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詩人의 詩세계

이기철 시인

작성자김기홍|작성시간10.11.02|조회수721 목록 댓글 0

이기철 시인

 

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시단에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낱말 추적』 『청산행』 『전쟁과 평화』 『우수의 이불을 덮고』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시민일기』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과 시선집 『청산행』 『가혹하게, 그리운 여름』이 있으며, 소설집 『땅 위의 날들』, 시론집 『시를 찾아서』, 비평서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학술 저서 『시학』 『작가 연구의 실천』 『분단기 문학사의 시각』 『근대 인물 한국사, 이상화』, 편저로 『이상화 전집』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1993), 후광문학상(1991), 대구문학상(1986), 금복문화예술상(1990), 도천문학상(1993) 등을 수상하였다.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남대 교수와 영남어문학회 회장으로 재직중이다.

 


 


197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30여 년 동안 웅숭깊은 시세계를 닦아온 시인 이기철이 펴낸 열한 번째 시집으로 67편의 시를 실었다.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연 속으로 녹아 들어간 시들을 써오며 읽는 이의 마음에서 묵은 때를 씻어 내리게 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역시 그 생기와 치유력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독자는 시인의 사유가 이전의 시집에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볼 수 있다. 무릇 산고를 거쳐 나온 한 권의 시집이란 오랜 동안의 사유를 공글린 결과이기에 말이다.

시인에게 풍경은 사유의 재료다. 그 풍경은 인간 바깥의 독자적 세계가 아니라, 시인에게 포섭될 때라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게 포섭된 풍경은, 적어도 이기철 시인에게는, 더 이상 객체로서의 대상도, 사유의 재료도 아니다. 오히려 그 자체 시(詩)가 된다.
그래서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해본 적 없는 논밭/ 물소리가 다 읽고 간 들판의 시집을/ 풀잎과 내가 다시 읽는다’(‘들판은 시집이다’ 에서). 들판이 시집이니, 시인이 주체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 시인이란 ‘이 세상 모든 향기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향기가 되는 이름’(‘시인이란 이름에는 들꽃 냄새가 난다’ 에서)일 뿐이다.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기철 시인은 그간 11권의 시집을 냈고, 이번에 ‘가장 따뜻한 책’이라는 제목으로 12번째 시집을 냈다. 그는 이 시집에서 지난한 시적 사유가 결국 사람을 향한 것임을, 개체들의 힘을 돋우고 닫힌 마음을 열고자 함임을, 해서 서로 사랑하자는 말을 하고싶었음을 나지막이 말하고 있다.
‘신발마다 전생이 묻어 있다/ 세월에 용서 비는 일 쉽지 않음을/ 한 그릇 더운 밥 앞에서 깨닫는다/ 어제는 모두 남루와 회한의 빛깔이다/ 저무는 것들은 다 제 속에/ 눈물 한 방울씩 감추고 있다/…생은 사는 게 아니라 아파하는 것이다’(‘따뜻한 밥’에서)
그의 반성은 ‘쌀 안치는 손의 거룩함’ ‘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종교’를 깨닫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오늘은 조금만 더 희망을 노래하자’(인용 시)는 시어들이 은폐하는 이면의 풍경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일 만큼 직설적이고, 다감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말씀’으로 풀어지지 않는 것은 비유로 구축된 말의 풍경과 말의 절제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며 따라오던 강아지가 옆집 강아지를 만나 어디론가 놀러 가버린 그 고요함을 말한 일이 없다…’(‘별이 뜰 때’) ‘…마구간의 암소가 갓 낳은 새끼를 핥아주는 걸 본/ 만월이 산등성이에 흰 궁둥이를 대고/ 눌러앉아 있는 보름밤…’(‘메밀꽃 필 무렵’) 같은 시행에 담긴 풍경은 동양화의 그것처럼 깊고 질기다.
시인은 후기에 ‘그리하여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한 줄의 편지를 쓰는 일은 마침내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간 마음의 실 꾸러미를 내게로 팽팽히 당겨오는 일이니…’라고 썼다.
해서 ‘어둠 속에 생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별을 쳐다보는/ 나와 함께 이 도시를 떠밀려 가는 사람들/ 그들의 내일이 환히 꽃피기를’(‘저녁 거리에서 생을 만나다’ 에서).
그렇게 정말 환히 피기를.


 

■ 이끌림 자체는 강한 주장보다도 더 강하다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이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따뜻한 책」 중에서


 

이기철의 시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또한 탄식을 하지도 나약한 자기변명이나 탐닉을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저 에둘러 말하지 않고 숨기지 않으며, 시인이 바라보는 대상을 그대로 비쳐줄 뿐인 하나의 정밀화와 같다. 이는 심정적 공감을 강요당하고(?) 이면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애를 써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읽는 이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언어들이 사실은 가장 강한 주장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fact)이야말로 가장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음이다. 그는 스스로 고백하듯, “나는 유물론도 공산주의도/그런 것을 가져본 일이 없어 버릴 것이 없다/아, 저기 서쪽으로 저무는 저녁노을도/노을 아래 울고 가는 새의 노래도” 가져본 일이 없다. 그는 그 무엇도 제 것으로, 제 주의 주장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만 거기에 있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시집을 덮고 나면, 산중 암자에 홀로 정좌를 하고 앉아 물 흐르고 바람 지나는 소리를 듣고 난 기분이 되며, 시인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에 온전히 그대로 스며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시인이 거쳐온 깊은 사색의 결과가 정제된 시어로 읽는 이의 마음에 닿아 울림으로 바뀐다. 이끌림 자체는 강한 주장보다도 더 강하다. 시는 그대로 이미지이고 풍경이다.


