이다가 사라져간 신비스러운 그의 시어, ‘긔루-’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군말(님만님이아니라 귀룬것은 다님이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어는 만해 사상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시어 ‘긔루-’에 대한 정확한 구명(究明) 작업은 만해 연구에 있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본론
2.1.‘긔루(긔룹)-논의를 전개해가는 데 있어 ‘긔루-’와 ‘긔룹-’을 특별히 구분할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 두 형태를 구분하지 않기로 한다.
’의 형태 고찰
‘긔루-’와 같은 그 어휘의 의미를 모르는 시어를 해독할 때는 무엇보다 그 시어와 관련된 자료에 대한 면밀한 관찰이 중요할 것이다. 이는 자료를 통해 그 시어와 관련된 어떤 규칙성을 찾는 것이야말로 해독의 지름길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긔루-’는 님의 침묵 전편에 걸쳐 ‘긔룬, 긔루은, 긔루어, 긔룹-’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님의 침묵’에 보이는 ‘긔루-’의 기본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쉽게 결정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님의 침묵 ‘긔루-’의 표면에 표현된 여러 형태들, ‘긔룬, 긔루은, 긔루어’ 등은 이 시를 지은 당시의 (규범화 되지 않았던) 표기법 체계로 보면 ‘긔루운, 혹은 긔루워’의 단순한 표기상의 혼란으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님의 침묵 전편을 자세히 고찰하면 이 형태들을 단순한 표기상의 혼란으로 생각할 수 없는 때문이다. 가령 ‘무섭-, 괴롭-···’등에 관형사형어미 ‘-ㄴ’이 붙은 형태는 ‘무선, 괴론···’ 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항상 ‘무서은, 괴로은···’등으로만 나타나며, 또 ‘그립-’ 등에 부동사형어미 ‘-어-’가 붙은 형태는 ‘그리어-’ 등으로 나타나지 않고 ‘그리워-’ 등으로만 나타나고 있다 ‘긔루은’은 오늘날의 표기법으로 본다면 ‘긔루운’의 혼란으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ㅂ’ 불규칙 용언, ‘무서은, 향긔로은··· 등’이 일관된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볼 때 이런 현상은 ‘ㅂ’ 불규칙의 ‘ㅅ’ 불규칙화로의 재구조화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권인한 1996 : 514).
. 최소한 님의 침묵의 표기법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체의 표기법질서를 체계적으로 수립해 놓고 그것에 충실히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표기법의 검토를 통해 ‘긔룬(군말)’과 ‘긔루(어)-(군말, 길이 막혀, 우는 때, 사랑의 불, 후회, 달을보며, 생의 예술)’를 기준으로 하면 기본형을 ‘긔루-’로, ‘긔룹-(당신이아니더면)’. ‘그루은(우는, 사랑의불)을 기준으로 하면, ’긔룹-‘으로 잡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표기형태(‘긔룬, 긔루은, 긔루어, 긔룹-’ 등)는 당시 표기법의 혼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긔루-’형과 ‘긔룹-’형이 각각 다른 가치를 갖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ㄱ. 님의 침묵 표기체계를 살펴보면 님의 침묵에 보이는 형태 ‘긔룬, 긔루어’ 등 은 각각 ‘긔루은’과 ‘긔루워’의 표기상의 혼란을 반영한 형태라 할 수 없다.
ㄴ. 님의 침묵에 보이는 형태 ‘긔룬, 긔루은, 긔루어, 긔룹-’ 가운데 ‘긔룬, 긔루어’ 의 기본형은 ‘긔루다’로 ‘긔루은, 긔룹-’의 기본형은 ‘긔룹다’로 잡아야 한다.
ㄷ. ‘긔루-’형(‘긔룬, 긔루어’)와 ‘긔룹-’형(‘긔루은, 긔룹지’)은 각각 다른 가치를 가진 어 휘이다.

(1)은 님의 침묵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얻은 결과이다. 앞으로의 우리의 작업은 (1)의 증명해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1ㄱ)은 님의 침묵 전편의 표기법의 검토(분석)를 통해 얻은 것이므로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긔루-’형태와 ‘긔룹-’형태가 형태상으로 유사하므로 얼핏 같은 형태의 혼란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정한 기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시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형태를 표기법의 혼란으로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ㅂ’변칙 용언의 활용 형태가 모두 정상적으로 반영[자음 앞에서는 대개 ‘-우-’ 대신에 ‘-으-’가 들어가 있고(무서은···) 모음 앞에서는 ‘-우-’로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리워하다 ···)]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긔룬’과 ‘긔루은’, ‘긔루어’와 ‘긔루워’만이 혼동된 표기 형태라 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1ㄴ)은 (1ㄱ)이 객관적인 관찰에서 비롯된 합리적인 것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1ㄷ)은 ‘긔루-’형태와 ‘긔룹-’형태의 의미를 살피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리의 논의가 좀더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긔루-’와 ‘긔룹-’은 의미가 시맥에 따라 차이날 때도 있지만 의미가 비슷할 때가 있어 다른 단어로 쓰였다고 단정짓기가 어려운 때문이다. 가령, 군말의 ‘긔룬, 긔루어-’는 기타 시(길이막혀, 달을보며, 생의예술)의 ‘긔루어-’와 의미가 다르지만 기타 시에 쓰인 ‘긔루어-와 긔루은, 긔룹-’은 의미가 엇비슷하다(예문(7) 참조). 따라서 (1ㄷ)처럼 ‘긔루-’와 ‘긔룹-’이 다른 의미(가치)를 가진 단어라 하기 어렵다.
이렇듯 의미면에서 보면 ‘긔루-’와 ‘긔룹-’를 어떻게 연관지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살펴본 바와 같이 두 형태가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을 가능성, 즉 두 어휘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어휘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다른 가치를 지닌 시어일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1ㄷ)을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기로 한다.

(2)‘긔루다’와 ‘긔룹다’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다른 가치(의미)를 가지는 어휘다.

