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의「지구는 미끄럽고 둥글다」해설/ 이광호
지구는 미끄럽고 둥글다
이 원
무덤은 크고 둥글고 푸르다
가끔 무덤 안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들린다
그곳이 입구인지 알고
길을 제 몸 속으로 빨아들이며 날아온 새들이
발을 내려놓는다
새들에게도 지구는 미끄럽고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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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전복적 상상력은 ‘지구’와 ‘무덤’을 동궤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무덤은 크고 둥글고 푸르다”라는 묘사에서, ‘지구’를 ‘무덤’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물론 그 외형적 이미지의 유사성에 기대고 있지만, 여기에는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이 개입되어 있다. 그 통찰은 지구란 거대한 무덤이 아니겠는가고 묻고 있다. "그곳이 입구인지 알고/ 길을 제 몸 속으로 빨아들이며 날아온 새들"이라는 예리한 표현 역시 지구라는 무덤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운명에 대한 서늘한 비유를 흘린다.
이광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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