■ 따뜻한 시는 따뜻한 밥과 같다

그가 보여주는 사실 혹은 진실은 소유하지 않고도 욕망하지 않고도 자체로 아름다운 생명의 모습이다. 그것은 세상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안식의 시간을 선사하며, 보다 적극적이게는 모든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으로 회귀하기를 권한다. 사실 이러한 시적 지향은 시인의 전작들에서부터 일관되게 나타난 것이다. 이미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노래하는 것은 자칫 상투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만 이기철의 시는 그러한 상투성을 밀어내고 시를 생기 있게 하는 힘이 있고 노력이 있다.… 이기철은 자연과 풍물을 그린다. 도시의 턱없이 부풀어오른 욕망을 줄이거나 없애고 자연의 은혜와 한계 속에 안분지족하라는 것…”(김우창)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자연과의 친화력, 자연을 하나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예찬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시를 쓰는 탈대상화된 자연을 보여준다는 것. 이 미덕은 이기철의 이번 시편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고 그래서 더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풀과 나무만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 생각하는 마음이 내 안에 들어와 등불이 된다.
―自序 중에서


 

사람 사랑하는 일이 쉽지 않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사람 사랑하는 일도 연습을 해야 한다. 슬프게도 이제는 이런 사실을 시인해야 하리라. 점점 사람이 무서워지고 사람이 싫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 자연을 예찬하게 된다.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람이 싫어진다는 것보다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는가. 아무려면 사람보다 나무가, 사람보다 풀잎이 더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사람의 아름다움을, 사람의 귀중함을 노래처럼 뇌이면서 사람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後記 중에서


줄곧 일상으로 들어온 자연의 세계를 노래하던 시인이 이제 인간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시가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회복을 부르짖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국에는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했음을 밝히는 것이다.


 

유월 푸른 숲 속으로 희고 깨끗한 새 한 마리 날아갈 때/한 사람의 푸른 마음속으로/사람들은 백조가 되어 날아간다/이 세상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이름/사람의 이름보다 향기로운 것은 없다/꽃의 일생이 소낙비와 햇빛의 생애일 때/흙이 실핏줄 터뜨려 붉은 꽃 피우듯/사람은 사람의 이름으로 마음을 꽃 피운다/꽃의 언어로 불러주면 금세 음악이 되는 이름들/그런 사람의 영혼이 익어 향기로운 열매가 된다/부르면 부를수록 사람의 이름은/갓 따온 과일처럼 신선하다
―「마음은 때로 백조가 되어」 중에서


“엄마 젖무덤 같은 산등엔/돌 지난 아이의 하얀 젖니 같은 병이 뜨”고, “저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는 “맛있는 것 먹고 떠난 동생 같다.” 자연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아름다움들은 사람의 아름다움과 같으니, 곧 그만큼이나 사람은 시인에게 어여쁜 존재들이다. 시 「따뜻한 책」에서 이야기하듯, 시인은 허기진 우리의 마음에 따뜻한 밥과 같은 시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서서 읽는 사람”에게 말한다.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이제 시인은 비로소 인간에 대한 내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풀과 나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름답다고 고백하고 있다.


■ 견고한 아름다움

 

견고한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을까?
어떤 언어도 닿지 않은 사유의 덩이들 혹은 그 조각들,
나는 견고한 말, 견고한 책을 동경한다.
그러나 견고한 말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읽히기를 희망한다.
―自序 중에서


시인은 “견고한 아름다움에 닿”길 원한다. 그러나 그 견고한 말이 차가운 이지(理智)로 매끄럽게 윤이 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밥 한 그릇과 같은 따뜻함과 편안함이기를 시인은 꿈꾼다. 그는 사람을 위해 시를 쓰고, 삶을 위해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시는 조용히 세상을, 사람과 자연을 어루만진다.
이기철 시인의 이번 열한 번째 시집에서는 페이지마다 무르익은 사색이 군더더기 없는 언어로 독자의 마음에 그대로, 그렇게 쉽게 와 닿는다. 그것은 시인이 원하던 “그 어떤 언어도 닿지 않은 사유의 덩이들”, 그 “견고한 아름다움”이다.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세상을 이기는 힘인 것을/지향과 목표도 없이 떠나는 너는/가장 큰 자유를 지닌 풀밭 위의 나그네 ―「민들레 꽃씨」 중에서

 


이기철의 시는 자기 성찰과 참회 또는 속죄의 노력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을 보여 주는 게 한 특징입니다. 미처 진심으로 깨닫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세상살이에 대한 통회와 안타까움, 살아가는 일의 죄스러움을 씻으면서 감사와 은총의 길, 사랑과 섭리의 길로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이기철의 시를 읽으며 나는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활짝 열리는 것을 느낀다. 그의 시는 때로는 낮게 깔리며 엄숙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속살거리며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현대인들에게 교화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그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우리의 척박한 삶을 시로 윤택하게 하리라는 것이다. ―박호영(문학평론가, 한성대 교수)

정신의 견인주의자인 이기철 시인이 부드럽고 견고한 상상을 자연 속에서 교직해 내면서 가난과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삶의 길이 곧 희망과 사랑과 기쁨의 길임을 실증하고자 하는 도정에서 그의 시세계는 구축된다. ―이선이(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