(2)의 두 명제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이것은 시어 ‘긔루다’와 ‘긔룹다’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으로는 한 어휘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가치(의미)를 가지는 단어의 관계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논의가 되겠지만 (2)에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말은 이 두 단어가 같은 어휘를 모태로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른 가치(의미)를 가진다’는 말은 둘 중 하나가 시적 상황에 맞게 윤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2)의 두 명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긔루-’와 ‘긔룹-’ 가운데 어떤 것이 더 근본이 되는 어휘인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데, 이것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나 우리는 ‘긔루-’를 기본형으로 하고 ‘긔룹-’은 여기서 윤색된 형태로 잡고자 한다. 님의 침묵을 대표한 시 ‘군말’에 ‘긔루-’가 쓰였으며, 이 형태가 우리가 관련짓고자하는 고어의 형태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루-’와 ‘긔룹-’의 관계는 뒤에서 언급될 것이다. ‘긔루-’를 고어와 연관 짓기에 앞서 먼저 님의 침묵에서 사용된 의미를 살피기로 한다.

2.2. 님의 침묵에서의 ‘긔루-’의 의미
‘긔루(긔룹)-’는 만해의 님의 침묵 전편에 걸쳐 총 8번이 나타나며이상섭(1984)는 ‘긔루-’와 ‘긔룹-’을 구분하지 않고 7번 나오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 직접 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군말에 2번 그밖에 ‘길이막혀, 당신이아니더면, 우는, 사랑의불, 生의藝術 등에 각각 한번씩 나타난다. 군말을 보면 ‘긔루-’의 뜻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님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3)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쓴다(군말)

(3 ㄱ)에서 보면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라 되어 있듯이 정의항의 ‘종차’처럼 님을 직접 수식하고 있는 어휘가 ‘긔루-’이므로 이 어휘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만해가 이야기하는 님의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긔루-’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서준섭(1991 : 20)의 님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4) “한편 ‘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군말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포괄자이며, 기룰만한 모든 존재인 동시에 그의 시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나의 생명, 시간의 한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자······”

(4)에서의 님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ㄱ. 포괄자
ㄴ. 기룰만한 모든 존재
ㄷ. 나의 생명
ㄹ. 시간의 한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자

(4)에서 님을 ‘포괄자’로, 그리고 그의 시구를 직간접적으로 인용하여 ‘긔룰만한 존재, 나의 생명, 시간의 한’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4ㄱ)은 군말(詩)로 미루어 ‘긔룬 것은 다 님이라’고 한데서 비롯된 해석으로 (특히 부사 ‘다’에 초점이 놓인 해석으로) 생각되며, (4ㄷ,ㄹ)은 님에 대한 표유적 표현이므로 디들은 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 하기 어렵다. 오직 (4ㄴ)만이 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설명은 마치 언중이 ‘기루-(긔루-)’에 대한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데 문제가 있다. 어휘 ‘기루(긔루)-’은 지금까지 출판된 어떤 국어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긔루-’를 ‘그리-, 그립-’등과 관련지으려 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졸고(1987)에서도 ‘긔루-’를 ‘그립-’과 ‘그리-’에 연관 지은 적이 있다.
특별한 설명없이 언중이 이 어휘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님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으며, 그것을 직접 수식하고 있는 ‘긔루-’의 정확한 의미 파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겠다.
이처럼 기존의 연구는 만해의 시어 ‘긔루-’를 ‘그리-나 그립-’과 관련을 짓지는 않았지만 언어적으로 합당한 구체적인 의미를 추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이상섭(1984)에 와서야 비로소 ‘긔루-’가 ‘그리-와 그립-’이 아니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시의 문맥을 통해 ‘긔루-’는 ‘그립다. 그릴만 하다, 공경할 만하다, 안스럽다, 기특하다’ 등 폭넓은 의미를 가진 좋은 낱말이라 의미 파악을 하고 있다.
. 언급한 바 기존 연구는 만해의 시어 ‘긔루-’가 독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인의 독특한 어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는 할 수 있겠지만 시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현대 정서법에 맞추어 출판된 시집을 살피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다음은 다람쥐문고에서 출판한 님의 침묵(한림문화사 1977)에서 ‘긔루-’가 사용된 시의 구절이다.

(5)ㄱ. 꽃 흰아침, 달밝은 저녁, 비오는 밤, 그때가 가장 님 그리운 때라고 남들은 말합니다 (우는 때)
ㄴ. 당신이 괴롭지만 않다면 언제까지도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야요(당신이 아니더면)
ㄷ. 그대들이 님 그리운 사람을 위하여 노래를 부를 때에 ···(사랑의 불)
ㄹ. 한숨의 봄바람과 눈물의 수정은 떠난 님을 그리워하는 정의 추수입니다(생의 예술)

여기서는 ‘님의 침묵’을 현대 표기법으로 고쳐놓고 있는데, (5 ㄱ,ㄷ,ㄹ)에서는 시어 ‘긔루-’가 ‘그립-’으로, 심지어 (5ㄴ)에서는 ‘괴롭-’으로까지 대체되어 있다. 이것은 출판될 당시 언중이 시어 ‘긔루-’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시맥에 대한 피상적인 관찰에 의해 시어 ‘긔루-’를 ‘그립-, 괴롭’ 등으로 대체한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오류는 한성도서주식회사(1938)에서 출판된 ‘님의 침묵’ 이래로 지속되어 온 것이다(이상섭 1984:18). 따라서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지을 당시에도 ‘긔루-’는 언중에게는 낯선 어휘였을 것이다.
.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님의 침묵’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시어 ‘긔루-’의 정확한 의미 파악은 필요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시어 ‘긔루-’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님의 침묵’에 보이는 우리의 논의 대상인 시어 ‘긔루-’가 사용된 시구를 모두 제시한다.

(6) ㄱ.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 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군말)

ㄴ.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 쓴다(군 말)

ㄷ. 뉘라서 사다리노코 진주로배모아요
오시랴도 길이막혀서 못오시는 당신이 긔루어요(길이막혀)

ㄹ. 한숨의 봄바람과 눈물의 水晶은 난님을긔루어하는 정의추수임니다저리고쓰린 슯 음은 힘이되고 熱이되야서 어린羊과가튼 적은목숨을 살러움지기게함니다(生의藝術)

ㅁ. 달은밝고 당신이 하도긔루엇슴니다(달을 보며)

ㅂ. 당신이아니더면 포시럽고 맥그럽든얼골이 웨 주름살이접혀요
당신이긔룹지만 안터면 언제지라도나는 늙지아니할테여요(당신이아니더면)

ㅅ. 픤아츰 달밝은저녁 비오는밤 그가 가장님긔루은라고 남들은말함니다/나도가튼 고요한로는 그에 만히우럿슴니다(우는)

ㅇ. 만일 그대네가 쓰리고압흔슯음으로 조리다가 爆發되는 가슴가온대의불를 수가잇 다면 그대들이 님긔루은 사람을 위하야 노래를 부를에 잇다감잇다감목이메어 소리 를이르지못함은 무슨닭인가(사랑의불)

(6)에서 ‘긔루다’의 문맥적 의미를 살피면 특정한 단어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의미가 다양하다. 이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앞서 ‘긔루-’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를 살피기로 한다.
송욱(1973)에서는 군말의 ‘긔루-’에 대해서 허웅 박사의 교시라 하면서 ‘그립다’가 변화한 말로 설명하고 있으며, ‘당신이 아니더면’의 ‘긔룹지-’는 ‘괴롭지-’로, ‘달을보며’의 ‘기루어-’는 특별한 해석없이 ‘긔루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 시의 그것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따라서 송욱(1973)은 님의 침묵 전편을 해석하고 있는 글의 내용과는 달리 이 시어에 대한 체계적인 언급은 없는 셈이다.
이상섭(1984)에 와서야 비로소 만해의 시어 ‘긔루-’에 대해서 님의 침묵의 체계 안에서 그 의미를 구명하려 하고 있다. 다음에 이상섭(1984:21)의 견해를 인용한다.

(7) “‘기룹다’는 ‘그립다’의 뜻을 함축하면서도 또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음을 보아 분명하다.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 쓴다(군말)

첫줄의 ‘긔룬’은 ‘그리운’이라는 뜻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지만, 또한 ‘기릴 만한’, ‘공경할 만한’의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끝줄의 ‘긔루어서’는 확실히‘그리워서’의 뜻은 아니다. 여기서는 오히려 ‘측은해서’, ‘안스럽다’,‘기특하다’ 등 폭 넓은 뜻을 가진 ‘좋은’ 낱말이지만, 한국어사전에는 방언으로서도 수록이 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편집자마다 쉽게 ‘그립다’로 고쳐 써버리고 마는데, 한용운은 ‘그리워하다’, ‘그리다’란 말을 따로 씀으로써 분명히 ‘긔룹다’와 ‘그립다’를 구별하고 있음을 ···실제로 님의 침묵을 살펴보면 한용운은 ‘그리워하-’와 ‘그리(우)-’를 따로 씀으로써 ‘긔루-’를 다른 단어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그 예를 보이고 있다.

님을 그리우는 織女가(七夕)
당신을 그리워하는 싸음은(꽃싸음)논의의 편의를 위해 인용문 속의 번호는 본문의 번호 순서를 따랐다.


이상섭(1984)는 지금까지 ‘긔루-’를 기존의 ‘그립-’으로만 해석한 것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나, 이 역시 ‘긔루-’의 의미를 정확히 구명했다고 할 수는 없다. 군말에서 첫번째 시어 ‘긔루-’에 대해 ‘그립-’이라는 뜻 이외에 ‘기릴 만하-’, ‘공경할 만하-’의 뜻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두번째 시어 ‘긔루-’ 는 확실히 ‘그립-’은 아니고 ‘측은하-’, ‘안스럽-’,‘기특하-’ 등의 의미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시적 상황을 고려한 시어 ‘긔루-’ 그 상황에서의 의미는 될 수 있어도 시어 ‘긔루-’ 자체의 의미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상섭(1984)는 같은 시에서 한 어휘가 아무런 수사적인 장치도 없이 거의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점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 따라서이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이상섭(1984)의 ‘긔루-’에 대한 해석은 그만큼 가치가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상섭(1984)는 군말 이외의 다른 시에 나타나는 시어 ‘긔루-’의 의미는 언급이 없으며, ‘긔루다’를 ‘그립다와 그리다’와 별개의 단어임을 말하면서 어떻게 그립다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지 않다군말 이외의 시에서 시어 ‘긔루-’의 문맥적 의미를 살피면 현대어 ‘그립-’과 흡사하다. 다음의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뉘라서 사다리노코 진주로배모아요
오시랴도 길이막혀서 못오시는 당신이 긔루어요(길이막혀)


는 점에서 ‘긔루-’에 대한 이상섭(1984)의 해석은 여전히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시어 ‘긔루-’에 대한 의미 구명의 노력으로 전보삼(1991:140)을 들 수 있다. 다음은 그의 견해이다.

(8) “긔룬 존재는 지금까지 우리가 통상적인 해석인 그립다의 변형, 또는 기릴만한, 공경할만한의 뜻으로 주로 새겼다. 그러나 이 긔룬다는 뜻은 갑과 을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관계문화를 뜻한다. 이 관계성의 개념은 다름 아닌 불교의 연기론적인 세계관이다. 이 연기사상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는 상의상자하는 세계관이다.
‘님의 침묵’의 군말의 ‘긔룬다’는 뜻은 승려의 누더기 옷의 천조각을 깁는다는 뜻이다. 깁는다는 표현은 강원도 동북 지방 즉 금강산과 설악산 일대의 방언으로 ‘긔룬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님의 침묵’ 서시 <군말>의 긔룬의 존재의 특성은 갑과 을의 관계성 문화 즉 부처와 중생, 철학과 칸트, 이태리와 마찌니, 장미 꽃과 봄비의 관계를 이어주고 연결하여 주는 화엄철학의 연기론적 세계관이다.”

(8)에서 철학적인 내용을 제외하고 시어 ‘긔루-’에 관한 것만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9)시어 ‘긔루-’는 ‘그립-, 기릴만하-, 공경할만하-’의 뜻이 아니고 강원도 동북지방의 방언으로 뜻은 (천조각 따위를) ‘깁-’이다.

시어 ‘긔루-’에 대한 전보삼(1991)의 견해는 그 동안 문맥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으려 했던 작업에서 벗어나, 시어 ‘긔루-’에 대해 연원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 견해는 만해가 출가한 이후 백담사와 건봉사를 거치면서 대부분을 강원도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상당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님의 침묵에 쓰인 ‘긔루-’ 모두를 안을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군말’의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에서는 ‘긔루-’ 대신에 ‘깁-’을 대체하여 ‘···깁는 것은···’을 (9)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철학적 해석을 덧붙여서 ‘···관계를 맺는 것은···’으로 해석을 하면 가능하지만 이 해석도 나머지 (6 ㄴ-ㅇ)의 ‘긔루-’를 대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긔루-’에 대한 가장 최근의 견해로는 김용직(1996)을 들 수 있다. 다음은 그의 견해이다.

(10)“이 무렵(1920년대) 우리 시인 가운데는 방언과 표준어의 구분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작품을 쓴 예도 있었다. 가령 한용운은 그의 ‘님의 침묵’ 서시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는 행을 남겼다. 여기서 ‘기룬’이란 충청도 방언으로 ‘그리운’의 뜻을 가진다. 이 작품의 문맥으로 보아 특별히 음성 구조를 살릴 의도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 점으로 보아 이것은 언어감각의 미숙에서 빚어진 방언 사용의 예가 될 것이다.(김용직 1996:184-5)”

(10)에서 ‘기룬’은 ‘그리운’의 뜻의 충청도(홍성) 방언으로 단정하고 있으나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어느 방언 사전에도 ‘긔루(기루)-’가 충청도(홍성) 방언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았으며, 필자가 물어본 대부분의 홍성 사람이 ‘긔루-’의 뜻을 알지 못했다. 아직 충청도 홍성 전반에 걸쳐 ‘긔루-’에 대해 조사를 하지 못해 단언할 수는 없는 상태이지만, ‘긔루-’가 홍성방언인가 하는 의문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겠다. 설령, 홍성 방언에 ‘긔루-’존재하더라도 님의 침묵의 ‘긔루-’와 홍성방언의 그것이 일대일 대응을 하느냐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님의 침묵의 ‘긔루-’가 홍성방언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설명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표준어 ‘그립-’이 님의 침묵에서 따로 쓰이고 있는데, 특별한 목적없이 같은 의미의 방언형을 쓴 것에 대해 적절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시에서 방언의 사용은 고향의 정서를 반영하는 목적으로 주로 쓰이는데 님의 침묵에 쓰인 ‘긔루-’는 ‘그립-’에 정서적 의미만이 덧붙은 것이 아니다. 특히 님의 침묵에서 님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6ㄱ,ㄴ)은 ‘그립-’에 정서적 의미가 덧붙은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6ㄱ)에 ‘그립-’의미 이외에도 ‘기리-’, ‘공경하-’ 등이 주된 의미 더 들어가 있으며, (6ㄴ)에서는 ‘측은하-’, ‘안스럽-’ 등의 의미 이외에는 ‘그립-’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긔루-’을 ‘그립-’의 방언 형이라 했을 때, 방언이라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는 ‘긔루-’가 갖는 ‘그립-’ 이외의 주된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방언이 갖는 기능부담량이 지나치게 크다.일반적으로 시에서의 방언의 사용은 정서적 의미를 덧붙이기 위한 것이지 개념적 의미의 덧붙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방언의 기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주)17 참조하기 바란다.

둘째, 님의 침묵 전반에 걸쳐 쓰인, 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시어, ‘긔루-’를 언어감각의 미숙에서 빚어진 방언 사용으로 간주하기에는 님의 침묵에서의 이 시어의 비중이 너무 크다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긔루-’는 님의 침묵 전반에 걸쳐 총8번 나오는데 ‘긔루-’를 언어감각의 미숙에서 빚어진 방언 사용으로 간주한다면 님의 침묵 도처에 언어감각의 미숙에서 빚어진 잘못 사용된 시어가 널려 있는 셈이 되며, 이것은 필연적으로 님의 침묵의 가치를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므로 님의 침묵을 훌륭히 평가해온 기존의 비평들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김용직(1996)의 견해가 타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언급을 넘어서 좀더 치열하게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홍성방언에 님의 침묵의 ‘긔루-’와 비슷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님의 침묵의 ‘긔루-’를 홍성방언으로 간주하는 것은 살핀바와 같이 정당한 이유없이 시의 가치를 타락시키는 셈이되므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님의 침묵을 보다 적극적으로 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라 생각된다. 표면적으로는 시인의 고향 방언이 정서적 기능을 더하기 위해 시에 흔히 쓰이므로 님의 침묵의 ‘긔루-’는 홍성 방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긔루-’를 홍성 방언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긔루-’의 의미와 시적 의미를 연관 지을 때 표면적인 이유만큼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제기한 문제에 합리적인 답을 못한다면, 김용직(1996)의 견해는 단지 홍성방언에 님의 침묵의 ‘긔루-’와 비슷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표면적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비난을 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필자는 본인이 물은 대부분의 홍성 사람들이 ‘긔루-’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김용직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긔루-’가 홍성 방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했느냐는 문의를 했다. 선생님과 통화 가운데 권영민 선생님의 고향이 홍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권영민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긔루-(긔룬)’에 대해서 물었다. 권영민 선생님은 이 어휘(긔룬)가 홍성 방언이나 뜻은 ‘그리운’이 아니라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이라 했다. 그리고 주로 다음과 같이 쓰인다고 하였다. ‘기룬게 없으니까 편하지(유)’. 홍성방언의 ‘그리운’을 뜻하지 않는다면 김용직(1996)의 견해는 원천 무효가 되는 셈이다.
통화 가운데 님의 침묵의 ‘긔루-’는 홍성방언이라는 견해까지 말씀해 주셨다. 님의 침묵의 어투가 대부분 충청도 방언이므로 ‘긔루-’도 충청도 방언이 틀림없다는 하였다. 이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필자는 홍성 방언에 님의 침묵의 ‘긔루-’와 비슷한 형태가 존재하더라도 여전히 님의 침묵의 ‘긔루-’와 홍성 방언의 그것과는 관련짓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홍성방언이 (6ㄱ,ㄴ)의 ‘긔루-’의미를 다 포괄하기 어려우며 특히 (6ㄴ)의 ‘긔루-’의 의미는 전혀 나타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형태면에서도 홍성방언의 ‘그룬’은 님의 침묵의 ‘긔루은, 긔룹지 긔루어요’를 포괄하지 못한다.)
그리고 님의 침묵의 일부 발음과 문법어미는 충청도 방언을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들 상당 부분 독자들을 위해 (현재의)표준어(발음)를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권인한 1996). 그리고 어휘측면에서 보면 님의 침묵에는 홍성방언이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님의 침묵의 표준어로부터 일탈된 모든 현상을 방언과 연관지으려 하는 태도는 (충분히 가능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유독 님의 침묵의 수많은 어휘 가운데 ‘긔루-’만을 홍성 방언이라고하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한성도서주식회사(1938)에서 출판한 님의 침묵의 ‘긔루-’가 ‘그립- 혹은 괴롭-’으로 고쳐져 있는 것을 볼 때 만해가 님의 침묵을 발표할 당시에도 언중들이 ‘긔루-’에 대한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정황을 미루어 당시 발음과 문법어미조차도 상당부분 표준어 형태를 반영하려 했던 만해가 언중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방언을 특별한 목적없이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꺼이 전화로 일일이 필자의 생각을 들어주고 설명해 주신 두 분 선생님께 지면으로나마 감사를 드린다.

언급한 바 시어 ‘긔루-’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부분적으로 타당성을 지니나 님의 침묵에 쓰인 시어 ‘긔루-’ 전체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은 공시적인 작업만으로는 시어 ‘긔루-’의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최근 출간된 시어 사전(김재홍 1997)에도 ‘긔루-’를 ‘그립다, 그리워하다, 사랑하다, 안탑깝고 불쌍하다. 찬양하다, 열심히 돌보다, 애정으로 기르다, 없어서 아쉽다 등으로 풀이해 놓고 있다. 그 동안의 연구된 바를 총정리해 놓은 느낌이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 우리는 시어 ‘긔루-’의 뜻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 어휘의 연원을 찾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문맥에 의한 공시적 작업의 한계를 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이 시어에 대한 연원을 찾는 것이 만해의 시어 ‘긔루-’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2.3.시어 ‘긔루-’의 연원
‘긔루-’가 당시 어떤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만해의 독특한 용어라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만해의 그의 독특한 시어, ‘긔루-’에 대해서 여러 가정 (11)(11)은 당시 사용되지 않은 시어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대체적으로( ㄱ-ㄹ)이 모두라 할 수 있다. Traugott&Pratt(1980), 배석범(1987) 참조.
을 해 볼 수 있다.

(11) ㄱ.기존의 단어를 윤색하여 ‘긔루-’로 만들어 사용했다.
ㄴ.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했다.
ㄷ.방언을 사용했다.
ㄹ.고어를 사용했다.

첫째, ‘긔루-’를 기존의 단어를 윤색해서 만들었다면 가능성 있는 단어로는 ‘그리-, ‘그립-’에 토대를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견해는 ‘긔루-’를 ‘그리-나 그립-’으로 바꿀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님의 침묵의 대표적인 시가 군말의 ‘긔루-’는 ‘그리-나 그립-’으로 대체하기가 어렵다.
. 대체로 기존 어휘를 윤색했을 경우에는 그 기본적 의미가 변화기보다는 정서적 의미에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7 ㄱ ㄴ)의 ‘긔루-’에서 ‘그리-나 그립-’의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다음은 시에서 기존의 어휘가 윤색되어 사용된 예이다.

(12) 寧邊에 藥山
진달내
아름다 가실길에 리우리(진달내 1925)

(12)에서 보이는 ‘아름’은 일상언어 질서에서는 ‘한 아름’이나 ‘아름드리’로 사용되는 형태이다. 따라서 일상언어질서라면 원칙적으로 ‘한 아름’으로 썼을텐데, ‘아름’으로 되어 있다. 시맥으로 보아 ‘한 아름’이 ‘아름’으로 대치된 효과는 지시적 기능의 변화보다는 정서적 기능을 넘어서지 않는다.진달래꽃이 개벽 25호(1922)에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한아름’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나중에 개고한 진달래꽃의 ‘아름’은 ‘한아름’을 윤색하여 쓴 시어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시의 보편적 질서를 고려할 때 지시적 의미를 변화시키는 윤색은 생각하기 힘들다 하겠다. 더군다나 님의 침묵에 ‘긔루-’ 동시에 ‘그리-와 그립-’이 나타나고 있으므로 ‘긔루-’를 이들 시어의 윤색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겠다.
둘째 ‘긔루-’를 새로 만들어 낸 시어일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대개 시에서 신조어는 일상언어 질서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사구조의 변형이나 단어 형성에 의해 흔히 이루어진다. 신조어는 기존 질서에 존재하지 않은 형태이어서 독자에게 신선감을 주며, 특히 성공적인 시는 당대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다음 세대에까지 읽혀질 것이기 때문에 시인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는 일상생활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보다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영어에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는 E. E. Cummings에 의해 만들어진 manunkind(Traugott&Pratt 1980:90), T. S. Eliot 에 의해 만들어진 foresuffer, 그리고 Hopkins에 의해 만들어진 widow-making 등을 들 수 있다(Leech 1980:14).


(13)ㄱ. 소한마리없이도
밭이랑을 지었소
그래도
파랗게
길자란 보리 (김풍인 산장 현대시인선집 1939)

ㄴ. 그대를 案頭六尺엔
고요 그득 조하라 (최남선 동산에서 백팔번뇌 1926)

(13)에 보이는 바와 같이 시에 쓰인 신조어는 문법적 장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통례다. (13 ㄱ)의 ‘길자라-’는 동사 어간이 합성될 때 부동사 어미가 생략됨으로써 새로운 신조어(복합동사)가 되었고시에서 동사과 어간이 합성될 때 부동사어미가 생략되어 이루어진 신조어의 사용은 다음과 같은 단어가 보인다. 오가다, 파묻다, 높맑다, 떨뜨리다, 열프르다…… 등(졸고 1987: 60-7)
, (13 ㄴ)의 ‘고요’는 역형성(Backformation)에 의해 생성된 신조어이다.일상언어 질서에서 ‘고요하-’라는 형태로만 사용되던 어휘가 ‘하-’가 떨어진 형태 ‘고요’ 단독으로 사용되었다. 국어에서 역형성에 의해 생성된 어휘든 드물다. 국어와는 달리 영어에서는 역형성에 의해 형성된 신조어가 많다. lase<laseer, lech<lecher, edit<editor, cohese<cohesion,···(Lauri Bauer:1983 230-2).


. 이렇듯 신조어가 기존 문법적 질서에 토대를 두고 만들어지는 것으로 볼 때, 전혀 기존 질서와 관련없는 ‘긔루-’를 시인이 독창적으로 만들어 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째로, 방언에서의 차용은 흔히 시인이 특수한 목적시에서 표준어 대신에 특정 방언을 사용해서 표준어로는 가능하지 않은 많은 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일반적으로 시에서 사투리 사용은 전원의 풍미를 일으킨다는 것 이외에 사회언어학에서 사투리의 사용은 소속 집단에 대한 인식과 유대감의 상징으로 역할한다[Lavov는 Marthas Vineyard에서 젊은이들이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들의 방언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들을 Vineyard 사람으로 인식하고 싶은 동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Milory 1980: 112)]고 언급된 것처럼 시에 쓰인 특정방언을 접했을 때 독자가 그것을 안다면 그 방언이 풍기는 특수한 느낌과 함께 시인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소월은 자신의 고향 방언을 토대로 시작(詩作)을 할 것이 유명하다. 소월의 시 밑 바닥에 깔려 있는 정주 방언을 모르고는 그의 시를 이해하기 힘들다(이기문 1980).
서구 시인으로서 ‘Spencer'의 고향 방언의 사용은 유명하다. heyde guys (a type at dance), rotes(youngbullocks), wimble(nimble) 등의 고향 방언의 사용은 전원 생활의 감정을 지키면서 전원의 풍미를 일으킨다(Leech 1980:112)
을 가지고 방언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전보삼(1991). 김용직(1996)의 설명은 강원도 건봉사에서 수행을 했으며, 고향이 홍천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방언을 알고 있었으며, 그만큼 자신의 시어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크나 앞에서 살핀바 이 어휘가 의미 면에서 님의 침묵에 나타난 ‘긔루-’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용운의 시어 ‘긔루-’가 관련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고어이다. 고어 형태가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4)에 그 예를 보인다.

(14)ㄱ. 저뫼는 높고높고 저 가람은 예고예고
픠고또 픠오시니 번으로써 혜오리까
(정인보, 培花女學校班花詞 담원시조집 1948)
ㄴ. 온즈믄 말가져도
못그리울 이 내마음 (최남선, 궁거워 백팔번뇌 1926)
ㄷ. 救世의 부처님하 이마음알아소서
*주: 詩中의 ‘부처님하’의 ‘하’는 ‘이시어’라는 말이다.
(이은상, 香城바라보며 노산시조집 1932)
ㄹ. 애솔 서너포기, 잣나무를 두어그루
모도 뼘 남짓 두자 키도 못되는을
뜰에다옮겨 심고저 물을주고 보노라
*주:못되는을:‘못되는 것을’의 고어법 (이광수, 내뜰 춘원시가집 1940)

(14)는 시어의 고어 형태( ‘뫼, 가람, 온, 즈문, 하, 못되는을’)의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어휘 차원을 넘어 통사적 차원에까지 확대되었음 보여주는 것으로 시인의 고어 사용의 폭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시에 있어 고어의 사용은 시인이 당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은 언어 사용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화된 자유라 할 수 있다시에 있어 고어의 사용은 우리 나라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 서구 신인들이 언어적 유산으로 생각했던 것은 Latin Greek [inspiring(=breathing in), induce(=lead in) Leech 1969: 13-4]. 고대 일본어 'kisaragi와 같은 고대 일본어 월명(月名)도 현대 언어에서 시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Miller 1986: 47). 고대 영어가 현대 영어와는 달리 그 어순이 ‘주어+ 목적어+ 서술어’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대 영어 어순이 ‘주어 +서술어+ 목적어’로 변하면서 두 어순이 공존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두 어순이 공존하던 16세기에 고대 형태는 주로 시가에만 국한되어 사용되었다(Traugott and Pratt 1980:6).
.
우리가 한용운의 시어 ‘긔루-’의 연원을 고어에서 찾는 것은 불경언해(능엄경언해)에 그것과 형태와 뜻이 비슷한 단어가 보이기 때문이다. 한용운이 불교에 귀의해 이학암 강백으로부터 능엄경을 배웠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단어를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한용운은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김연곡 스승을 만나 승려가 되어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여기서 특히 건봉사의 강원을 거치면서 이학암 강백으로부터 ‘기신론, 능엄경, 원각경, 화엄경’을 차례로 배운다(전보삼 1991:130).
. 다음은 능엄경의 예이다.

(15)ㄱ. 華嚴ㅅ衆 기류매 一切 菩薩의 智의 住혼 境에 住하야(華嚴嘆衆住一切菩薩···능엄1 28a)
ㄴ. 法華ㅅ衆 기류매 諸有엣結 다아 미 自在 得 다니(法華嘆衆盡諸有結···능엄1 28b)
ㄷ. 同列의德 기류믈브터 阿難ㅅ 자최 뵈요미 實로허리며 더러미 업서 디 혀며 濟度호매 잇 나토니라(因嘆同列之德 以顯阿難示迹···능엄1 29a)

(15)에 보이는 ‘기류메’는 중세국어 문법이 정립되지 않은 당시 시인에게는 ‘기류-+ ㅁ+에’ 쯤으로 분석되었을 것이다.중세문법 규칙에 따르면 동명사형은 의도법의 선어말어미 ‘-오/우-’를 취했으므로 ‘기류메’는 ‘기리-+우+에’로 분석될 수 있다. 그러나 중세어문법을 교육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기류메’를 보고 이렇게 분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는 중세국어에 대한 인식으로 미루어볼 때 시인도 ‘기류메’를 ‘기류-+ㅁ+에’가 아닌 ‘기리+우+에’로 분석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말의 체계에서 ‘긔-’와 ‘기-’, ‘-류’, ‘-루’의 대립이 변별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 두 어휘가 형태면에서 흡사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동질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15)에 보이는 ‘기류-’ 앞에 격 표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기류-’가 타동사인지 자동사 인지 분명치 않다. 이 형태를 님의침묵의 ‘긔루-’와 연관짓기 위해서는 (15)의 ‘기류-’가 주격을 지배한다고 하는 것이 좋다. (15)의 ‘기류-’는 목적어를 지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15)의 ‘기류’가 주격을 지배하든 목적어를 지배하든 이 형태를 접했을 때 시인이 어떻게 인식했느냐가 중요하다 하겠다.
능엄경의 ‘기류(메)’는 원문의 嘆(歎)에 대응되고 있는데 탄(嘆)의 기본적 새김(탄식하다, 한탄하다)을 그대로 적용하면 문맥에 맞지 않는다. 해답은 탄(嘆)이 여러 한자와 어우러져 다양하게 쓰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음은 탄(嘆)자와 어우러진 어휘들이다.

(16)ㄱ.탄모(嘆慕):기리고 따름
ㄴ.탄미(嘆美):몹시 기림
ㄷ.탄상(嘆賞):탄복하여 몹시 칭찬함
ㄹ.탄도(嘆悼):탄식하여 애도함
ㅁ.탄곡(嘆哭):탄식하여 욺
ㅂ.탄복(嘆服):깊이 감탄하여 복종함
ㅅ. 탄복(嘆伏):감동하여 굴복함
ㅇ.탄석(嘆惜):진정으로 애석히 여김, 진정으로 애석히 여김
ㅈ, 탄앙(嘆仰):감탄하여 존경함
ㅊ. 탄예(嘆譽):감탄하여 칭찬함
ㅋ. 찬탄(讚嘆):감탄하여 칭찬함
.
. (동아 한한대사전 동아출판사)

기본적으로 한문의 특성상 탄(嘆)자 하나로 문맥에 따라서 탄(嘆)자가 결합된 모든 단어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류’의 의미는 확대될 수 있다 하겠다능엄경의 ‘기류-’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탄(嘆)의 기본적 의미를 넘어서 嘆을 재료로 한 복합어의 의미를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15ㄷ)에서 ‘기류-’는 탄미, 탄예 찬탄···등의 의미로 쓰였으며, (15 ㄱ,ㄴ)에서는 그 문맥적 의미가 (15 ㄷ)과 약간 차이가 난다. ‘화엄과 법화’가 중생에 대해 생각하는 어떤 마음(가르침, 제도 등)이 더 들어가 있는 듯하다.
. 가정하자면 한문에 능했던 만해는 실제 중세 국어의 주된 쓰임과는 더불어 ‘기류’에 탄(嘆)자가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독특한 의미를 가진 시어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가설(假說)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17)님의 침묵의 ‘긔루-’는 중세 문헌에 보이는 표면적인 형태 ‘기류-’에서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며, 그 뜻은 嘆(16 참조)이다.

(17)를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중세 문헌에 보이는 형태, ‘기류-’와 님의 침묵의 ‘긔루-’와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4. ‘기류-(嘆)’와 ‘긔루-’의 관계
님의 침묵의 시 전편을 살피면 ‘기류(嘆)-’와 ‘긔루-’는 형태와 의미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수 있다.

2.4.1.형태적인 면
형태적인 면에서 이들의 차이는 ‘기-’와 ‘긔-’, ‘-루’와 ‘-류’의 차이가 난다. 국어의 문법체계에서 ‘기-’와 ‘긔-’, ‘-루’와 ‘-류’가 변별 기능을 못하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차이는 이들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데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다.

2.4.2.의미적인 면
탄(嘆)의미를 가졌던 중세어 (문헌에 보이는 표면적 형태)‘기류-’와 님의 침묵에 나타나는 시어 ‘긔루-’의 의미적 연관성을 살피기로 한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님의 침묵에 나타나는 시어 ‘긔루-’의 용례를 다시 보이기로 한다.
먼저 ‘긔루-’가 님의 침묵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탄(嘆)의 의미로 대표되는 중세국어의 ‘기류-’와의 연관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18) ㄱ.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 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군말)

ㄴ. 나는 해저문벌판에서 도러가는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羊이 긔루어서 이詩를 쓴다(군 말)

ㄷ.뉘라서 사다리노코 진주로배모아요
오시랴도 길이막혀서 못오시는 당신이 긔루어요(길이막혀)

ㄹ.한숨의 봄바람과 눈물의 水晶은 난님을긔루어하는 정의추수임니다저리고쓰린 슯 음은 힘이되고 熱이되야서 어린羊과가튼 적은목숨을 살러움지기게함니다(生의藝術)

ㅁ.달은밝고 당신이 하도긔루엇슴니다(달을 보며)

ㅂ.당신이아니더면 포시럽고 맥그럽든얼골이 웨 주름살이접혀요
당신이긔룹지만 안터면 언제지라도나는 늙지아니할테여요(당신이아니더면)

ㅅ .픤아츰 달밝은저녁 비오는밤 그가 가장님긔루은라고 남들은말함니다/나도가튼 고요한로는 그에 만히우럿슴니다(우는)

ㅇ.만일 그대네가 쓰리고압흔슯음으로 조리다가 爆發되는 가슴가온대의불를 수가잇다 면 그대들이 님긔루은 사람을 위하야 노래를 부를에 잇다감잇다감목이메어 소리를이 르지못함은 무슨닭인가(사랑의불)

(18 ㄱ)에서 ‘긔루-’의 의미는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를 통해서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구를 통해 문맥적 의미를 추론할 수가 있다. 만해는 ‘긔룬것은다님’이라 하고 있으며, ‘衆生이 釋迦의님이면 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薔薇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님은 伊太利다’라 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19) ‘중생, 철학, 봄비, 이태리’는 각각 ‘석가, 칸트, 장미화, 마시니’의 긔룬 대상이다.

(19)를 통해 비유의 대상을 모두 고려해 ‘긔룬-’의 문맥적 의미만을 살핀다면 ‘제도하는-, 연구하는-, 기다리는-, 사랑하는-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비유적 의미이므로 ‘긔루-’의 사전적 의미가 이렇게 다양하다고 할 수 없다. ‘긔루-’의 두 논항의 관계가 주체와 대상(객체)이 추종자와 절대자의 관계에 있으므로 이들의 관계를 고려해서 ‘긔루-’의 의미를 ‘주체가 절대적 가치가 있는 대상 - 절대자)에 어떤 마음(관계)을 나타내-’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18 ㄴ)에서 ‘긔루-’는 첫번째 시어 ‘긔루-’의 의미처럼 다양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시어 ‘기루-’의 주체인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羊’을 고려하면 ‘긔루-’의 대상은 ‘가엽고, 불쌍하고, 동정과 손길이 필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18 ㄷ-ㅇ)에서 ‘긔루-’는 얼핏 떠오르는 문맥적 의미는 ‘그립-,그리-’와 관련된다. 여러번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립-(당신을 그리워하는-의심하지마서요)’, ‘그리-(견우의 님을 그리우는-칠석)’가 쓰이고 있으므로 ‘그립-나 그리-’의 의미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긔루-’의 대상은 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절대적 복종의 대상이므로 ‘긔루-’를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8 ㄷ-ㅇ)의 의미를 살피면 ‘긔루-’의 대상이 서정적 자아가 절대적 복종하는 대상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미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물론 여기서 ‘긔루-’에 ‘그립-이나 그리-’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는 부수적 의미지 주된 의미는 아니다.
.
이러한 님의 침묵에 보이는 ‘긔루-’의 의미를 토대로 중세어 ‘기류-(嘆)와 의미를 살피면 (16 ㄱ)은 탄모, 탄앙 등으로, (16 ㄴ)은 탄도 등으로, (16 ㄷ-ㅇ)은 탄복 등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2.5. ‘긔루-’와 ‘긔룹-’의 관계
‘긔루-’는 님의 침묵 전편을 살펴보면 그 형태가 ‘긔룬-, 긔루은, 긔루어, 긔룹-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 이들을 ‘긔루-(혹은 ‘긔룹-)’ 의 표기상의 혼란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님의 침묵의 표기법 체계 질서를 고찰하면 단순 표기법의 혼란으로 볼 수 없다.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표기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당시 규범화된 표기 체계가 없었다 하더라도 님의 침묵의 표기 질서가 정연하게 나타나며, 실제로 국어 어휘 체계에서 ‘ㅂ’의 유무가 어휘간의 통사·의미적 차이를 보이므로(그리-, 그립-) ‘긔루-’와 ‘긔룹-’의 가치는 각각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님의 침묵의 ‘긔루-’와 ‘긔룹-’은 통사적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이것은 전적으로 ‘긔루-’에서 ‘긔룹-’을 차용한 시인의 개인적 문법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 우리는 앞(2)에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정을 하였다. (20)에 다시 제시한다.

(20)‘긔루-’와 ‘긔룹-’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나 다른 가치(의미)을 가진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20)의 두 가지 명제 가운데 ‘긔루-’와 ‘긔룹’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증명이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부분적으로 이 두 단어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긔룹-’이 ‘긔루-’보다 ‘그립-’에 경도된 표현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이들 형태의 같은 활용 형태, 즉 ‘긔룬’과 ‘긔루은’, ‘긔루어’와 ‘긔루워’, ‘긔루지’와 ‘긔룹지’ 직접 비교해 보면 그 의미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긔루-’의 활용형 ‘긔루지’와 ‘긔룹-’의 활용형 ‘긔루워’가 보이질 않아 이들은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긔루-’에 관형사형어미 ‘-ㄴ’이 붙은 형태 ‘긔룬’과 ‘긔룹-’에 관형사형어미 ‘-ㄴ’이 붙은 형태, ‘긔루은’의 비교를 통해 이들 사이의 의미 차이를 알아보도록 한다.

(21) ㄱ. 님만님이아니라 긔룬것은 다님이다衆生이 釋迦의님이라면 哲學은 칸트의님이다 薔薇花의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군말)
ㄴ .픤아츰 달밝은저녁 비오는밤 그가 가장님긔루은라고 남들은말함니다/나도가튼고요한로는 그에 만히우럿슴니다(우는)

(21 ㄱ)과 (21 ㄴ)의 시맥을 살피면 후자가 전자보다 ‘그립-’의 의미를 더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1 ㄱ)의 ‘긔루-’는 ‘그립-’의 의미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반면에(있다고 하더라도 미미하다), (21 ㄴ)의 ‘긔룹-’은 그 주된 의미와 더불어 ‘그립-’의 의미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겠다 님의 침묵의 시어 ‘긔루-’를 ‘그립-’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긔루어-’와 긔룹은 대응하는 형태가 보이질 않으므로 직접 의미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간접 비교를 통해 이들 사이의 ‘그립-’에 대한 의미 차이를 어느 정도는 밝혀낼 수 있다. (18 ㄴ)의 ‘긔루어’를 긔룹-의 ‘긔루은, 긔룹지’ 등과 비교해 보면 여기에는 역시 (18 ㄱ)의 ‘긔루-’에서 와 마찬가지로 주된 의미 이외에 ‘그립-’의 의미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밖의 ‘긔루어’들은 일견 간접 비교를 통해 차이를 쉽게 알기가 어렵다. 시 내용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22)‘긔룹-’은 ‘긔루-’보다 ‘그립-’에 경도된 표현이다. 따라서 ‘긔룹-’은 시적 자아가 님을 복종의 대상으로 생각함과 아울러 ‘긔루-’보다 님에 대해 ‘그립-’의 의미를 더 나타내는 시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상의 논의를 통해 님의 침묵의 관찰을 통해 얻은 결과 가운데 우리의 구체적 설명이 필요한 (20)의 두 명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님의 침묵의 ‘긔루-’ 연원과 그 의미를 추적해 보았다. 이 시어의 여러 형태를 단순히 표기법의 혼란으로 본 견해는 시인의 문법을 살펴볼 때 반성되어야 할 것이다. ‘긔루-’와 ‘긔룹-’을 표기상의 혼란으로 보지 않고 각자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며, 이 시어를 중세어 (표면적) 형태 ‘기류-’와 관련짓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그 관계를 밝히려 한 우리의 작업은 시어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한 태도였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우리의 태도는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시적 의미와 관련지어 ‘긔루-’의 정체를 보다 합리적으로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의 견해 역시 지금까지 논의된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보다는 보다 체계적이고 시의 의미(내용)과 관련하여 ‘긔루-’의 정체를 찾고자 햇다는 데서 위안을 삼고자 한다. 1920년대 잠시 님의 침묵에 몇 차례 쓰이다가 사라져간 ‘긔루-’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어쩌면 시인밖에 모를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우리는 한 시인이 남기고 간 신비스러운 시어, ‘긔루-’를 너무 오랫동안 관심밖에 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긔루-’가 한용운 사상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님을 설명하는 열쇠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이 시어의 의미 해석에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본고가 이러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후행 연구를 기대하며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함으로써 이 글을 맺고자 한다.
님의 침묵의 ‘긔루-’는 시에서의 그 다양한 형태와 더불어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의미도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긔루-’의 주된 의미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피상적인 문맥적 의미에 너무 의존한 결과라 생각할 수 있다. ‘긔루-’의 주된 의미를 고려하면 님의 침묵의 ‘긔루-’는 의미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자 탄(嘆)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이 글자(嘆)의 근본 의미가 마음 속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므로 님의 침묵에서의 ‘긔루-’는 주체가 객체에게 ‘마음 속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의미가 될 것이다. 앞(16)의 탄(嘆)과 결합된 복합어에서 알수 있듯이 슬픔일 수도, 기쁨일 수도, 때로는 그 마음을 드려 복종하는 것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긔룹-’은 ‘긔루-’보다 그리움의 감정을 더 드러내는 시인의 언어가 될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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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자료
진달래꽃(1925) 영인본, 태학사.
님의 침묵(1926) 영인본, 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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